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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남웅의 신나는 시네그땐 정말 친구가 전부이지 않았나요?
김세윤 방송작가 2014년 09월호


2011년의 어느 날, TV뉴스에서 가슴 아픈 장면 하나를 보았습니다. 대전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CCTV에 찍힌 여학생. 자신의 집이 있는 4층 버튼을 누르고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돈 뒤 14층 버튼도 누르더군요. 한참 동안 거울을 바라보고 서 있던 아이는 엘리베이터가 4층에 멈추자 그대로 ‘닫힘’ 버튼을 누릅니다. 그리고 14층에서 내렸어요. 다음날 아침. 아파트 1층 출입구에서 여학생의 시신이 발견됐다던가요. 14층 창문 밑에 가방과 신발을 남겨둔 채로.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평소 집단 따돌림 때문에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그날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아침 겨우 용기 내 담임 선생님께 자신의 처지를 말씀드렸다면서요. 그때 선생님이 이렇게 말해주었대요. “이건 친구들끼리 문제니까 내가 개입할 일이 아닌 것 같아. 너희끼리 해결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아이가 마지막 희망을 잃어버린 게 아마 그때인 것 같다고, 가족들은 울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께 말씀드린 사실이 알려져 괴롭힘만 더욱 심해졌고 급기야 자신을 괴롭혀온 무리들과 이런 문자를 주고받게 됩니다. “더 이상 어떡하라고 나보고?” “너 죽어^^” “그래. 그럼 내가 죽어줄게. 됐니?” “니까짓 게 죽을 수 있기나 하니?^^” 이 문자를 받고 아이는 엘리베이터를 탄 겁니다. 자신의 집이 있는 4층을 지나쳐 꼭대기층에서 내린 겁니다. 그리고 조용히 몸을 던진 겁니다.
가해 학생들과 담임선생님을 처벌해달라는 요구가 잠시 포털사이트 게시판을 달군 기억이 납니다. 저도 며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때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여학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짐작할 수조차 없는 아이의 절망을 어떻게든 짐작해보려 애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충격적인 소식은 더 충격적인 소식에 밀려나게 마련이지요. 더더 충격적인 소식과 더더더 충격적인 소식이 끊이질 않는 이 나라에서 저는 그 사건을 쉬 잊고 말았습니다. 엘리베이터 탈 때 더 이상은 문득 그 여학생이 떠올라 괜히 시무룩해지거나 하질 않았습니다.


 

1998년의 어느 날, 그러니까 4층에서 내려야 할 여학생이 14층에서 내리던 그날로부터 13년 전의 어느 날, 대구에 사는 한 남학생이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역시 집단 따돌림으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마음먹은 아이. 멍하니 거울만 바라보며 서 있던 2011년의 여학생과 달리 이 남학생은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내내 흐느꼈습니다. 그 모습이 CCTV에 고스란히 찍혔고 뉴스에 보도되었습니다. 아이는 결국 중력에 몸을 맡겨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는군요.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사건 때문에 당시에도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겠지요. 마음이 무거웠을 겁니다. 그때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남학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짐작할 수조차 없는 아이의 절망을 어떻게든 짐작해보려 애쓰기도 했을 테구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충격적인 소식은 언제나 더 충격적인 소식에 밀려나게 마련. 더더 충격적인 소식과 더더더 충격적인 소식이 끊이질 않는 이 나라에서 그 사건 역시 쉬 잊히는 게 당연합니다. 제가 그랬듯이 금세 아무렇지 않게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 십수년이 지나도록 그 남학생을 잊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끝까지 기억하려 애쓴 어른이 있습니다. 영화감독 이송희일. <후회하지 않아>(2006)의 연출자로 유명한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포기해야 했던 소년의 마지막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당시 쓰고 있던 멜로 영화 시나리오를 바꾸기로 마음먹어요. 저마다의 이유로 외롭고 힘든 시절을 보내는 고등학생들에 대해 쓰기 시작합니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된 영화 <야간비행>은 그렇게 시작된 영화입니다. 한 아이가 흐느껴 울던 그 좁고 차가운 엘리베이터 안에서 싹튼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내신 1등급의 착하고 여린 고등학생 용주(곽시양 분). 학교 일진 기웅(이재준 분)이하고는 중학교 시절 둘도 없는 친구였어요.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서먹한 사이가 되고 말았죠. 중학교 동창 기택이가 학교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기택이의 곁을 지키려는 용주와 달리 기웅은 그저 지켜보기만 합니다.


모범생, 문제아, 왕따. 처지는 다 달라도 누구 하나 자신의 삶이 즐거운 아이가 없습니다. 누구 하나 외롭지 않은 아이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청춘이란, 캄캄한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야간비행과 다를 바 없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다만 추락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야간비행. 영화는 이 시대의 어둠이 얼마나 무섭고 집요한지 보여줍니다. 아이들의 불안하고 위태로운 비행을 마음 졸이며 지켜보게 만듭니다. 그래도 다행히 그 긴 어둠 끝에 가느다란 희망 하나가 새벽별처럼 반짝이는 이야기입니다.

 


이송희일 감독이 말합니다.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다. 정글같이 경쟁만 요구하는 한국 학교에서 어떻게 우정이 부서지고, 서로를 배신하고, 소수자들이 배척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또 감독은 이렇게 덧붙이죠. “학교 폭력은 대부분 외로움에서 시작된다. 배제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곧 폭력이다. 괴물은 외로운 자들이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언제나 괴물을 만들어내고, 다시 또 귀환한다. 그들을 이렇게 만드는 데 어른들이 한몫하고 있다.”

 

영화에서 외로운(!) 아이들이 뱉어내는 많은 대사 가운데 가장 슬픈 한마디. 이겁니다. “친구가 없으면 이 세상은 끝이잖아.” 그때, 14층 버튼을 눌러 놓고 멍하니 거울을 바라보며 서 있던 그 여학생도 같은 말을 되뇌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혼자 흐느끼던 그 아이도 어쩌면 함께 흐느껴 줄 친구가 곁에 없다는 게 가장 큰 절망이었을 겁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학창시절 친구들 덕분에 저의 세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땐 정말 친구가 전부이지 않았나요?


<야간비행>은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해온 어른들이 보아야 합니다. 아이들에게서 친구를 빼앗고 정글로 밀어넣은 어른들이 보아야 합니다. 아이들도 보아야 합니다. 친구들이 생의 마지막 엘리베이터를 타고 높은 곳에 오르는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친구를 꼭대기층 난간 끝으로 내모는 괴물은 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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