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향해 “죽을 것 같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많이 아파서가 아니에요. 자살을 생각하는 것도 아니구요. 끔찍한 재난을 만난 건 더더욱 아닙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죽을 것 같다.”고 말해요. ‘그날’이 오면 정말 죽을 것 같다고.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그날, 죽을 것만 같아 피하고 싶은 그날이란, 다름 아닌 ‘축구를 못하게 되는 날’입니다.
다큐멘터리 <누구에게나 찬란한>은 그 정도로 축구를 사랑하는 초등학생들이 주인공입니다. 경남지역 유소년 축구팀 ‘희망FC’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 축구 좋아하는 아이는 많고 그런 아이들이 모인 유소년 축구팀도 적지 않죠. 하지만 ‘희망FC’라는 팀은 좀 특별합니다. 공을 차는 이유가 좀 각별합니다. 단지 재미있어서 차는 게 아니라 안 차면 “죽을 것 같”아서 공을 찬다는 아이들. 녀석들의 특별하고 각별한 사연을 이해하려면 먼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다큐멘터리 찍는 임유철 감독이 그해 한 남자를 만납니다. ‘보리수동산’이라는 고아원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는 박철우 감독. “가난해도 축구를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고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비록 꼴찌 팀이지만 언젠가 1등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아이들과 함께 품었습니다. ‘꿈을 좇는 꼴찌 팀 이야기’라면 임유철 감독에게 낯설지 않죠. K리그 만년 꼴찌 팀 인천 유나이티드FC의 기적 같은 우승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비상>(2006)을 만든 게 바로 그였으니까요. 패배감에 젖어 있던 선수들이 장외룡 감독을 만나 마침내 꿈을 이루는 이야기에 당시 관객 4만명이 극장에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1만명 모으기도 힘든 독립 다큐멘터리로는 보기 드물게 흥행에 성공한 그가 이번엔 아이들의 ‘비상’을 찍겠다며 박철우 감독을 찾아간 겁니다.
하지만 고아원 축구팀은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팀을 운영할 돈이 부족했고, 팀에 데려올 선수도 부족했으며, 무엇보다 ‘가난해도 축구를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어른들의 수가 부족한 탓이었습니다. 공을 계속 차고 싶어 하는 고아원 아이들을 남겨두고 쓸쓸히 돌아서야 했던 박철우 감독. 임유철 감독과 여러 후원자의 도움으로 2012년 1월 간신히 새 팀을 만들었습니다. 국내 최초 지역아동센터 유소년 축구단 ‘희망FC’. 경남지역 아동센터가 보살피는 가난한 아이들 11명이 팀에 들어옵니다. 다큐멘터리 <누구에게나 찬란한>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넉넉지 못한 집안 사정 때문에 자신감을 잃어버린 스트라이커 성훈이, 할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 아이들에게 왕따까지 당하는 공격수 병훈이, 또래보다 한참 작은 키 때문에 학교 축구부에서 방출된 미드필더 민재,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함께 버림받은 동생 은비를 지켜주기 위해 꼭 축구선수로 성공해야 한다는 수비수 영선이. 그밖에도 많은 아이들이 저마다 절박하고 간절한 이유로 축구공을 차기 시작합니다.
이기는 게 쉬울 리 없습니다. 운동장 안에서도 운동장 밖에서도 패배하고 포기하는 데 익숙해진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을 다그치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다독이는 어른도 있습니다. 성과를 내야만 팀이 살아남는 현실 때문에 자꾸 다그치는 어른에게도, 그렇게 몰아세워 상처입은 아이를 다독이는 어른에게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관객은 쉽게 한쪽 편을 들기 어렵죠. 마음으로는 ‘다독이는 어른’ 편에 서면서도 머리로는 ‘다그치는 어른’의 생각도 일리는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이들입니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것도 아이들이고, 공을 차다 넘어져 쓰러지는 것도 아이들이고,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는 것도 아이들입니다. 녀석들은 공만 차는 게 아니더라구요. 혼자 주눅들고 남을 원망하던 지난 시간까지 함께 걷어찹니다. “가난하다고 꿈까지 가난해선 안 된다.”는 감독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이를 악뭅니다. 주변 어른들의 걱정과 조바심을 비웃으며 녀석들은 참 멋지게 달려 나갑니다. 고작 축구공 하나로 기어이 관객을 펑펑 울리고 마는 건 결국, 아이들입니다.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팀의 운명을 결정짓는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아이들이 카메라를 향해 저마다의 각오를 밝히는 장면. “(내일 이겨서) 저희 팀 알려지고 저도 알려지면요, (진짜) 축구선수 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꼭 이기고 싶다는 아이들 틈에서 한 녀석이 말합니다. “꿈에 한 발 다가가는 거? (그건)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가 축구선수 안 되더라도 이 중에는 축구선수 될 아이들이 있잖아요. 승민이나 그런 애들 꿈하고 관련된 경기니까. 그래서요. 그래서 이기고 싶어요.” 아, 이 멋진 녀석들! 어느새 어른들보다 더 어른스럽게 마음을 쓰는 아이들!
적어도 어린 시절만이라도, 축구공 하나만 갖고도 하루종일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그 시절만이라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찬란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의 부모가 가난하다고 아이의 꿈까지 가난해지는 게 당연한 사회여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제 생각에 동의한다면 <누구에게나 찬란한>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눈물의 온도가 사람마다 다를 리 없지만, 세상엔 정말 ‘뜨거운 눈물’이란 게 따로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정말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을 보며 덩달아 눈앞이 흐려집니다. 가난한 아이들이 불쌍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닙니다. 못하게 되면 “죽을 것 같”은, 그 정도로 간절했던 나의 꿈은 무엇인지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어서 눈물이 납니다. 어느덧 꿈을 잊은 어른으로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불쌍해서, 가난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난하지 않은 꿈을 향해 뛰는 아이들이 대견해서, 저는 참 행복하게 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