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과 청년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평소에는 변방이자 비주류지만 한국 사회의 미래를 판가름할 중요한 시금석이라는 점, 최근 들어 관심과 기대가 집중되며 서로를 연결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일방적인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장기적인 투자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공통점에도 그간 청년과 로컬은 상부상조할 기회를 별로 얻지 못했다. 서로에게 눈을 돌리고 상생의 가능성을 주목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청년과 로컬이 서로 조금 더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어본다. 다르기 때문에 불편할 수 있는 다양성 존중하자 이주한 청년도 온전히 지역에 스며들며 서울을 떠나 아무 연고도 없는 전북 완주로 온 지 10년 차가 됐다. 대도시의 속도에 지쳐갈 즈음 조금 느리지만 나답게 살고 싶어 찾아온 곳이다. 당시 완주에서는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에서 시작된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커뮤니티 비즈니스(지역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지역 내에서 순환하는 경제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제를 풀어가는 접근방식), 로컬푸드 등 대안적인 지역순환경제 실험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조금 다른 삶의 방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속속 완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경쟁하기보다는 협력하는 삶에 대한 로망을 가진 사람들과 자녀를 건강한 인성을 가진 마을시민으로 키우고 싶었던 양육자들이 모여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완주로 이주한 청년들과 함께 로컬플랫폼이자 문화예술협동조합인 씨앗(C.Art)을 만들었다.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꿈꾸며 도시를 떠나왔지만 지역사회에 데뷔하지 못하고 경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과 함께 이 문제를 풀어보고 싶었다. 완주로 이주하고 싶은 청년들을 위해 지역탐색 캠프를 기획하고, 청년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주말마다 문화장터를 진행하고,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진로탐색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지역과 청년을 연결하기 위해 애를 썼다. 몇 년이 지나자 지역에서도 조금씩 청년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016년 최초의 로컬청년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완주JUMP프로젝트 기획을 시작으로 2021년 지역자산화(주민과 공동체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지역사회의 공유자산을 조성하는 것) 공유공간 로컬베이스캠프 조성까지 완료함으로써 청년과 로컬을 연결하기 위한 매듭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특히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을 통해 다음타운을 만들어 청년의 지역탐색을 도우며 지역과 청년을 연결할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완주에서의 경험을 살려 경남 밀양에서 로컬브랜딩과 관계인구(정주인구와 교류인구의 중간 개념으로, 특정 지역에 완전히 이주정착하지 않았으나 정기비정기적으로 지역을 방문하며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집단을 의미)를 콘셉트로 한 소통협력공간을 조성하는 프로그램 기획에 참여하게 됐다. 경남 밀양과 전북 완주를 오가는 듀얼(dual) 라이프를 통해서 청년을 환대하는 매력적인 지역을 만드는 또 다른 실험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완주에서 살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가 이주한 청년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특별히 경계하거나 배척하지 않으면서,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응하기를 기다려준다. 충분히 탐색하고 적응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다르기 때문에 어쩌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는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정서적 토대 위에 청년들의 의견이 더해져 청년수당이나 셰어하우스, 거점공간 등과 같은 정책이 만들어졌다. 그 덕에 이주청년들이 지역에 온전히 스며들 수 있게 됐다. 조건 없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로컬 멤버십으로 바뀌어야 2022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약 12만 명의 인구가 자연 감소했다고 한다. 전북을 포함해 여러 지자체가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했고, 전남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인구감소를 넘어 지역소멸 위기를 우려한다. 