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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무세이온 (Mouseion)최남단 마라도의 낮게 엎드린 집들
최우용 건축가 2014년 10월호

 

마라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었다. 1883년 제주 모슬포에 살던 가난한 농어민 네댓 가구가 화전을 일구기 위해 마라도로 들어갔다. 그들은 섬에 불을 놓았고 원시림은 농경지로 일변했다. 마라도에 들어온 그들이 지은 집은 그들이 원래 살던 모슬포의 집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지천에 널린 현무암으로 구멍 뚫린 높은 돌담을 두르고 낮고 둥근 지붕의 초가를 짓고 살았을 것이다. 다시 백 몇 십년이 흐른 지금 흙벽은 콘크리트벽으로 바뀌었고 지붕은 억새에서 슬레이트로 바뀌었으나 그 집들은 아직도 높은 돌담을 두르고 낮은 물매의 경사지붕으로 바람을 흘려보내고 있다.


마라도에는 현재 40여채 가옥에 100여명이 살고 있다. 이 집들을 둘러보는 일은 두어 시간이면 족하다. 이 집들의 대부분은 ‘심봉사가 눈 뜬 짜장면’이라든지 ‘철가방을 든 해녀’와 같은 짜장면집들이고, 나머지는 이 짜장면집들을 경영하는 이들의 살림집이며, 그 나머지는 이 살림살이들을 경영하기 위한 발전소, 보건소, 파출소, 초등학교며 절집, 교회당, 성당들이다.


마라도의 건축계는 이런 40여채의 집들로 구성돼 있다. 이 한 움큼의 집들을 건축‘계(界)’라 말할 수 있는가? 마라도의 집들을 ‘양식(style)’이란 이름으로 묶을 수 있을 것인가? 마라도의 집들을 ‘맥락(context)’이란 이름 아래 가지런히 줄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각 집들을 구성하고 있는 꼴들을 들여다보며 ‘개념(concept)’이란 것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이 바람 찬 작은 섬의 집들을 둘러보며 집 짓는 일을 밥벌이로 하고 있는 나는 니힐리즘의 경계를 서성이게 된다. 견고한 모든 것들은 대기 속으로 사라진다. 건축이란 이름으로 쌓아 올린 사(史)와 학(學)과 론(論)이 일순간 증발해 대기 속으로 사라지는 환영이 보인다. 억새 벌판 위 망망한 바다의 빈 풍경 속에 점점이 박혀 있는 한 줌의 낮은 집들에서 건축에 걸쳐진 양식과 맥락과 콘셉트 그리고 사와 학과론은 무효하다. 그렇다. 무효하다. 마라도의 집들에서 나는 그것들의 무효함을 생각한다.


마라도의 집들에서 자아도취 또는 자아만족 또는 자아실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건축가들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저 식상하고 허름한 단층 또는 복층의 낮은 집들은 아마, 건축가란 사회적 명성에 기갈을 느끼는 이들이 설계한 집들은 아닐 것이다. 그 집들은 얇은 콘크리트벽이나 가느다란 경량 철골 기둥과 가벼운 샌드위치 패널 지붕 따위로 집 꼴만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을 뿐, 건축학 또는 미학 등의 단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이 집들은 다만 먹고 자기 위한 살림집의 기본적인 꼴만을 이루고 있으며, 저 집들은 다만 팔기 위한 상점의 물리적 틀과 공간만을 만들고 있다. 어떤 집들은 학교 또는 성당, 교회당이란 이름 아래 박공지붕과 뾰족탑으로 학교와 성당, 교회당이란 상징을 아주 조금 갖고 있을 뿐이다. 저 집들에서 잉여향유(剩餘享有), 즉 남아서 즐길 만한, 건축의 이름으로 향유되고 이야기될 만한 무엇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저 집들에서 마라도의 삶은 무탈하게 이어져왔고 또 그렇게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여기 마라도의 집들을 둘러보며 잉여향유를 빚어내는 어떤 건축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울지 모르나, 그 잉여향유의 이름으로 이 작은 섬의 집들이 건축가 개인들의 자아한계 속에서 일그러진 채 전개되지 않는 것을 오히려 나는 다행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좀 더 우리 자신의 삶에 진솔하고, 좀 더 우리 일상의 삶을 위로할 수 있고, 주변과 타자를 좀 더 배려하고, 자태나 꼴들이 좀 더 소박하고 좀 더 간결하고, 좀 더 조용할 수 있는 건축이 이곳 마라도의 낮은 집들에 조금만 아주 조금만 보태져 그나마 덜 소비적이고, 더 윤리적이고, 그래서 더 아름다울 수 있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소망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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