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란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함께 먹고살 수 있는 곳이다. 마을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믿고 기대고 돌보고 보살핀다. 곧 삶과 일, 그리고 쉼과 놀이가 하나 되는 공동체(commune)다. 마을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마을주민을 넘어 마을시민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 마을시민이란 지역사회 공동체의 혁신적 사회자본으로서 마을지역사회 공동체사업을 관리경영하는 역량과 권한과 책임을 두루 갖춘 주체적 인적 자산이다. 마을공동체사업을 하려면 마을시민들이 연대해 마을기업부터 세워야 한다. 마을공동체사업의 기획과 관리와 경영을 책임질 사업주체가 바로 마을기업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을기업은 마을공동체사업과 사회적경제사업을 연계하고 융합하는 효과도 발휘한다. 사업 준비 및 입문 단계에서 마을공동체사업의 학습과 훈련을 위한 학교이자 훈련장으로 기능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마을시민과 마을기업이 준비되면 자연스레 살림마을로 나아갈 수 있다. 살림마을은 나도 먹고살고, 우리 마을도 먹여살리는 마을을 뜻한다. 지난날 이른바 마을만들기가 그토록 어려웠던 이유는 마을공동체사업 현장에 마을시민과 마을기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업을 책임질 사람(마을시민)과 조직(마을기업)도 없는 상태로 마을을 행정적으로, 제도적으로 건설하고 개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마을지역공동체 정책의 출발지점은 지역사회개발중앙위원회가 설립된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6년엔 이른바 지역사회 개발운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부락민 자조개발 6개년 계획이 시작됐다. 1961년 국가재건국민운동, 1970년 새마을운동 등 1970년대까지 20여년간 공동체 재건과 산업화라는 국가주도동원형 관제사업 일변도였다. 1980년부터 10여년 동안은 정주환경 개선, 생활권 개발에 매달렸다. 시장 개방을 시대적사회적 배경으로 깔고 기반시설, 정주환경 위주로 마을 단위 사업이 추진됐다. 토건공학에 의한 물적 기반 조성과 기능적 정비라는 전시행정형 사업이 대세였다.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마을에도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한국식 마을공동체운동이 본격 대두된다.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복원을 추구하고 다양한 개인의 연대를 꿈꾸려는 이른바 신사회운동의 일환이었다. 민간 차원의 자생적 마을공동체, 생태공동체, 귀농 등의 운동이다. 1990년대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지역 단위 공동체사업이 제도화됐다. 지자체는 물론 중앙정부도 주민참여, 상향식의 마을만들기에 나섰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서울 등 도시에도 마을공동체사업이 전파됐다. 소외, 단절, 사회적 인간의 몰락 등으로 나타난 현대 도시사회의 병리현상이 심각하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인 셈이었다. 그럼에도 현대 대한민국 자본주의 체제에 포섭되고 포위된 한국의 마을은 고유의 정체성과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있다. 대다수가 한낱 관료적 행정 단위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과소화를 넘어 공동화로 접어든 지역사회는 공동체로서의 진정성이나 지향점조차 약화되거나 상실된 지 오래다. 이제, 한국의 마을도 1987년 체제에서 벗어나야 하는 건 아닌가. 가령 공동체 운동에서 사회경제적 사업으로 마을공동체의 설계 방법론과 운영 패러다임을 혁신적으로 전환해야 하지 않는가. 그래야 일과 삶과 놀이가 하나 되는 마을공동체에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여기저기 공사소음이 들려오며 아직은 삭막하고 주거환경이 열악한 세종 신도시. 맞벌이 세대의 육아 고민이 날로 늘어가는 가운데,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파트 생활을 살펴보게 됐다. 이런 고민을 풀기 위해 새샘마을 6단지는 돌봄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활성화를 역점 사업으로 삼았다. 