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가심비에 이어 가치소비 트렌드가 뜨고 있다. 가치소비는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본인의 만족도가 높은 재화와 서비스에 과감히 소비하고 그렇지 않은 영역에서는 소비를 절제하는 성향을 지칭한다. 정의상으로 보면 가치소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소비자는 언제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제품과 서비스에 돈을 써왔고 지금도 그렇다. 왜 새삼스럽게 가치소비가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을까? 이는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내용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집단주의 사회에서 성장한 밀레니얼 윗세대 소비자들이 추구하던 가치의 두 키워드는 과시 가능성과 품질 대비 낮은 가격이다. 개인의 가치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타인지향적 소비행위가 보편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들에게 자신의 부와 지위, 힘을 과시하기 위한 과시소비가 중요해지고 유명 럭셔리 브랜드를 구매할 때는 품질보다 그 이미지를 소비하는 대가로 기꺼이 비싼 값을 지불한다. 반면 과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비영역에서는 낮은 가격이 선택의 주요 기준이 된다. 남이 보지 않는 사적인 영역에서 소비되는 필수품 같은 경우에는 조금이라도 낮은 가격을 지불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발품을 파는 현상이 나타난다. 밀레니얼 및 Z세대의 가치소비는 자기만족적이고 실속지향적 오늘날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이끌어가는 가치소비는 그 내용이 다소 다르다. 서구의 개인주의 가치를 흡수하고, 풍요로워진 사회 탓에 개인 단위의 생존과 독립이 가능해진 오늘날 젊은 세대는 윗세대에 비해 타인지향성이 매우 낮다.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남의 눈에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수의 패턴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개성을 발굴하고 표현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가치소비는 과시적이기보다는 자기만족적인 성격이 강하며 실속지향적이다. 또한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향유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 가격보다 품질지향적인 성향을 보인다. 얄팍한 주머니를 가지고 동일한 품질 대비 최저가격을 추구하던 윗세대에 비해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 수준에서 최고의 품질을 제공하는 제품을 찾아나서는 특징이 있다. 새로운 가치소비의 가장 큰 특징은 본인이 가치를 부여하거나 만족도가 높은 극히 한정된 분야에서 매우 과감하게 소비한다는 점이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소비자들이 가치소비를 추구하는 분야는 여행과 건강한 먹거리, 가전제품, 의류 등의 순이다. 멋진 운동화를 사거나 매일 프랜차이즈 커피를 마시거나 택시를 타는 돈을 아끼는 대신 휴가 때 럭셔리 호캉스를 즐기거나 캐나다 오지의 오로라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식이다. 수개월 동안 라면과 김밥을 주식으로 삼아 비용을 모은 다음 스페인의 프로축구 경기를 관람하러 날아가기도 한다. 이런 특별한 경험은 SNS에서 좋은 자랑거리가 된다. 많은 사람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물질을 과시하는 것보다 개인의 심리적 만족과 행복을 과시하는 것이 더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 새로운 가치소비는 추구하는 가치의 유형에 따라 다양하게 나뉠 수 있다. 첫째는 자족형 가치소비다. 이에 속하는 소비자들은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개인적 니즈에 충실하게 소비함으로써 자존감을 고양하고 심리적 만족감을 추구한다. 이들은 성장을 위한 다양한 배움이나 여행, 취미활동, 건강증진, 심리적 위로와 힐링을 위한 소비에 많은 돈을 쓰고 최고급의 품질을 추구한다. 둘째는 실속형 가치소비다. 타인의 시선을 크게 개의치 않는 것은 자족형과 같으나 가격 대비 최고의 품질을 추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유형은 다른 소비자에 비해 유명 브랜드 지향성이 낮고 유통업체 자체 브랜드(PB; Private Brand) 상품을 더 많이 소비한다. 실속형 소비자가 추구하는 가치는 스스로가 합리적이고 스마트하다는 성취감과 자신감이다. 이들은 수많은 정보를 탐색하고 비교하며 똑똑한 소비자로서의 자신감을 과시하고 기꺼이 시장의 소비전문가로서 가치소비 트렌드를 보급하는 데 앞장선다.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를 창출하라! 셋째 유형은 의미형 가치소비다. 개인적 욕망 대신 친환경이나 공정함, 공생, 윤리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가치를 추구하는 유형이다. 이 유형의 소비자들은 제품 자체의 품질이나 가격보다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의 여러 이슈에 주목한다. 