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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생각하는 광고불친절하고 도도한 명품 광고
권현선 대홍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014년 07월호

- 루이비통, 까르띠에, 몽블랑

 

백화점에서 명품 세일을 하는 날이면 그 주변은 안 가는 것이 좋다. 명품을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려는 사람들로 개장 전부터 인산인해를 이루기 때문이다. 보세 티셔츠 한 장 값에 바들바들 떨다가도 명품 앞에선 몇 달치 월급을 기꺼이 내게 하는 힘, 그 로고만으로도 처진 어깨를 쭉 펴지게 만들어 주는 힘, 그것이 명품이 가진 힘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명품을 만드는 것일까?


 

루이비통(LOUIS VUITTON)은 명품 가방의 대명사다. 루이비통은 창업자의 이름에서 나온 브랜드명으로, 그는 처음에는 귀족들의 여행 짐을 꾸려주는 일을 했다. 당시에는 페티코트 위에 수십미터의 천을 길게 늘어뜨리는 옷이 유행했는데 그는 이런 의상들을 구김 없이 잘 싸는 데 능숙했다. 이 능력을 통해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인 유제니 황후의 총애를 받게 된 그는 이를 통해 형성된 인맥을 바탕으로 1854년 루이비통이라는 여행가방 숍을 오픈하게 됐다. 당시 여행가방은 대부분 뚜껑이 반원형이었는데, 루이비통은 이를 쉽게 쌓아올릴 수 있는 편편한 사각 케이스로 바꿔 큰 성공을 거뒀다. 성공 후 모조품들이 성행하자 이를 방지할 요량으로 빨간 스트라이프, 격자무늬 등의 제품을 만들어냈고 이것이 L과 V가 교차된 지금의 루이비통 문양의 전신이 됐다. 루이비통은 사보르낭드 브라짜의 콩고탐험,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첫 횡단비행 등 역사적 여행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지금의 PPL 같은 효과를 거두면서 명품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갑부들의 전유물이자 클래식한 이미지에 머물러 있던 루이비통은 1997년 뉴욕 출신의 천재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와 만나면서 감각적이고 젊게 다시 태어났다. 여행가방을 넘어 시티백ㆍ지갑ㆍ스카프ㆍ다이어리ㆍ펜 등으로 카테고리도 확장되면서 소수층에서 향유하는 브랜드에서 일반 대중이 갖고 싶은 브랜드로 거듭나게 됐다. 시대의 트렌드에 맞춰 진화한 루이비통은 광고 스타일 또한 다양한 형태를 취해왔다. 하지만 160년 동안 변하지 않고 지켜온 커뮤니케이션 콘셉트는 여행(voyage)이다. 낯선 미지로의 여행이 주는 설렘과 감흥이 브랜드에 대한 동경과 결부되면서 루이비통만의 색다른 고급감을 전하고 있다. 나아가서 루이비통은 권투영웅 무하마드 알리, 영화배우 숀 코네리, 1960~70년대 축구영웅 펠레와 1980년대 마라도나, 2000년대 지단 등 축구스타들이 함께 떠나는 축구여행이라는 스토리 있는 여행을 통해 브랜드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그림 1).

 


