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이 죽는 방법은 뭘까?’ 올해 칸 국제광고제에선 <바보같이 죽는 방법(Dumb ways to die)>이 PR, Direct, Radio, Film, Integrated Lions 등 5개 부문의 그랑프리를 휩쓸었다. 칸 60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이 광고는 호주 멜버른 지하철공사의 사망사고 방지 캠페인이다(광고 1).
전체적인 광고 톤은 컬러풀하고 앙증맞다. 어이없게 죽는 21가지 방법이 알록달록 귀여운 일러스트와 중독성 있는 CM송과 언밸런스하게 결합하면서 전체적으로 더욱 엽기적인 재미를 주고 있다. 포악한 마약 딜러의 새 차를 살포시 긁어 놓기, 콩팥 두 쪽을 고스란히 인터넷에 내다 팔기, ‘이 빨간 버튼은 뭘까?’라며 천진난만하게 눌렀다가 핵폭탄과 함께 날아가기 등 황당하게 죽는 수많은 방법에는 ‘승강장 끄트머리에 서 있기’와 ‘기차 건널목에서 멈춰 서지 않기’, ‘승강장 사이를 펄쩍펄쩍 뛰어 건너기’도 포함된다. 지하철에서 아무 생각 없이 했던 행동들이 앞에서 보여준 멍청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죽음과 같다는 익살(slapstick)은 광고가 주는 웃음 속에 뜨끔한 바늘이 되어 꽂힌다. 소구해야 할 메시지가 중요한 공익광고의 경우 유머소구가 어필되기 힘들다는 일반론을 깬 이 광고는 칸 그랑프리 5개 부문과 함께 총 28개의 상을 휩쓴 것은 물론 28개국 아이튠즈 인기차트 등극, 전세계 750개 미디어 노출 등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켰다. 게다가 지하철 사고발생률을 21%까지 감소시키는 효과까지 거뒀다고 하니 진정 성공한 캠페인이라 할 수 있겠다.
대박 광고의 상당수는 유머광고가 많다. 광고에서 느낀 즐겁고 유쾌한 감정이 브랜드에 대한 호감으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산토리 보스(boss) 캔 커피의 경우도 2006년 이래 무려 38편의 시리즈를 만들어내며 캠페인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영화 <맨인블랙(Man in Black)>을 패러디한 이 광고는 <맨인블랙>의 주연배우 토미 리 존스가 직접 출연한다. 지구 정찰을 위해 특파된 우주인으로, 지구인들을 관찰하며 겪는 해프닝이 주테마다. 택배기사, 노래방도우미, 형사, 심지어 지구인과의 결혼까지 경험하면서 느낀 감정을 우주인의 시각(?)에서 비틀어 바라보는 공감의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호스트> 편에선 “이 혹성에는 억지로 시중을 들면서 무의미한 순위를 정하고 즐거워한다.”라며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광고가 끝날 때마다 보스 캔 커피를 마시며 내뱉는 ‘이 별 볼 일 없는 멋진 세계’라는 역설적 카피는 웃긴 상황에서도 진지한 토미 리 존스의 무표정과 웃긴 카피조차 담담하게 읽어내는 그의 목소리가 만나 광고의 재미를 더욱 배가한다. 또한 매 편마다 그 상황에 맞는 독특한 카메오의 출연이 색다른 재미를 준다.
얼마 전 방송된 올해 광고에선 일본 아이돌의 조상으로 통하는 SMAP(스마프) 4인방이 출연했다(광고 2). 1991년 데뷔해 현재 22년 동안 변함없는 전성기를 구가하는 이들의 콘서트장. 토미 리 존스는 콘서트장의 관리인으로 등장한다. 빈틈없이 가득 메운 열혈 팬들. 음치 수준의 노래에도 별 거 아닌 몸동작에도 열광하는 팬들의 모습을 보며 토미 리 존스의 무뚝뚝한 내레이션이 흐른다. “이 혹성에는 스마프라는 그룹이 있다. 어떻게 살아남은 것일까? 노래와 춤도 보고 나니 더 불가사의하다.” 모두 마흔이 넘은 멤버들은 무대 밖에서 기진맥진하고 그중에서 가장 악동으로 통하는 싱고가 토미 리 존스에게 앙코르 무대에 대신 서줄 것을 부탁한다. 토미 리 존스는 지구인으로선 출 수 없는 현란한 몸동작으로 멋지게 콘서트를 마무리한다. 끝나고 나올 때 기무라 타쿠야가 감사의 뜻으로 보스 캔 커피를 건네면 ‘이 맛에 산다.’라는 표정으로 캔 커피를 마신다. 이 광고는 일본 전역에 방송됨과 동시에 유튜브에 영상이 공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았다. 전설적인 아이돌 그룹이지만 대놓고 노래도, 춤도 별로라는 광고에 흔쾌히 출연한 스마프나 막춤으로 망가지는 모습을 열연한 토미 리 존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보스 캔 커피 광고는 다음에는 누구와 함께 어떤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줄까 늘 기대되는 캠페인이다.
“인류에게 참으로 효과적인 무기가 있으니 그것은 웃음이다.”라고 했던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유머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하지만 지나친 유머는 가끔 브랜드와 메시지를 희석시키기도 한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집행됐던 버드와이저의 광고 캠페인이 그렇다(광고 3). 이 캠페인은 칸 그랑프리, 그랜드 클리오 등 당대 모든 광고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역사상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TV광고로 기록됐다. 젊은이들이 버드를 마시며 서로 ‘What’s up?’ 대신 ‘Whatssup?’이라는 장난질로 일상의 무료함을 달랜다는 이 CM은 여피족의 , 뉴저지 출신의 을 비롯해 일본인의 <곤니찌와(こんにちは)> 버전까지 나오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에는 미국 대선에까지 이 광고가 패러디되면서 10년이 넘도록 죽지 않은 광고의 위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광고의 압도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11년간 하락세에 있던 버드와이저의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는 실패한다. 그래서 ‘Whassup’ 캠페인은 광고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4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되고 버드와이저 하면 떠오르는 오랜 이미지인 <맥주의 왕(King of the beer)>이라는 콘셉트의 새 캠페인으로 대체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집에는 ‘방그레 빙그레 벙그레’라는 표어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방그레 웃는 아이의 미소처럼, 빙그레 웃는 젊은이의 웃음처럼, 벙그레 웃는 노인의 얼굴처럼 항상 웃음이 넘치는 민족이 되길 바랐던 선생의 마음이 담겨 있다. 별로 웃기지 않아도 ‘방그레’ 웃고, 화가 나도 ‘빙그레’ 웃어넘기며 작은 행복에도 ‘벙그레’ 웃기. 이것이야말로 진시황제가 그토록 찾던 불로장생의 비결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