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보복은 은밀하고 치밀했다. 주력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급소를 겨냥해 핵심 소재 3종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한국 제조업은 1990년대 이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소재부품장비 분야를 경쟁우위를 가진 일본 수입에 의존하고 완제품 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집중했다. 한국과 일본 모두에 이익이 되는 국제분업체제였다. 하지만 일본이 이를 무기화하면서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을 이루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단순히 효율성 측면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소재부품장비 분야 기술 자립을 통해 위기를 산업강국 도약 기회로 반전시키기 위한 정부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韓 제조업, 국제분업체제하에서 완제품 경쟁력 제고에 집중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1일 대(對)한국 수출규제를 기습적으로 강화했다. 목표는 한국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이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에 사용하는 불화수소(불산에칭가스), 포토레지스트(감광액),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3종을 수출 때마다 허가받아야 하는 개별수출허가로 돌렸는데, 이는 일본이 세계시장의 70~90%를 독점한 필수 소재다. 규제는 정밀했다. 예를 들어 포토레지스트는 1나노미터(㎚) 초과 193㎚ 미만 파장의 빛에서 사용하기 최적화된 소재로 규제 범위를 정했다. 현재 일본에서 수입 중인 포토레지스트 가운데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RD) 등에 사용하는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13.5㎚)다. 한국의 주력품목인 D램(193㎚), 낸드플래시(248㎚) 메모리 공정에 사용하는 포토레지스트는 규제에서 벗어났다. 한국의 미래산업에 경고를 날리면서도 국제 여론 등을 고려해 글로벌 반도체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핀셋규제다. 업계는 당장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보다는 경고성 조치로 읽힌다며 정확하고 치밀하게 분석해 한국 산업의 초크 포인트(choke point)를 틀어막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는 나아가 한국을 백색국가(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에서도 제외했다. 비록 핵심소재 3종 이외에 추가 규제품목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백색국가에서 제외된 이상 전략물자가 아니더라도 대량파괴무기 제조용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의심만 돼도 상황허가(catch-all, 캐치올) 규제가 가능하다. 언제든 일본 정부 입맛에 맞는 수출규제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정부는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에 맞서 한일 양자 압박과 국제사회를 통해 우회 압박하는 투트랙 대응에 나섰다. 양자 차원에서는 일본 수출규제에 맞대응해 일본을 우리나라의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를 개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개정안은 9월 중 시행 예정인데, 시행되면 기존 가 지역에 포함됐던 일본은 신설되는 가의2 지역으로 독립 분류돼 전략물자 포괄수출허가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비(非)전략물자도 상황허가 규제가 가능해져 일본의 추가 수출규제에 대응할 정책카드를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정부는 또 일본 수출규제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로 하고 시기를 고민 중이다. 다자 차원에서는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적극 설명하며 여론을 환기하고 있다. 7월 8일 스위스 제네바 WTO 본부에서 열린 상품무역이사회와 24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일반이사회에서 일본 수출규제 조치를 정식 안건으로 상정해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 강화에 대해 양국 간 신뢰 관계가 현저하게 훼손됐다라거나 부적절한 사례가 복수 발견돼 안보상 수출규제는 필요한 조치라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에 해결 방안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데 대한 정치적 보복이 근본 이유라는 것이 한일 양측 전문가의 공통적인 평가다. 소재부품 무역흑자 51배 늘었지만질적 성장이 관건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일본 수입 의존도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90년대 초 세계화 바람을 타고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 분업체제가 고착화됐다. 수출 주도 경제성장을 해온 한국은 외부에서 소재부품을 조달해 완제품을 생산공급하는 가공무역에서 경쟁우위를 가졌다. 자원이 부족하고 내수시장이 협소한 한국으로서는 경쟁우위를 가진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분야를 수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정부는 뒤늦게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중요성을 알고 공격적인 산업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그 결과 지난해 한국 소재부품 수출은 3,162억달러로 총수출(6,055억달러)의 52.2%를 차지했다. 무역수지는 1,391억달러 흑자를 냈는데 전체 무역흑자(705억달러)의 약 2배를 기록했다. 2001년 소재부품 수출액이 620억달러, 무역흑자가 27억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17년 만에 수출은 5배, 무역흑자는 51배 늘었다. 하지만 양적 팽창과 달리 질적 향상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부는 2001년 「소재부품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4차례 소재부품발전 기본계획을 내놓으며 소재부품 세계 4강 도약을 목표로 RD 투자에 나서고 있다. 특히 고질적인 일본 의존도를 낮추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했다. 