인구가 계속 줄어들어 머지않아 지역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것이다. 지자체들이 다양한 지원을 통해 청년들의 전입을 늘리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이런 제로섬 게임으로는 전국적인 인구감소 추세를 반전시키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청년을 인구나 자원으로 보는 관점으로는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낼 수 없다. 청년들이 로컬에 대해 느끼는 감각도 지역의 위기감과는 결이 사뭇 다르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라질 것 같으니 많이 와달라는 이야기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지역에 청년이 찾아오면 지원금을 핑계로 전입신고부터 먼저 하라고 강권하는 경우도 있다. 지역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우선 주소부터 이전하라는 건데, 어떤 청년의 말처럼 썸도 타기 전에 결혼부터 하자는 식이다. 그러나 청년들이 가고 싶은 지역은 매력적인 가능성이 있는 곳, 나다운 삶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지 소멸의 위기감과 절박함이 압박이나 부담으로 느껴지는 곳은 아닐 것이다. 지역에 잘 적응하고 정착하기 위해서는 청년도 노력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환대가 우선돼야 한다. 새로운 구성원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공동체의 시스템과 문화도 조금씩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청년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세대문화에 대한 수용, 재능을 발휘하고 효능감을 느낄 기회 제공, 탐색-이주-정착 단계에서의 유연하고 실질적인 지원 등이 병행될 때 비로소 청년을 환대하는 로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환대한다는 것은 조건 없이 멤버십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 공동체의 자원과 정보에 대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청년이 로컬의 미래라고 모두가 말하지만 그동안 로컬은 청년에게 어떤 공간이었을까? 왜 지역의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는지, 왜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길 바란다. 역할에 대한 기대만큼 청년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환대하고 있었는지, 로컬이 스스로를 소멸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청년들이 가고 싶은 지역은 매력적인 가능성이 있는 곳, 나다운 삶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지 소멸의 위기감과 절박함이 압박이나 부담으로 느껴지는 곳은 아닐 것이다.
『월간 옥이네』(이하 『옥이네』)는 충북 옥천군에 있는 사회적기업 고래실이 발행하는 잡지다. 옥천의 비옥할 옥(沃)을 가져온 이름처럼, 옥천 땅 위에서 지역을 일궈온 이웃의 삶, 계절과 들녘, 역사와 문화를 담는다. 다들 서울로 떠날 때 옥천으로 와 지역을 기록하는 청년 박누리 『옥이네』 편집장에게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편 인터뷰가 끝난 후 찾은 식당에는 청년들로 가득했는데, 대부분 박 편집장과 지역을 위한 재미있는 일을 도모하는 동네친구라고. 도시에 사는 기자에겐 퍽 부러운 풍경이었다. 인구감소 지역에 충북 옥천군도 해당한다. 체감하는 게 있다면. 옥천신문 기자로 취직해 이곳에 왔던 2010년에는 옥천군 인구가 5만4천 명 정도였는데 지난해 5만 명 선이 무너졌다. 고령화율은 31% 정도 된다. 그런데 취재하며 만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하다 보니 내 일상에서 사람이 없다는 걸 느낄 일이 별로 없다(웃음). 한 발짝 떨어져 보면 지역의 역동성이 떨어진 것 같기는 하다. 면에 있는 초등학교 신입생이 0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확실히 피부에 와닿는다. 시골잡지를 만든다고 들었다. 서울만 보여주고, 서울에 필요한 것만 이야기하는 대중매체를 접하는 우리는 지역공동체나 지역사회의 눈으로, 혹은 개인의 눈으로 지역을 보지 못하고 서울의 눈으로 동네를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옥천은 스벅도 없고, CGV도 없고, 엽떡도 없다. 여기를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만난다. 서울에 있는 게 옥천에 없기도 하지만, 서울에 없는 것들이 여기에 분명 있는데도. 지역의 고유한 매력과 특성을 어디에서도 조명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물론 옥천신문이라는 걸출한 지역언론이 있지만, 비판저널리즘이 다루지 못하는 영역인 이웃들의 이야기를 모아 지역공동체와 사회에 공유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이야기를 통해 내가 사는 동네가 더 이상 서울 같지 않아서 떠나고 싶은 곳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소중하고 친근한 곳으로 느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옥이네』를 만들고 있다. 『옥이네』는 어떤 이웃의 이야기를 담는 건가? 