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에 접어드나 싶었는데 다시 50대가되네요. 다시 주어진 50대엔 나를 위한 시간을 많이 보내야겠어요. 1963년 7월에 태어나 올해 61세를 맞이한 최경희 씨는 오는 6월부터 시행되는 만 나이 통일법(「행정기본법」 및 「민법」 일부개정법률)에 반색을 표했다. 최 씨는 지난 생일 가족들과 모여 60세를 기념하면서도 한편으론 늙어간다는 생각이 들어 섭섭함을 감출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나이처럼 몸도 젊어질 수 있게 운동도 하고 해외여행도 다니며 50대로 돌아간 나를 많이 아껴줄 것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2023년은 안 늙는 해다. 오는 6월 28일부터 나이를 세는 방식이 만 나이로 통일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사법행정 영역에서 나이 표기를 만 나이로 통일하는 만 나이 통일법을 공포하면서 일상에서도 만 나이가 정착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대선공약이기도 했던 이 법안은 여러 가지 나이 셈법이 혼용되면서 생기는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추진됐다. 우리나라에선 총 세 가지 나이가 사용돼 왔다. 일상에서는 세는 나이(한국식 나이)가, 법적으로는 만 나이가, 입학과 병역에선 연 나이가 쓰인다. 이렇다 보니 나이 계산에 혼선이 적지 않다. 아이와 함께 버스에 타는 부모들은 아이 요금이 고민거리다. 성인과 동반 탑승하는 아이는 만 6세 미만일 때 운임이 무료인데, 6세 미만이라는 표현이 세는 나이 기준인지 만 나이 기준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일부 부모들은 요금을 내고 나서 환불을 요청하기도 한다. 버스 회사 역시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오는 6월부터 이 같은 혼란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만이라는 글자가 없어도 나이 표기는 원칙적으로 만 나이를 의미하게 되기 때문이다. 약을 먹을 때도, 관광지 앞에서 입장료를 계산할 때도 나이로 고민하는 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시민들도 만 나이 도입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1994년 2월생인 김진형 씨는 빠른 연생이라 (동창생들에 맞춰) 올해 31살이 됐는데 몇 개월 후 다시 29살로 돌아간다니 시간을 번 것 같다며 7개월 동안 주어질 마지막 20대에 어른이 되기 전에 해야 할 숙제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 나주의 박란 씨(59)도 노년기를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에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마음이 촉박해지던 찰나 한 살이라도 어려지니 노후 대비를 위한 시간이 생긴 것 같다며 올해를 인생 2막의 기점으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9월 법제처가 실시한 만 나이 통일에 관한 국민의견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총 6,394명 가운데 81.6%(5,216명)가 만 나이 통일 법안이 신속하게 통과돼야 한다고 답변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만 나이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혼란이 초래되지 않을지 걱정을 내비치기도 한다. 7세 아들을 둔 김진화 씨(35)는 초등학교 입학은 연 나이로 하면서 만 나이 정착을 장려하면 같은 학급 안에서 아이들끼리 형, 동생 같은 서열문화가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6년 차 직장인 김미연 씨(31)는 한국이 나이를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 보니 직장 안에서 같은 연차끼리도 언니, 오빠라 부르면서 대접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6월부터 호칭이 덜컥 바뀌긴 어려울 것 같다며 만 나이가 적용되는 선이 어디까지인지 적용 전에 꼼꼼히 알려주면 좋을 것 같다고 바람을 말했다. 이에 정부도 올해 초부터 관련 예산을 확보해 나이 규정에 관한 개별 법령을 정비하고 만 나이 원칙이 사회적으로 조속히 정착될 수 있게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만 나이, 연 나이, 세는 나이 등 다양한 나이가 사용되면서 나이 기준에 대한 혼란이나 오해에 따른 각종 법적 다툼과 민원이 발생해 왔다. 노사 단체협약상 임금피크제 적용 나이, 복지서비스 제공 나이, 백신 접종 나이, 버스 무료 탑승 나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만 나이로 법적사회적 기준을 통일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었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 후보 시절 윤대통령의 공약사항이던 만 나이 통일을 국정과제로 채택해 추진하게 됐다. 이를 이행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민들이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민법」과 「행정기본법」을 개정(2023년 6월 28일 시행)해 민사 및 행정 분야에서 나이는 만 나이로 계산하고 연수로 표시한다는 원칙을 풀어서 규정했다. 