그 결과 2010년 243억달러였던 소재부품 산업 대일본 무역적자는 지난해 151억달러로 꾸준히 줄었다. 대일본 수입의존도 역시 2001년 28.1%에서 지난해 16.3%까지 하락했다. 문제는 초격차 기술을 앞세운 핵심 소재 분야다. 범용 소재부품의 경우 한국, 중국 등 후발주자의 시장점유율이 크게 상승했지만 핵심 소재 분야는 오히려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의 시장지배력이 더 커지는 경향이 뚜렷하다. 우리나라는 특히 첨단산업 관련 소재부품 산업 경쟁력이 취약한데, 평균 기술력이 독일, 일본 등 선진국 대비 66%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된다. 2017년 기준 세계 2천대 기업 중 소재 기업 수는 미국 40개, 일본 29개지만 한국은 단 7개에 그친다. 무엇보다 핵심 소재 분야는 초격차 기술을 보유한 국가가 수출규제를 진입장벽 삼아 해당 산업 가치사슬 진입 자체를 막아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글로벌 가치사슬이 서로 얽혀 있어 수출규제 조치를 내린 국가 산업계도 피해가 불가피하지만 외교안보를 이유로 강행할 경우 상대국이 마땅히 대응할 카드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기업들과 국민들에겐 그 어려움을 극복할 역량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실행과 완성이다. 소재부품장비 기술 자립을 위한 정부와 민간 모두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8월 5일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하고 대외의존형 산업구조 탈피와 제조업 혁신에 나섰다. 이번 대책은 주력산업 공급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품목에 대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고, 전략적 핵심품목에 자체 기술력을 쌓아 선두주자들과 대등하게 경쟁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를 위해 예산, 금융, 세제, 규제특례 등 전방위적으로 자원과 역량을 투입할 방침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소재 등 핵심기술 조기 확보에 추경자금 2,732억원 즉시 투입 우선 정부는 일본 전략물자 1,194개와 소재부품장비 전체 품목 4,708개를 분석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금속, 기초화학 등 6대 분야 100대 핵심 전략품목을 선정했다. 그중 안보상 수급위험이 높고 전략적 중요성이 커 기술 확보가 시급한 품목 20개와 업종별 밸류체인상 취약품목이면서 자립화에 시간이 다소 소요되는 품목 80개를 나눠 전략을 마련했다. 1년 내 공급 안정화 달성을 목표로 하는 20대 핵심 전략품목에 대해서는 수입국 다변화를 집중 추진해 품목별로 대체공급처를 조속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소요자금 보증 등을 지원하고, 24시간 통관지원체제를 운영한다. 아울러 보세구역 내 저장기간은 현행 15일에서 필요 기간까지 대폭 연장하며, 대체품목의 기존 관세를 40%p 이내에서 경감하는 등 할당관세도 적용한다. 불산,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통제품목의 국내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공장을 신증설하는 경우 관련 인허가를 신속 처리할 방침이다. 한편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소재, 이차전지 핵심소재 등 20개+ 핵심기술을 조기에 확보하기 위해 추경자금 2,732억원을 즉시 투입한다. 기술개발 완료 단계에 있는 이차전지 관련 소재, 로봇 부품 등의 신뢰성평가 280건을 비롯해 양산평가 100여건을 집중 지원해 신속하게 생산으로 이어지도록 한다. 중장기 지원이 필요한 80개 품목에 대해서는 연구개발(RD) 집중지원, 과감하고 혁신적인 RD 지원방식의 도입,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공급 안정화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예비타당성조사 등을 통해 신속하게 RD 사업비를 투입하는 등 7년간 약 7조8천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시행한다. 이를 위해 32개 공공연구소의 연구역량을 총동원해 기업들의 핵심 기술개발을 적극 지원해나가며 패스트트랙, 경쟁형 RD, 개방형 RD 방식 등 기술개발의 속도와 성과를 높일 수 있는 과감하고 혁신적인 RD 방식도 추진한다. 국내에서 단기간 내 기술 확보가 어려운 경우에는 MA, 해외기술 도입, 해외기업 국내 유치 등의 노력을 병행한다. 해외기업 MA 인수를 위해 2조5천억원 이상의 MA 금융이 공급되도록 지원하는 한편, MA 시 법인세 세액공제 등 세제지원을 신설하고 MA 지원 협의체를 구성해 종합적으로 지원한다. 해외기업 투자 유치를 위해 핵심 전략품목에 대한 외국인투자 현금지원 비율을 현재 30%에서 40%로 확대하고, 해외 전문인력의 소득세 공제를 신설하는 등 우수기술인력 유치도 강화할 예정이다. 아울러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물질 관리, 노동시간 등에 따른 애로는 신속하게 해결해나간다. 화학물질 등의 인허가 기간과 절차를 대폭 단축하고 조속한 연구개발을 위해 특별연장근로 인가와 재량근로제의 활성화도 적극적으로 도모해나간다. 소재부품 관련 기업에 대한 정책금융대출 만기연장과 함께 올해 하반기 29조원의 자금공급 여력을 신속 집행하고, 최대 6조원 규모의 특별운전자금도 추가 공급할 방침이다. 수요-공급기업, 수요기업 간 협력모델 구축 위해 자금+입지+세제 등 패키지 지원 정부가 이번 대책에서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이 바로 수요기업과 공급기업 간 또는 수요기업 간 협력모델 구축이다. 정부는 4가지 협력모델을 제시하고 참여 기업들에는 자금+입지+세제+규제특례 등을 아우르는 패키지 지원을 하기로 했다. 나아가 공급기업의 기술개발과 수요기업의 생산 단계를 연결할 수 있도록 실증양산 테스트베드를 대폭 확충한다. 화학연구원, 재료연구소, 세라믹기술원, 다이텍연구원 등 4대 소재연구소를 실증 테스트베드로 구축함과 동시에 수요기업이 보유한 양산 테스트베드가 현재의 반도체에서 자율차, 전기차 등으로 확대되도록 유도한다. 양산 테스트 후 신뢰성 하자 위험에 대비해 1천억원 규모의 신뢰성보증제도를 도입하며 공공기관과 소재부품기업을 연계해 실증 테스트베드 운영, 수요 연계 RD 등도 추진한다. 한편 소재부품장비 기업에 대한 민관 공동의 대규모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연기금, 민간투자자, 나아가 일반 국민들도 참여하게 함으로써 국민투자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아울러 소재부품장비 전문기업에 투자 시 양도차익과 배당소득 비과세 등 세제혜택을 신설하고, 벤처캐피털 등 민간투자와 연계해 지원하는 투자연계형 RD도 내년부터 대폭 확대한다. 원천기술 RD 및 시설투자의 세액공제 확대 등 투자 인센티브도 강화해나간다. 다음으로 소재부품장비 글로벌 전문기업 100곳을 지정해 육성한다. 글로벌 전문기업에 대해서는 RD, 신뢰성, 양산평가 등 기업 성장 단계별로 필요한 여러 가지를 일괄 지원하고, 공공연구기관과 매칭해 신기술 확보를 돕는다. 또한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성장 잠재력이 있는 스타트업과 강소기업을 각각 100개씩 중점 육성하고,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관계부처 간 협력도 강화해나간다. 끝으로 이번 대책의 강력한 추진을 위해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를 조속히 신설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실무추진단도 산업통상자원부에 설치할 예정이다. 아울러 법 제정 후 20년 가까이 지난 현행 「소재부품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장비까지 확대하고 상시법으로 전환하는 등 법적 제도도 정비할 계획이다.
