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문명은, 비로소 돌로써 시작됐고 드디어 쇠로써 완성됐다. 돌로 시작된 인류의 문명은 수십만년을 관통해 지금 여기 쇠의 오늘로 찬란하다. 돌은 불현듯 꼬리 없이 두발로 서서 걷는 유인원의 손으로 들어가 석기(石器)- 돌 도구가 됐다. 아득히 먼 인류의 조상들은 한손에 잡히는 주먹만 한 돌들을 이리 깨고 저리 떼서 날카로운 날을 만들었는데, 이 날은 다만 야생짐승의 가죽을 가르고 살을 바르는 도구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인류 문명 개조를 향한 열망의 총아로 화하였다.
호모 하빌리스의 ‘habilis’ 라틴어 어원 ‘hablis’는 형용사 ‘능숙한’, ‘재능 있는’이란 뜻을 가졌는데 이 능숙하고 재능 있는 인류의 선조들은 그 뜨거운 열망을 삶의 모든 방면에 고루고루 투사하며 엄숙한 문명 개조의 과업을 쉬지 않고 수행해 나갔다. 깨거나 떼거나 하는 타격에 의한 우연의 돌날이 철광석을 녹여 만든 예리한 쇳날이 되기까지 수십만년이 필요했다. 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의 이행은 돌에서 쇠로 건너가는 인류의 지난한 문명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석(石)과 철(鐵)은 강도와 가공 난이도에서 격절의 차이가 있으나 기(器), 즉 도구라는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돌과 쇠는 결국 문명 진보를 향한 인류 열망의 상징이란 측면에서 완벽하게 동일하다.
1978년 연천군 전곡리 한탄강변에서 한반도 구석기인들이 사용했던 주먹도끼가 다량 발굴됐다. 아슐리안형(Acheulian形) 주먹도끼로 분류되는 전곡리 석기 유물의 발견으로 동아시아 선사시대의 역사는 새로 쓰이게 됐다. 그리고 그 도구 문명의 역사는 지금 이곳 한탄강변에 다시 한 번 쇠로 나타났다.
전곡선사박물관은 인류 진화와 문명의 여명을 기념하기 위해 2011년 전곡선사유적지 바로 지척에 세워졌다. 프랑스 건축가 아눅 르정드르(Anouk Legendre)와 니콜라스 데마지에르(Nicolas Desmaziares)는 한탄강변 작은 둔덕 위에 비정형의 유선형 쇳덩이로 박물관을 설계했다. 이 박물관은 쇠를 인간의 편으로 극단적으로 제련시킨 녹이 안 스는 쇠-스테인리스강(stainless steel鋼)으로 완성됐다.
전곡선사박물관에서는 직선을 찾아보기 힘든데 굽이치는 박물관의 곡면은 2차원에 포획되는 곡선으로 만든 곡면이 아니며 3차원의 공간 속에 종횡무진 펼쳐 있는 변화무쌍의 곡면이다. 이 변화무쌍한 곡면은 인간의 상상 속에서는 가능하나 인간의 인식틀로 정향화·수치화·수식화할 수 없기에 건축물로서의 구체적 표현과 실체적 건설이 대단히 난해하다. 이 곡면은 오직 파라메트릭 디자인 툴(parametric design tool), 다시 말해 컴퓨터 연산의 힘을 빌려서야 그 구체적 표현과 실체적 건설이 비로소 가능하다. 기필코 생각하고 상상하는 바를 구체화하고 실체화하는 오늘날 인간 도구 진보의 모습이 이러하다고, 박물관 스스로가 말하고 있다.
한탄강변 한가로운 대지 위에 비정형의 모습으로 떠 있는 스테인리스 스틸 박물관은 사방의 빛을 반사하며 스스로의 존재감으로 오롯하다. 여하한 장식과 관습적 덧댐 없이 반짝이는 쇳덩이로만 오롯한 모습은 돌 도구 문명의 유적지란 연천군 전곡리 땅의 역사적 플롯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전곡리에서 발견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깨고 떼서 우연의 날을 세운 인류 최초의 도구였다. 지금 전곡리 그 자리에는 녹슬지 않는 쇠를 상상한 대로 자유자재로 휘고 구부려 만든 인류 현재 최고의 도구로 지어진 박물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