생산과정에서 동물실험을 하거나 노동착취를 하거나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하거나 비윤리적인 갑질행위를 하는 기업의 제품은 보이코트(boycott)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기업이나 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운동(바이코트, buycott)을 벌인다. 나아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일치하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하기도 하고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스스로 무보수 브랜드 양육자가 되기도 한다. 의미형 가치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다른 유형에 비해 아직은 소수지만 계속 성장하고 있고 목소리가 커서 시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새로운 가치소비 트렌드에 시장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대응의 핵심은 소비자 개개인이 원하는 가치를 발견하고 제품에 구현해 소비자가 소비를 통해 자긍심을 살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30만 원이 넘는 가격을 주고 찢어진 현수막으로 만들어진 가방을 구매한 소비자나 유기견 보호글귀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소비자는 많은 것이 불편하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소비한 것이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어떤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제품 자체보다 제품 생산과 유통 및 소비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 부가되는 서비스를 설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타깃과 제품의 초세분화로 이어질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막대한 비용이 들고 부담이 되는 변화지만 디지털 플랫폼과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도약의 기회이기도 하지 않을까?
지난 9월 23일 한국리서치는 방식은 달라도 가치가 모여 실현하는 착한 소비를 주제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8세 이상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여론조사를 통해 소비자들은 흔히 착한 소비라 불리는 윤리적 소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여다보자.
비거니즘(veganism)이 유행이다. 메이저 뉴스에서도, 트렌드 매거진에서도 비건(vegan)의 삶에 대해 다룰 만큼 대중화됐다. 비거니즘이란 단어를 글자 그대로 사용하기 전에는 번역가들이 비건 혹은 비거니즘을 엄격한 채식으로 의역했다. 하지만 비거니즘은 식생활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간의 삶 전반에 걸쳐 동물착취를 하지 않으며 뭇 동물들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삶의 방식이자 철학이다. 비거니즘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된 건 깃털째 그라인더에 빨려 들어가는 닭과 병아리들의 비디오를 보고나서부터다. 인간의 향락만을 위해 태어나고 쓸모에 따라 분류돼 잔혹한 방식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거니즘에 처음 눈을 뜨게 되면 비건 라벨이 붙은 모든 것에 눈이 돌아가서 비건소비를 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비건 베이커리, 비건 패션, 비건 문구류(!). 모든 비건 라벨이 붙은 제품을 소비하는 행위는 내가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믿음을 사는 것과도 같았다. 내가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들이 - SNS에 올리는 모든 이미지까지도 - 나는 이렇게 신념이 뚜렷한 사람이고, 신념에 따라 가치소비를 하는 사람이야!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비건 제품은 신념이라는 부가가치가 붙기에 굉장히 비싸다. 비건 메뉴를 내세운 식당의 한 끼 평균 가격은 1만 원 초중반대다. 소비자들이 페미니즘, 퀴어, 에코프렌들리와 같이 가치소비되는 제품들에 신념을 이유로 가성비를 따지지 않고 잉여의 비용을 지불하듯, 비건 제품 역시 비슷한 가치소비 양상을 띠게 된다. 비건 라벨을 소비하는 삶을 살다 보니 여러 장벽에 부딪히게 됐다. 일단 나의 수입 안에서 비거니즘이라는 부가가치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비건 식당에서 외식을 하는 것도, 비건 패션 브랜드의 제품을 사는 것도 내 귀여운 월급으로는 불가능했다. 또한 구매 후 사용하지 않아 쌓이게 되는 비건 제품들을 보며 이것이 과연 비거니즘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공존을 위한 방법인지에 관해 의구심이 들었다. 다수의 비건 제품들 역시 석유를 사용해 만들어지고 그것이 소비자의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또 다른 탄소발자국을 남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품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쓰레기가 될 때, 이는 생태계에 또 다른 위협이 된다.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개인적인 비거니즘은 비(非)소비다. 