기술 사업화, 인력양성, 국제협력 등 개발된 기술의 활용에도 투자 확대RD 성과 확산을 위해선 실증인증 표준화가 필수 미래형 신산업 육성은 정부 주도로, 주력산업 고도화는 민간 주도로 가는 투트랙 전략 필요 최근 한일 무역분쟁의 배경은 산업경쟁이고 본질은 기술전쟁이다. 우리가 취약했던 소재부품장비의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의 숙명적 기회다. 연구개발(RD)은 인수합병(MA), 기술도입(O/S)과 더불어 국산화의 유력한 방법이지만, 투자 효율성에 의문 제기가 많다. 만성적인 기술무역수지 적자, 낮은 사업화 성공률, 부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연구비 부정 사용, 불공정한 과제선정 절차,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투자 대비 매우 낮은 기술이전료, 해외 기술유출과 인재유출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런 문제의 주범인 정부 RD를 동결하거나 아예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투자효율이 높은 민간 RD 중심으로 가자는 것이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은 변동성이 크고 불확실해 정부 주도의 RD로는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안전, 보건, 환경, 복지 등 RD 공공성 중요 먼저, 기술무역수지는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기술도입액 대비 기술수출액 비율은 2010년 33%였지만 2017년에는 72%가 됐다. 이 추세면 2022년에 기술무역수지 흑자국이 된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특허출원 수는 세계 4위이며 국내총생산(GDP)이나 인구 대비로는 세계 1위다. 지금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재부품 수출액은 꾸준히 커져 2017년 일본의 83%로 좁혀졌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RD에 투자한 지는 40여년밖에 안 된다. 축적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민간 RD는 정부 RD의 3배 이상으로 이미 민간 주도로 가고 있다. 연구과제 선정과정이나 연구비 사용, 연구결과 보고서 등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정부국회언론시민들로부터 감시를 받는 정부 RD에 비해 민간 RD는 비공개라 얼마나 효율적인지 제대로 알기 어렵다. 설사 민간 RD 효율이 높다고 해도 정부 RD를 대신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RD의 공공성을 무시한 것이다. 공공의 안전, 보건, 환경, 복지 등을 민간 RD에 의존할 수는 없다. 선진국이든 저개발국이든 관계없이 국가 산업발전에서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다. 정부는 기술변화와 시장변화에 따라 제도개선과 법률제정, 재정투자와 금융지원 등을 통해 산업 구조조정과 신산업 육성을 할 수 있다. 특히 정부 RD를 통해 새로운 기술개발과 유망 분야 인력양성을 주도할 수 있다. 이 결과를 갖고 기업들이 민간 RD와 설비투자마케팅을 통해 사업화에 나서고 산업도 육성된다. 정부는 국제협력과 수출진흥, 세제지원 등 후속지원도 한다.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인 반도체정보통신자동차조선석유화학철강이 모두 이러한 정부의 선제적 RD교육금융 지원으로 육성됐다. 그러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정부 RD 방식과 규모이면 충분할까? 지난 20여년간 정부 RD는 대기업 위주의 민간 RD를 보조하는 성격으로서 축소 운영돼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 결과 대기업의 사업개척과 신규투자가 미진한데 정부까지 신산업 투자에 소극적이어서 민관 쌍두마차가 모두 멈춘 형국이다. 최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미중 분쟁 격화와 이로 인한 세계 경기침체 장기화가 우려되고 있다. 한일 기술전쟁은 국제 기술패권전쟁의 일부일 뿐이다. 이러한 글로벌 산업경쟁 구도에서 우리의 선택은 신자유주의를 탈피해 정부 RD를 과감히 확대하고 공공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어야 한다. 구체적 대안은 다음과 같다. 바이오의료, 에너지환경 등 5대 신산업 정부 주도로 육성해야 첫째, RD 투자효율 혁신을 위한 제도개선이다. 이를 위해 스마일 커브형 RD 투자전략을 도입하자. RD 초기의 아이디어, 개념설계와 RD 말기의 기술 사업화, 마케팅 단계가 고부가가치 영역이다. 중간 단계인 제조기술도 중요하지만 더 이상 정부 RD가 중점을 둘 분야는 아니다. 세계 최초(the first)인 원천기술과 세계 최고(the best)인 상용화기술에 집중하는 양극화 RD 전략이 필요하다. 수십 개 과제를 모아놓은 사업 단위의 기획역량을 강화하자. 사업구상과 아이디어 검증, 예비타당성 검토는 물론 필요 시 체계나 기술의 개념설계까지를 포함해 사업기획의 범주에 넣고 전체 RD비의 3% 정도를 투자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잘못된 RD로 인한 예산 낭비를 대폭 줄일 수 있고, 전체적으로는 이게 더 효율적이다. 또 사업과제 기획은 연구개발자의 수요보다는 시장의 수요에 기반해 이뤄지도록 마케팅과 특허 전문가 의견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공정한 과제선정과 평가관리를 위해 온라인 메타순환평가제도를 도입하자. 이를 통해 제안자와 평가자 간 암맹(블라인드)평가가 이뤄지고 평가위원과 전담기관도 평가받는다. 과제계획서 양식도 표준화가 필요하다. 중복연구의 일종인 복수지원 허용과 연차발표마저 생략하기로 한 산업통상자원부의 방침을 전 부처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 대신에 안전, 환경, 사회적 가치 등 RD 공공성은 강화하자. 기술 사업화, 인력양성, 국제협력 등 개발된 기술의 활용에도 투자를 확대하자. RD 성과 확산을 위해서는 실증인증표준화가 필수다. 수출을 위한 국내 운영실적 확보와 신규 제품의 공공기관 우선 구매도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 스타트업스케일업을 위한 투자금융 활성화도 필요하다. 둘째, RD 생태계 개선이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한 상생생태계가 중요하다. 대기업의 브랜드와 글로벌 마케팅 역량, 그리고 중소기업의 유연한 적응력과 혁신역량이 잘 결합돼야 한다. RD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 중심으로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대기업의 사업화를 위한 RD 전달체계가 약화된 것은 문제다. 