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상(玩賞)은 그저 아름다움을 보고 즐긴다는 뜻이다. 즐긴다는 것은 그 자체를 인지하는 것이다. 매일의 일상이 여러 장면으로 가득 채워지며 풍경이 된다. 자연만이 풍경이 아닌, 즐기는 풍경으로서 모든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 라이프스타일이 지속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장 가까운 내 영역부터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스스로 방을 수리하고 정리하고 꾸미는 것에 관심이 높아졌다. 아파트를 답답하게 느끼며 내 집 짓기를 꿈꾸는 가족이 늘었다.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집은 여전히 삶의 공간이라기보다 개발과 투기, 욕망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어 다시금 나와 가족을 중심으로 거주와 생활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이기도 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뿐만 아니라 주거공간에서도 생활 속 거리를 조절할 수 있어야겠다. 집의 가치는 공간의 넓이가 아니라 편안함의 넓이에서 나온다. 가능한 한 가변적이고, 확장성을 갖고, 창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자유로움을 추구해야 한다. 다양한 거리감을 통해 안으로 열리고 밖에서 에워싸는 풍요로운 내외부 공간. 하나의 집 안에 다양한 공간이 차례차례 겹쳐 있어 시선을 돌리면 사계의 변화, 계절의 냄새, 바람과 빛의 음영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에게 거저 다가오는 자연을 잘 받아들여 안온감(安穩感)을 느끼고, 철마다 변하는 자연과 교유(交遊)했으면 좋겠다. 집을 완상하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자. 흔히 집은 변하지 않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있다. 인테리어는 바꿀 수 있어도, 구조는 한번 세우면 바꿀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집에 사람을 맞추는 게 아니다. 공간의 크기와 넓이 등 규모에 집중하지 않고, 편안함과 불편함, 삶과 일상에서 누리고자 하는 가치에 집중하면 공간을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 편리한 공간이 꼭 편안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거공간에 불편한 부분이 있어야 편안함이 더 극대화되고, 또 그것을 느끼고 누릴 수 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공간의 변화 가능성이다. 쓰임새에 따라 변화 가능한 공간과 고정적인 영역을 분리해 기능을 한데 모으고, 가구 등을 활용해 자유로운 평면을 구성함으로써 내용물을 담는 용기가 아닌 그 용기의 주체가 되어 어포던스(affordance; 어떤 행동을 하게끔 유도하는 것)가 가능한 느슨한 공간을 상상해 보자. 거실과 부엌의 공간이 애매해지면서 부엌이 거실이 돼 접대와 생활의 공동영역으로 경험의 범위를 확대한다. 생활패턴에 따라 가변적으로 이동이 가능한 가구로 인해 식당이 되고, 응접실이 되고, 거실이 된다. 집에서 방이라는 개념으로 좀 더 내밀하게 들어가 보자.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공간을 유동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짐도 적어야 한다. 취향과 기호를 반영하려면, 가구에 의한 기능적인 공간에서 가구와 가구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기대해 보자. 그렇게 하면 거주하는 사람의 삶에 맞춰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정의되지 않은 기호의 공간이 된다. 한번에 읽히는 공간배치로 제한적인 공간이 아닌, 어떻게 생활해도 유연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방의 사면을 감싸고 있는 책상, 옷장, 침대, 수납장을 테트리스처럼 효율적으로 두는 것에서 벗어나 보자. 내 방을 정의할 때 그림만을 걸어두는 벽, 누웠을 때 하늘을 상상할 수 있는 천장,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 식물이 놓인 바닥 등 자신에게 작게나마 상징적 자리를 만들어주자. 소설가가 글을 쓰기 위해 거치는 고뇌의 과정처럼, 건축가가 집을 짓기 위한 일련의 단계를 밟는 것처럼, 건축주도 사계의 변화 속에서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도록. 걷다가 잠시 머무르고, 다시 걷고, 바라보고, 생각하고 그저 즐기다 보면 스스로가 그 자체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할 것이다.
