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내내 온 가족이 좋아하는 멜론을 자주 사다 먹었습니다. 향이 좋고 과육이 입에서 살살 녹는 멜론을 손질해 내오면 다들 무념무상으로 입에 넣기 바쁘지만, 저는 이 과일을 볼 때마다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14년 전의 한 장면을 떠올립니다.
임신 6개월에 접어들 때쯤이었던가요. 배는 무거워 오는데 아직도 입덧이 가시지 않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함께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과일 코너의 멜론을 봤는데, 태어나서 그런 강렬한 식욕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정말 너무나 먹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지금처럼 먹고 싶다고 덜렁 들어 카트에 넣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방송작가였던 저는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를 잃었고, 장교로 군복무를 하고 있던 남편의 적은 월급은 절반이 대출금 이자로 날아가고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그때의 멜론은 지금보다 훨씬 비싼 과일이었는걸요.
족히 십분은 그 앞에 멍하니 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발걸음을 돌려 그냥 집으로 왔지만 이상하게도 그 일이 영 잊히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이 꽤 오래가더군요. 가계부를 쓰던 제 입장에서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해도 옆에서 남편이 ‘이거 하나 먹는다고 우리 굶지 않아! 먹고 싶음 먹어야지!’ 하고 호기롭게 장바구니에 담아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렇게 해서 멜론은 저에게 슬픔과 원망의 과일로 각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돌이켜 보니 이 신파적인 멜론의 추억은 다름 아닌 저 자신이 만든 것이더군요. 신용카드를 쥐고 있던 제가 그냥 멜론을 샀으면 될 일이었고, ‘이거 하나 먹는다고 굶지 않아! 먹고 싶음 먹어야지!’는 남편에게 기대할 게 아니라 제 입에서 나왔어야 할 말이었습니다. 아직 20대였던 남편은 멜론 앞에서 서성이는 저를 보고 ‘무리해서 살 만큼 먹고 싶지는 않은가 보다.’ 하는 데까지밖에는 생각이 못 미치는 철부지였던 것을요. 차라리 멜론을 사먹고 다음 날 돈이 없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라도 했다면 궁색하지만 재밌는 추억거리 하나가 만들어졌겠지요. 죄 없는 멜론에 한(恨)을 뒤집어씌우는 대신에 말입니다.
저는 아직도 주변에서 슬픈 희생으로 한을 켜켜이 키워가는 여성들을 많이 봅니다. 내 입으로 나를 좀 더 생각해 달라고, 배려하고 챙겨 달라고 말하는 일이 자존심 상하고 피곤한 일로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가족들은 아내나 어머니가 자신의 욕구를 희생했다는 사실 자체도 알지 못합니다. 결국 그 희생은 원망과 허망함 같은 부정적인 에너지로 바뀌어 고스란히 가족에게 되돌아갑니다.
저는 생일 몇 주 전부터 가족들에게 ‘내 생일날 ΟΟ하자.’ 하는 식으로 먼저 말을 합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식당을 예약해 달라는 등의 작은 임무를 줍니다. 이를테면 ‘생일 홍보기간’을 갖고 가족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귀찮고 뻔한 것 같은 외식도 유쾌한 기분전환이 되고, 간혹 둔하고 무심한 남편이 준비한 깜짝 선물을 받는 일도 생깁니다. 경험상 ‘이 나이가 돼서 생일은 무슨….’ 하고 있다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 채 생일을 지나쳐 버린 후의 쓸쓸함보다는 훨씬 낫더라고요. 선물이 마음에 쏙 들었던 적이 한 번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일하랴 가족 챙기랴 나 자신에게 자꾸 소홀해지려 할수록 더 나를 대접해 주자고요. 그게 오히려 가족을 위하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