평생 농사를 지으며 가족을 건사한 여성 농민, 결혼으로 타국에 와 자신의 재능으로 삶의 재미를 발견한 이주여성, 농촌 교통환경 개선을 말하는 버스운송 노동자, 초등학생 등 일상에서 만나는 이웃의 이야기가 실린다.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일상은 아니어도 어제와 같이 성실히 오늘을 살고 내일을 꾸려갈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 작고 평범한 것들을 도외시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그리고 지역을 취재하다 보면 농촌사회, 고령화사회 등 옥천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면을 넘어 생태, 자치, 공동체 등의 키워드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농업사회의 구조적 문제, 무너진 삶의 기반, 도농 간의 격차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 의제가 활발히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런 이야기를 지면으로 담아내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 같아 실제로 무언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계속해서 폐교 이야기가 나오는 중학교가 있어 그곳의 전교생 18명과 기본소득 실험을 했다. 그 과정에서 청소년이 독립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자금으로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삶을 자치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는 걸 목격했다. 월 몇만 원으로 지역의 청소년에게 자존감을 키워줄 수 있다면, 지역사회와 공동체가 청소년에게 비빌 언덕이 돼준다면, 과연 엽떡이 없다고 옥천을 떠나게 될까? 고향에 계속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자기 삶을 자치하기 위해 도시로 가는 것과 자기 뿌리인 지역을 부정적으로 여기고 무작정 도시로 가는 것은 다르지 않나. 이참에 옥천 자랑 좀 해달라. 옥천 하면 정지용 시인과 청암 송건호 선생의 고향, 1989년에 창간된 옥천신문 등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옥천의 자랑은 공동체다. 살기 좋은 지역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오랫동안 유의미한 활동을 해온 지역 중 하나가 옥천이다. 옥천은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빨리 친환경 농산물 학교급식 조례를 만들었다. 선제적으로 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던 건 오랫동안 우리 농의 가치를 이야기해 왔던 농민들이 있고,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정서적 지지가 단단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지역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옥천 FM 공동체 라디오 등 공동체 간의 두터운 협력을 자랑한다. 지역살이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조언해 준다면. 연고 없는 지역에 와서 정착하려면 제일 중요한 건 네트워킹이다. 비빌 언덕, 즉 어려움이 있을 때 찾아가서 이야기할 수 있고 즉각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더라도 같이 염려해 주고 방법을 찾아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만드는 게 중요한데, 그건 결국 지역사회에 스며들어야 가능하다. 그러려면 서로 다른 생활환경과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걸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텃밭을 제대로 관리 안 하면 지나가는 어르신마다 한마디씩 하실 거다. 그것을 그저 간섭이라 생각 말고 염려를 표현하는 방식이라 여기면 좋겠다. 그리고 지역공동체에 스며들려면 지역의 문제를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라 여기고 할 수 있는 선에서 같이 해결하려 해야 한다. 여기가 있어서 나의 터전을 누릴 수 있는 거니까. 좋은 곳이라 해서 왔는데 상처받고 단절하는 경우도 있다. 그걸 넘어서서 가다가다 보면 자기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멋진 일을 도모할 기회가 올 텐데 하는 마음이 든다.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연결고리를 계속 붙잡고 있으면 좋겠다. 지역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청년들이 지역에 올 때 겪는 가장 큰 문제가 주거와 일자리다. 전북 완주군의 경우 지자체에서 오래된 빌라나 작은 건물을 매입해 수리해서 그 공간을 완주에 와서 살고 싶은 청년들에게 월 5만 원, 10만 원에 임대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지역에 머물면서 이 지역이 있을 만한 동네인지 탐색할 수 있지 않나. 그동안 동네사람들과 네트워킹할 수도 있고 일자리를 찾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동네사람들을 만나면서 너 뭐 할 일 없냐? 그러면 우리 회사 와서 일해.라든가 우리랑 이거 해볼까?라는 제안들이 오갈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지역으로 정착하는 사례들이 꽤 된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잘 벤치마킹해 지역에서 청년들을 위한 셰어하우스나 공동체주택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편집장님이 생각하는 인생 로컬이란? 