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전자부품의 한 종류다. 따라서 전방산업인 ICT산업의 윤곽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 세계 ICT산업의 총매출 규모는 약 5조 달러, 이 가운데 ICT 하드웨어산업의 시장 규모는 2조7천억 달러 내외다. ICT 하드웨어는 컴퓨팅, 통신, 가전, 자동차 전장, 산업용 전장 등을 포함한다. 그리고 여기에 사용되는 전자부품의 시장 규모는 약 8천억 달러 수준이다. 전자부품시장은 반도체 4,400억 달러, 디스플레이 1,200억 달러, 배터리 600억 달러 등으로 구성돼 있다. IDM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대표 기업, 팹리스는 한국 업체의 존재 미미한 편 반도체시장과 제품은 응용처에 따라, 또는 기능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응용처별로는 컴퓨팅(38%), 통신(32%), 가전(10%), 차량(10%), 산업용(9%)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기능에 따라서는 디스크리트(5%), 광학센서(13%), 아날로그(12%), 로직(27%), 마이크로(16%), 메모리(27%) 등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분류에 정해진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필요에 따라 메모리와 비메모리로 나누기도 하고, 일반형 반도체(General Purpose IC)와 특수형 반도체(Application Specific IC)로 구분하기도 한다. 일반형이라는 것은 메모리, CPU와 같은 기성 제품을 의미하는 반면, 특수형은 스마트폰이나 게임기 등 특정 용도의 전자기기 또는 서비스에 최적화된 주문형 반도체를 말한다. 일반형 대 특수형의 비중은 현재 65% 대 35% 수준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특수형 반도체의 비중이 점점 높아질 전망이다. 실제로 애플, 아마존 등 세트나 IT서비스 업체들의 반도체 설계 참여가 확대되면서, 반도체 설계가 기존 전통적 반도체 업체들의 전유물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파운드리(foundry, 반도체 위탁생산 전문 업체) 산업은 계속해서 시장의 관심과 조명을 받게 될 전망이다. 반도체 업체들은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 크게 종합 반도체 업체(IDM; 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와 팹리스(fabless)로 구분된다. IDM은 설계제조판매를 모두 책임지는 반면, 팹리스는 제품 설계와 판매에만 집중한다. IDM과 팹리스의 비중은 72% 대 28%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IDM 분야의 대표 기업이지만, 팹리스에서 한국 업체들의 존재는 미미한 수준이다. 그나마 실리콘웍스가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나머지 팹리스들은 규모나 기술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팹리스는 파운드리와 후공정 전문 업체를 통해 칩을 위탁제조한다. 최종 제품의 소유권과 판매권은 당연히 팹리스에 있으므로, 주요 통계에서 파운드리와 후공정은 제외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파운드리 매출액은 최종적으로는 팹리스의 원가로 잡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도체 업체를 구분하는 것은 개념적인 것일 뿐 실제로는 IDM, 팹리스, 파운드리 모델이 조금씩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기본적으로는 IDM 기업이지만, 파운드리서비스도 제공하고 있고, 설계한 칩을 외부에 위탁생산하기도 한다. 국내 파운드리 업체로는 삼성전자 외에 DB하이텍, SK하이닉스시스템IC, 키파운리가 있고, 후공정 분야에서는 SFA반도체, 네패스, 하나마이크론 등이 있지만, 규모나 기술력 측면에서 아직 세계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 손톱만 한 크기의 반도체 칩을 만들기 위해서는 약 3개월의 긴 여정을 거쳐야 한다. 솔라셀(solar cell) 제작에 보통 3시간, LCD 패널 제작에 약 2~3일이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반도체 제조가 얼마나 난이도가 높고 복잡한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부품장비는 그래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반도체 장비시장은 지난해 약 710억 달러, 소재부품 시장 규모는 약 550억 달러였다.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는 미국, 일본, 유럽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반면, 소재부품은 일본, 한국, 대만, 중국 등으로 비교적 골고루 분산돼 있는 상황이다. 한국 반도체 장비 업체들 중에서는 세메스가 세계 13위로 가장 순위가 높고, 원익IPS, SFA, 유진테크, 테스, 한미반도체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소재 기업으로는 SK실트론, SK머티리얼즈, 하나머티리얼즈, 솔브레인 등이 대표적이다. 반도체 설계에 필요한 전자설계자동화 소프트웨어인 EDA(Electronic Design Automation)와 코어 IP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 없다. EDA와 IP의 시장 규모는 각각 100억 달러, 50억 달러에 달하는데 미국이 EDA시장의 70%, 코어 IP의 92%(엔비디아의 ARM 인수를 감안)를 점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반도체 업체들은 관련 미국 업체들에 사용료를 내고 이를 이용해야 한다. 반도체산업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고, 우리는 그런 미국과 협력적 관계를 강화해야만 하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강점은 지켜내고 약점은 보완할 정교한 정책 필요 지난해 칩 기준 세계 반도체시장 규모는 4,400억 달러로 IMF 기준 세계총생산(GWP)의 0.52% 수준이었다. 반도체가 갖는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0.52%라는 수치는 의외로 낮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 반도체가 차지하는 무게감은 완전히 다르다. 지난해 한국 GDP(1조6천억 달러) 대비 반도체 생산액(970억 달러)의 비중은 6%에 달한다. 세계 평균 대비 10배 이상 더 높은 것이다. 