민달팽이유니온은 2011년 대학생 주거권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시로 주거상담 및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당사자인 청년들과 함께 행복주택 입주기준 완화, 청년 주거상담 제도화, 청년 월세지원정책 공동 설계 등 제도 개선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십여 년간 청년 주거 문제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은 현재 청년들의 집은 전혀 스위트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난 청년들은 오히려 집이 무색무취이기만 해도 좋겠다고 말한다. 자산의 불평등, 공간의 불평등, 권리의 불평등 등 다양한 격차들이 얽혀 마침내 삶의 격차를 만들어내는 사회에서 청년의 스위트홈은 과연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누군가는 영끌해서 집을 산다고들 하는데, 나는 왜 현상 유지만으로도 버거운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쉴 새 없이 들려온다. 집값은 치솟고, 월세도 비싸지고, 일자리는 불안정한 여건 속에서 열악한 환경의 거처를 내 집으로 선택하고 있는 청년들의 삶을 매일 목격한다. 소위 신쪽방촌이다. 신쪽방촌의 임대인은 임대소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무실, 주차장, 심지어 당구장으로 허가받은 공간을 불법으로 증개축하거나 방쪼개기를 한다. 이런 공간들이 원룸, 하숙, 고시원 등의 간판을 달고 청년의 스위트홈으로 흩뿌려지고 있다. 이런 불법 건축물들은 위반건축물로서 단속 대상이다. 사실 애초부터 주택인 척 공급되지 않도록 규제돼야 하는데, 어쩐지 너무나 잘 방치되고 있다는 게 전국의 임대업자들에게 소문이 난 것이 웃픈 지점이다. 지난해 서울 관악구의 특정 골목을 조사하면서 2000년대 이후 신축된 원룸 건물들 중 80~90%가 위반건축물이길 작정하고 방쪼개기를 한 뒤, 청년들에게 원룸을 공급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비단 관악구의 한 골목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닐 것이다. 단순히 공간이 불법인 것을 떠나 추위와 더위, 곰팡이와 해충에 더 취약한 집답지 못한 집이 방치되고 있는 점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회진입계층인 청년들은 집답지 못한 집에서 과도한 주거비를 지불하며 살아가곤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임대인의 부당한 횡포에 무방비하게 방치된 세입자의 삶을 경험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 청년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 71.4%가 내 집 마련을 하고 싶은 이유로 사지 않으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없어서라고 답했다. 집을 소유하지 않고서는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안정적인 주거를 꿈꾸기 어려운 현실을 바꿔야 하지 않겠냐고 매일같이 생각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고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 전월세 신고제 등 제도가 도입되는 과정을 함께 하며, 우리 사회가 주거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진정한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다. 주거권은 물리적사회적경제적 위험에서 벗어나 안정적이고 쾌적한 주거를 누릴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 주거권은 곧 소유권으로 읽히고 있진 않은지, 때로는 주거권이 곧 투기할 자유로 해석되고 있진 않은지 의문스럽다. LH 사태를 겪으며 투기 권하는 사회 풍조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주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을 바라보는 프레임 자체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거주점유의 형태와 상관없이 주거안정은 권리 그 자체로 보장돼야 한다. 앞으로도 민달팽이유니온은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의 삶이 그 자체로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투기로 얼룩진 사회에 저당 잡히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자산의 격차가 삶의 격차로 직결되지 않는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공간과 권리가 존재하는 스위트홈이 이뤄지지 않을까 한다.
