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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경제학 소믈리에정책연구자가 바라본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부교수 2014년 08월호

프랑스의 경제학자 피케티의 열풍이 거세다. 지난해 말 불어판 「21세기 자본론(Capital in the Twenty First Century)」이 출간됐을 때만 해도 이 정도의 광풍은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 3월 영어판이 출간되고 미국 민주당의 정책어젠다와 맞물리면서 상당한 이슈를 일으키며 일약 베스트셀러가 됐다. 피케티 열풍은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서도 불기 시작했다. 아직 한국어판이 출간되진 않았지만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을 둘러싼 논쟁은 언론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21세기 자본론」은 크게 보면 주요 선진국의 소득과 부의 집중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한 현황과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전망으로 나눠볼 수 있다. 책의 말미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도 있어 이른바 정책적 시사점도 도출하고 있다. 정책연구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책보고서의 구성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정책연구를 주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에게 「21세기 자본론」의 제목을 다시 정해보라고 했다면 ‘소득 및 부의 집중: 현황과 전망’ 정도로 했을 것 같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을 정책보고서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정책 당국에서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19세기 말 ‘도금시대’에 근접한 소득·부의 집중 심화


먼저, 현황에 대해서 살펴보자. 「21세기 자본론」은 소득 특히 부의 불평등이 심화돼 이른바 제2의 도금시대(Gilded Age)가 도래할 가능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도금시대는 1865년 남북 전쟁이 끝나고 1873년에 시작돼 불황이 오는 1893년까지 미국 자본주의가 급속하게 발전한 28년간의 시기를 지칭한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과 찰스 두들리 워너가 쓴 동명의 소설 「도금시대, 오늘날 이야기(The Gilded Age: A Tale of Today)」에서 유래한 용어다. 이 시대에 철강왕 카네기, 석유왕 록펠러, 광산왕 구겐하임 등 이름난 부호가 등장했다. 국가의 비호를 받은 독점기업들이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고 하층민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소득 및 부의 분배가 매우 나쁜 시기였다. 피케티는 20세기 들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이러한 소득과 부의 집중이 어느 정도 완화됐다고 보고 있다. 소득분배가 이른바 쿠즈네츠의 역 U자형 모양을 보였던 시기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경제성장 초기에는 소득분배가 악화되지만 일정 정도를 지나면 개선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 소득 및 자본의 분배는 상위 1% 혹은 0.1%에 다시 집중되고 있고 그 정도는 19세기 말 도금시대에 근접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최소한 몇몇 선진국에서는 소득 및 자본의 분포가 상위그룹에 집중되고 있음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물론 Financial Times의 가일즈(Giles) 같은 경우 피케티가 사용한 자료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피케티는 영국의 경우 상속 자료를 이용해 부의 집중도를 필자에계산했는데 좀 더 신뢰성 있는 서베이 자료를 이용할 경우 부의 집중도는 훨씬 낮다는 것이다. 이 숫자도 시계열로 봤을 때 상당히 안정적이어서 부의 집중이 가속화된다는 피케티의 주장은 입맛에 맞는 자료만을 선별해 쓴 결과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르면 소득 및 자산의 불평등도가 높아지고 상위 1%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선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전 지구적 부유세’ 도입하면 자본 집중 완화할 수 있을까?


전망 부분에서 피케티는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경제모형에 기초해 설명했다. 우선 두 개의 기본법칙을 도출했다. 제1법칙은 거시경제 수준에서 소득 중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을 (r x k)/y로 규정하고 있다(r: 자본의 수익률, k: 자본, y: 소득). 법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정의에 가깝다. 제2법칙은 장기에서 소득 대비 자본의 비중이 일정한 규모로 수렴하게 됨을 보이고 있다. 즉 k/y = s/g(s: 순저축률, g: 성장률)로 앞의 제1법칙과 제2법칙을 합하면 소득 중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r x k)/y = r x (s/g)가 된다.


여기까지는 간단명료한 수학적 도출의 결과다. 하지만 여느 경제모형이 그러하듯이 향후 발생할 일에 대한 전망 부분은 몇 가지 강한 가정을 전제로 도출되고 있다. 「21세기 자본론」에서 피케티가 하고 있는 주요한 가정은 자본수익률 r 과 저축률 s 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일정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장률 g 가 작아지게 되면서 소득 중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게 된다. 경제성장률이 2%대에서 1%대로 하락하면 소득 중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2배가 된다. 향후 경제성장률이 점차 낮아질 것은 합리적 가정이기 때문에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전망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논리적 추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은 가정들이 성립하지 않으면 전망 역시 신뢰하기 힘들다. 예컨대 자본수익률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미래에도 일정할 것이라는 가정은 성립하기 어렵다. 자본의 규모가 커질수록 추가적인 투자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은 점점 작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저축률이 일정하다는 가정이다. 직관적으로 보면 자본수익률이 일정한 상황에서 자본소득이 늘기 위해선 자본이 늘어나야 하고 자본이 늘어나기 위해선 투자가 늘어야 한다. 투자가 늘기 위해선 저축 역시 큰 폭으로 증가해야 한다. 피케티가 주장하는 만큼 소득 대비 자본소득의 비중이 늘어나기 위해선 소득의 상당 부분을 경제 주체들이 저축해야만 한다. 그러나 저축률의 상승은 가정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저성장 기조에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저성장 시대에는 우리나라처럼 저축률이 낮은 것이 보통이다. 다시 말해 소득 중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가정과 모순이 된다.


더 나아가 자본의 집중현상이 일어난다 해도 늘어난 자본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커져만 갈 것이라는 예측도 쉽지만은 않다. 자본이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로 세습이 되는 것이 생각보다 수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봐도 재벌이 다음 세대로 부를 세습하는 경우에 형제 간 경쟁을 통해서 부가 쪼개져 나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21세기 자본론」이 내놓고 있는 향후 소득 혹은 부의 집중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은 동의하기 어렵다.


「21세기 자본론」은 이런 현황과 전망에 기초해 정책적 대안을 제시했다. 자본에 대한 과세를 통해 자본 집중을 완화하자는 취지에서 ‘전 지구적 부유세(global wealth tax)’를 제안했다. 여기서 부유세란 자산에 대한 과세지만 우리나라의 종부세와 같이 자산가치를 과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부채 부분은 공제한 순부유세의 개념이다. 다만, 자본은 쉽게 세금을 피해 도망 다닐 수 있기 때문에 한 나라가 아니라 여러 나라가 공조해 과세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부유세를 통해 자본의 집중을 완화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순진하게 보일 수 있다. 더군다나 자산에 대한 평가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유세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생애주기 동안 납부한 순부유세를 상속 시 공제해줄 것인지에 대한 기술적 부분도 분명하진 않다.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엄밀한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론이라는 것은 현실 그 자체라기보다는 일종의 우화(寓話)이기 때문에 우화가 주는 교훈을 잘 배우면 되지 비현실적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온당치 않다. 부유세의 경우도 현실에서의 과세 가능성 여부보다도 현시점에서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지속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점에서 봐주는 아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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