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하게 지내는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리스트인 트랜스링크 음재훈 대표가 최근 내게 “15년 동안 스타트업에 투자를 해왔지만 지금처럼 좋은 기업이 많은 때가 없다.”고 말했다. 왜 그러냐고 질문하자 “하드웨어 르네상스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혁신적인 하드웨어제품을 만드는 스타트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지금은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창업하기에 아주 좋은 시대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시제품을 쉽게 만들어볼 수 있게 됐다. 즉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이 쉬워졌다는 것이다. 간단한 회로장치를 만드는 데 쓸 수 있는 오픈소스플랫폼인 아두이노(Arduino)나 작은 PC인 라즈베리파이를 이용해 하드웨어를 구동하는 제어시스템을 쉽게 만들 수 있다. 시제품 모형은 비싼 금형 대신 3D프린터를 이용해 싸고 빠르게 만들어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제품개발과 제작을 위한 자금조달이 쉬워졌다. 킥스타터, 인디고고 같은 크라우드소싱 사이트들이 인기를 끌면서 초기제품개발과 초도생산을 위한 자금모금이 가능해졌다. 물론 아무나 다 이런 펀딩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이디어가 있으면 투자자의 도움이 없이 뭔가 해볼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세 번째는 글로벌공급망의 발전이다. 중국 선전 등에서 생산한 제품을 전 세계로 배송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게 됐다.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 잠재 고객에게 주문을 받아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해외직구가 늘어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덕분에 지난 몇 년간 수많은 하드웨어 기반 스타트업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2014년 1월 구글에 3조5천억원에 인수된 네스트(Nest) 같은 큰 성공사례도 나오게 됐다. 네스트는 집안의 온도를 인터넷과 연결해 통제할 수 있는 IoT(사물인터넷) 온도조절계를 내놓은 회사다. 이제는 운동량 측정 팔찌, 드론, 스마트도어록 등 다양한 제품들이 애플스토어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이런 IoT 분야는 독특한 아이디어에 기반한 빠른 제품화가 성공의 관건이다. 기발함과 기민함이 필요한 것이다. 대기업보다는 작은 스타트업이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급속히 뜨고 있는 곳은 중국의 선전이다. ‘중국의 실리콘밸리’, ‘세계의 전자제품 수도’ 등으로 불리는 선전은 아이폰, 맥북 같은 애플제품부터 그 짝퉁제품까지 뭐든지 만들어내는 곳이다. 이 지역의 강점으로는 ‘값싸고 높은 품질의 인력’, ‘수많은 공장에 인접한 지역’, ‘어떤 부품이든 쉽게 수급’, ‘글로벌 물류거점’, ‘스타트업에 친밀한 문화’ 등이 있다. 애플의 제품을 위탁생산하는 폭스콘공장이 있고 중국의 인터넷공룡 중 하나인 텐센트의 본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의 IoT스타트업은 프로토타입을 개발 중인 곳을 포함해 40~50곳쯤 된다. 보행 시 자세를 교정해주는 아키(Arki)라는 웨어러블로 킥스타터에서 16만달러 펀딩을 달성한 ‘직토(Zikto)’를 비롯해 주목할 만한 스타트업이 제법 있다.
하지만 해외환경에 비해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경험이 많은 투자자가 부족하고, 국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가 적고, 하드웨어 스타트업과 대기업 간의 상생구조가 취약하다는 점 등이 과제다. 여유시간이 있을 때 뭔가 직접 차고에서 만들어보는 미국인의 잉여문화가 한국에는 부재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런 취약한 환경 때문에 삼성전자, LG전자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넓히며 성장하는 한국의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아직 거의 전무하다. 중국의 경우 최근 몇 년 사이에 혜성처럼 등장한 샤오미와 드론업체 DJI가 거의 1만명 정도의 직원을 거느리며 일자리도 크게 창출해내고 있다. 우리도 이런 걸출한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키워낼 수 있도록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