다시 말해 계약서, 법령 등에서 특별히 달리 정하지 않으면 만 표기가 없더라도 그 나이(○○세)는 만 나이를 의미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로써 나이를 둘러싼 법적 다툼이나 민원이 줄어 불필요한 사회적경제적 비용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나이를 국제기준에 맞춤으로써 국제교류 등에서의 불편을 덜어주고 기존 나이 셈법에 기반한 엄격한 서열문화를 완화하려는 취지도 있다. 연령은 출생일 기준으로 역에 의해 계산한다는 종전 「민법」 규정도 법적으로 만 나이가 원칙임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해당 규정이 만 나이에 관한 규정이라는 점을 일반 국민들이 쉽게 알 수 없었다. 이 점을 고려해 만 나이 규정을 보다 명확히 한 것이다. 또한 행정 분야에서의 만 나이 계산과 표시에 관한 원칙 규정을 「행정기본법」에 직접 명시해 국민들이 쉽게 찾아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민법」과 「행정기본법」 개정을 통해 법적으로 만 나이 원칙을 확립하게 됐다. 이를 토대로 올해는 연 나이를 기준으로 한 60여 개 법령 중 연구용역과 국민의견조사등을 거쳐서 만 나이로 개정할 필요성이 있는 법령을 소관부처와 협의해 정비할 계획이다. 법령 정비와 함께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만 나이 사용 원칙을 철저히 준수해 나이 사용에 행정적 혼란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각 행정기관은 만 나이 사용이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잘 정착하도록 돕기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일상생활에서 세는 나이가 사용돼 온 만큼 이를 바꾸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쉽지 않은 작업일 것이고, 그 과정에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 나이 통일이 과거 좌측보행에서 우측보행으로 바꾸는 일처럼 국민들의 직접적인 행동 변화를 요구하거나 각종 시설이나 표지 설치 등이 필요해 큰 비용이 수반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제도 정착에 긍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만 나이 사용이 일상화되려면 국민들이 만 나이 사용에 적극 동참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국민들이 만 나이 통일법 통과에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준 것에 감사하며, 만 나이 사용에도 적극 동참해 주기를 당부한다. 정부도 만 나이 사용에 대한 대국민 홍보를 다양한 방법으로 실시하는 등 만 나이 사용이 사회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난해 말 만 나이로 법적사회적 기준을 통일하는 내용의 「민법」 및 「행정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세는 나이를 기반으로 한 위계질서가 명확한 한국에서 만 나이 통일이 법적제도적 차원을 넘어 일상생활에서 이뤄지려면, 한국에 지금과 같은 나이 위계 질서가 확립된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일제 시기에 조선에 존재했던 사범학교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같은 학교에서 배우는 이른바 공학 교육기관이었다. 그 사범학교는 1890년대 초반에 일본 최초의 문상 모리 아리노가 기존 사범학교를 군사주의적인 방식으로 재편한 것이었다. 군사훈련인 병식체조(兵式體操)가 정식 교육과정으로 도입됐을 뿐 아니라, 학생 전원이 군대 내무반을 방불케 하는 기숙사에서 집단 생활을 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전 학년의 학생들이 같은 기숙사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고 생활하는 이러한 제도는 사범학교 학생 문화에 독특한 특징을 부여하게 된다. 상급생과 하급생 간에 엄격한 위계질서가 성립했으며 그것이 상급생에 의한 하급생의 집단린치까지 묵인하는 폭력적인 학생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사범학교에서 1학년은 꼬마, 2학년은 자, 3학년은 사람, 4학년은 님으로 불렸다. 무력한 하급생이 상급생의 횡포에 대응하는 방식이래야 고작 졸업식 날 상급생의 교복을 찢는다거나 축하한답시고 상급생을 헹가래치다 슬쩍 놓쳐 다치게 하는 식이었다. 경성사범학교를 다녔던 조선인 학생의 회고에 따르면 심지어 조선인 상급생이 일본인 하급생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조차 용인됐다고 한다. 1945년 해방 이후 우리는 교육과 사회의 각 영역에서 식민지적 잔재를 청산하려는 시도를 했다. 조회 때 불렀던 기미가요나 기도문처럼 암송했던 황국신민서사가 해방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적 장치와 내용으로 대치된 것이 그 예다. 하지만 상하급생 간 위계질서에까지는 시선이 미치지 못해 오랜 기간 청산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나이가 위계질서의 근거가 된 역사적 연원이 오로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장유유서라는 유교적 가부장제 질서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조선 시대의 선비들이 몇 년간의 생물학적 나이를 뛰어넘어 지기(知己)가 되곤 했던 이야기들을 떠올린다면, 나이가 1년 단위로 촘촘하게 매겨지고 그것이 곧바로 위계질서의 원리로 작동하는 문화를 유교의 유산이나 가부장제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나이가 위계질서 원리로 전환된 것을 구조적으로 보면, 동일 연령 집단이 하나의 학년으로 동질화되고, 그러한 학년들이 학교라는 하나의 세계 안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근대적 교육장치의 등장 및 확산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데 근대적 교육장치가 확산된 모든 곳에서 나이의 위계질서 로의 전환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근대교육의 일본적 특질과 식민지적 이식이라는 역사적 과정이 개입됐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나이가 위계질서와 결합된 역사적 연원을 따지는 작업이 자칫 문제의 모든 원인을 일제의 지배 탓으로 돌리는, 말하자면 식민 지배 환원주의적 경향으로 이어진다면 그 또한 문제다. 