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책이 출판돼 그쪽 매체들과 인터뷰를 했을 때의 일입니다. 며칠 동안 수십 명의 기자들과 만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가 ‘한국 여자들은 정말 드라마에서처럼 시어머니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 사느냐?’였습니다. 물론 대답은 그렇지‘는’ 않다였습니다. 시댁이라는 것이 기혼녀로 사는 한국 여성들에게 영원히 껄끄러울 것 같은 화두이기는 합니다만,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디스트 시어머니나 마조히스트 며느리가 현실에선 흔치 않은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렇다면 왜 현세대의 가치관에는 맞지도 않는 가부장적인 가족관계가 드라마에서는 외국인들이 일반화할 만큼 당연하고도 빈번하게 등장하는 걸까요?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드라마를 비롯한 모든 유행과 문화를 이끄는 게 젊은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등 공론의 마당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대개 젊은이들이고, 드라마의 주인공들도 죄다 젊은이들입니다. 그렇지만 시청률에 목숨을 거는 방송사들 입장에서 젊은이들은 결코 갑(甲)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놀러 나가거나 야근을 하거나 인터넷으로 지난 방송을 보고 있는 동안 조용히 실시간으로 시청률을 올려 주는 이들은 주부들, 특히 고령의 주부들입니다. 옆에 먹을 것을 잔뜩 쌓아 두고 TV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카우치 포테이토들이 이끄는 미국 TV쇼 시장과는 사정이 다릅니다. 그래서 첨단유행의 옷을 입은 드라마들도 이전 세대를 산 주부들이 동의할 수 있는 가치관을 기저에 깔고 있는 것이지요. 한국 드라마가 유난히 친절한 것도 주부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이미 일어난 일을 말로 다시 한 번 설명해 주기도 하고, 많은 클리셰(Clich?)들로 놓친 줄거리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주기도 합니다. 눈요기가 되는 에피소드가 조밀하게 펼쳐지지만 큰 줄거리에는 별 진전이 없어 몇 시퀀스쯤 건너뛰어도 사건을 이해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뿐인가요. 화면보다 개던 빨래에 눈길이 더 자주 갈 만큼 느슨해진다 싶으면 상대에게 따귀를 올려붙여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주기도 하고요. 그래서 드라마를 보다가 끓는 찌개에 두부를 넣으러 가거나 걸레질을 하느라 한눈을 팔아도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지요. 영화처럼 드라마를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라면 불만일 수도 있는 면입니다.
촘촘하게 짜여진 플롯으로 몰입의 쾌감을 느끼게 하는 외국 드라마에 푹 빠져 있던 저는 요새 다시 조금씩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습니다. 딸과 같이 보고 있다가 갑자기 과일이 먹고 싶어져 냉장고를 뒤지고 와도, 남편과 배우들을 품평하다 대사 몇 마디 놓쳐도 드라마는 친절히 기다려 줍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화면 앞에서 이야기를 즐기면서도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을 의식하게 해 주는 이 ‘열려 있음’이 편리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제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휴식시간을 외국 드라마 보기에 몰아넣던 친구들이 ‘골치 아프지 않은’ 한국 드라마로 속속 돌아오고 있습니다. ‘애 낳고 났더니 노안이 오는지 자막 보기도 피곤하다.’는 심상치 않은 농담과 함께요.
자기 일을 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항상 가사와 가족을 의식하고 있고 휴식시간마저도 몰입해 즐기지 못하는 주부들의 처지가 상기돼 어쩐지 마음이 아픕니다. 어느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드라마만 보면 뭔가 허전함을 느끼게 돼버린 주부들에게 이 대목에서만큼은 세대를 초월한 동지애를 느끼게 됩니다. 아마 오늘 저녁에도 저는 사소한 집안일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드라마를 흘깃거리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