반도체가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2%로 압도적이다. 반도체는 한국경제의 버팀목이자 미래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반도체는 전자부품의 한 종류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는 시장 규모가 크지 않지만, 핵심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와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신제품과 첨단 기능들은 따지고 보면 대부분 반도체에 의해 구현되기 때문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결정체로 평가되고 있는 메타버스(metaverse)는 그 자체가 기본적으로 비트(bit)로 이뤄진 세상이라는 점에서 반도체는 기존 산업의 쌀이라는 개념을 넘어 미래 산업의 핵심인프라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전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22%로 미국(54%)에 이어 2위다. 특히 메모리 분야에서는 D램이 70%, 낸드(NAND)가 55%(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사업 인수 포함)로 압도적 우위를 보인다. 그러나 팹리스 분야와 설계 소프트웨어, 반도체 장비에서는 여전히 점유율이 매우 낮다. 이렇듯 한국 반도체산업은 강점과 약점이 너무나 뚜렷하다. 한국 반도체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강점은 지켜내고,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전략적이면서도 정교한 정책과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21세기 석유라 불리는 반도체를 둘러싼 국가별 패권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은 반도체산업을 국가안보 차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2015년부터 반도체 자립에 속도를 내며 자체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EU 역시 최근 10나노미터(nm) 이하 초미세공정을 이용한 반도체 공장을 유럽 내에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도체 자립 선언은 미래 산업의 필수 요소인 반도체 패권을 다른 나라에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그간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구축했던 반도체 가치사슬 역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아시아에 편중된 반도체 생산 미국으로 미국 정부는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확충을 위한 법안을 발의하고 반도체 등 핵심산업에 대한 투자를 공식화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올해 초부터 지속적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중국과의 투자 전쟁을 예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백악관에서 반도체 대응 CEO 화상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세계 주요 반도체 관련 기업을 불러 모았다. 이날 삼성전자와 TSMC를 비롯해 인텔, 마이크론, NXP 등 반도체 생산 업체와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통신사인 ATT, 자동차 업체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 방위산업 회사인 노스럽그러먼 등 19개 기업이 참여했다. 주요 반도체 공급자와 수요자를 모두 부른 것이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반도체시장을 주도해야 한다며 반도체 인프라 투자 계획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미국 정부는 최근 4대 핵심 분야 전략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 공급망에서 제조 역량을 강화해야 함을 역설했다. 미국은 명실상부 반도체 강국이다. 생산 점유율만 낮을 뿐 미국은 반도체 설계와 장비 등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15대 반도체 업체 중 8개가 미국 회사다. 하지만 제조에서 뒤처진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생산은 대만 TSMC와 한국 삼성전자가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첨단 시스템반도체는 대만이 92%, 메모리반도체는 한국이 44%, 중국이 14%를 차지한다. 최근 산업 전반에 걸쳐 반도체 품귀현상이 발생하며 파운드리산업의 중요성이 대두됐고, 미국 정부는 설계부터 생산까지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걸친 자립을 결정했다. 동아시아 지역 반도체 생산이 멈추면 자국 경제에 엄청난 피해로 돌아올 수 있어서다. 실제로 한 보고서에서는 대만의 반도체 공장이 멈춰서면 미국 전자산업 전반에 5천억 달러(558조 원)의 손해가 날 것으로 추산했다. 의회에서도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확충을 위한 다양한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반도체 생산 업체의 시설투자 등에 대한 세액공제, 연구개발(RD) 비용 지원 등 다양한 방안을 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6월 17일 미국 상원에서 반도체 제조업 투자에 25%의 세액공제를 부여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며, 반도체 제조 장비 및 설비에 투자하는 업체들이 세액공제를 받는다. 세액공제가 시행되면 미국 업체뿐 아니라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TSMC도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 법안이 발의되기 바로 전 주에도 상원은 반도체통신 장비의 생산 및 연구에 520억 달러(약 58조8천억 원)를 지원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미국 정부의 본격적인 지원이 가시화되자 산업계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 인텔은 지난 3월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했다. 