민관협력체계를 새롭게 강화해야 한다. 이를 타개할 한 방안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대기업과 달리 특정 시장기술에 편중돼 있지 않아 객관적으로 분석해 전략을 수립하고 신산업 육성 RD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 소재부품 분야처럼 장기적으로 기초원천연구를 해야 하는 일에도 적합하다. 정부 RD 과제는 중소기업에 집중 지원하더라도 사업기획 과정에는 대기업을 적극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정부 주도의 5대 신산업 분야(BEST-I) 육성이다. 웰빙고령화에 따른 바이오의료(BioMedical), 삶의 질 중시에 따른 에너지환경(EnergyEnvironment), 선진국 수준의 공공 안전(Safety industry), 국제교류 증가에 따른 항공전기교통(Transportation), 지식경제시대 도래에 따른 지식서비스(Intellectual service) 산업 분야가 고려 대상이다. 아직은 선진국이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경쟁력과 시장 점유율은 세계 10~20위권에 불과하다. 향후 20년 내 5위권 진입을 위한 로드맵이 필요하다. 5대 신산업 분야는 공공안전이 중시되고 선진국의 높은 규제통상 장벽을 국제 표준화 활동과 외교로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예컨대 디지털헬스자율주행차공유서비스는 정부가 규제를 조정해주지 않으면 산업형성 자체가 안 된다. 반면 기존 주력산업은 경쟁력 강화가 숙제인데, 이는 민간 주도 전략이 유효하다. 미래형 신산업 육성은 정부 주도로, 주력산업 고도화는 민간 주도로 가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정보지식산업(IT), 바이오의료산업(BT), 에너지환경산업(ET) 육성을 주도할 혁신성장 전담부처를 신설하는 것도 필요하다. 넷째, 정부 RD 절대 규모의 확대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4% 수준으로 낮아지는 가운데 주력산업의 미래는 불확실해졌고 신산업 육성에는 시간이 걸린다. 다시는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RD를 축소하고 연구인력을 퇴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부 RD 규모를 확대하고 민간 RD도 위축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 우리나라 RD비는 2017년 GDP의 4.55%로 세계 1위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정부 RD 누적투자액 규모로 보면 미국의 8분의 1, 일본의 2분의 1 수준이다. 정부 RD는 투자하면 확실한 성과로 되돌아오는 유일한 혁신성장 예산이다. 앞서 언급한 대책을 통해 투자효율을 대폭 개선하면서 RD 투자비를 매년 10%씩 확대하자. 해외로 유출되는 고급인력도 국내로 되돌아오게 하고 해외 우수인력도 적극 유인하자. 기초과학은 장기적으로 적극 지원하고 방사광가속기 같은 거대시설도 설치하자.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을 위한 포석이다.
기획 단계부터 성과목표와 평가지표를 구체화하고 정량화하며 사업화 및 시장성 평가를 강화해야 RD 부문에서는 52시간 근무제가유연하게 적용돼야 한국경제의 성장판이 빠른 속도로 닫히고 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1990년대 초 7%대였지만 대내외 위기를 겪으면서 하락해 2016~2020년에는 2% 중반까지, 그리고 향후 5년 뒤에는 1%대까지 추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경제의 성장판이 닫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영양분이 공급돼도 더 이상 성장하기 힘든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잠재성장률 하락의 원인 중 노동과 자본의 투입 강도 저하는 거스르기 힘든 대세다. 기댈 곳은 기술밖에 없다. 첨단기술로 무장해 생산성을 높이는 길만이 닫히고 있는 한국경제의 성장판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그래서 연구개발(RD)이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민간의 RD가 중요하다. 민간 RD 투자는 2000년대 초 공공 부문을 추월한 이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RD 투자액 78조8천억원 중에서 민간 RD 투자액은 60조원으로 민간 비중은 76%다. 민간의 RD 성과에 국가 전체적인 RD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간 RD 투자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2017년 민간 RD 투자액 60조원, 전체의 76% 정부도 최근 세법개정안을 발표해 민간 RD를 강화하려는 의지를 피력했다. 요지는 신성장원천기술 RD 비용의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외부위탁 RD에 대한 세제지원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원책이 없는 것보다는 바람직하지만, 단기적인 경제활력 회복에 우선순위를 둔 조치라는 성격이 강하고 한시적부분적 감면이 주를 이뤄 중장기적이고 지속적인 RD 투자 활성화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신성장 부문의 RD 세액공제 대상이 되는 기술 범위가 현재 허용되는 항목을 열거하는 포지티브 리스트이거나 최근 이슈인 소재부품에 한정돼 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원칙적으로 기술 범위 대상을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제외되는 항목을 제시하는 네거티브 리스트로 바꿔야 한다. 혹은 신규기술 편입을 쉽게 허용하는 유연한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어야 한다. 연구자 개개인은 신성장 부문과 기존 부문 모두에서 골고루 연구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 RD 활성화를 위해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RD의 결과물이 실제로 시장에서 높이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공공 RD와 달리 민간 RD는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 베이스로 수행돼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민간 RD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민간 RD를 지원하더라도 기술의 사업화를 통해 수익이 창출되고 다시 RD 투자가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돼야 한다. 