시골살이는 농부로 직업을 전환하거나, 농촌으로 거주공간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지난 1월 27일부로 나는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스스로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도전을 위한 공간적 변화를 시도하고자 시골살이에 나섰다. 이사 첫날. 아파트에서 나와 농가 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27년이나 된 벽돌 건물이지만 지붕 두께가 18cm나 될 정도로 튼튼하다. 하지만 당시의 단열재는 튼튼하기만 했나 보다. 첫날은 양말을 신고 모자를 쓴 채로 잠자리에 들었다. 창틀 공사를 알아봤더니 날이 풀려야 가능하다고 한다. 5일 차. 닭은 새벽이 왔다고 우는 것이 아니라 새벽까지 우나 보다. 밤새 교대로 울어대는 동네 닭들 얘기다. 지방에 방송 촬영을 하러 갔을 때 PD가 계곡물 흐르는 소리와 개구리 소리가 너무 좋다고 하더니, 아침에 만났을 때는 거의 한숨도 못 잤다고 힘들어했던 기억이 났다. 14일 차. 엊그제부터 스마트폰 지문인식이 되지 않더니, 전입 초기라 부동산 이전 등 행정처리가 많은데 주민센터의 자동발급기 이용이 불가해졌다. 손가락 지문이 이렇게 쉽게 닳아 없어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귀농 2주 만에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했도다. 35일 차. 우수가 지난 지 2주가 됐지만 산골의 절기는 더디다. 아직은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자동차 유리창을 한참 긁어야 앞이 보인다. 시원한 공기, 맑은 물, 밤하늘의 별들을 누리자면 따뜻한 배관 파이프가 지나가며 덥혀 놓은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잊어야 한다. 39일 차. 아내에게 시골로 가면 먹거리는 자급자족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전에 살던 분이 텃밭 여기저기에 심어 놓은 쪽파를 한군데 모아 놨더니 먹을 만큼의 길이로 싹이 자라났다. 신기해하며 다음에는 뭐가 나오는지 묻는 아내에게 차마 다양한 잡초가 좀비처럼 계속 나올 것이라고는 말 못한다. 비닐멀칭을 해서 심은 것만 나오도록 텃밭 관리를 해야겠다. 40일 차. 쇠스랑 자루가 부러져 사다 끼웠더니 이번에는 날이 부러졌다. 면 소재지 철물점까지 다녀올 시간에 작업을 다 마칠 수 있을 것 같아 이가 빠진 상태로 계속 작업을 했지만 절반만 마치고 포기했다. 내가 힘이 센 것인지 힘으로만 하는 것인지, 모종삽, 호미, 레이크에 이어 네 번째다. 트랙터로 하는 3천 평 농사보다 괭이로 하는 3평 농사가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2일 차. 장롱 속의 헌 옷가지는 훌륭한 작업복 역할을 한다. 시골로 올 때는 다 버리고 올 것이 아니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도시생활의 습관과 욕심만 버리고 와야 할 것 같다. 헌 옷가지도 버리지 말고 가져와야 작업복으로도 쓰고, 나중에 동파 방지를 위해 야외 수도라도 싸매기 때문이다. 44일 차. 이사 후 처음으로 체중계에 올랐더니 4kg 이상이나 줄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앉았다 일어설 때 전에 없던 어지러움을 느끼고는 한다. 마당과 텃밭 일을 줄이고 싶지만 봄은 성큼 다가와 있고 진퇴양난이다. 51일 차. 엊그제 밤에는 갑자기 정전이 됐다. 우리 집만 그런지 아내와 밖을 나가보니 동네 전체가 깜깜하다. 윗집도 태양광 정원등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돌아서며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별이 쏟아질 듯 총총하다. 주변이 어두워서 그런지 더욱 별천지였다. 그러고 보니 마을로 이사 온 지 50일이 지났지만 처음 며칠 말고는 밤하늘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사 오기 전 시골생활을 망설이던 아내에게 하늘의 별도 보며 살 수 있다고 했건만. 일을 좀 더 줄이고 별 볼 일 있게 살아야겠다.
십여 년 전부터 도시재생의 바람이 불며 아파트 일색으로 개발되던 노후 주거지는 오밀조밀 집들이 모인 기존의 도시 형태를 보존하고 존중하는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주민들이 모여 버려진 공간을 단장해 카페나 책방, 창업공간을 만들어 동네를 되살렸고, 동네 계단과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는 등 활기를 불어넣었다. 관광지처럼 변해가는 동네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취약계층이 주로 거주하던 생기 없던 동네에 새바람이 불게 된 것은 긍정적인 사실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 빈집과 노후된 건물은 새로운 주거자원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에 150만 호의 빈집이 있고 이는 전체 주택의 8.4%를 차지한다. 