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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언니의 수다‘쿨(cool)’한 아이에게 고백과 포옹을!
남인숙 소설가, 에세이스트 2014년 11월호

“이젠 저한테 ‘사랑’, 뭐 그런 말 좀 안 하시면 안 돼요? 닭살 돋는단 말이에요.”

 

대화 도중 딸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받은 충격은 이전 단계에서 받은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그동안 한 차례 성장할 때마다 달라진 모습으로 저를 깜짝 놀라게 하긴 했지만 그렇게 우주에서 뚝 떨어진 듯한 낯선 모습으로 저라는 존재를 밀어낸 건 처음이었으니까요. 이제 엄마 품에 폭 들어오는 요정 같은 아기가 아니라 까칠한 사춘기 소녀가 내 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가 도래했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이었지요. 저는 당황한 마음을 감추고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이젠 이런 게 싫구나. 알았어. 앞으로는 안 할게. 대신 자기 전에 하는 인사만큼은 꼭 해야 해.”

 

아이는 잠시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를 일종의 ‘잠자리 의식’이 있었습니다. 침대에 들기 직전 서로 꼭 껴안고 ‘사랑해요’라는 말을 주고받는 것이지요. 아이가 그마저도 못마땅해 하는 것 같아 보이자 저는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그것도 너무 아기 짓 같니? 좋아. 그럼 딱 초등학교 때까지만. 중학교 가면 안 해도 좋아.”

 

그렇게 합의를 본 우리는 계속해서 하루 중 유일하게 한 번, 그러나 반드시 매일 ‘사랑해요’라는 말을 포옹과 함께 주고받았습니다. 제가 구걸하다시피 이 의식을 유지한 건 아이에게 자연스러운 사랑고백과 포옹의 기회를 남겨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때 아이가 싫어한다고 해서 그만두면 나중에 아이가 엄마 품에 안기고 싶어져도 다시는 그럴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규칙으로 정해 놓는다면 아이는 사춘기 소녀로서의 ‘쿨(cool)함’과 엄마의 따뜻한 품을 동시에 지킬 수 있습니다. 싫은데 마지못해 한다는 표정으로 ‘사랑해요’라고 기계처럼 말하는 딸을 꼭 껴안아 주며 제 하루치 사랑이 전달되기를 바랐습니다.

 

이게 벌써 몇 년 전 일입니다. 딸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곧 중학교 2학년이 됩니다. 그래서 약속대로 잠자리 의식을 없앴냐고요? 우리는 여전히 침대에 들기 전 사랑고백과 포옹을 합니다. 아이는 중학생이 되고도 의식을 그만두고 싶어 하지 않았고, 제가 밖의 일을 보느라 늦게 귀가하면 이 의식을 위해 자지 않고 기다립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제 딸은 언제든 자신이 필요로 할 때 주저 없이 엄마의 품에 안겨 안정과 위로를 얻습니다.

 

세상의 모든 심리학과 인지과학에서는 포옹의 힘에 대해 역설합니다. 포옹은 우울증 치료약이기도 하고, 안정제이기도 하며, 각종 사랑호르몬 분비의 자극제이기도 합니다. 기부 삼아 프리 허그(free hug)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 괜한 일이 아닙니다.

 

아이와 함께하지 못하는 워킹맘들에게 어쩌면 포옹은 서로에게 더욱 필요하고도 편리한 의식이 될지도 모릅니다. 종일 자신만의 삶의 영역에 몰두했던 이들이 다시 함께하게 된 걸 온몸으로 환영하는 것이지요. 한 살 한 살 먹어 갈수록 사춘기 소년소녀의 쿨함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체면을 지켜 주면서 언제든 안길 수 있게 품을 내어 주는 건 어떨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독립적이고 강하게 아이를 기르는 것과 사랑을 주는 일이 전혀 별개의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는 것과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저는 큰 고비를 앞두고 있습니다. 모든 선배 엄마들이 각오하라는 ‘중2’의 시기를 코앞에 두고 있거든요. 그때도 사랑고백을 포기하지 않고 제 품을 열어 둘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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