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제품을 위탁생산하는 대만 제조업체 폭스콘의 리우 영 회장은 지난해 6월 세계의 공장처럼 일부 국가에 (공급망이) 집중된 과거의 모델은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에서 100만 명의 인력을 거느린 폭스콘도 공급망을 쪼개 다른 나라로 이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폭스콘은 올해 1월 베트남 정부로부터 아이패드와 맥북 공장 건설 허가를 받은 데 이어 인도에서 3월부터 아이폰 위탁생산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폭스콘을 세계 최대 전자제품위탁생산(EMS) 업체로 키운 곳은 중국이지만, 폭스콘은 현재 중국 중심의 공급망을 조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0월 대만 투자은행(IB) 전문가 CY 후앙의 말을 인용해 애플의 중국 협력사 럭스셰어가 미니 폭스콘으로 성장한 건 공급망 재편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중국과 그 이외의 공급망을 분리하려는 애플의 전략에 따라 부품업체의 합종연횡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후앙은 폭스콘도 중국의 생산시설을 언젠가는 매각해야 할 것이라며 애플은 중국시장 공급을 중국 업체에 맡기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대만은 미중 무역갈등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나라지만,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대만 기업들은 최근 수년간 중국 내 생산시설을 중국 경쟁업체에 매각하고 있다. 대만 스마트폰 케이스 제조업체 케이스텍은 중국 기업 렌즈에 생산시설을 433억 대만달러(약 1조7천억 원)에 매각했고, 대만 아이폰 부품업체 위스트론도 중국 럭스셰어에 공장을 매각했다. 코로나19가 뒤흔든 글로벌 공급망탈중국화지역화 움직임 중국을 떠나는 사례는 대만뿐만이 아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만인 지난 2월 24일 반도체, 전기차에 사용되는 고용량 배터리, 원료의약품, 희토류를 포함한 중요 광물 등 4개 품목의 공급망을 100일 이내에 재검토하라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값싼 노동력을 통해 수십 년간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왔던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을 미국으로 이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미래 핵심 산업인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이 뒤처지자 글로벌 공급망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커졌다. EU는 미국 대형 IT 기업의 독점에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세를 추진하고, 중국에 편중된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프리카와 남미, 서부 발칸과의 협력 체계를 강화하는 신통상정책을 지난 2월 발표했다. EU의 환경 기준을 따르는 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탄소량에 따라 탄소세와 탄소관세를 부과하고 EU 배출권거래제(ETS)를 확대하는 내용도 검토하고 있다. 코트라는 EU는 핵심 산업제품군에 대한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 또는 니어쇼어링(근거리 아웃소싱)을 통해 역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역내 공급망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경제의 탈중국화가 시작됐다.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으로 전 세계 생산시설이 멈춰 서자 더는 특정 지역에 공급망을 집중시킬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첨단산업 패권을 놓고 중국과 경쟁하는 미국과 EU는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의 물길을 좌우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기업들은 어떤 사태에도 안전하게 물자를 실어 나를 수 있는지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는 통제 가능한 곳에 생산시설을 두겠다는 지역화로 번지며 세계화까지 위협받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저비용고효율 중심에서 안정과 신뢰로 공급망의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은 1995년 WTO가 출범하면서 구축됐다. 당시에는 오프쇼어링(해외 이전)이 대세였고, 이런 현상은 중국이 2001년 12월 WTO에 가입하면서 더욱 거세졌다.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에 생산공장을 짓고 나섰다. 중국은 지리적으로 한국과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기업과 협력하기 좋은 위치인 데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베트남 같은 동남아시아의 인구 대국에 진출하기도 쉬웠다.