도시에서 열악한 동네뿐 아니라 구도심 지역에서도 사람이 살지 않는 빈 건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980년대에 지어진 집 가운데 빈집이 약 17만 호고 그 이전에 지어진 집이 약 29만 호니 적지 않은 숫자다. 버려지고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건물이 지역 특성과 거주자에게 맞는 모습으로 리모델링을 거치면 특색 있는 거주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이곳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규모 맞춤형으로 만들어진 공간의 모습과 사람 간의 따뜻한 만남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생적으로 발달한 도시공간에 담긴 독자적인 개성도 함께 더해져 매력을 부각시킨다. 낡은 건물이 주거지로 변신한 집은 실리적으로도, 나만의 개성을 담기 위한 공간으로도 딱 들어맞는다. 우선 노후 주거지에 위치하다 보니 지가와 임대료, 주거비가 낮아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 또한 도심지에 근접해 있어 편의시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한편 주변 환경도 큰 장점이 된다. 기존에는 열악함의 상징이었지만 좁고 굽은 길, 경사로, 동네 가게는 도시 속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시간과 기억을 담아 정서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문래동, 익선동, 경리단길, 서촌처럼 이미 핫플레이스가 돼버린 공간들은 모두 도시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옛 도시의 흔적을 담고 있는데, 이런 곳은 현대적으로 개발된 신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서적 편안함이 담겨 있다. 기존에는 흉물로 방치돼 있어도 개인에게 소유권이 있는 빈집은 공공이 함부로 허물거나 리모델링할 수 없었지만, 최근 법률이 제정돼 빈집을 활용해 마을과 도시에 필요한 건물과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같은 이유로 정부는 공공개발이나 토지의 수급조절을 위해 시행하는 토지비축사업에서 2020~2029년간 수급조절용 토지의 40%를 빈집 정비용 토지로 취득하도록 계획했는데, 이는 1조5천억 원에 해당하는 매우 큰 규모다. 바야흐로 도시에서 빈집은 새로운 자원으로 가치를 지니게 됐다. 빈집과 노후 건물을 활용한 주거의 매력을 발견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성으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에 눈을 뜬다는 이야기다. 원스톱으로 해결되는 아파트 단지의 편리함은 찾을 수 없지만, 대신 도시에 담긴 기존 자산의 가치를 찾고 자원을 재활용하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더 큰 가치가 담겨 있다. 이 새로운 주거문화는 주민과 함께 고민하고,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사회적 경제주체나 비영리단체와 함께 진행될 때 더욱 큰 시너지를 가져올 수 있다. 단순히 자원을 재활용하는 재생에서 벗어나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하는 업사이클링은 주거에도 적용된다. 방치됐던 건물이 개성 풍부한 주거공간으로 재탄생되고 이곳을 아끼는 사람들이 정착해 새로운 마을을 만들어 도시에 활기를 가져오는 것은 분명히 업사이클링이다. 이런 형태의 집이 모인 동네에서는 집값이 올랐다고 금세 팔고 다른 동네로 떠나는 삶의 형태는 줄어들 것이다. 부동산이 아닌 주거만이 줄 수 있는 더 큰 가치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유럽은 20세기 초 산업화로 인한 주택 부족, 주거환경 악화 및 주거비 상승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주택을 공급하기 시작했으며, 정부나 비영리단체 또는 민간영역 등 다양한 주체를 중심으로 공급이 이뤄졌다. 2016년 OECD 통계에 따르면 사회주택이 가장 활성화됐다고 볼 수 있는 네덜란드는 총가구 중 약 34%가 사회주택에 거주하고 있고, 오스트리아 26%, 덴마크 22%, 프랑스 19%, 영국 18% 순으로 비중이 높다. 해당 국가들의 경우 중앙정부 주도의 직접공급보다는 지방정부나 비영리단체를 중심으로 한 공급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최근 한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사회주택이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 벤치마킹할 사례로 유럽사례를 살펴보자. 