인텔은 애리조나주 오코틸로에 반도체 팹 2곳을 짓는다며 200억 달러 투자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2018년 수익성 저하를 이유로 파운드리 사업을 대폭 축소시킨 지 3년 만의 복귀다. 인텔은 빠른 시장 진입을 자신하고 있다. 미세공정 기술 개발을 위해 IBM과 손잡고 빠른 시일 내 7나노 공정에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한발 더 나아가 5나노 이하 초미세공정 수준에 도달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아시아에 편중된 파운드리의 대안을 제공하기 위해 연내 미국과 유럽 등에 추가로 공장을 확장하는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밝히는 등 TSMC와 삼성전자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은 당장 인텔이 파운드리 업계 1위인 TSMC와 2위인 삼성전자에 큰 위협은 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TSMC가 올해 250억 달러 규모의 설비투자를 계획하고 있고, 삼성전자 역시 미국 파운드리 공장 신증설에 170억 달러 상당의 투자 계획을 세우고 있어 결코 규모의 경제에서 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은 대만과 반도체 외교 나서고 중국은 정부 주도로 반도체 자립 속도 내 다른 나라들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나섰다. EU집행위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반도체 제품의 20%를 EU 내에서 생산하겠다고 했다. 폭스바겐 등 EU 주요 기업들마저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 차질을 겪자 정부가 역외 반도체 의존도를 낮출 필요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 역시 대만 업체에 반도체 생산을 요청하며 반도체 외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가 일본 이바라키현에 반도체 후공정 관련 연구거점을 설립하는 데 이어 일본 구마모토현에 첨단 반도체 공장 건립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부터 반도체 굴기에 나선 중국의 역습에도 대비해야 한다. 중국은 지난해 반도체 장비 분야 최대 시장으로 올라섰다. 미국이 반도체 패권 전쟁을 선언하는 등 중국을 견제하고 나선 가운데 중국 역시 반도체 장비 수입에 열을 올리며 반도체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에 전년보다 39% 증가한 187억2천만 달러(21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장비를 사들였다. 중국이 반도체 공급망 사슬에서 중추 역할을 담당하는 반도체 생산 장비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린 만큼, 중국의 반도체 자립이 가속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의 공급망 재편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중국의 반도체 공장 투자 총액은 무려 2,150억 달러(240조 원)를 넘어섰고, 2023년까지 정부 자금을 기반으로 세워지는 반도체 공장은 지금의 2배 수준인 70여 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무늬만 민간회사지, 실질적인 주인은 대부분 중국 정부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현재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6% 남짓이지만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고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중국 정부는 2019년 2,041억 위안(35조 원) 규모의 2차 반도체 펀드를 조성해 경쟁력 확보에 직접 나섰다. 반도체 기업 간 인수합병에도 정부가 직접 나서고 있다. 2014년까지 전무했던 중국의 반도체 관련 기업 간 통합은 이후 25건에 달한다. 반도체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급변하자 메모리반도체 세계1위 한국도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 5월 역대급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정부는 파격적인 세제금융 지원, 규제완화로 뒷받침할 것을 약속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협력사 포함)이 2030년까지 10년간 투자하겠다고 밝힌 금액만 510조 원 이상이다.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2030년까지 171조 원을 투자한다. 2019년 내놓은 투자 계획(133조 원)보다 38조 원 늘어난 규모다. 메모리반도체 비중이 높은 SK하이닉스도 8인치 파운드리 사업에 투자하는 등 비메모리반도체 생산 능력을 키울 계획이다.
정부가 2030년 세계 최고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한 K반도체 전략을 지난 5월 13일 발표했다. 우리나라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산업이 최근 산업의 쌀이자 전략무기로 부각되면서 반도체 기술력 확보 경쟁은 민간 중심에서 국가 간 경쟁으로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수립된 이번 전략은 K반도체 벨트 조성, 인프라 지원 확대, 반도체 성장기반 강화, 반도체 위기대응력 제고 등 4개의 전략으로 구성됐으며, 이를 통해 반도체 공급망을 안정화하고 반도체 제조 중심지로 도약하며 국내 산업 생태계를 보호한다는 구상이다. 소부장 특화단지, 팹리스 밸리 등을 K반도체 벨트에 조성 첫째, 정부는 K반도체 벨트를 구축해 국내 반도체 공급망 보완에 나선다. 판교기흥화성평택온양이 서쪽 축을 이루며, 동쪽으로는 이천과 청주가 각각 용인에서 연결돼 알파벳 K자 모양의 반도체 벨트가 완성된다. 평택화성이천청주의 첨단 메모리 제조시설 증설고도화를 통해 메모리 초격차를 유지하고, 용인의 대규모 반도체 제조시설과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기업을 연계집적해 소부장 특화단지를 조성한다. 소부장 연구개발(RD) 제품의 조기 상용화를 위해 세계 최초로 양산팹과 연계한 반도체 테스트베드 구축을 추진한다. 국내에서 단기 기술추격이 어려운 극자외선(EUV) 노광, 첨단 식각 및 소재 분야는 화성용인천안에 외투기업을 유치해 소부장 글로벌 연합기지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판교 부근에 시스템반도체 설계지원센터, 인공지능(AI) 반도체 혁신설계센터, 차세대 반도체 복합단지를 조성해 판교를 한국형 팹리스 밸리로 만든다. 