선순환 구조 형성의 시작점인 사업화 성공을 위해서는 RD를 통해 얻어지는 신기술과 신제품이 시장에서 환영받아야 한다. RD 기획 단계에서부터 시장을 잘 아는 마케팅 부서와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정부의 지원 대상이 되는 RD 기술과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간의 미스매치를 줄이기 위해 기획 단계부터 성과목표와 평가지표를 구체화하고 정량화하며 사업화 및 시장성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 글로벌시장 겨냥한 RD 기획,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해야 민간 부문에서는 글로벌시장을 겨냥한 RD 기획을 더 많이 하면 유리할 것이다. 그 이유는 국내 경기 부침에 따라 투자액이 변동하는 RD의 속성상 글로벌시장을 염두에 두면 국내 경기 흐름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시장은 산업 내에서 대기업의 영향이 크고 고유의 원하청 구조로 인해 신기술 RD 사업화에 성공해도 투자 대비 수익 확보가 어렵다. 이것 역시 기술 기반 사업 고안 단계부터 글로벌 진출 목표를 전제로 추진하는 방향을 제언한다. 공공 분야도 그렇지만 민간 RD 투자 부문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분야는 지식재산권, 즉 특허에 대한 보호다. 중소기업이 개발한 신기술에 대한 보호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우수기술에 대해 특허권을 내도 사업화를 위한 자금 조달이 어렵고 기술 탈취에 취약해 특허를 매개로 한 성장사다리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원천 핵심 특허를 확보하면 경쟁사의 진입을 차단하고 기술 이전과 사업화 과정에서 기술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즉 기술 자립과 기술 수출이 가능하다. 기업의 경쟁력과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특허를 보호하고 관리해야 한다. 독일의 질레트사는 7개의 핵심 아이디어를 특허화하고, 회피 가능한 기술에 대한 수십 건의 특허를 확보해 강력한 특허망을 구축했다. 이로 인해 후발 업체의 시장 진입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는데, 이와 같은 특허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술 및 시장 분석을 통한 핵심경쟁기술 식별 등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의 역량이 미치지 못할 경우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분야다. 마지막으로 근무시간 규제는 민간과 공공 부문을 통틀어 RD 분야에서 재고해야 할 사항이다. 오랜 시간 동안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실험 결과에 바탕을 둔 연구 업적이 RD의 결과물 아닌가? 그렇다면 주 최대 52시간 근무제는 RD 분야에서는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말아야 하는 제도다. 연구는 개개인의 능력이 발휘되는 분야임과 동시에 집단 지성의 힘이 나타나는 영역이기도 하다. 회의에서 오가는 토론과 논쟁을 통해 연구자 개인의 지식과 주장들이 공유되면서 좋은 연구 결과가 나온다. 그 과정에서 회의 시간이 길어지기도 한다. 각자 책상으로 돌아가 야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이럴 때마다 추가 근무 신청을 해야 한다면 자연스럽게 회의 시간이 줄게 되고 집단 지성의 파워는 연구 보고서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RD 부문에서는 52시간 근무제가 유연하게 적용돼야 한다. 최근 소재부품의 교역규제 사태를 돌아보며 기술 자립의 필요성을 느꼈다. 완벽한 자립은 힘들겠지만,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때 불안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RD 투자 활성화가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시장이 필요한 기술 수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민간 RD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 그리고 미래 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개방형 혁신에 기반해 경쟁력 있는 중소벤처기업을 파트너로 발굴할 수 있는 시스템을 항시적으로 가동해야. 협력사의 자격 요건을 공정하게 하고 누구나 경쟁할 수 있는 여건 만들어야 21세기엔 기업 간 경쟁에서 네트워크 간 경쟁으로 변화됨에 따라 개방형 혁신을 근간으로 한 상생협력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고, 최근에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핵심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위한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이 부각되고 있다. 사실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강조돼왔으나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우리나라의 대중소기업 관계는 단순 원가절감 수단의 수직적 관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주요 상생협력 지표가 그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제조업 분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 차이는 2009년 1.9%p에서 2017년 3.6%p로 더 벌어졌고, 전체 기업 중 중소기업(벤처기업 포함)의 연구개발(RD) 예산 비중은 2009년 29.1%에서 2017년 21.8%로 낮아졌다. 또한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은 2009년 57.6%에서 2017년 56.2%로 임금 수준의 격차도 지속되고 있다. 벤처기업, 충분한 기술력 보유했지만 납품할 곳 없어 벤처기업협회가 벤처기업 330여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일본 수출규제 관련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출규제가 예상되는 품목의 국산화 가능 여부에 응답자의 78%가 1~4년 이내에 국산화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즉 국산화를 위한 충분한 기술력을 우리 벤처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기술개발을 해도 납품할 곳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대기업들은 기존의 안정적인 거래처를 굳이 바꿀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불가피한 경우도 있었겠지만 경영의 기본인 다각화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극복하기 위한 기업의 대응책은 크게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로 압축된다. 