입주자대표회의를 중심으로, 엄마의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시작한 자생단체 채움과 작은도서관 운영위원회, 세종시 우수상에 빛나는 경로회도 함께 참여해 공동체 활성화를 추진하고, 관리사무소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주민주도형 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확대해가고 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공감의 조성이었다. 월보 형식의 소식지 발간사업을 시작으로 가족 단위의 아나바다 바자회, 한마음 체육대회, 음악회, 경로회와 함께하는 추계탐방 등 다양하고 풍성한 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통해 삭막한 아파트지만 이웃들끼리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두 번째로 주민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마련하는 데 힘썼다. 단지 내에 방치돼 있던 빈 공간을 교육문화돌봄 기능을 담은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사서 자원봉사자와 노년층이 함께 유아들을 돌보는 독서형 돌봄공간인 작은도서관, 교육돌보미를 기반으로 한 동아리방과 방과후센터를 개소했다. 시설 이용료를 관리비로 부과하지 않고 입주민 모금 및 공동체 협약, 외부지원금 유치 등으로 일궈냈기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이러한 공감과 공간을 바탕으로 다양한 공동체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하며 채워나갔다. 방과후교실을 개설해 교육놀이와 연계한 틈새돌봄 문화를 확대해나가고, 독서문화교실을 열어 유아부터 초등학생은 물론 부모와 아이가 교감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도서구비 지원사업을 통해 도서를 확충하고 독서통장을 발급하는 등 독서 캠페인 활동도 이어갔다. 또한 세종배움터 사업을 통해 경력단절 여성과 학부모들이 독서지도사, 미술심리상담사 전문자격 등을 이수했으며, 입주민들이 자신만이 가진 재능을 기부해 엄마마음돌봄 공감교실, 과학교실, 힐링교실, 미술교실, 공예교실 등 다양한 장르의 수업을 열기도 했다. 나아가 단지 안에서 이러한 활동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마을공동체와 자매결연을 맺는 등 마을 단위로 확대해나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주민주도형 돌봄공동체 여성가족부 최우수(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지역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올해 역시 여성친화도시 조성 및 돌보미 사업을 기반으로 보다 체계적인 주민주도형 공동체 활성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방과후교실 및 작은도서관 활성화 보조사업을 통한 틈새돌봄 확대, 공동육아교실 신규 공간조성 사업을 통한 체계적인 돌봄공동체 프로그램 육성, 탁구장을 비롯한 신규 공간 확대를 추진하고 다양한 공동체 프로그램 역시 시즌2로 꾸준히 이어가며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계획이다. 아이들에겐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놀이와 배움이 가능한 공간이자 어른들에겐 육아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채워가는 곳. 바로 우리 마을, 새샘 6단지다. 올해도 공동체 활성화 이상의 주거문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주민들 모두 뜻을 모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아이들을 위한 어른들의 몫이라는 다짐과 함께.
전북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615, 마을기업 함해국이 자리한 곳이다. 무농약으로 재배한 구절초로 차(茶), 비누, 천연화장품, 생활용품 등을 생산판매하는 마을기업이다. 대학원에서 함라마을을 연구하다 우연히 이곳을 알게 됐어요. 함해국이라는 이름과 제품 디자인을 제안한 걸 계기로 이렇게 10년 넘게 할 줄은 몰랐죠. 유은미 대표는 함해국이 시작 당시엔 취약계층 지원사업이었으나 그의 도움으로 소위 히트를 치며 큰 수익을 올렸다고 했다. 졸업 후 그의 손에 맡겨진 함해국은 2010년 농업회사법인으로 독립해 2013년 신규 마을기업으로 지정됐다. 2년간 정부 지원을 받았고, 구절초 가공방법을 여러 차례 연구해 판매제품을 늘리며 마을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왔다. 지역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2015년엔 우수마을기업으로까지 선정 됐다. 저희 제품은 모두 유기농이에요. 3년간의 무농약 재배, 3년간의 전환기를 거쳐 유기농 인증을 어렵게 받아냈어요. 