둘째, 세제혜택과 기반시설 지원 등을 확대해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한다. 반도체 업계의 향후 10년간 누적 투자 계획은 약 510조 원 이상으로, 정부는 이러한 민간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RD와 시설투자 세제 인센티브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우선 일반 투자와 신성장원천기술 투자의 2단계 구조로 된 현행 세제 인센티브 제도에 세번째 단계인 (가칭)핵심전략기술을 신설할 예정이다. 국가경제 차원에서 중요한 핵심전략기술의 RD 및 시설 투자에 대해서는 현행 신성장원천기술 투자 시보다 공제율이 대폭 확대되며, 이를 통해 반도체 핵심기술을 확보하고 시설투자를 확충할 방침이다. 국내 반도체 제조 기업(파운드리), 중소중견 소부장 기업 등이 적극적으로 시설투자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금융 지원도 확대한다. 반도체 업계의 투자 프로젝트가 구체화되는 대로 총 1조 원+ 규모의 설비투자 특별자금을 신설해 반도체 설비투자를 지원한다. 사업경쟁력 강화 지원자금 등의 지원 규모를 최대한 확대하고 다양한 금융 프로그램도 적극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반도체 제조시설 구축운영 시 수요변화에 대응한 반도체 적기 공급이 가능하도록 고압가스, 화학물질, 온실가스 등과 관련된 주요 규제를 합리화할 예정이다.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관련 규제를 반도체 제조 여건에 맞게 개선하고, 반도체 생산설비 신증설 시 「화학물질관리법」 인허가 소요기간을 75일에서 30일로 단축하는 패스트트랙을 도입한다. 내년부터는 신증설 시설에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최적가용기법(BAT; Best Available Techniques)을 적용하면 배출권을 100% 할당할 계획이다. 반도체 제조시설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기반시설은 선제적으로 지원한다. 용인평택 등에 위치한 반도체 제조시설의 안정적인 가동을 위해 10년치 용수물량을 확보하고, 반도체 제조시설이 위치한 산업단지의 전력 인프라 구축 시 정부와 한전에서 최대 50%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반도체 제조시설에 필수적인 공공폐수처리시설의 경우 폐수재활용 RD 등을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반도체 특별법 제정 추진 셋째, 인력시장기술 등 반도체 성장기반을 확보한다. 학사에서 석박사, 실무교육 등 전 주기 지원을 통해 10년간 학사인력 1만4,400명, 전문인력 7천 명, 실무인력 1만3,400명 등 총 3만6천 명의 반도체 산업인력을 육성할 계획이다. 반도체산업의 만성적 인력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국내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확대를 추진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10년간 1,500명을 추가 배출한다. 실무에 적합한 학사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대학에 시스템반도체 전공트랙을 신설하고 반도체 장비 계약학과를 확대할 예정이며, 산학연계 RD 및 기업 참여형 커리큘럼 개발운영을 통해 석박사급 우수 연구인력 육성 생태계를 조성해 나간다. 핵심인력 지원을 위한 제도적 기반도 강화한다. 국가 반도체산업 발전에 중요한 업적이 있는 산학연 인력을 반도체 명인으로 선정해 핵심역량을 브랜드화하고, 현장경험이 풍부한 퇴직인력의 국내 재취업 및 창업을 지원할 방침이다. 정부는 또한 반도체 전후방산업의 연대협력 생태계를 구축해 공급망을 견고하게 만들 계획이다. 시스템반도체 융합얼라이언스 연대협력 협의체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수요산업과 협력을 확대하고, 소부장 중소기업과 소자 대기업 간 연대협력 과제를 발굴한다. 아울러 핵심기술 확보에도 집중한다. 차세대 전력반도체, AI반도체, 첨단 센서 등에 대해 1조5천억 원 이상의 신규 RD를 추진하고, 10년간 1조 원 규모의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기술개발 지원사업을 마련하는 등 총 2조5천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국내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반도체 위기대응을 강화해 나간다. 우선 정부는 국회 및 관계부처와 협의해 반도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 미국 등 주요국은 반도체산업의 전략적 육성을 위해 반도체 지원 내용을 법문 등으로 명시하고 있다. 미국은 2021년 「국방수권법(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 내에 반도체 지원 규정을 담았고, 중국은 지난해 8월 발표한 신시대 집적회로산업 및 소프트웨어산업 고품질 발전 추진 정책에 반도체 지원 내용을 포함했다. 이에 국내외 반도체산업 여건이나 주요국 반도체 입법 동향 등을 고려해 법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 반도체 특별법 제정 시 규제 특례, 인력양성, 용수전력 등 기반시설 지원, 신속투자 지원, RD 가속화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방침이다. 이 밖에도 국내 주요 기업 간 차량용 반도체 협력모델을 발굴지원하는 등 중장기적으로 미래차 핵심 반도체 공급망 내재화를 추진하는 한편, 국내 기업의 기술인력 해외유출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국가 핵심 기술인력에 대한 보안관리를 강화하는 등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 반도체 핵심기술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에 나선다. 아울러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RD 및 인증실증 기반을 강화해 탄소중립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K반도체 전략이 차질 없이 추진된다면 반도체 수출은 2020년 992억 달러에서 2030년 2천억 달러로 증가할 전망이다. 생산은 2019년 149조 원에서 2030년 320조 원으로, 고용 인원은 18만2천 명에서 27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 중 20%가량을 차지하고 있고, 세계 수출시장에서 수년간 점유율 1위를 기록해 왔다. 