비건의 삶은 잉여의 것들을 소비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 동물착취로 생산되는 것들을 비건의 방식으로 생산하는 대안을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비거니즘은 사치소비를 하지 않는 것, 기 생산된 제품을 다시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비거니즘은 이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생필품 이외의 물건을 사기 전에 하루 숙고하는 시간을 둔다. 이게 꼭 필요한 건지, 현재 내가 갖고 있는 물건 중 대안이 될 수 있는 건 없는지 고민한다. 외식의 빈도를 줄이고, 배달앱을 끊었다. 그리고 시장에서 싱싱한 채소를 구매해 직접 요리한다. 직장에는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 포장 용기 쓰레기도 줄이고, 남기는 음식도 줄이고, 또 내 손으로 직접 식자재를 다루며 차원이 다른 일상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드립커피 세트를 구매하고 테이크아웃 커피 구매 빈도가 줄었다. 또 가을 겨울 겉옷은 구제 상품을 구매해 입는다. 비거니즘은 끊임없는 소비로 이뤄진 삶을 유지하기에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쉬운 일상의 철학이다. 비거니즘을 접하고 실천해야겠다는 결심이 서면, 왜 비거니즘을 실천해야 하는지,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열심히 고민하고 도전하며 대안의 삶을 구성해나가야 한다. 모두의 개인적인 비거니즘을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응원한다.
2030 세대의 최근 화두 중 하나를 꼽자면 가치소비를 빼놓을 수 없다. 무작정 물건을 사기보단 해당 물건을 사면 사회에 어떤 영향이 나타날지 고민한다. 혹 물건이 노동착취로 만들어진 건 아닌지 한 번 더 검색도 해본다. 가치소비는 단순히 본인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는 행위가 아닌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적극적 표현방식이다. 가치소비는 크라우드펀딩으로 가장 잘 표현된다.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아 물품을 만드는 크라우드펀딩은 기존에 없었던 혁신적인 상품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놀이터인 동시에 가치소비가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시장이다. 최근 한 국내 유명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는 보호종료아동의 꿈을 담은 버킷백과 배지라는 제목의 펀딩이 올라왔다. 보호종료아동은 보육원이나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다 만 18세가 되면 자립지원금 500만 원을 받고 사회로 나가는 청소년을 뜻한다. 보육원에서 평생을 생활하다 사회로 나간 이들에게 500만 원을 쥐어주고 자립하길 바랄 수 있을까.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할지 막막하다 보니 사회에서 사기를 당하거나 제대로 자립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 펀딩은 이러한 보호종료아동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보호종료아동이 직접 만든 버킷백과 배지를 선보였다. 펀딩을 주관한 이들은 보호종료아동에게 세 달간 디자인 교육을 실시한 뒤 보호종료아동이 제품 제작과 판매 전 과정을 주도하도록 했다. 생선을 낚아 손에 쥐어주기보단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준 셈이다. 이런 취지에 소비자들은 즉각 공감했다. 펀딩이 마감된 10월 15일 기준, 첫 펀딩 목표 액수였던 50만 원을 훌쩍 넘은 1,960여만 원이 모였다. 후원자는 734명이나 된다. 버킷백과 배지를 직접 만든 보호종료아동들은 이번 경험을 통해 사회에서 홀로서기를 할 자신감을 얻게 됐을 것이다. 700여 명의 조그마한 신념이 모여 이들의 삶을 바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달가슴곰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주는 프로젝트도 성공한 가치소비 크라우드펀딩 중 하나로 회자된다. 반달가슴곰이 작은 철창 안에 갇혀 사육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신념하에 많은 사람이 반달가슴곰 모양 배지와 티셔츠를 구매했다. 300만 원을 목표로 한 펀딩에는 총 1,575만 원이 모였고, 해당 돈은 곰의 해먹 등을 만드는 데 쓰였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가치소비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쁜 현대인들이 자신의 신념을 표현할 수 있는 간편하면서도 영향력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최근엔 주위에서도 가치소비를 이야기하는 지인이 늘었다. 한 지인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살펴보다 티셔츠를 구매하면 소방관에게 후원금이 전달되는 펀딩을 보고 바로 결제를 진행했다며 평소 소방관을 존경했는데 티셔츠도 사고 후원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만족했다고 했다. 문득 대학생 시절, 의미 있는 사회활동을 주도적으로 하던 선배가 떠오른다. 탈북자들과 함께 대학교를 찾아가 탈북자 인식 개선활동을 하고, 인종차별 인식을 줄여보겠다며 외국인들과 함께 신촌에서 프리허그 활동을 진행했다. 신념에 따라 조금이라도 실천하다 보면 사회가 바뀌는 거야라고 말하던 모습이 선하다. 선배처럼 거창하진 못해도,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가치소비 역시 사회를 바꿔나가는 작지만 큰 실천이다. 그렇게 조금씩 세상이 바뀐다.