유기농 인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초작업이 중요했다.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작업인 데다 직접 재배와 생산을 제1원칙으로 하다 보니 일손이 많이 필요했다. 함해국은 마을에서 매년 평균 다섯 명, 바쁠 때는 열 명의 할머니들을 고용해 함께해 왔다. 올해는 청년인턴제를 활용해 지역 청년 1~2명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다만 이를 위해선 오래 같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유 대표는 마을기업 권역을 함라면에만 국한하는 게 아니라 익산시 전체로 보고 있다. 함해국과 같은 마을기업이 늘어나면,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잠깐이라도 슈퍼에 들러 물건을 사는 등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안이 될 거라는 것이다. 함해국에서는 제품 생산뿐 아니라 구절초 꽃따기, 천연비누 만들기, 향기주머니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초반에는 어린 학생들의 현장학습이 주를 이뤘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농촌 선진견학 등 기관에서의 관심도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한여름, 한겨울 같은 비수기를 극복하고자 고안해낸 방안인데 매출이 늘어나는 건 물론이고 마을 분위기를 살리는 데까지 기여하고 있었다. 외지인으로서 마을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게 쉽기만 한 건 아니었다. 마을 주민과의 관계가 그랬다. 유 대표는 요청이 들어올 경우엔 마을 행사를 후원하거나 직원들과 만든 간식을 나누는 등 소소한 참여는 하지만 마을 잔치 등을 열지 않아 다소 불편한 시선을 받은 적도 있었다. 저만의 기준이었죠. 제 행동이 앞으로 마을에 들어올 청년이나 귀농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테니까요. 그들이 마을에서 가질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습니다. 마을기업 대표로서는 제품 홍보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했다. 아무리 훌륭한 제품일지라도 대기업 제품보다 품질은 낮고 가격은 비싸다고 여기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의 지원금보다는 공공기관 등에서의 공동구매를 통해 제품이 적극 알려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행정안전부에서 지정한 마을기업 수는 총 1,592개에 달한다. 마을기업은 이렇게 많은데 근거 법령이 없다는 게 종종 아쉬웠어요. 유 대표는 과거 유기농 인증을 받으려고 신청했던 땅이 임차한 곳이라는 이유로 어떤 보상도 없이 인증을 거절당했던 때를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지금처럼 지치지 않고 꾸준히 지켜나가 100년 기업이 될 거예요(웃음). 자신감 넘치는 유 대표의 포부다. 공익적 가치 실현과 마을 경쟁력 강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함해국을 응원한다. 조우리 나라경제 기자
2016년 10월 경상남도교육청과 김해시는 학교와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지역교육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 협약을 맺고 김해행복교육지구를 지정했다. 김해행복교육지원센터는 학교와 지역이 함께하는 교육공동체를 목표로 학교교육 및 마을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다. 여러 사업 중에서도 필자가 소개할 장유 행복마을학교는 공교육 혁신과 마을교육공동체 지원에 대한 장유지역 주민과 학부모의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해 4월 첫발을 내디뎠다. 장유 행복마을학교는 기린 프로젝트라는 청소년 자치배움터를 시작하면서 우선 청소년 토론회를 개최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욕구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1년간 행사를 직접 기획진행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토론회를 진행하며 지켜본 아이들의 욕구는 크게 두 가지였다.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를 토대로 로봇코딩, 공예, 만화 그리기, 유튜브 제작, 화장하기, 애니메이션 성우반, 청소년문화기획단 등이 개설됐다. 여러 활동 중에서도 청소년문화기획단은 지역 문제, 청소년들의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기획해보는 프로젝트다. 