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2001년 중국 GDP는 9조5,800억 위안(약 1,724조 원)에서 2020년 101조5,989억 위안(약 1경8,287조 원)으로 급증했고, 글로벌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4%에서 16%로 커졌다.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은 쉽게 균열이 가지 않을 것 같았다. 베트남이나 인도, 멕시코, 브라질 등이 주목받았지만, 중국과 비교해 인프라가 부족했고 핵심 제조업에서 기술 노하우를 쌓은 중국을 대체하기 쉽지 않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현지업체가 타격을 입으면서 주변국으로부터 부품소재를 수입한 후 가공 또는 조립해 제3국으로 수출하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0.5%p 떨어질 것이란 부정적인 전망까지 나왔지만,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축은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과 EU가 생산시설의 자국 복귀를 유도하며 글로벌 공급망의 축을 뒤흔들고 있다. 최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정학적인 구도가 대립적으로 바뀔 때 글로벌 공급망이 한곳에 몰린 것은 리스크가 된다고 보도했다. 무엇보다 팬데믹으로 번진 코로나19가 직격탄이 됐다. 전 세계 140개국이 무역 제한과 외국인투자 심사를 강화하며 빗장을 걸어 잠갔다. 바이든 대통령의 공급망 재검토 지시가 이어졌고, 지난 3월 9일 EU는 2030년까지 세계 반도체시장 점유율을 기존보다 2배 확대한 20%로 높이겠다고 발표하며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집중된 아시아 견제에 나섰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업체 맥킨지앤컴퍼니가 지난해 7월 글로벌 기업 60곳의 고위 임원을 대상으로 공급망에 대한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약 93%는 공급망 전반에 걸쳐 탄력성을 높일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이들은 원자재의 이중 구매, 중요 제품 재고 확대, 니어쇼어링, 공급망의 지역화를 통해 이를 수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미국 인베스코는 지난 12월에 낸 보고서에서 코로나19와 미중 갈등이 단기적인 수요공급 충격을 유발할 뿐 아니라 미래 중국의 주도적인 역할에 대한 의문을 낳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비용 증가와 비효율 등의 우려 있어 수십 년간 이어진 글로벌 공급망의 종말이 다가온 것일까.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4월 글로벌 공급망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의 원천이라는 기사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새판을 짜는 데 드는 비용과 이로 인한 비효율은 엄청나다고 보도했다. 기업의 해외투자 자금이 36조 달러(약 4경 원)에 이르며, 보조금이나 관세로 보호받는 기업의 비용 증가는 소비자에게 숨겨진 세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매체는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의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듯, 대기업이나 선진국조차 국내 이슈와 로비, 자국 생산의 단점에 노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터 윌리엄슨 케임브리지대 저지비즈니스스쿨 명예교수는 리쇼어링은 유연성과 혁신을 둔화시키며 비용을 증가시킨다며 한 지역에만 공급하는 것은 여러 국가에 걸쳐 있는 공급자의 네트워크와 비교해 규모가 작고, 위기에 대응해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옵션이 적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탈세계화는 엄청나게 과장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카를로스 코르돈 스위스 IMD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할 순 없지만, 지역적 차원에서 보면 어느 정도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멕시코와 캐나다에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고, 아시아 국가들도 중국 외의 공급망을 찾아 나설 수 있다며 가령 중국이 아닌 터키에 공급망을 갖춘 유럽 회사는 생산 비용을 더 치르지만, 운송이 빨라 재고 비용이 줄어든다는 걸 알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뿌리산업은 제품의 형상을 제조하는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기술과 소재에 특수 기능을 부여하는 표면처리, 열처리 기술 등 제조공정 기술을 영위하는 산업으로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산업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뿌리 분야의 새로운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 최근 2021년도 뿌리산업 진흥 실행계획을 수립해 뿌리산업을 미래형 구조로 본격적으로 전환하고자 한다. 이번 실행계획은 그간 정부가 수립했던 중장기 전략인 제2차 뿌리산업 진흥 기본계획(2018~2022년)과 뿌리 4.0 경쟁력 강화 마스터플랜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으로, 뿌리산업의 디지털화, 업종별 맞춤형 고부가가치화, 뿌리기업의 경쟁력 강화, 차세대 뿌리산업 기반 조성의 4대 방향을 골자로 한다. 