품목에 따라 최적의 방안 수립이 필요할 것이나, 국산화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중소벤처기업과 대기업이 수평적 동반자로서 상호 윈윈(winwin)할 수 있는 협력모델 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중소벤처기업의 기술 수준에 대해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의 시각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시각차를 실제 검증하고 간극을 좁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기술 자립을 위한 첫 번째 방안으로 중소벤처기업과 대기업의 상설협의체 운영을 제안한다. 상설협의체를 통해 핵심 소재부품의 국산화와 개방형 혁신을 협의하고 RD 지원, 테스트베드 구축, 판로 확보 등 전방위적인 대책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필요하면 학계, 연구계 등의 전문가도 참여시켜 최적화된 협업의 상생모델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또한 RD 기획 단계부터 중소벤처기업과 대기업의 항시적인 소통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상설협의체를 통한 협력모델 구축과 일련의 과정이 체계화된다면 대기업이 우려하는 대체품의 품질 문제에 따른 공정상의 리스크도 크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대기업, 중소벤처기업, 학계, 연구계, 정부 등이 참여하는 최적화된 협력모델을 만들고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는 것이 답일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학계연구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상생협력 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방법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파트너십 인식 강화를 꼽았다. 반면 정부의 정책지원, 자금지원 등은 비중이 낮았다. 중소벤처기업들은 실질적인 동반자적 관계에서 해외 동반진출이나 국내 판매구매 지원 등을 희망한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방안으로 중소벤처기업과 대기업의 해외시장 공동진출을 제안하고 싶다. 대기업의 해외시장 역량과 중소벤처기업의 기술혁신 역량을 결합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해외진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대기업이 협력업체와 해외 제조공장에 동반진출하는 것처럼 타깃 기술 분야의 개발 단계에서부터 대등한 파트너 기업으로 공동 해외진출을 모색하는 것이다. 특히 일부 품목의 경우 한정된 내수시장으로 인해 경제성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해외진출을 위한 공동 협력은 더더욱 중요할 것이다. 해외진출의 경험과 네트워크가 구축된 대기업들의 역량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해외시장 공동진출, 특허 개방을 통한 사업화 추진 필요 세 번째로 핵심 소재부품의 기술 자립을 위해서는 대기업이 개방형 혁신에 기반해 경쟁력 있는 중소벤처기업을 파트너로 발굴할 수 있는 시스템을 항시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협력사의 자격 요건을 공정하게 하고 누구나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기술력이 없는 협력사는 퇴출시키고 우수기술을 보유한 혁신 중소벤처기업을 과감히 영입해 상생생태계의 경쟁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네 번째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특허 개방을 통한 사업화 추진이다. 대기업이 보유한 양질의 미실현 특허를 중소벤처기업에 개방해 신제품을 개발하고 사업화를 도모하자는 것이다. 대기업의 경우 일정 규모 이상의 시장 창출력이 없는 특허는 내부에 사장되는 사례가 있는데 이를 중소벤처기업에 개방해 활용하자는 것이다. 개방된 특허는 저렴한 가격에 중소벤처기업에 양도하거나 사업화 성공 후 기술료 수입, 지분투자 및 MA 등 다양한 형태로 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중소벤처기업과 대기업의 상생협력은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국가 경제위기 극복의 최적의 해법이다. 이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한다면 기술 자립은 물론 우리나라의 산업 기반을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드는 기회가 될 것이다. 벤처생태계는 기술창업성장회수재창업의 선순환과 함께 우수인재 유입, 적기 자금공급, 재도전 기회 제공, 단계별 회수시장 작동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작동된다. 이러한 벤처생태계에 대기업의 참여는 시장과 자본 제공이라는 1차적 효과 외에 MA시장 형성을 통한 회수시장을 제공해 선순환 생태계를 완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벤처생태계 자체가 대기업에는 또 다른 시장이자 비즈니스 기회인 것이다. 앞으로의 상생협력은 수직적 갑을 관계가 아니라 상호 발전을 위한 수평적 동반자라는 인식이 우선돼야 한다. 대기업이 중소벤처기업에 베푸는 일시적인 지원의 차원을 넘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 돼야 한다.
과학기술계 출연연은 대학의 기초소재기술과 기업의 상용화 기술을 연계하고 공백기술을 확보하는 응용연구 중심의 소재플랫폼 역할을 수행할 필요 있어 기술사업 분야 인적자원개발협의체에 대한 지원 강화해 대학, 연구소, 중소기업 등을 연계한 기술인재 양성 생태계 구축해야 지난 5월 통계청과 관세청에 따르면 2018년 반도체와 석유정제 및 화학 업종이 주로 호황을 보였다. 그러나 이들 산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제조업, 특히 소재부품 산업의 위기는 중국이 반도체 굴기(성장정책)를 선언하면서 더욱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조립 및 가공 중심으로 반도체산업의 성장을 추진했지만, 그에 필요한 소재부품은 일본을 벗어나지 못해 올 상반기 대(對)일본 소재부품 분야 적자는 무려 7조8천억원(67억달러)에 달했다. 게다가 올해 7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부품에 대한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는 글로벌 공급망을 훼손시킴으로써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전 지구적 패러다임 전환을 지체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산업정책에서 추진돼온 인재양성 현황에 대한 점검 시급 우리 정부는 지난 30년 동안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 지원정책을 추진했으나 기술적 취약성이 여전하고 중장기적인 인재양성에는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대기업 위주의 조립, 가공 위주, 해외기술 도입에 의존한 압축성장 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우수한 소재부품 생산은 중소기업의 육성, 최종 생산품의 엄격한 품질관리와 맞닿아 있다. 