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1만명이 찾는 시장이 있다고 해서 잔뜩 기대를 안고 길을 나섰다. 입구를 잘못 찾은 건지 지하도 밑에 위치한 시장 입구는 좁고 음산하다. 아치형 벽돌 입구에는 녹슨 물로 세월을 겹쳐 입은 낡은 간판이 걸려 있다. 1875라는 글씨가 적힌 간판을 뒤로 하고 조심스럽게 터널을 지나 시장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런 것이 반전 매력일까? 낡고 허름한 입구와 달리 내부는 생명력 가득한 상품들이 넘쳐 났다.
붉은 플레어스커트를 펼쳐 놓은 듯 화려하게 진열된 토마토는 탱고를 추는 여인의 머리 꽃처럼 선명하다. 굵은 통나무 위에 소담스럽게 올라앉은 물기 머금은 버섯은 신선함을 자랑하듯 속을 보이며 누워 있다. 탐스런 빛깔의 브로콜리와 피망, 잘 익은 호박 등 밭에서 갓 딴 듯 싱싱한 과일과 야채는 어떠한 장치나 연출도 필요 없이 그 자체만으로 빛이 났다.
영국 런던의 버로우 마켓(Borough Market)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자 전 세계에서 모여든 최고 품질의 식재료가 판매되는 곳이다. 주말이면 런던 시민들은 자연산 버섯에서 과일, 야채, 육류와 해산물, 수제 초콜릿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든다.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지 이 시장에 처음 온 나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안전하고 신선한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팔기 때문이었다.
한 치즈가게 앞에 재미있는 입간판이 서 있다. “제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까요?” 그리고 그 아래에 치즈가 어느 곳에서 만들어지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유통경로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까지 덧붙여 훨씬 친근하고 이해도 쉬웠다.
가리비를 파는 가게는 사장님이 직접 잠수복을 입고 가리비를 잡으러 가는 모습이 걸려 있어 손수 채취해 온 것임을 알게 했다. 사슴고기를 파는 가게는 총을 들고 사냥감을 겨냥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생선가게는 낚싯대와 그물, 부표 등 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하는 다양한 도구를 소품으로 사용해 직접 잡아서 파는 가게임을 강조하고 있다. 노점상의 작은 가게도 “우리 배로 앞바다에 나가서 직접 잡아 왔어요.”라고 적힌 큰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고객은 물건뿐 아니라 원산지에 대한 믿음과 이야기를 함께 산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파는 상품의 가치를 제대로 알려주는 진열의 미학이 아닐까.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면서 런던 시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버로우 마켓은 1276년에 문을 열었다. 이른 아침부터 동네 주민과 여행자들로 뒤섞여 북새통인 이 시장도 한때는 어려움에 처했었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생겨나면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 일주일 내내 열리던 시장이 수목금 3일만 열게 됐다. 하지만 직접 잡거나 직접 만들거나 직접 재배한 제품만을 판다는 원칙은 끝까지 지켰다.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시장이 지켜왔던 원칙들이 런던 시민들의 신뢰를 얻으면서 시장은 명성을 되찾았다. 찾는 손님이 많아졌지만 소매시장은 지금도 수목금 3일만 문을 연다.
버섯을 파는 아주머니는 “우리 버섯은 3분만 익혀야 돼. 오래 익히면 맛이 없어.” 조리법에 대한 설명을 연신 지치지도 않고 하신다. 이렇게 고객들을 위해 간단하게 알려 주던 조리법이 시간이 지나면서 특별요리, 계절음식, 간편식 등에 대한 것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하나둘씩 동참하는 가게가 늘어나면서 각 상점의 노하우를 담은 책까지 나왔다. 「버로우 마켓 요리책(Borough Market Cookbook)」 은 제철에 먹어야 할 음식들에 대한 소개로 시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각종 농축수산물과 요리법에 관한 정보 교환이 활발하게 이뤄져 새로운 레시피가 필요한 전 세계 요리사들이 시장을 찾고 있다고 한다.
단순 판매기능으로 대체 가능한 시장이 될 것인가, 스토리와 재미, 경험을 공유한 대체 불가능한 시장이 될 것인가? 버로우 마켓을 보면 그 답을 알 것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