내게 인생 로컬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그것을 통해 사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런 면에서 옥천은 내 인생 로컬이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처럼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내가 있는 곳을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옥천신문 기자가 되고 싶어서 여기 왔던 건데, 그 일이 지역사회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했고 지역을 알아가고 애정을 갖게 해줬다. 내가 사는 동네, 마을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가려 한다면 그곳이 인생 로컬이 될 수 있다. 이 동네 이름은 왜 이거지?로 시작해 지역을 알아가다 보면 재미있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길 테니. 신정아 『나라경제』 기자
2018년 가을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경북 상주로의 이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기 위해 상주 귀농귀촌센터에 방문한 날, 담당자가 경상북도에는 청년창업을 위한 지원사업이 많은데 첫 번째 조건이 타 지역에 주소지를 둔 청년이니 주소를 옮기기 전 충분히 알아보라고 조언해 줬다. 지원사업이라는 개념도 타 지역 청년이라는 말도 생경했지만, 어떤 일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줄곧 서울에서 살며 회사원으로만 지냈던 내가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창업이라니. 하루는 예비 귀농귀촌인들이 모이는 자리에 참석했다. 여기서도 모두의 관심사는 먹고사는 일이었다. 상주에 오면 뭐 할 거야? 서울에선 어떤 일 했어? 얼마 전까지 화장품 패키지 디자이너였다고 답하는 내게 누군가 경상북도경제진흥원에 올라온 공고 하나를 알려줬다. 지원사업이었다. 지역자원과 특산품 등을 활용한 관광상품, 기념품 개발판매라는 내용이 보였다. 지역에서도 경력을 살려 계속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도시청년 시골파견제(현 청년창업 지역정착 지원사업)에 지원했고, 상주 특산품인 감의 추출물로 만든 마스크 팩을 만들게 됐다. 화장품 제조사가 대부분 수도권에 위치해 물리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역자원이라는 조건에 맞춰 감 추출물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러 도움을 받아 완성할 수 있었다. 마스크 팩은 와디즈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론칭했고, 상주시청과 지역 내 관광지에서 기념품으로 사용됐다. 또한 함께 제작했던 엽서와 그림이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하면서 상주의 풍경을 그리는 것에도 흥미가 생겼다. 본격적으로 일러스트 굿즈까지 제작하게 되면서 라킷키는 상주에서 태어난 첫 번째 화장품 회사에서 로컬 일러스트 브랜드로 영역을 확장하게 됐다. 청년활동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도 기획했다. 도전할 수 있었던 건 주변에 함께하는 이웃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상주에서 개인 브랜드나 공간을 운영하는 청년창업자로, 지역에 사는 이유도 업종도 달랐지만 나의 일을 하고 있다는 공감대로 이어져 있었다. 단순한 친목모임이 아니라 서로 쓰지 않는 공간을 내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고, 출판물이나 굿즈를 제작하는 등의 협업 프로젝트를 하는 커뮤니티였다. 나와 이웃들은 회사도 조합도 아니었지만 자발적 청년커뮤니티에서 컨소시엄으로, 나아가 이인삼각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로 발전하게 됐다. 마침내 상주가 전국 12개 청년마을 중 한 곳으로 선정됐고, 로컬과 창업이라는 키워드에 관심 있는 참여자를 모집해 우리의 경험을 살린 단계별 지역정착 프로그램과 창업창직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한편 사업을 운영하며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정체성이었다. 지역과 청년을 연결하는 중간조직으로서의 청년마을 사업과 나의 개성을 담은 일러스트 브랜드 라킷키 사업. 이 둘을 동시에 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뭘까? 상주에 처음 내려와 했던 질문을 다시 던졌고, 지금은 다시 나의 일을 발전시켜 가고 있다. 거기에 더해 지역과 청년의 연결고리 역할을 개인이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고 있다. 돌아보니 때에 맞는 지원사업들로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과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지역에서 나의 일을 시작한 건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지역에 본인과 잘 맞는 지원사업이 있다면 도전해 보라 말하고 싶다. 덕분에 충분히 지역을 탐색할 기회를 얻고, 해보고 싶던 일을 정말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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