첫째,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 뿌리산업의 인력양성, 뿌리단지, 뿌리공정 등에 디지털화를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인력양성과 관련해서는 명장의 숙련기술을 디지털화해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의 형태로 체계적으로 전수할 수 있는 (가칭)디지털 뿌리 명장 교육센터를 신규로 구축해 학생, 재직자, 재취업 희망자 등을 대상으로 직무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뿌리단지와 관련해서는 반월시화 산단 등 뿌리기업이 집적돼 있는 지역에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고, 대전 평촌산단의 경우 디지털 기반 금형 제품 설계, 시제품 제작검증 등을 지원해 미래형 융합 디지털 단지로의 전환을 추진한다. 아울러 뿌리공정에 지능형 공정시스템, 자동화첨단화 설비, 스마트공장, 지능형 로봇, 디지털 시뮬레이션 등의 보급을 추진해 뿌리 업종별 생산현장의 문제 해결 등을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둘째, 글로벌 가치사슬(GVC) 진출 확대를 위해 업종별 맞춤형 고부가가치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글로벌시장 진출 역량을 확보하고 핵심 기술을 첨단화할 수 있도록 관련 연구개발(RD) 지원 규모를 지난해 264억 원에서 올해 385억 원으로 대폭 확대하고자 한다. 뿌리산업 특화단지별 특성을 고려해 폐열회수시스템 구축(열처리 단지), 인공 주물사 보급 확대(주조 단지) 등 맞춤형 친환경화고부가가치화 지원사업(79억 원)도 추진할 예정이다. 셋째, 전방위적으로 개별 뿌리기업의 경쟁력 제고도 지원한다. 먼저 뿌리기업 전용 비대면 수출상담회를 확대(2020년 7회 2021년 10회)해 국내 뿌리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을 지원하고, 밀크런(milk run; 업계 공동으로 자재를 구매하거나 물류를 공유하는 방식) 방식의 원자재 공동조달 시스템을 확대해 공급망 리스크를 해소할 계획이다. 또한 뿌리산업 특성화대학원을 확대(2020년 3개 2021년 4개)하고 숙련 외국인력 비자 전환 시 뿌리기업 전용쿼터를 확대(2020년 50명 2021년 70명)해 뿌리기업에 우수인력 유입이 촉진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마지막으로, 법제도 등 측면에서 차세대 뿌리산업의 기반을 조성한다. 「뿌리산업 진흥과 첨단화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주조, 금형 등 기존 6대 뿌리기술에 사출프레스, 정밀가공, 로봇, 센서 등 제조업의 미래 성장 발전에 핵심적인 8대 차세대 공정기술을 추가해 뿌리산업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새로운 뿌리산업 정책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아울러 뿌리기업 확인서 온라인 발급 시스템을 구축운영하고, 뿌리기업 확인서 발급 수수료와 외국인 기량검증 수수료를 인하해 뿌리기업의 부담을 낮출 계획이다. 정부는 관계부처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번 실행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해 뿌리산업이 우리 경제가 직면한 다양한 도전들을 극복하는 첨병으로서 산업 경쟁력을 견인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지난 2월 2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그리고 희토류에 대한 공급망 정밀조사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전격 서명하면서 미래 제조업 성패를 판가름하는 핵심 산업에 대한 미국의 공급망 새판 짜기가 본격화됐다. 첨단 제조업에서 반도체와 배터리가 갖는 산업적 가치는 매우 높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저탄소친환경이 미래 제조업의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서,인공지능 역량을 좌우하는 고성능 반도체와 전기자동차산업의 부가가치 수준을 결정하는 고용량 배터리는 미래 제조업 밸류체인의 주도권 선점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핵심 전략산업이다. 그간 우리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정 기술과 적극적인 글로벌 가치사슬(GVC) 전략을 토대로 세계시장을 선도해 왔다. 미국의 이번 공급망 재편 행보가 성장의 추가적 모멘텀이 필요한 우리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에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의 조치 강도에 따라 지금보다 한층 심화된 글로벌 경쟁환경과 공급망의 재구조화라는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먼저 반도체를 살펴보자. 메모리반도체를 넘어 비메모리반도체까지 영역 확장이 필요한 우리 반도체산업에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움직임은 두 가지 측면에서 기회가 될 수 있다. 첫째, 메모리와 비메모리 간 균형 잡힌 산업구조로 고도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적극적인 생산기반 투자 요청에 부응해 미국에 신뢰할 수 있는 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제공함으로써 아직까지 열세인 비메모리 분야에서 성장을 위한 초석을 닦을 수 있다. 