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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언니의 수다일하는 엄마의 아이는 공부를 못할까요?
남인숙 소설가, 에세이스트 2014년 09월호

예전에는 대입시험이 끝나고 나면 꼭 TV 뉴스에서 전국 수석을 한 학생의 인터뷰를 볼 수 있었습니다. 공부 비법을 묻는 의례적인 질문에는 “교과서 위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라는 판에 박힌 답이 나왔고요. 진실이 무엇이었든 그 연출에는 수요자와 공급자가 합의한 공부에 대한 두 가지 가치관이 내포돼 있었습니다. ‘될 만한 놈은 어떤 조건에서든 잘할 수 있다.’와 ‘가난해도 노력하면 잘할 수 있다.’. 바꿔 말하자면 재능과 노력, 그 두 가지가 공부를 잘하는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사실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대였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제는 그 단단했던 공감과 합의가 해체되고 공부에 대한 새로운 조건들이 추가됐습니다. 바로 정보력과 돈이 그것입니다. 이제는 언론에 간간히 노출되는 공부 영웅들도 교과서나 교육방송에만 충실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공부하는 당사자의 능력이나 노력을 넘어서는 것이기에 요즘 부모들은 아이의 공부에 대해 전에 없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일하는 엄마들은 특히 아이의 공부에 대한 죄책감에 많이 시달립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정보를 수집하고 아이의 공부를 코칭해 주지 못해서 더 잘할 수 있는 아이의 가능성을 짓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큽니다. 더군다나 전업 엄마들이 발로 뛰어서 얻는 정보들은 일하는 엄마들이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거라면서요. 정보력과 재력이 집중돼 있는 강남 출신 명문대 신입생의 비율이 날로 늘어간다는 소식도 일하는 엄마들을 의기소침하게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게 있습니다. 우리가 원래 알고 있던 것, 그러니까 공부를 잘할 수 있게 하는 건 아이 자신의 재능이고 노력이라는 것 말입니다. 교육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지인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많은 엄마들이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을 본인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건 착각이라고, 엄마들이 무얼 어떻게 하건 잘할 아이는 잘하고 못할 아이는 못한다고요. 그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아이 뒷바라지에 헌신적인 전업주부 엄마를 둔 아이들이 특별히 더 공부를 잘한다는 명제를 뒷받침하는 실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제 딸의 학교에서 매번 만점을 받으며 전교 일등을 놓치지 않는 아이도 맞벌이 부모를 두고 있는걸요. 사교육에 무관심한 직장 맘의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에 처음으로 영어를 배워서 영어 유치원 출신의 쟁쟁한 아이들을 순식간에 따라잡고 앞지르는 것도 보았고요. 반대로 초등학교 시절, 엄마의 극성만으로 좋은 성적을 내던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도태되는 경우도 자주 봅니다.


노래를 잘하거나 악기를 잘 다루는 것,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게 타고나는 특기나 재능으로 보면서 유독 공부, 정확히는 성적을 그 사람 전반의 가치로 보는 게 우리 시각입니다. 오랜 시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성적이 좋지 않았던 사람들의 삶에도 나름의 성공과 행복의 길이 얼마든지 있더군요. 대신 그런 사람들은 학교 성적과 상관없는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전교 하위권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다는 사업가 한 분은 필요해지니 독학으로 순식간에 일본어를 익히시더군요.


학교 공부, 이왕이면 잘하는 게 좋겠지만 못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이미 없는 시간을 쪼개 아이가 필요한 만큼은 공부의 바탕을 만들어 주고 있는 분들일 겁니다.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아이가 스스로 필요한 공부와 동기를 찾아 나갈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사는 든든하고 여유 있는 엄마의 모습이 오히려 아이에게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은 동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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