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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경제학 소믈리에수출진흥확대회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쇠퇴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2015년 05월호

 

수출은 196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을 추동한 주요 원동력이었다. 이 기간 동안 정부는 수출제일주의 정책, 즉 수출증진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여기에 맞춰 경제발전을 구상하고 실현해 갔다.


수출진흥확대회의(이하 확대회의)는 이러한 정책을 이끌던 정부기구였다. 1962년 처음 시작된 이 회의는 오랜 기간 동안 수출정책을 총괄하는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확대회의에 대해선 그동안 단편적인 모습만 알려졌을 뿐, 이 회의에 누가 참석하고 어떤 내용을 이야기했는지와 같은 구체적 사실은 충분히 파악되지 못했다. 종합적이고도 심도 있는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상황은 최근 들어 큰 전기를 맞이했다. 2000년대 후반 이영훈 교수, 최상오 박사 등은 국가기록원에 소장돼 있던 확대회의를 녹음한 녹음테이프를 발굴하고, 이것을 분석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하지만 녹음테이프의 양이 방대한 데다 녹음상태로 돼 있는 자료를 분석하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 전체 자료를 다루는 포괄적인 작업은 수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이영훈 교수는 KDI의 지원을 받아 여러 경제사 전공자들과 함께 녹음테이프의 내용을 읽을 수 있는 형태로 풀어낸 「수출진흥확대회의 녹취록」(이하 「녹취록」)을 발간하는 대형 작업을 수행했다. 1년여에 걸친 청취와 검독을 통해 완성된 3권 2천여쪽 분량의 「녹취록」은 일반인들이 확대회의의 내용을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확대회의를 심도 있게 연구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했다.


확대회의 전성시대 1968~77년, 대통령이 직접 수출입 실적 점검

 

이 자료를 이용해 필자는 확대회의가 어떤 종류의 회의였는지를 분석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연구를 통해 파악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사실은 1962년부터 1979년 기간 동안 확대회의가 크게 세 국면을 보이면서 진화를 해왔다는 점이다. 먼저 첫 번째 단계로 1962년 확대회의의 전신인 수출진흥위원회가 조직됐다. 이 회의는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해서 수출과 관련된 부처의 장관들, 소수의 비정부 기관장들이 참여하는 20여명 규모의 회의였다. 이 위원회는 기본적으로 수출정책을 주관했던 상공부가 수출 관련 정책 추진과 관련해 여러 부처들 간 협의와 조율이 필요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활용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단 이 시기에는 수출정책을 총괄하는 최고기구라기보다는 부처 간 협의체에 가까웠다.


확대회의의 모습과 기능이 크게 바뀌게 된 전기는 1965년 이후 대통령이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회의를 총괄하면서부터다. 이후 약 3~4년 동안 확대회의는 규모도 크게 확대되고 내용과 위상 측면에서도 크게 성장했다. 대략 1968년을 전후로 한 시점이 되면 수출정책을 총괄하는 최고정책기구로 자리를 잡는다. 이후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하는 1977년경까지 확대회의는 이러한 모습을 유지한다.


확대회의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이 10여년 동안에 수행한 기능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수출입 실적과 관련 정책의 보고 및 점검’이었다. 연중 거의 빠짐없이 매달 말에 대통령 주재로 열린 이 회의는 보통 2시간가량 진행됐다. 회의 시간 중 80%는 상공부와 외무부 담당자가 수출 관련 실적을 보고하고 향후 수출증진을 위해 마련된 정책과 진행상황을 보고하는 데 쓰였다(<그림 1, 2> 참조).

 

 


이 점은 확대회의의 실체가 지금까지 알려졌던 것과는 매우 다른 것임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확대회의를 언급하는 여러 문헌들은 확대회의가 민간과 정부가 수출과 관련해 대통령 앞에서 ‘난상토론’을 벌이는 장이었고, 이를 통해 수출과 관련된 많은 장애가 제거됨으로써 수출증진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회의에서 건의와 토론은 2시간 회의 중 10~15분에 불과했으며, 심지어는 민간 측 발언이 전혀 없었던 회의가 거의 절반에 가까웠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건의가 있었을 때 여기에 대해 정부당국자가 응답을 하거나 추후 검토를 하겠다는 언급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난상토론처럼 전개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물론 이것은 정부와 민간의 교류가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것은 아니다. 실제 교류는 확대회의의 준비 과정에서 이뤄졌다. 상공부 상역국을 중심으로 한 담당 공무원들은 이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관련 부처는 물론 많은 민간 인사들을 만나 현황을 파악하고 수출증진을 위해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를 조사했다. 이처럼 목표설정, 이것을 달성하기 위한 유인체계의 확보, 실적치를 통한 성과 평가 그리고 여기에 기반해 유인체계의 조정을 수행하는 노력이 항시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이뤄짐으로써 수출증진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책 우선순위 확실히 제시, 정책 집행자들을 정확히 납득시켜


확대회의는 1977년을 정점으로 변신을 위한 모색을 시작한다.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한 이 시기를 전후로 해서 그 이전에 추진해온 ‘수출제일주의’ 정책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수출이 가져온 국민의 소득증대와 이에 따른 경제사회적 요구들, 수출지상주의가 가져온 여러 가지 부작용들을 고려하지 않고선 국민들의 동의와 지지 속에 수출을 증진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녹취록」의 내용들은 이러한 어려움과 고민의 편린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불행히도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와 이듬해 발생한 정치적 격변 속에서 새로운 단계로 진화하기보다는 쇠퇴하고 1980년대 중반에 와서는 사실상 중단이 된다. 결국 1977년 이후 확대회의는 새로운 진화가 아니라 쇠퇴의 길을 보여준다.


수출진흥확대회의의 성쇠를 반추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 경제와 경제정책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데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아마도 가장 명확한 점은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가 확실히 제시되고 통치권자가 이를 자신의 언행을 통해 국민들과 정책 집행자들에게 정확히 납득시킬 때, 체계적인 관료기구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모범사례라는 점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경제가 점점 더 성장할수록 통치자와 정책당국자들의 환경은 이로부터 점점 멀어져 간다. 아마도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정부가 관료기구의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여기에 근거해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것일 것이다. 확대회의는 이것을 실현하는 데 우리가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이 글은 이영훈 외 정리, 「수출진흥확대회의 녹취록」, 전3권(KDI, 2013), 김두얼, ‘수출진흥확대회의의 기능과 진화과정’, 박명호 외, 「수출진흥확대회의 녹취록 심화연구」(KDI, 2014), 제2장, pp.45-79에 기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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