특히 핵심 소재부품의 국산화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품질이 보장된 제품을 생산해낼 수 있는 우수인재 확보가 관건이다. 즉 우수인재의 확보는 중소기업의 제조 품질 향상을 도모하고 일본에 치우친 글로벌 분업구조를 재조정해 실질적인 기술 자립을 달성하기 위해 중요한 과제다. 따라서 국산화 지원정책의 핵심은 부품소재장비 산업뿐만 아니라 제조업, 나아가 산업활동 전반에 뼈대가 되는 기술인재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혁신적인 인재양성 방안을 계획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4월 일자리위원회를 통해 제시된 사람투자 10대 과제는 미래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돌파구로 인적자본 축적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미래인재 양성과 산업 현장 인력양성 대책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같은 맥락에서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및 전략은 제조업 전반에 대한 진단과 분석을 통한 국가 인재양성 로드맵을 포함하고 있다. 그동안 산업정책에서 추진돼온 사람투자(인재양성) 현황을 꼼꼼히 살펴보고,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핵심 엔지니어, 현장 기술인력에 대한 지원정책의 미비점에 대한 점검이 시급한 시점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기술인재 양성을 위해 제언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공계 인재육성 시스템을 산업 맞춤형으로 다시 세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대학 3, 4학년 단계에서는 소재부품장비 등 신산업 분야 연계, 융합과정 신설을 통한 신규인력 양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에 종사할 잠재적 전문인력은 대학 및 연구소의 석박사급 연구인력을 통해 충원되는데, 이들이 수행하는 연구개발과제는 현장과의 접목을 통해 산업화실용화돼야 할 것이다. 산학 연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핀란드의 제품개발프로젝트과정(PDP; Product Development Project)을 참고할 수 있는데, 이 과정의 결과물은 실제 양산이나 개발에 직접적 영향을 주기도 하고 참여했던 학생들에게 여름방학 일자리(summer job)를 제공하기도 한다. 둘째, 과학기술계 출연연구기관들도 대학의 기초소재기술과 기업의 상용화 기술을 연계하고 공백기술(vacant technology)을 확보하는 응용연구 중심의 소재플랫폼 역할을 수행할 필요성이 있다. 여기에 정부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소재부품장비의 테스트베드 등 공동플랫폼 구축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유럽 최대의 전자연구소인 벨기에 IMEC(Interuniversity Microelectronics Center)는 지방정부의 지원으로 대학 캠퍼스 내에 비영리 반도체 연구소를 설립해 국제적인 반도체 연구플랫폼으로 발전한 사례다. 中企 계약학과, 재직자 직업능력개발 등 통해 현장 혁신 일궈낼 수 있게 해야 셋째, 우수한 품질의 소재부품을 생산해내기 위한 제조인력의 중요성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장인력의 기술력 부족은 신뢰성이 낮은 중저가 소재부품을 양산할 뿐이다. 좋은 품질의 소재부품을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숙련된 뿌리기술 인재가 참여하는 제조공정시스템이 구비돼야 한다. 즉 주조, 금형, 용접, 소성가공, 열처리, 표면처리기술을 보유한 현장 기술전문가는 소재를 부품으로, 부품을 완제품으로 생산하는 기초공정을 담당해 나무뿌리처럼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으나 최종제품에 내재돼 품질경쟁력을 완성한다. 이와 같은 숙련기술 인재는 대부분 중소기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임금지원, 세제혜택뿐만 아니라 마이스터고특성화고의 잠재 인재육성, 중소기업 계약학과, 재직자 직업능력개발 등을 통해 현장 혁신을 일궈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독일 산업경쟁력의 기본은 이원화 인력양성제도에 기초한다. 독일에서 이원화 직업교육훈련은 직업학교와 기업에서 동시에 진행하면서 경제적 수요와 밀접하게 연계돼 높은 수준의 유연성을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즉 기술발전으로 인해 노동자의 숙련요구가 변화하게 되면 이런 기술 변화를 신속히 직업교육훈련에 통합할 수 있었다. 독일의 산업(Industrie) 4.0과 노동(Arbeiten) 4.0도 이런 기반에서 가능했다. 뛰어난 자격을 갖춘 숙련된 노동자를 확보할 수 있는 독일의 인재육성제도가 현재와 미래 독일의 산업경쟁력의 근간이 됐으며 이에 우리나라도 일학습병행제, 도제학교 등 독일의 이원화제도를 벤치마킹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소재부품 분야를 비롯해 기술사업 분야 인적자원개발협의체(Sector Council)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대학, 연구소, 중소기업 등을 연계한 기술인재 양성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우수한 중소기업 기술인재에 대해 적정한 노동조건, 임금 및 보상이 실현되도록 노동시장 이중구조도 함께 해소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10대 수출품목 중 1위는 반도체로 1,267억달러어치를 수출했다. 그리고 네 번째 품목이 디스플레이로 240억달러 규모였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산업은 한국을 대표하는 주력산업으로 세계시장에서 1등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앞서 세계시장을 주도했던 국가는 일본이었다. 따라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부품, 장비에 있어 일본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한국 기업들은 일본 기업의 소재와 부품을 수입해 쓰고 있다.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를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한 것은 이러한 경쟁구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목록)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고, 우리 정부도 최근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고 맞대응했다. 국가 간의 대립이 격화될수록 우리 기업뿐만 아니라 일본 기업들의 근심도 깊어질 것이다.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 경제가 어려워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전가될 것이다. 