우리나라는 20여 년간 D램이나 낸드(NAND)와 같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강국으로서 면모를 보이고 있으나, 비메모리반도체에 속하는 시스템반도체는 전반적으로 열세를 보이는 실정이다. 시스템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뉴딜, 데이터경제의 핵심기술로 최근 수요가 증가하면서 장기적인 호황이 예측되고 있다. 이에 각국은 자국 내 반도체 기술제조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공급망을 구축하고 반도체산업 활성화를 위한 공격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제조공정 역량은 상대적으로 우수한 편이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력이 부족하다. 특히 시스템반도체의 핵심산업인 인공지능(AI) 반도체, 전력반도체에 사용되는 주요 부품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시스템반도체 시장 60%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으나, AI반도체 기술과 같은 차세대 주력산업은 아직 성장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지배적인 사업자가 없다는 점에서 반도체산업 주력 국가들의 주도권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계, 반도체 우수 실무인력 양성체계 구축 노력 반도체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만성적 인력난 해소, 고급인력 양성을 통한 핵심기술 개발, 성장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특히 전문인력 확보는 경쟁력 제고의 핵심이라 볼 수 있다. 정부 역시 반도체산업 성장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식하고 지난 5월 13일 K반도체 전략을 발표했다. K반도체 전략은 반도체산업을 통해 일자리 창출,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국내 반도체 제조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가운데 인력양성 정책은 학사전문실무 인력을 아우르는 전방위 인력양성 및 핵심인력 유출 방지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전략을 제시한다. 특히 만성적인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내 대학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1,500명 이상 확대할 예정이다. 실무에 적합한 학사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시스템반도체 전공트랙과 조기 취업형 반도체 장비 관련 학과를 신설하고 채용연계형 계약학과를 확대할 전망이다. 현재 정부와 서울대는 지난 2019년 불발됐던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을 다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수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산학 연계 연구개발(RD) 및 기업 참여형 커리큘럼을 개발운영해 석박사급 우수 연구인력 육성 생태계를 조성할 계획을 포함하고 있으며, 실무인력 강화를 위해 설계 및 공정 과정을 아우르는 실습실무 교육을 추진할 예정이다. 기업과 정부가 1:1 매칭을 통해 핵심기술 개발, 고급인력 양성, 채용 연계의 1석 3조 프로그램을 추진하며, 기업대학이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전문인력 양성사업을 확대해 나간다. 또한 석박사급 AI반도체 원천기술 개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융합 전문인력 양성센터와 대학 ICT 연구센터 확대 등을 계획 중에 있다. 인력 문제는 민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정부의 이번 결정이 매우 반가울 수밖에 없다. 반도체산업의 인력 부족 문제는 매우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으나, 초기 반도체산업 정착을 위한 정책 이후 인력 보충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법률적 지원은 다소 미비한 수준이었다. 따라서 인력 보완을 위한 정부의 전 주기 지원 사업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러나 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실무인력 양성 방안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반도체산업의 아쉬움을 해결하고자 그간 교육 분야에서는 반도체산업의 우수 실무인력 양성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에 한국폴리텍대는 정부의 2019년 4월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 발표에 맞춰 반도체 실무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 AI, 소프트웨어, 반도체 등 신산업 분야 2년제 학위 과정과 하이테크 과정(전문대졸 이상 청년 대상 고급 직업훈련 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문기술 수준의 인력 수요를 반영해 반도체 장비 유지보수, 개발, 소재분석에 특화된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그 결과 2020년까지 학위과정 등을 통해 약 1,500명의 실무인력을 배출했으며 SK하이닉스 등 기업과의 연계를 통해 산업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공급했다. 또한 현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재직자의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2019년에는 한국폴리텍대 안성캠퍼스를 반도체 특화캠퍼스(반도체융합캠퍼스)로 전환하고 학과개편을 실시해 현장실무에 적용 가능한 인력을 키우고자 노력했으며, 약 60억 원 규모의 시설장비 투자를 통해 안정적인 인력양성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했다. 전략적 클러스터 구축 통해 5년간 반도체 실무인력 5,135명 양성 계획 더 나아가 한국폴리텍대는 정부가 최근 발표한 K반도체 전략에 발맞춰 기존 폴리텍 인프라를 활용한 폴리텍 반도체 클러스터(반도체융합청주아산성남 캠퍼스)를 구축했다. 