청소년문화기획단은 지역의 문화행사에 참여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했으며 장유 행복마을학교를 청소년 자치배움터의 장으로 만들기 위한 기획을 실천했다. 지난해 참가하거나 기획진행한 행사들로는 여성축제 뮤즈페스타, 아시아 음감회, 김해뮤직페스티벌 연어 등이 있다. 애니메이션 성우반은 지역방송 아나운서 및 교육방송 성우로 다년간 활동했지만 경력이 단절됐던 한혜원 마을교사의 주도로 진행됐다. 수요일 오후 4시부터 저녁 7시까지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중학생들, 게다가 인문계 고등학생들까지 열성적으로 참여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틈틈이 연습을 하며 더빙에 적합한 발성을 익혀나갔다. 스스로 영상을 선택해 적절한 대사를 작성하고 직접 더빙하는 활동에 푹 빠졌다. 나아가 유튜브에 길섶의 한울소리라는 채널을 만들어 더빙 영상을 올리며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꾸준한 활동 덕에 2019년 말 제작된 경상남도교육청 행복교육지구 광고에 메인 성우로 발탁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게임에서 지더라도 슬퍼하지 않고 이기더라도 기뻐하지 않는 의연한 태도를 기르는 것을 목표로 진행된 보드게임 프로젝트 참가자들은 김해 보드게임 동호회와 협력해 4월 출시를 목표로 김해시를 소개하는 보드게임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에는 마을교사들의 뒷받침이 있었다. 각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분들임에도 마을교육공동체나 마을교육과정은 처음 접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조금은 걱정도 됐다. 하지만 매달 모여 꾸준히 연수를 진행하면서 사회적경제, 협동조합, 행복교육지구, 행복학교 등의 다양한 주제들을 공부하고 이해도를 높여나갔다. 이처럼 장유 행복마을학교 아이들은 오늘도 학교 밖 마을 안에서 자발성, 책임감, 적극성을 가지고 즐겁게 배우고 익히며 성과물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며 삶을 살아가는 의지와 역량을 기르고 있음은 물론이다. 올해에도 기린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이 체인지메이커(changemaker)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독려하려 한다.
새뜸마을, 해들마을, 범지기마을. 신도시로 이주해 아파트마다 붙은 마을이라는 이름을 볼 때면 의아했다. 똑같이 지어진 아파트 생활에서 마을의 정서에 어울리는 건 찾아볼 수 없었기에. 어쩐지 쓸쓸한 생활이군 하며 회사와 집을 오가다 만난 책 「어느 날, 변두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에는 도시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꽃을 같이 심는 친구며 강렬한 관계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마을생활에 대한 부러움이 어떤 열망으로 바뀌려 할 때 이끌린 기사 한 조각. 어느 마을에서 마을영화제를 열었는데, 마을사람들이 내놓은 빨간색 헌 옷 등을 오며가며 바느질해 레드카펫으로 깔고 손수 만든 굿즈를 팔았단다. 주민 120여명이 자발적으로 영화제를 도왔고 관련 마을단체만 40여개였다고. 영화 상영에만 그치지 않고 주민들이 워크숍까지 해서 직접 찍은 영상도 틀었다고 했다. 가을바람 부는 야외에서 만끽한 영화제가 꿈결 같았다는데. 아니 무슨 마을에 단체가 40개나 돼?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하는 호기심에 마을네트워크 홈페이지를 둘러보다 급기야 아파트 시세를 검색해보기까지! 사심을 안고 만나본 이선경 예술플랫폼 꿈지락 협동조합(이하 꿈지락) 대표는 바로 그 영화제, 머내마을영화제를 이끈 총괄프로듀서이자 그 영화제가 태동할 수 있었던 끈끈한 마을, 용인시 수지구 동천마을의 주민이다. 영화 보는 모임에서 무려 영화제 아이디어가 나왔다던데. 이렇게 커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마을에서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영화나 보자 해서 모인 게 시작이었다. 주민센터에 마을극장(머내극장)을 열어 한 달에 한 번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영화감독인 한 멤버가 소소하게 영화제도 가능하다고 하더라. 그 말에 꿈을 갖게 됐다. 그래서 어떤 영화제인가. 9월 초순 느티나무도서관, 숲속도서관, 이우학교, 동천동주민센터 등 마을 곳곳에서 열리는 머내마을영화제다. 머내는 이곳의 옛 지명이다. 영화 선정에서부터 진행, 부대행사, 개막공연 등 전 과정을 주민 손으로 한다.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궁금하다. 