명품으로서 가방 다음으로 여심을 흔드는 대표적인 것이 주얼리다. 그중 까르띠에(Cartier)는 많은 이들이 한번쯤 갖고 싶은 브랜드 중 하나다. 까르띠에는 1947년 네덜란드인 루이 프랑스와 까르띠에가 파리에 세운 보석살롱의 이름이었다. 영국 왕으로부터 “보석상의 왕이요, 왕의 보석상”이라는 칭송을 받을 만큼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1902년 에드워드 7세 대관식에 쓸 27개의 왕관 제작을 시작으로 영국 황실의 공식 보석상으로 지정받게 되면서 그 명성을 더했다. 훗날 그의 아들들에 의해 런던과 뉴욕으로 진출하면서 국제적 브랜드로 성장한 까르띠에는 보석뿐 아니라 시계ㆍ향수ㆍ필기구ㆍ라이터ㆍ가죽제품ㆍ식기류ㆍ안경 등으로 점차 사업영역을 확대해 가면서 현재 세계 최고의 명품 보석 브랜드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까르띠에는 많은 브랜드 스토리를 갖고 있다. 리차드 버튼이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했던 천문학적 가격의 69.49캐럿의 물방울 다이아몬드 목걸이(훗날 버튼-테일러라 불림.) 역시 까르띠에였고, 영국의 윈저공과 미국인 이혼녀 심프슨 부인과의 세기의 로맨스에도 까르띠에의 반지는 함께했다. 이런 가십거리는 까르띠에에 대한 환상을 높이며 명품으로서의 자리를 더욱 굳건하게 했다. 산토스ㆍ탱크ㆍ팬더 등 세월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 클래식한 디자인과 이미지는 광고에도 그대로 드러난다(그림 2). 눈부신 보석들을 기죽이기라도 하듯 새하얀 배경의 중심을 타고 흐르는 ‘Cartier’라는 로고가 주는 아이덴티티. 만년필로 유려하게 쓴 로고 위에 깔끔하게 놓인 까르띠에의 보석들은 일체의 장식과 기교를 거부한 심플한 광고임에도 왠지 모를 무게감을 더한다.


 

몽블랑(MONBLANC)은 남성들에게 명품으로 통하는 브랜드다. 몽블랑은 독일 함부르크의 문구점 상인 C. J. 포스와 은행가 C. W. 라우젠 그리고 베를린의 기술자 W. 잔보아 이들 세 사람이 1906년 조그마한 만년필 공장을 세우면서 시작된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필기구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의지는 1910년 몽블랑이라는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가시화됐고 그 이름이 현재의 브랜드명이 됐다. 몽블랑은 고집 있는 브랜드로 통한다. 많은 명품 브랜드가 다국적 생산체제로 바뀌고 있지만 몽블랑은 함부르크 본사 생산만을 고수하고 있다. 게다가 모든 펜촉은 100% 수공으로 생산한다. 몽블랑의 최고급 라인인 마이스터스틱 솔리테어는 주문 후 제작ㆍ완성까지 무려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제품에 쏟아 부은 그들의 노력에 1987년 마케팅의 귀재라고 불리는 CEO 노버트 플라트 사장의 새로운 마케팅이 결부되면서 몽블랑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는 만년필 본연의 사용가치보다 소유가치에 더 중요성을 두고 희소성의 가치를 원칙으로 한 사치스러운 만년필 몽블랑을 만들어냈다. ‘The art of writing’이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된 새 캠페인은 눈 덮인 몽블랑 봉우리를 상징하는 6각형의 화이트 스타(White Star)라는 심벌마크를 몽블랑의 얼굴로 적극 활용하면서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이런 마케팅은 소비자의 심리에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이후 몽블랑은 만년필을 넘어 시계ㆍ백ㆍ선글라스ㆍ향수로까지 영역을 확대했고 슬로건도 ‘The art of writing your life’로 변형됐다(그림 3-1). 이후 화이트의 배경이 깔끔했던 몽블랑의 레이아웃은 블랙 백그라운드에 윤곽만 강조하는 깊이감으로 고급감과 함께 화이트의 로고와 심벌을 돋보이게 했다(그림 3-2). ‘Is that you?’라는 짧고 함축적인 카피를 통해 ‘이 콧대 높은 야생마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 몽블랑의 존엄함을 알아보는 사람, 그 품격에 걸맞은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는 몽블랑의 권위를 사용자의 가치로 전이하면서 더욱 갖고 싶은 소비자의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명품에는 흔들리지 않는 고집이 있다. 시대에 타협하지 않는 소신이 있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소위 명품 광고들의 접근법도 그런 명품 브랜드를 닮았다. 자신의 브랜드명과 제품을 빛나게 하는 것 이외의 요소는 철저히 배제하는 자신감, 그래서 명품 광고들은 불친절하고 도도하다. 하지만 그것이 명품을 더욱 경외하게 하는 명품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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