사회주택 천국이라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사회주택을 따로 구별하는 게 불가능하다. 겉으로 보기에도 일반주택과 차이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일부는 예술적 건축미를 뽐내기도 한다. 네덜란드는 사회주택의 역사만 100년이 넘었고 여러 단계를 거쳐 발전해 왔다. 초창기에는 정부지원이 많았지만 사회 부문이 성장한 결과 사회주택보증기금이라는 상호연대기금으로 1차 보증하고, 2차로 정부가 지원하는 체제가 정착했다. 덴마크는 사회주택의 임대료 결정, 자금 조달, 보조금 지급 등을 기본적으로 중앙정부에서 결정하지만 1994년 이후 신규 사회주택 건설공급과 관련된 신규 공급량, 신축건물의 위치 등은 지자체 또는 민간 공급자 간 협상에 의해 결정된다. 덴마크 사회주택은 30~40년 장기임대로 운영되는 협동조합형 주택을 포함해 공공이 지원하는 민간임대 성격의 주택으로 신청 자격에 제한이 없다. 사회주택의 재정 구성을 보면 86~90%에 달하는 자본은 은행과 주택연금에서 주택협회가 빌려오는 방식이다. 지자체 자본금은 8~12%, 나머지 2%만 세입자가 지급한다. 임대료는 비용연동형(주택의 공급과 운영 시에 필요한 원가를 반영해 임대료를 산정하는 방법)이며 임대료는 시세 수준으로 결정된다. 오스트리아 빈은 주거안정을 위해 80여 년 전부터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했다. 현재 빈 시민의 60% 정도가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시영아파트가 25%, 나머지는 시가 투자한 민관협력형 사회주택이다. 빈 시민 중 무주택자는 누구나 공공임대주택을 받을 수 있으며, 평균 임대료는 런던, 파리, 취리히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오스트리아의 사회주택 정책 변천 과정에 있어 주목할 점은 비영리조직 등의 민간영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민관협력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비영리조직 지원을 위해 우선 중앙정부 차원에서 1948년 주택 관련 법안(세제 혜택)을 제정했고, 1954년 시행된 재정지원 프로그램(중앙정부의 보조금 지급)으로 사회주택 공급이 민간 중심으로 전환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특히 1985년 「주택촉진법」은 9개 지자체에 사회주택의 건설이나 개축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2009년 사회주택 보조금 지원이 기존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이전됨에 따라 현재는 지자체와 비영리조직이 상호 협력해 사회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인간의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주거 문제다. 주택은 사는(buy) 게 아니라 사는(live) 것이란 슬로건처럼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에서는 주거권을 헌법상 국민의 권리로 명문화했다. 모든 국민은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주거권 규정은 주거안정을 위한 국가의 강한 책임과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사회주택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민간과 공공의 합작품이다. 공공성 높은 사회주택의 국내 활성화를 위해서는 해외 선진사례를 토대로 실효성 있는 정책지원 방안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정책적제도적 지원 체계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한민국은 왜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릴까? 왜 우리는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할까? 아파트가 스위트홈이 되려면? 이 물음에 박인석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이하 국건위) 위원장은 아파트가 아닌 아파트 단지로 접근해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 위원장에게 아파트 한국사회에 대해 들어봤다. 집 하면 아파트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가장 보편적인 주거수단이 됐다. 그 배경은? 우리나라는 전체 주택의 62% 정도가 아파트고 가구 비율로는 51%가 아파트에 산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리는 이유는 양적인 부분도, 아파트도 아닌 아파트 단지 때문이다. 