2010년대 중반 재계에선 사회공헌활동(CSR)이 유행처럼 번졌다. 그러나 대부분 보여주기식 일회성에 그쳤다. 소비자들도 처음에는 박수를 쳤지만 지속되지 않으니 금방 잊었다. 요즘은 달라졌다. 수십 년간 꾸준히 선행을 하거나 아예 경영 원칙으로 삼는 기업들은 챙겨 본다. 갓뚜기(오뚜기), 바보LG(LG전자), 파타구치(파타고니아) 등 명예로운 별명을 지어주고 입소문도 내준다. 반면 갑질 사례가 들통난 일부 기업의 제품은 적극 불매하며 응징 소비에 나선다. 착해야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체감한 기업들은 이제 진지하게 착한 경영에 임하고 있다. 경영 전략에서 대의명분(cause)에 부합하는지를 강조하는 코즈(cause) 마케팅이 활발하다. 최근 통큰 선행으로 화제가 된 호텔신라가 대표 사례다. 호텔신라는 지난 10월 울산 주상복합 화재로 이재민이 된 주민들에게 신라스테이 객실 20개를 한 달간 무료로 지원하기로 해 국민적 찬사를 받았다. 한 달치 객실료로 약 1억 원의 비용이 들지만 그 이상의 브랜드 가치 제고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식품업계는 환경 파괴를 줄이기 위해 고기 대신 식물성 대체육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롯데리아는 지난 2월 대체육류를 활용한 햄버거 리아미라클버거를 선보여 8월까지 약 140만 개를 팔아치웠다. 오뚜기는 지난해 채식 라면 채황에 이어 만두, 볶음밥 등 채식 상품 라인을 늘렸다. 화장품업계도 식물성 원료를 활용한 제품을 적극 내놓고 있다. 올리브영은 주 고객층인 1020 세대가 가치소비에 집중한다는 점을 고려, 지난 6월부터 비건친환경 화장품에 클린뷰티 인증을 부여하고 있다. 클린뷰티로 선정된 12개 브랜드는 지난 8월 매출이 전월 대비 100.5% 올라 효과를 톡톡히 봤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6월 식물성 성분이 들어간 비건 프렌들리 브랜드 이너프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온라인에서만 구매 가능한 데도 10만 개 넘게 팔리며 히트를 쳤다. 갑질로 악명 높았던 프랜차이즈 업계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상생이 제1덕목이 됐다. 영업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맹점에 현금 지원(역전할머니맥주, 메가커피, 투썸플레이스), 로열티 면제(설빙, 김가네, 채선당), 식자재 지원(파리바게뜨, 죠스떡볶이, CU, GS25, 홍루이젠), 방역물품 지원(BBQ, 크린토피아, 이디야) 등의 상생 정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금융권에선 KB금융지주가 국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과 관련된 신규 프로젝트 파이낸싱 및 채권인수 사업 참여를 전면 중단한다며 탈석탄 금융을 선언했다.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ESG 경영의 일환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착한 기업으로의 변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한다. 기업의 이미지 제고는 물론, 자금 조달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란 평가다. 전영민 롯데액셀러레이터 대표는 저서 『코로나19 전과 후』에서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대형 사건이 터지면 그 순간의 인상이 오래도록 남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게 된) 코로나19 시대에 어떻게 했는가가 기업에 대한 이미지를 좌우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기업으로선 상생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라고 밝혔다. 백두산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세계적인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글로벌 ESG 펀드(사회적 책임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펀드) 규모가 지난해 말 9천억 달러에서 2028년 20조 달러에 달할 전망이라고 언급했다. 