특히 첨단 반도체 제조 수요의 대부분이 미국 팹리스(fabless) 기업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점유율 확보에 좋은 기회다. 특정국(특히 대만)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우려하는 미국의 시각도 우리에겐 긍정적 요소다. 다만 수요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대응은 국내 반도체산업 생태계의 위축을 초래할 수 있으며, 투자 확대 과정에서 우리의 강점인 고급인력과 제조 기술 유출도 우려할 만한 사항이다. 두 번째 기회는 중국의 굴기를 상당 기간 저지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대신 중장기적으로 미국이 우리 반도체산업의 강력한 경쟁상대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다른 측면에서 기술동맹에 기반한, 즉 중국을 배제한 반도체 공급망이 구체화될 경우 중국에 편중된 우리 메모리반도체의 수요 구조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데,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글로벌 IT산업의 공급망 재편과 연계돼 있는 이슈다. 즉 단기간에 우리 자력으로 충격을 흡수하기 힘들다는 것은 분명하다. 배터리의 경우 단기적으로 우리 산업에 기회요인이 더 크다. 현재 글로벌시장에서 중국, 일본 등과 치열하게 경쟁 중인 우리 배터리산업에 미국의 공급망 재편 행보는 향후 폭발적 성장이 예상되는 미국 내수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호재다. 다만 우리 배터리 기업의 미국 투자 확대는 국내에서의 투자 위축을 초래하면서 산업 생태계 전반의 공동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는 우리 제조업의 현재이자 미래다. 그만큼 미국의 향후 행보와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신중하고 전략적으로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단기적 기회요인을 최대한 활용해 장기적으로 닥쳐올 수 있는 위기요인에 대응할 힘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현재 확보하고 있는 기술 경쟁우위를 지속적으로 유지강화하는 것이다. 12세대 앞설 수 있는 기술우위는 향후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우리가 전략적 포지션을 선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동시에 우리의 GVC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편중에 따른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도록 민관의 지혜를 모으는 틀을 하루빨리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20년 후 도로 위 차량 중 절반가량은 전기차가 차지하게 된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은 엔진이 아닌 배터리와 구동모터다. 특히 구동모터의 필수재는 자석의 왕이라고 불리는 희토류 자석이다. 희토류 자석은 곧 연비(에너지 효율)와 제품의 성능을 결정짓는다. 전기차뿐 아니라 수소차, 로봇, 퍼스널 모빌리티, 풍력발전기와 같은 신재생에너지 기술 제품 등 모터가 들어가는 거의 모든 첨단 제품에는 희토류 자석이 필요하다. 2018년 희토류 세계 생산량의 30%는 희토류 자석을 만드는 데 소비됐다. 2019년에는 38%, 2020년에는 40%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2028년에는 그 비중이 68%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이 때문에 희토류=자석 재료란 인식 또한 점차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 2019년 희토류 원재료 수입량의 50%, 희토류 소재부품량의 86%를 중국에서 들여왔다. 필수 산업의 필수 자재에 대한 대중 무역의존도가 이처럼 높다 보니, 세계 1위의 희토류 생산대국인 중국에서 희토류 수출제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한국 산업계에는 불안감과 긴장감이 팽배해진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따른 오래된 긴장감으로 피로해진 국가들은 자체 공급망 구축에 나섰다. 특히 지난 2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희토류, 반도체, 배터리 등 핵심 품목의 공급망 취약점을 100일간 검토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의 희토류 관련 대응은 과거부터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2010년 9월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분쟁 당시 미국 기업의 희토류 수요를 조사했고, 2012년 3월 중국의 일방적인 희토류 수출 쿼터 축소에 대응해 WTO에 제소하기도 했다. 또한 2019년 8월 그린란드에 매장된 희토류를 확보하기 위해 그린란드를 통째로 매입하고자 시도하는 등 미국은 자체적인 희토류 공급망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어느 한쪽으로 가지 못한 채, 미국과 중국에 한 발씩 얹고 있는 한국은 서 있는 모양새가 갈수록 엉거주춤해지고 있다. 10여 년째 확대 중인 미중 희토류 갈등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아직 특별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유사시 희토류 자석 수급 중단은 사드 사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큰 경제적 충격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은 희토류 자석 소비대국임에도 희토류 자석 생산 업체가 단 한 곳도 없다. 