폴리텍 반도체 클러스터는 반도체 장비 개발 분야 및 운영 실무인력 양성 컨트롤타워를 담당하고 있는 폴리텍 반도체융합캠퍼스를 기점으로 청주캠퍼스는 반도체 장비 및 유지보수, 성남캠퍼스는 반도체 재료 및 소재분석, 아산캠퍼스는 지능형 반도체 및 후공정 인력양성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경기권에 소재장비 산업이 집중돼 있고 충청권은 후공정 기업과 대기업이 밀접 연계된 점을 고려해 지리적으로도 반도체산업의 접근성을 높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K반도체 벨트와 연계한 인력 확대 계획을 추진 중이다. 기존 폴리텍 반도체 클러스터에 K반도체 벨트 인근에 위치한 캠퍼스(서울정수분당융합기술인천화성 캠퍼스)를 추가해 클러스터를 확대하는 전략이다. 또한 인력 수급이 용이한 대도시 캠퍼스(대전광주대구부산 캠퍼스)를 활용해 폴리텍 반도체 클러스터를 더욱 견고히 강화하고자 한다. 전략적인 클러스터 구축을 통해 향후 5년간(2022~2026년) 반도체 실무인력 5,135명을 양성하고, 재직자 및 기업 맞춤형 과정을 통해 5천 명을 양성할 수 있다. 반도체산업의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정부의 K반도체 전략 외에도 민관학 협력을 통해 더욱 속도감 있는 산업 맞춤형 인력양성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늘의 정책들이 기반이 돼 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 본다.
지난 5월 13일 발표된 K반도체 전략에는 반도체 분야의 민간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지원 방안이 담겨 있다. 전략 수립에 앞서 지난 4월 정부는 산업계로부터 의견을 수렴한 바 있다. 국내 반도체산업을 대표하는 한국반도체산업협회의 안기현 전무를 만나 국내 반도체산업의 현황과 이번 전략에 대한 평가 그리고 정부에 바라는 점 등을 들어봤다. 우리나라 반도체 생태계를 어떻게 보나. 현재 반도체를 생산하는 국가는 한국,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대만 정도다.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조에 필요한 여러 산업과 연결이 잘돼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이 부분이 약하다. 미국, 유럽 등은 처음부터 모든 게 갖춰져 있는 상태에서 반도체산업이 출발한 반면, 우리는 제조부터 출발하다 보니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를 사서 썼다. 그러다가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제조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면서 소부장 공급 부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 또한 반도체 분야에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형성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데, 가장 시급한 게 인력양성이다. 기업이 발전하려면 사람이 필요하지 않나. 그런데 반도체산업 규모가 많이 커졌음에도 학교에서 배출하는 인력은 그대로라 인력 구하기가 예전보다 어려워졌다. K반도체 전략에는 기업들이 그간 정부에 건의해 왔던 사항이 반영됐나. 지난 4월 9일 정부에 건의한 내용에는 산업계가 그동안 갖고 있던 문제점도 있고 지금 이 시기에 필요한 것도 있다. 그런데 전략이라는 것은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점은 앞으로 어떻게 이행하느냐다. 최근 반도체 공급이 부족해 자동차 생산이 중단된 사례가 있었다. 이러한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장을 빨리 많이 지어야 하고, 그러려면 투자가 활성화돼야 한다. 그래서 첫 번째로 투자를 활성화하도록 세액을 감면해 달라고 요청했다. 두 번째는 규제에 관한 것이다. 환경안전근로에 관한 기준이 높아지면서 관련 법률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이러한 규제 때문에 공장을 짓거나 운영하는 데 불편함을 겪고 있다.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화학물질관리법」, 「산업안전보건법」, 「근로기준법」 같은 법들의 목적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불편함을 완화해 달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인력양성으로,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또 석박사 인력이 필요하니까 석박사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만들어달라는 건의도 있었다. 미국은 반도체산업에 대해 정부가 과감한 지원에 나서고 있는데. 미국은 원래 정부가 나서서 지원하는 나라가 아니다. 시장 자율에 맡기는 나라다. 그랬던 미국이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산업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이는 그만큼 반도체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쌀, 원유 등과 같이 전략산업이 된 것이다. 미국은 지난 1월 반도체 생산라인 구축 시 건당 최대 30억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된 「국방수권법」을 발효했고, 3월에는 반도체 제조시설에 500억 달러를 추가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미국이 우리 기업에 자국 내 공장 투자 확대를 요청하고 있다. 기업들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우리 입장에서 미국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가 국내에서 제조시설을 지으려면 미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미국 장비가 반드시 필요하고 미국이 원천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미국이 자국 내에 공장을 지으려고 하고 기업들에 투자를 요청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기회다. 우리 반도체 제조시설의 고객은 미국 회사들이다. 미국이 시장인 셈이다. 그러니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이 고객 확보 차원에서 유리하지 않겠나. 반도체 종주국인 미국에서 우리 기업들에 제조시설을 지어달라고 요청할 정도면 우리가 얼마나 좋은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인가. 미국에 공장을 신증설하는 문제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여기에 얼마나 투자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반도체산업은 대기업이 이끌어왔다. 