글로벌 연기금 및 패시브 자금 위주로 늘어나는 ESG 투자 수요를 감안할 때 (ESG 경영은) 원활한 자금 조달 및 발행비용 절감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가 윤리적 소비를 할 수 있게끔 가치를 파는 사람, 공정무역 기업가 이강백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대표를 찾아 이야기를 나눴다. 공정무역이 필요한 이유는. 공정무역은 대화가 있는 거래, 투명한 거래, 존중에 기초한 거래라는 특징을 갖는다. 절대빈곤 상태의 농민을 돕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농민이라고 특정한 이유는 전 세계 절대 빈곤자의 대다수가 소농이기 때문이다. 공정무역은 거래방식의 차이를 넘어 빈곤, 기후위기, 환경 파괴, 난민 등 현재 지구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는 주제다. 거대 자본의 약탈이 벌어지는 현장이 가장 빈곤한 상태고, 그 현장을 폐허로 만들어 지구에 심각한 문제를 만들기 때문이다. 1억 평의 밀림을 불태워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들고, 농약과 비료를 뿌려대 온난화를 유발하고, GMO 작물을 키운다. 이는 자연 매커니즘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소농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공정무역이 이야기되는 것이다. 2012년 창업해 지금까지 성장한 비결은? 처음 시작할 때 비전으로 삼은 것이 공정무역의 새로운 영역 개척이었다. 한국에 없는 상품을 발굴하고, 원재료를 주로 취급하는 기존의 공정무역과 달리 가공 등을 통해 부가가치를 만들고자 했다. 더 많이 시도하고 더 빨리 실패하자는 것을 모토로 계속 시도하고 실패하며 그 속에서 성공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공정무역 캐슈넛을 시작으로, 공정무역 패션후르츠 주스, 공정무역 커피믹스, 공정무역 빈투바 초콜릿 등을 선보였다. 카카오닙스는 지금처럼 막 알려지기 이전에 우리가 제일 먼저 내놨다. 홈쇼핑에서 판매된 캐슈두유도 눈에 띈다. 캐슈두유는 지난해 10월 출시했는데 반응이 좋다. 캐슈넛만으로는 판매량에 한계가 있어 국산콩과 공정무역 캐슈넛을 결합시켜 만든 국내 최초의 로컬페어트레이드(공정무역+로컬푸드) 상품이다. 유럽에서는 이렇게 공정무역과 로컬푸드가 결합되는 추세로, 빈곤한 나라는 물론 국내 소농도 돕는 시너지가 있다. 생산자들의 삶엔 어떤 변화가 있었나. 망고생산을 하는 필리핀 아이따족은 땅을 모두 뺏겨 산속에 산다. 이분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됐다. 학교를 가는 게 우리에겐 대수롭지 않을 수 있지만 그분들에겐 혁명적이라고 할 정도로 큰 변화다. 앞으로의 계획은. 공정무역에 영감을 주는 조직, 공정무역뿐 아니라 세상에 영감을 주는 조직이 되자는 야망을 갖고 시작했다. 가장 큰 꿈은 우리 사회에 실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생산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소비자들에게도 가치와 의미, 가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자부심이 되는 기업이 되고 싶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혁신적인 시도를 하려 한다. 캐슈두유를 유럽에 수출해볼 계획이고, 내년까지 신제품도 5개 정도 출시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윤리적 소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윤리적 소비는 투표행위와 같다. 투표는 4년에 한 번 하지만 소비는 매일매일 어떤 회사나 상품에 투표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윤리적인 데 투표를 하면 기업에 나쁜 방향으로 가면 배제될 수 있다는 압력이 돼 견제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서 윤리적 소비가 세상을 명확하게 바꿀 수 있다고 본다. 홍성아 나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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