우리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경제적으로 엄청난 압축 성장을 했다. 이 기간에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이들이 소득수준 향상에 맞춰 더 좋은 집, 환경, 동네를 갈망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국가적인 노력을 경제개발, 수출 등에 집중하고 있어 동네마다 공원도서관 확충 등 주거환경 개선에 힘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 이에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 제정 등을 시작으로 민간 건설업체의 아파트 건설 확대를 통해 주거 공급을 촉진하는 정책을 마련했다. 당시 공공영역이 제공하지 못하는 인프라를 민간영역인 아파트 단지가 제공해 주니 중산층이 선택할 수 있었던 주거수단은 아파트였다. 싱가포르, 홍콩 등도 아파트가 주요 주거수단인데, 우리와 어떤 차이가 있나? 1950~1960년대 황금시대를 경유하며 늘어난 중산층의 눈높이를 충족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섰다는 점이 다르다. 정부가 생활SOC에 막대한 투자를 해 좋은 동네를 제공했기 때문에 구태여 아파트에 담장을 두를 필요가 없었다. 파리는 길가에 아파트가 일반 건물처럼 한 채씩 서 있다. 단지구조가 아니라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집과 공공영역이 직접 접속해 있고 집을 나오는 순간 사회다. 즉 좋은 생활환경을 만들기 위해 자발적으로 동네의 공공 공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공간구조다. 아파트 단지가 공공과의 직접 접속을 막으며 생겨난 문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놀이터를 예로 들어보자. 아파트 단지는 내 집을 나서도 계속 아파트 단지 안이다. 사회와 직접 접속하는 공간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단지 밖에 놀이터가 생기고 골목환경이 좋아지는 것은 아파트 주민들의 직접적인 관심사가 아니다. 단지 내 놀이터 정비가 더 중요하고, 더 좋은 생활환경을 누리기 위해서 자금을 모아 더 좋은 단지로 이사가는 방법을 선택한다. 단지 밖 놀이터는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투표권을 가진 국민의 절반이 아파트 단지 안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공공시설 투자는 약할 수밖에 없다. 공공영역을 자신의 일상과 직결된 문제로 여길 수 있는 공간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동네 놀이터 등에 대해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어렵다. 아파트 단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더 이상 단지를 만들지 말자. 새로 짓는 아파트는 공공과 상생하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둘째는 기존 단지의 재생이다.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재건축할 때 단지를 허물고 블록별로 짓자. 민간아파트는 아파트 안에 길을 만들어 단지 밖의 공원과 연결해 보자. 더 나아가 아파트 단지 사이의 죽은 길인 잔디밭과 담장 경계부를 주민 동의를 얻어 작은도서관이나 국공립어린이집으로 재생하는 거다. 공공건물이 담장 역할을 하니 사생활 침해 우려도 해소되고, 그 안에 상업시설이 들어서면 주민들이 경제적 이익을 누리게 된다. 지역 입장에서는 죽었던 길이 살아나니 지역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는 윈-윈 구조가 된다. 지금은 아파트를 재건축하기 전에는 경계부 재생을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이 제안을 현실화할 수 있는 법부터 만들어야 한다. 아파트는 사는(buying)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이유도 아파트 단지와 관련 있을까. 그렇다. 부동산을 투자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회는 없다. 하지만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 투기 문제가 불거질까? 그것도 아파트 단지에 원인이 있다. 아파트 단지는 직접 가보지도 않고 계약할 정도로 표준화돼 있다. 동네를 표준화시켜 사고팔기 좋은 간단한 상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선호하는 재테크수단이 된 것이다. 아파트가 사는(buying) 것이 아니라 사는(living) 곳이 되려면 더 이상 단지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아파트 단지가 무조건 우리 사회에 나쁜 영향만 미친 것은 아니다. 