해방 이후에도 오랜 기간 우리 사회는 그러한 관행을 청산하는 데 일부러 게을렀거나, 아니면 더 나아가 그러한 관행을 의도적으로 유지재생산함으로써 학교에서 어떤 인간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했던 것이 아닐까. 즉 그것은 우리의 선택의 문제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 및 인권의식의 성숙 정도에 따라 달라지게 됐다는 점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얼마 전 국회에서 만 나이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민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나는 2023년에 세는 나이로 서른이 됐는데, 내 친구들 중에서는 20대가 좀 더 연장됐다며 좋아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식 나이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오가는 것 같다. 그간 나이에 따라서 철저히 서열을 나누고, 나이가 어린 사람은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일단 지고 들어가는 한국의 나이주의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꽤 예전부터 제기되던 이런 불만이 근래에는 중장년층에도 수용돼, 나이 차이가 아무리 나도 일단은 존댓말을 전제하는 것이 기본이 됐다. 오래 교류해서 많이 친해져도 계속 존댓말을 고수하는 일도 흔하다. 그런데 나이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존댓말과 반말이라는 한국어의 특성도 함께 나올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가까운 사이에서 형, 누나, 오빠, 언니와 같은 호칭을 쓰는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이제 조금만 사이가 멀어도 나이 차이가 난다고 바로 반말을 하면 몰상식한 사람 취급을 받기 일쑤라, 나이문화는 오히려 가까운 관계에서 더 중요하게 작동한다. 나이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관계문화가 발전한 청년층 사이에서도 친한 사이라면 상기한 호칭들을 쓰는 것은 여전히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혹자는 나이주의가 나이에 따른 서열을 전제하는 호칭문화와 맞물려 관계의 위계를 고착화한다고 비판한다. 이때 한국어에서 대등한 관계를 부르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함께 문제로 등장한다. 하대할 때도 쓰이는 호칭 야가 대표적인 범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사실 나는 이 한국어 특유의 호칭문화로 만 나이 개정에도 불구하고 한국식 나이가 일상에서 계속 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언어를 배우고 가장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사회화를 시작하는 학교는 여전히 1년의 주기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데 만 나이가 일상이 된다고 전제하면, 1년 과정 안에서 호칭에 계속 혼동이 생길 수밖에 없다. 차라리 1년을 기점으로 모두가 발맞춰 나이를 먹는 방식이 소위 교통정리를 하기에 제일 적합하다. 형, 누나, 언니, 오빠라는 호칭의 강력한 존재감을 한국어에서 지울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런 와중에 나이와 결부된 호칭문화가 K컬처의 인기를 타고 세계 전역에서 매력적인 한국문화로도 수용되는 현상은 매우 흥미롭다. 이들은 한국어 oppa나 unnie,심지어 maknae 같은 말에 대해, 거기에 전제돼 있는 특유의 가족적이고 친밀한 어감이 좋다며 호감을 표한다. 물론 그들의 일상에서 쓰이지는 않겠지만 K컬처의 세계화가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음을 생각하면 어쩌면 미래에는 한국에서 적폐라고 비난받던 수직적 호칭들을 세계 곳곳에서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지금 한국식 나이문화는 숱한 갈등 끝에서 나름의 최적점을 찾아낸 것이 아닐까. 모든 관계를 나이로 환원해 수직적 위계를 강요했던 과거는 이미 끝났다. 대신 한국식 나이는 호칭 어휘와 결합해 한국 특유의 찐한 관계문화를 유지시키는 기반이 됐다. 물론 한국인들 중 이런 문화에 질려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미 한국인의 정신과 언어생활에 강하게 자리 잡은 나이문화와 호칭을 깔끔하고 완전무결하게 수평적으로 바꾸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게다가 오히려 한국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 일각에서는 이를 독특하고 재밌는 문화로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도 있다. 