마을 무비큐레이터들이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영화, 좋은 영화인데 인지도가 낮은 영화들을 위주로 고른다. 지난해 2회 영화제에서는 개막작 〈배심원들〉을 비롯해 〈나, 다니엘 블레이크〉, 〈마이크롭 앤 가솔린〉, 〈프란시스 하〉,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등 16편을 상영했다. 영화 외적인 콘텐츠로도 각광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영화제에는 레드카펫이 있어야 된다기에 돈도 없고 하니 일단 직접 만들어보자 해서 빨간색 헌 옷을 모았다. 그걸 주민들이 일일이 이어 붙여 바느질했다. 사람들이 영화제에 와서 바닥에 깔린 레드카펫부터 보더라. 직접 만든 거니까. 2회 때는 개막공연에 유명한 팀을 부른 게 아니라 마을의 여러 동아리들이 참가해 연극, 춤, 노래 등이 어우러진 시네마 퍼포먼스를 펼쳤다. 모두 아마추어들이지만 용기를 냈다. 마을주민인 연극 연출가의 도움도 있었고. 100% 주민들끼리 만든 영화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냥 와서 보기만 하면 제3자지만 포스터 하나라도 붙이면 내가 만든 영화제가 되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끔 했다. 자원봉사자까지 120여명이 참여했다. 대단히 든든한 인원이지만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해 적합한 역할을 드리는 게 고민스럽긴 했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어렵진 않았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태풍이다. 우린 야외 영화제인데!(웃음) 2회 영화제 개막제 때 태풍이 관통한다고 해서 실내에서 진행하는 플랜 B까지 준비했다. 결국 잘 치르긴 했지만 아마추어임에도 아마추어가 아닌 듯 중심을 잡느라 애를 먹었다.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나. 감사하게도 용인문화재단의 우리동네예술프로젝트라는 공모사업에 선정돼 지원을 받았다. 그렇다고 예산이 충분한 건 아니어서 타이트하게 진행했다. 끝나고 보니 지원액의 4배 정도 되는 규모로 치렀더라. 부족한 건 사람으로 메웠다. 이제 3년 차 공모를 준비하려 한다. 진짜 마을사람들이 같이 만들어나가는 나름 독특한 영화제이니만큼 시에서도 지원해주면 좋겠지만, 안 되더라도 우리 색채를 살리며 한 사람 한 사람씩 마음을 모아 하는 것도 의미 있다는 생각이다. 영화제 하면서 이것만큼은 꼭 이루고 싶다, 했던 게 있다면. 돈을 벌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한다는 게 기본 철학이다. 회의할 때 주로 했던 말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마음 낼 수 있는 것만 합시다였다. 모두가 그걸 지켜준 덕에 일이 커지면서도 큰 갈등이나 잡음이 없었다. 직접 영상도 만들었다던데. 주민들이 만든 것도 상영해보자 해서 큰 기대는 않고 1분 영상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참여자들이 많았다. 영화제 전에 미리 영상 제작에 대한 워크숍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상영해보니 영화보다 훨씬 더 호응이 뜨겁더라. 영상에 나오는 사람이 아는 주민이다 보니 조금만 뭘 해도 웃고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런 공감의 반응이 생각보다 컸고 그게 마을영화제만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예상 외로 동천마을이 아파트촌이더라. 그런데도 이런 마을스러운 곳이 됐다니 놀랍다. 우리 마을의 이우학교를 빼놓고 이야기할 순 없을 것 같다.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들은 대개 더불어 사는 삶에 지향점을 둔다. 나 역시 그랬지만 누군가 이거 같이 해볼래? 하면 모여서 함께한다. 마을 대부분의 강좌, 동아리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다 세월호를 계기로 학부모뿐 아니라 마을 차원에서 세월호를 알리고 뭐라도 해보자는 분위기가 생겼다. 그렇게 마을의 단체와 개인들이 모인 동천마을 네트워크가 생겼고 마을축제 등 각종 마을행사를 함께하고 있다. 꿈지락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사실 놀려고 만들었다(웃음). 직장을 그만두고 놀아야지 했을 때 이곳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이우학교에 다녔었기 때문에 익숙한 곳이었다. 어느새 마을에서 춤, 영화 등 동아리를 5개나 만들고 있더라. 혼자 노는 게 아니라 함께 놀다 보면 사람들의 예술적 감성을 더 건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모임을 만들었고 꿈지락으로 발전했다. 동천마을이 달랐던 건 뭐였나. 