아파트 단지는 우리나라 압축성장의 1등 공신이라 할 수 있지만, 눈부신 경제성장을 통해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선 우리 사회를 더 이상 집단의 에너지로만 이끌어가서는 안 된다. 국민 개개인의 에너지가 소중한 단계로 접어들지 않았나. 개개인의 창의와 에너지가 서로 얽히고설켜 상생작용을 하며 작동하는 사회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 국건위가 스위트홈을 만들기 위해 어떤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크게는 우선 3기 신도시에서 단지가 아닌 아파트를 시범사업으로 진행 중이다. 단지를 쪼개서 공공 공간과 직접 접속할 수 있는, 담장 없는 아파트를 만들어 새로운 주거 공간에 대한 국민의 심리적 방어를 허물고자 한다. 두 번째로 국건위는 좋은 도서관, 어린이집, 쉼터 같은 작은 건물을 설계할 때 설계공모를 하도록 하고 있다. 여태까지의 공공건축 설계는 가격 입찰 방식이었다. 파출소, 우체국 등이 좋은 설계를 통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 행정 편의에 의해 가격에 맞춰 설계된 것이다. 가격이 아닌 실력으로 뽑는다면 훌륭한 공공건축물이 거리에 늘어서게 돼 동네환경이 개선되고 설계자에게도 좋은 동기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행정력이 조금 더 들더라도 국민들이 보다 행복한 환경 속에서 편리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생겨날 활력이 모인 사회가 갖는 힘은 엄청나지 않겠는가. 공공건축물 설계공모 등으로 동네환경이 개선된 우수사례가 있다면. 2009년 영주시는 전국 최초로 민간전문가를 활용한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해 건축공간연구원(auri)과 도시 주도 공공건축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지자체의 관리기획 능력을 키워야 열악한 공공건축물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고 본 auri는 영주시가 합리적 공공건축 관리 시스템을 갖추도록 기술적전문적 지원을 했다. 총괄건축가를 임명하고, 엄선된 심사위원 사전공개 등 공정성이 보장된 설계공모 과정을 통해 다수의 실력 있는 설계공모자를 유치하고, 좋은 설계를 뽑아 훌륭한 공공건축물들을 지을 수 있었다. 영주시 공공건축물 투어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공공건축계에서는 유명한 사례다. 게다가 서울시 같은 큰 도시가 아닌 인구 10만 명 규모의 평범한 도시에서 이뤄낸 것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위원장님이 생각하는 스위트홈이란 어떤 모습인가. 젊었을 때는 집을 지을 경제적 여건이 안 됐고, 다른 대안이 없었으니 아파트에 살았다. 그러다 아파트를 청산하고 단독주택을 지어 10년째 살고 있는데, 다시는 아파트로 못 갈 것 같다. 아파트에서는 내 이웃이 나와는 다른 생활모습을 갖고 있다는 것을 추상적으로는 알지만, 즉각적으로 느끼기 어렵다. 반면 단독 또는 다가구주택은 집을 나설 때마다 나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사는 이웃과 함께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구나라는 것을 자연스레 느끼게 하는 공간구조를 갖고 있어 톨레랑스가 커진다. 그것이 바로 스위트해질 힘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나와 다른 이웃과 부딪히는 기회를 얼마나 주는 집이냐가 다른 것 못지않은 스위트홈의 중요한 조건이라 생각한다. 물론 아파트 단지를 스위트홈이라고 여기는 분도 있을 거다. 그렇지만 이웃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를 희생해 얻은 편리함으로 잃어버린 것과, 그 공간구조를 통해 만들어진 우리 모습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주거정책 관계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국민 절반 이상이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게 만드는 공간구조에 살게 하는 주거정책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정책이다. 자신의 스위트홈을 만들기 위해 쏟는 자발적 에너지가 스위트동네와 도시를 만드는 에너지로 작동하는 공간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스위트홈은 스위트한 동네, 스위트한 도시 속에 있어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 아닌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자 책무다. 신정아 『나라경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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