그렇게 만 나이와 세는 나이의 동거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으니, 이 동거가 자연스레 정착된다면 미래에는 옛 사람들이 나이주의 철폐를 갖고 그렇게 싸웠던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정부가 올해부터 나이의 법적사회적 기준을 만 나이로 통일하기로 했다. 현대사회에서는 의무와 권리가 연령에 따라 정해지는데, 이때는 아무래도 출생 후의 육체적지적 성숙도와 노화의 정도가 중요할 것이니 국제표준인 만 나이를 도입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금껏 만 나이가 아닌, 한국식이라 일컫는 세는 나이를 써왔을까? 세는 나이는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도 귀중한 생명이라 해서 수태 기간의 1살에다 출생 후에 보낸 설(새해 첫날)의 수를 더한 나이다. 바로 설에서 나이의 단위인 살이 나왔다. 나이를 세는 단위인 한자어 세(歲)도 해를 뜻하므로 설과 매한가지다. 나이는 낳다에 접미사 이가 붙어 생겨난 말로, ㅎ이 탈락해 나이가 됐다. 낳은 날로부터 얼마가 지났는가를 따지는 단위다. 그러나 서양처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를 의미하는 단순한 양적 개념이 아니다. 영어 How old are you?는 출생 후 보낸 시간을 의미하기에 몇 살 몇 개월까지 답한다. 반면 한국인에게 나이는 시간의 새로운 시작점인 설날을 기준으로 하는 복합적인 개념이다. 즉 단순한 지속이 아니라 단위 시간의 누적 개념인 것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인간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생각하는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단위 시간 속의 특정한 지점에 인간이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음양오행설에 따라 우주 만물이 생성되고 변화한다는, 그리고 사람도 우주의 한 부분이어서 이 원리에 지배를 받는다는 동양적인 세계관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에게 적용된 세는 나이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것은 저 우주 속에 흩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몸 안에 내재화된다. 한국어에 존재하는 나이를 먹는다는 표현이 이를 입증한다. 도대체 어떻게 나이를 먹을 수 있을까? 왜 한국어에는 이 같은 표현이 있을까? 사실 문헌 부족으로 이 문제에 학술적인 답을 내기는 어렵다. 다만 먹다와 결합하는 다른 표현들의 존재를 근거로 간접적으로 추정할 뿐이다. 예컨대 우리는 마음을 먹는다고 한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일을 하라든가, 그가 앙심을 먹고 투서를 했다든가 하는 식으로 표현한다. 나아가 우리는 겁도 먹고 충격도 먹는다. 또 욕과 꾸지람, 핀잔도 먹는다. 또 더위를, 이자나 이문을 먹는다고도 하며, 부당한 방식으로 수익 따위를 가로채거나 차지할 때 돈을 먹는다거나 뇌물을 먹는다고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수수료를 꿀꺽 삼킨다는 표현도 쓴다. 이 같은 표현들은, 추상적인 행위나 활동은 본래 개념화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그보다 직접적이고 원초적인 경험, 예컨대 신체경험 같은 것에 빗대 표현하려는 인간의 본능에서 나온 것들이다. 특히 먹는 행위는 그 어떤 것보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행하는 원초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그 전달력이 가장 강력하다 할 수 있다. 한편 사람이 먹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물에 어떤 성분이 배어들어 가는 현상도 먹는다고 한다. 옷감에 풀이 잘 먹는다, 화장이 잘 안 먹는다, 천이 물기를/습기를/기름을 먹는다, 솜이 물을 먹었다와 같은 표현들이다. 이는 먹는 행위를 매개로 해 나이를 몸에 내재화하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주는 사례라 하겠다. 이러한 내재화를 직접 나타내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나이가 든다는 표현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이가 몸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나무의 나이가자기 몸 안에 나이테로 육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나잇살이라는 표현의 존재도 이를 지지해 주는 또 다른 증거인데,세월이 내 몸 안에 살의 형태로 축적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 말은 나이를 먹었지만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할 때도 쓰인다.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왜 그러세요?라면서. 시간을 몸 안에 내재화할 수 있는 한국인들이여, 이제 비록 법률적으로는 단순 지속 개념인 만 나이로 전환하지만, 한국식 세는 나이의 본래 취지대로 수태 기간의 생명도고려함으로써 새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설날을 기점으로 나이를 먹음으로써 지난 시간을 성찰하고 자신의 나이에 걸맞은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것도 부디 잊지 않고 간직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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