마트에 가도 아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는 것?(웃음) 길거리를 지나다가도, 공원을 산책하다가도 친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일상에서 불현듯 이웃을 만나는 즐거움이 가장 좋았다. 든든한 지지자들이 마을에, 가까이에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올해 계획이 궁금하다. 꿈지락은 올해 4년 차인데, 문화예술 관련 행사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인 만큼 예술적 리더십을 조금 더 키워볼 생각이다. 사람들의 예술적 감수성을 더 확산시키려면 우리 정체성이 더 분명해야 할 것 같아서다. 머내마을영화제는 공연 등 행사보다는 영화에 방점을 두고자 한다. 개인적으로는 혹시 감독 아녜스 바르다를 아나? 88세의 나이에 로드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만든 분인데 그녀처럼 살고 싶다. 양은주 나라경제 기자
대전 서구 관저동엔 특별한 신문이 있다. 마을의 소통과 변화, 공동체 문화 확산을 위해 지역주민이 직접 만들고 배포하는 마을신문! 바로 관저마을신문이다. 관저마을신문은 2011년 11월 창간호를 시작으로 새해를 맞으며 80번째 신문을 냈다. 대전 최초의 주민주도형 마을신문으로 대전 기네스에 등재되는 경사도 있었고, 제작비 부족으로 발행이 중단되는 어려움도 겪었다. 그렇게 햇수로 10년째, 관저마을신문은 주민을 만나고 마을과 사람을 기록하며 마을미디어의 역사를 써가고 있다. 관저동은 서구의 서쪽 끝에 위치해 있다. 관저1동과 2동으로 나뉘며, 12동을 합친 인구는 6만명을 훌쩍 넘는다. 주민 평균연령은 38세 정도로 대전의 대표적인 젊은 동이며, 주민의 대다수는 아파트에 거주한다. 관내에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가 모두 있는 신흥 개발지역으로, 대전에서는 공동체성이 특히 강한 곳으로 손꼽힌다. 이곳에서 관저마을신문은 매월 1회 타블로이드 판형으로 1만부 발행된다. 처음에 신문을 낼 때는 8면으로 2만부를 찍어서 아파트단지와 상가 지역에 돌렸다가 5천부로 줄이기도 했고, 16면으로 1만부를 발행하기도 했다. 현재 지면은 8면으로 마을 이슈, 주민들의 일상, 상가나 학교 소식, 마을공동체 이야기 등을 촘촘히 엮어내고 있다. 관저마을신문과 함께하는 마을공동체는 해뜰마을어린이도서관, 모두의에너지자립마을학교, 통합놀이학교다동사회적협동조합, 서구청소년드림오케스트라, 관저올래프리마켓, 청소년교육공동체 꿈앗이, 관저종합사회복지관 등 다양하다. 이들은 마을신문과 함께 관저공동체연합을 구성해 보다 살기 좋은 마을, 안전하고 건강한 마을로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마을신문은 주민과 주민, 주민과 공동체, 공동체와 공동체를 이어주며 마을 공론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관저마을신문의 주인은 주민이다. 마을신문의 모든 일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어 가능하다. 아이템을 발굴하고 기획하는 일, 취재하고 기사를 쓰며 지면을 편집하는 전 과정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다. 매월 신문이 나오면 지역 청소년들은 배포에 힘을 보탠다. 지난해에는 제1기 어린이 기자단을 선발교육해 관소행(관저동 어린이의 소소하고 행복한 이야기) 창간호를 발행하는 기염을 보였다. 초등학교 4~6학년으로 구성된 어린이 기자단 7명은 매주 1회씩 만나 마을 어린이들이 궁금해하는 주제를 공유하며 어린이가 마을의 주체가 되고 마을의 리더가 될 수 있는 활동경험을 쌓았다. 올해도 어린이 기자단 2기를 모집해 지원할 계획이다. 또 신문뿐만 아니라 라디오를 통해서도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관저FM 개국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마을의 돗자리영화제를 통해 처음 선보인 관저FM 시험방송에서 주민들은 큰 호응과 기대감을 보여줬다. 관저동 아줌마, 일 내다!를 외치며 태동한 관저마을신문. 스스로를 용기 있는 아줌마라 칭한 10년 전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관저마을신문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신문, 이웃끼리 마음과 생각을 나누는 신문,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와 믿을 수 있는 기사가 가득한 신문, 지역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감시자 구실을 해내는 신문. 그들의 처음 포부를 되새기며 주민들에게 다시 한 번 제안한다. 함께라서 즐거운, 함께라서 행복한, 함께라서 아름다운 관저마을신문. 함께하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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