앞으로는 중소기업의 역할이 커져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소부장 기업과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기업이 잘해야 하는데, 이들이 주로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이 막강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기 쉽지 않은 만큼 정부에서 많은 부분을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 정부와 국회는 반도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특별법 제정이 갖는 의미는? 정책이라는 것은 정권이 바뀌면 없어질 수 있지 않나. 정책은 법으로 만들어져야 지속성을 갖게 된다. 그래서 반도체 특별법은 꼭 제정돼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정부에 건의했다. 다행히도 정부와 정치권에서 반도체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영향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반도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관련법을 의회에 발의하니까 우리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우리 반도체산업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지금은 격동기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미국, 유럽, 일본 등은 반도체 제조에 관심이 없던 터라 이 분야에서는 우리나라와 대만이 경쟁자 없이 잘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제조에 뛰어들면서 앞으로는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이 시기에 우리가 살아남으면 리더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 가서 공장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년 뒤 강한 기업은 지금 공격적으로 투자해서 몸집을 키운 기업이 될 것이다. 끝으로,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K반도체 전략에는 세제지원, 규제완화, 인력양성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는 만큼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해 여러 부처가 관여하고 있다. 그런데 부처들마다 지향점이 다르다 보니 이견이 생기기도 한다. 예컨대 환경부에서는 환경 관련 규제완화를 반대하거나 교육부에서 계약학과 신설을 반대하는 입장을 보일 수 있다. 이번 전략이 생색내기에 그치지 않도록 관계부처들이 모두 산업에 방점을 두고 전략을 이행해 줄 것을 당부한다. 국회에서도 여야가 공동의 가치를 갖고 추진해 주기를 바란다. 지금 반도체산업을 지원하는 것은 재난지원금 지급과 같은 개념이다.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투자다. 반도체가 지금보다 훨씬 좋은 상태로 살아남아야 후배들에게도 좋지 않겠나. 미국과 중국은 풍부한 지원을 바탕으로 공장을 많이 짓고 있다. 우리도 대기업이든 중견중소기업이든 일단 반도체 공장을 많이 지을 수 있도록 투자를 지원해 줘야 한다. 이지연 『나라경제』 기자
반도체는 우리나라 총수출의 약 20%를 차지하고 9년째 수출 1위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산업이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부품으로 그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주요 경쟁국들은 반도체를 국가 산업은 물론이고 안보까지 직결시켜 자국 내에서 반도체 기술 및 제조기반을 확보하는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고, 더 나아가 미래기술의 조기 확보를 위한 경쟁이 진행 중이다. 세계 반도체 관련 주요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와 MA를 통한 미래시장 선점에 집중하고 있다. 경기 변동에 큰 영향을 받는 메모리반도체는 우리나라가 1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최근 시장점유율이 정체되거나 살짝 감소하는 추세이며, 첨단기술 양산에서 미국의 메모리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국내 기업을 앞섰다는 보고가 있었다. 시스템반도체의 경우 팹리스시장 점유율은 2% 미만이고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점유율은 대만 TSMC에 크게 뒤지는 17% 수준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로, 마침 정부에서 K반도체 전략을 발표했다. 주요 전략은 K반도체 벨트 조성, 인프라 지원 확대, 반도체 성장기반 강화, 반도체 위기대응력 제고 등 4가지로, 촘촘하게 잘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좀 더 효율적인 전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언한다. 소재장비 성능 검증에 RD팹 이용하는 기업에는 추가 세액공제를 먼저, K반도체 벨트 조성은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제조기반,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첨단 장비, 패키징, 팹리스를 한데 묶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에 적절한 전략이다. 테스트베드 구축이 잘 준비됐다. 소부장 업체의 초기 기술개발은 대전 나노종합팹센터에서 수행하고 분석측정 전문센터와 연계해 운영돼야 효과적일 것이다. 충분한 연습으로 양산 수준의 성능이 확보되면 기업 양산팹보다는 RD팹에서 이미 검증된 소재장비와 그 성능을 소자 및 회로 측면에서 검증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기업 양산팹을 이용해 검증을 하게 되면 양산에 상당한 지연을 초래하기에 기업의 RD팹을 이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 경우 해당 기업에 추가로 세액공제를 해줄 필요가 있다. 한국형 팹리스 밸리 조성도 적절한 방안이다. 