외교적 해결책을 서둘러 모색하고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된 소재부품 산업의 취약성을 개선하는 것이 우리의 장기적인 과제다. 해답은 정부연구소 아닌 산업계에기업의 전향적 자세도 필요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자고 하면 수입하고 있는 소재부품장비를 국산화하자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입하는 소재부품장비를 국산화하는 것이 과연 전방산업의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되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은 반도체 생산공장을 운영하기 위해 전 세계 수백 개 협력사로부터 소재와 부품, 장비를 공급받고 있다.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은 글로벌 밸류체인을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다. 국산화한 제품의 품질이 담보되지 않거나, 충분한 물량을 제때 확보할 수 없다거나, 해외 기업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면 국산화의 실익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이번 사태와 같이 핵심 소재나 부품의 조달이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난항을 겪을 수도 있기에 중요한 소재나 부품, 장비에 대해서는 전략적으로 국산화 또는 이원화하려는 노력을 계속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재부품장비를 국산화할 것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정부나 연구소가 아니라 산업계로부터 먼저 구해야 한다. 산업계의 수요, 미래의 투자방향을 고려해 국산화할 품목을 정하고 국산화 로드맵을 정교하고 전략적으로 수립해야 할 것이다. 과거에도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를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소재부품장비 개발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나 정권은 유한하고, 국가연구개발사업도 유한하다는 데 있다. 반도체 분야의 경우 1992년부터 2001년까지 G7 연구개발사업으로 대기업, 중소기업, 연구소, 학계가 협력해 대규모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수행했다. 그 결과 국내 메모리 반도체산업이 세계 1등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그 이후 반도체 분야의 post-G7 연구개발사업을 계획했으나 대기업이 잘하고 있다는 논리에 부딪혀 계획은 취소되고 말았다. 국산화를 위해서는 최종 수요처인 대기업의 전향적인 자세도 필요하다. 차세대 반도체 생산공정 설계 단계에서부터 국내 중소중견기업이 참여해 소재, 부품, 생산장비에 이르는 가치사슬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개발된 기술이나 제품이 특정 수요 대기업에 종속돼 다른 대기업에 판매할 수 없다면 중소중견기업의 성장이 제한될 것이고, 소재부품 산업의 생태계 구축도 어려워질 것이다. 특정 대기업과 협력해 소재, 부품, 장비를 개발한 경우라도 특정 대기업에 시한부 독점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제안한다. 또한 경쟁 관계에 있는 대기업일지라도 함께 협력해 테스트베드를 구축하고, 글로벌 경쟁구도하에서 우리 기업들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중소중견기업도 글로벌시장 진출을 전제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1조위안(약 17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한 해 국가 연구개발예산 총액이 20조원 규모다. 우리가 가진 한정된 자원으로 모든 소재와 부품을 자급하고 반도체산업 전반에서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국산화가 목적인 연구개발이라면 목표가 분명하기에 자원과 시간을 투입한다면 언젠가는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기존 기업의 특허 공격, 가격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국산화 전략과 별개로 미래 반도체, 미래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도해나가기 위한 연구개발시스템의 선진화는 여전히 중요한 숙제로 남아 있다. 연구개발부터 평가까지 수요자 입장 반영돼야 우리나라의 국가연구개발사업 성공률은 98%에 달한다. 실패한 연구가 없는데 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기술강국, 산업강국이 되지 못했을까. 누구나 할 수 있는 과제였거나, 아니면 누구도 필요치 않는 과제를 해왔다는 반증이다. 대학이나 연구소는 연구를 위한 연구에 치중했고, 정부는 진정한 성과 창출보다는 실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결국 우리 사회의 적당주의가 이러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연구자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의 연구나 순수 기초연구가 아니라면 연구개발 단계에서 수요자의 입장이 반영돼야 하고 평가 또한 그들의 몫이 돼야 한다. 공정성만을 강조해 비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평가해서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이 성공할 수 없다. 분야별 연구과제 선정평가, 중간점검 및 평가, 최종평가를 총괄할 전문가를 선정해 특별한 과오가 없는 한 임기를 보장하고 실질적 권한과 책임을 줘야 한다.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나 국립과학재단(NSF)의 프로그램 매니저처럼 말이다. 끝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산업전략, 기술개발전략이라면 신중하고, 정교하고, 장기적이어야 한다. 돌발적인 외부 요인이 생겼다고 해서 즉흥적으로 기술개발 로드맵을 만든다면 이 로드맵은 같은 이유로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 특히 수요기업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정교하게 만들어야 하고, 단기간의 목표가 아닌 중장기적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1~2년 만에 달성할 수 있는 목표치라면 특정 연구소나 기업이 추진해도 가능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의 중대한 전략을 세계 만방에 알린다면 그것이 과연 유효한 전략일까를 고민해봐야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우리의 작전을 적국에 노출시킨다면 그 전쟁에서 누가 이길지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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