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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남웅의 신나는 시네한때 ‘창문’이었던 <시네마 천국>이 ‘거울’이 되어 다시 찾아왔습니다
김세윤 방송작가 2013년 10월호

 

 

집집마다 ‘홈 시어터’를 들여놓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백화점 가전매장에서는 DVD 플레이어에 5.1채널 스피커를 연결하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그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장면을 온종일 틀어댔죠. 사람들은 수많은 청년들의 팔이 떨어져나가고 숨통이 끊어지는 장면을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몇 번이고 돌려 보았습니다. 얼마나 ‘실감나게’ 팔이 떨어지는지, 얼마나 ‘사실적으로’ 숨통이 끊어지는지 확인하기 위해섭니다. 2002년, 제가 결혼할 무렵엔 다들 그랬습니다.
하지만 저는 곧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치 극장에 앉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실제 극장에 앉아있는 기분’과 결코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성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본질’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 본질이란 녀석은, 불이 꺼지고 커튼이 열리고 빛을 토해내면서 촤르르…, 마치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완벽한 어둠 속에서 한 편의 영화를 정중하게 맞이하는 절차인 것입니다. 푹신한 거실 소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삐걱대고 지저분한 객석 의자에 몸을 파묻어야만 느껴지는 참 이상한 종류의 편안함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내가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동시에 울고 웃는 동안 가슴에 스며드는 찰나의 소속감과 동질감인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바로 극장을 비로소 극장이게 하는 본질입니다. 극장을 극장 그 이상의 것으로 만드는 마법입니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얼마 전 재개봉한 영화 <시네마 천국>(1988)을 보았습니다. 보고 나면 그립고 애틋한 것들이 참 많아지는 영화입니다. 특히 극장을 비로소 극장이게 하는 본질, 극장을 극장 그 이상의 것으로 만드는 마법을 이 영화만큼 푸짐한 상으로 차려낸 작품이 또 있을까요?


이탈리아 시칠리섬 작은 마을의 개구쟁이 꼬마 토토에게 마을에 하나뿐인 극장 ‘시네마 파라디소(cinema paradise)’는 집이자 학교였고 친구이면서 애인이었죠. ‘불이 꺼지고 커튼이 열리고 빛을 토해내면서 촤르르…, 마치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완벽한 어둠 속에서 한 편의 영화를 정중하게 맞이하는’ 공간의 설레는 흥분을 잊지 못해 토토는 매일 극장을 찾아옵니다. ‘다른 사람들과 내가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동시에 울고 웃는 동안 가슴에 스며드는 찰나의 소속감과 동질감’에 중독된 마을 사람 모두 토토와 함께 그 비좁고 낡은 극장에 모여듭니다. 그렇게 매일 밤 수많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는 매일 밤 수많은 연민과 연대와 연모의 감정이 피어납니다. 그리고 다시 수많은 세월이 흐르고 수많은 사람이 떠나고 또 수많은 건물이 무너진 뒤에야 토토는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죠. 토토의 친구이면서 멘토였던 영사기사 알프레도 아저씨를 추억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1989년 <시네마 천국>을 처음 보았습니다. 어린 토토, 청년 토토, 중년 토토로 나누어 배우 세 명이 각각의 토토를 연기하는 이 영화에서 역시 저와 같은 또래 청년 토토의 첫사랑 이야기에 가장 마음을 빼앗겼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24년이 지난 뒤, 이제는 중년 토토의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보게 되더군요. “인생은 니가 본 영화하고 달라. 인생이 훨씬 힘들지.” 영화에서 알프레도 아저씨가 청년 토토에게 해준 멋진 충고 역시 인생을 조금 더 살아본 지금 더 제 가슴을 아프게 파고듭니다. 일 때문에 적어도 열 댓번은 다시 보았던 작품이지만 마흔이 넘어서, 그것도 극장에서(!) 다시 본 <시네마 천국>은 지난 ‘열 댓번의 <시네마 천국>’과는 조금 다른 표정을 지으며 제게 다가왔습니다.


“극장이 창문이었다. 네모난 스크린이 나에겐 곧 네모난 창문이었다. 어릴 적 나는 그 창문 너머로 다른 세상을 내다보는 게 좋았다. 외계인 만나고 동굴 탐험하고 시간여행하는 창밖의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더 자란 후에, 그러니까 대학만 가면 원하는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다던 엄마 얘기가 순 뻥이었다는 걸 눈치챌 만큼 나이 먹은 후에는, 네모난 창문 너머에서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찾기 시작했다. 기자가, 형사가, 요원이, 때로는 운동선수가, 어떨 땐 예술가가 세상을 바꾸는 광경도 목격했다. 초라한 승리보다 당당한 패배가 더 값지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불행히도, 그게 다 영화이기에 가능한 해피엔딩이라는 불편한 진실까지 머지않아 함께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갔다. 어쩌다 보니 네모난 창밖을 내다보는 게 직업이 되었다.”


언젠가 제가 다른 지면에 썼던 글 가운데 일부를 옮겨봅니다. 어린 토토에게도 극장은 ‘창문’이었겠죠. 하지만 나이 든 토토에게 네모난 스크린이 여전히 창문으로만 남아 있을까요? 그때 저는 위의 글을 이렇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아이는 영화를 보며 ‘상상’한다. 노인은 영화를 보며 ‘회상’한다. 회상할 게 상상할 것보다 많아지는 나이부터 네모난 창문이 조금씩 네모난 거울로 변해간다. 창문 너머 ‘그사람’의 인생위로 점점 내 인생이 겹쳐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행히 아직은 내게 영화가 창문. 하지만 머지않아 거울. 진열된 물건을 구경하려고 다가서면 유리에 비친 내 모습까지 함께 구경하게 만드는 쇼윈도처럼, 어떤 영화는 이미 나의 현재를 반사하기 시작했다.”


한때 ‘창문’이었던 <시네마 천국>이 ‘거울’이 되어 다시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제가 사랑했던 것은 영화가 아니라 극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제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사라진 극장이 아니라 그 극장에 앉아 정신없이 영화에 빠져 있던,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창문 밖을 내다보던, 지금보다 조금 더 솔직했고 조금 덜 멍청했던, 오래 전 제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도 꼭 다시 한 번 극장에서 보실 것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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