다만 기술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팹리스들이 있는데, 이러한 업체에는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보다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지식을 고도화해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선순환 관점에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 제도는 팹리스 업체뿐만 아니라 소부장 업체에도 적용되면 틀림없이 발전이 있을 것이다. 정부는 가능한 한 기업을 믿고 자리를 깔아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 K반도체 전략 중 인프라 지원 확대 관련 방안에도 세제금융규제기반시설에 대해 기업체의 의견을 적절히 반영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물론 기업체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만족할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좌담회나 포럼에서 기업체 연사로부터 들은 필수항목들이 꼼꼼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성장기반을 강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인재 양성이다. 2030년까지 3만6천 명을 양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발표됐고, 이는 반도체산업을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러나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확대는 대학의 총정원이 고정된 상태에서 계약학과나 연합전공을 통해 할 경우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시행되는 수준에서 그 수를 더 늘리면 대학 내 전공 간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 정원 동결이라는 대전제하에 발생하는 이슈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시대의 요구에 따라 국가 산업발전에 꼭 필요한 경우 반도체와 같은 특정 산업 분야에 대해서는 어느 범위 내에서 정원이 확대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이번에 제정 추진 중인 반도체 특별법에 꼭 담기기를 희망한다. 인력양성 방안에 포함된 학생재직자취업준비생 교육 및 퇴직인력 지원에 관한 내용은 정리와 체계화가 더 필요해 보인다. 반도체 설계 교육과 제조 실습을 연계해 교육하는 반도체 설계+공정 전략은 기존에 없었던 것으로 경쟁국 대비 차별화된 인재양성 측면에서 좋아 보인다. 다만 구체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잘 준비해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반도체 인력양성은 특성화고, 학부, 대학원, 박사 후 과정으로 구분해 이뤄져야 한다. 학부 과정은 기초과목을 주로 교육하므로 전문가를 양성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학원 석박사 과정은 반도체에 집중된 전문교육 및 연구과제를 통해 고급인재를 육성할 수 있다. 반도체 기술은 지식축적이 이뤄져야 더 강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따라서 기초과목 지식이 우수하고 전공 분야에서 뛰어난 박사는 박사 후 과정에서 추가로 지원해 탁월한 인재로 키워야 한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분야를 더욱 깊게 배울 수 있게 하거나 자신의 전공 분야(예: 반도체 소자)와 근접한 반도체 전공 분야(예: IC 설계)를 융합해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 탁월한 인재는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고 신격차의 기술을 개발하고 신시장을 창출할 확률이 높은 인재다. 전문 기술능력을 갖춘 인재를 지원하는 핵심인력 관리, 성과보상(직무발명 보상 강화), 훈포장 격상 등은 시기적절한 전략으로 생각한다. 특히 상을 줄 때 기업 대표에게는 우수 경영상을, 발명자나 핵심기술을 개발한 당사자에게는 우수 기술상을 줘야 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반도체는 대표적 지식기반산업, 탁월한 인재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 다양한 주체 간 연대협력을 확산시키기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는 전략과 핵심기술(차세대 전력반도체, AI반도체, 첨단 센서, 소부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도 적절하게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 가속기용 AI반도체는 높은 전력 소모가 문제다. 메모리 기술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PIM 반도체 기술은 전력 소모를 줄이는 AI 기술로, 지구온난화 억제에도 기여할 것이다. AI반도체는 각종 센서와 융합될 때 시너지 효과를 더 높일 가능성이 있어 이 부분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반도체 특별법 제정, 차량용 반도체 수급 대응, 핵심기술 보호 등 반도체 위기대응력을 제고하기 위한 전략들도 적절하게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 반도체 특별법을 준비하기 위한 특위가 구성됐다. 규제 특례, 인력양성, 기반시설 지원, 신속투자 지원, RD 가속화 방안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신속하게 법제화해야 한다. 국가핵심기술 보호 및 핵심인력 유출 방지를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지원을 강화하는 법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정책은 효율로 이어져야 그 존재 의미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반도체는 지식축적을 기반으로 하는 대표적인 산업으로 전기전자, 전산, 물리, 화학 등 여러 학문에 걸쳐 있다. 여러 규제가 완화되고 인프라 투자가 활성화된다고 해도 인재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많은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탁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이에 대한 전략과 프로그램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이들이 결국 기술 선도를 주도하고, 신격차와 신시장을 창출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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