배터리의 경우 세계 톱5에 국내 3사가 포함돼 있고 점유율도 50% 이상 차지하며 세계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덕분에 차량용 배터리와 수소연료전지의 국내 공급은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2023년 이후 생산할 전기차의 배터리 확보를 거의 마무리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전기차의 심장에 해당하는 구동모터는 상황이 좋지 않다. 구동모터의 필수재인 희토류 자석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희토류 소비량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란 예측을 뒤엎을 만한 신기술, 즉 희토류 대체재를 적정가에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 없다. 이에 공급처 다변화 없이는 중국산 희토류 자석에 대한 의존도 또한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편 미국의 쿼드(Quad; 미국인도일본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비공식 안보회의체) 플러스 참여 권유를 거부하고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한국 제조업의 운명은 희토류 자석 독자 수급체계 확보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희토류 광산 개발과 희토류 자석 생산 기업을 육성하는 등 자체적인 희토류 공급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지난 2월 2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에 담긴 4대 핵심 품목에는 의약품이 있다. 가속화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의약품은 공교롭게도 코로나19 팬데믹에 의한 바이오안보의 중요성 때문에 더욱 부각됐다. 백신 민족주의라고까지 일컬어질 정도로 미국은 코로나19 백신의 신속한 개발 및 접종을 위한 초고속 작전(OWS; Operation Warp Speed)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백신 개발생산 기간을 단축하고자 미국산 원부자재의 국외 유출을 막았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 내 제약산업 육성 전략 및 해외에 진출한 미국 제약회사의 국내 재유치(reshoring)로까지 확산될 전망이다. 제약바이오 산업의 건전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빠질 수 없는 것이 고품질 원료의약품의 원활한 공급이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Markets and Markets)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글로벌 원료의약품시장 규모는 1,822억 달러에 달하고, 향후 5년간 연평균 6.1% 성장해 2024년에는 2,452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전 세계 370개 필수 원료의약품 성분(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을 제조하는 시설 중 15%를 중국이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원료의약품의 88%를 해외에서 수입한다. 원료의약품 자급화 문제는 미국만의 것은 아니다.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제약선진국들도 다 같이 떠안고 있는 과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원료의약품 수입액은 약 2조4,250억 원(21억6천만 달러) 규모다. 이 중 약 8,700억 원(7억8천만 달러) 정도가 중국으로부터 수입돼 중국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36%에 달했다. 중국산 원료의약품 수입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6년 5억 달러(수입의존도 31.3%), 2017년 5억5천만 달러(33.5%), 2018년 6억2천만 달러(33.9%), 2019년 7억4천만 달러(34.9%)로 나타났으며,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2019년 원료의약품 자급도는 16.2% 수준에 머물렀다(「2020년 식품의약품통계연보」 참고). 이제는 원료의약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을 우려하게 됐다. 중국 우한 지역 근처의 많은 원료의약품 공장이 정상가동이 안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던 무렵 인도마저 의약품 주성분 26종의 수출을 제한하며 안정적인 원료의약품 확보의 중요성을 학습시켰다. 코로나19 백신 부족으로 세계 각국이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는 백신 주권 못지않게 원료의약품 주권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제약바이오 산업을 차세대 먹거리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신약 연구개발(RD)에서부터 의약품 생산유통에 이르기까지 의약품 전 주기의 산업 생태계를 형성해 나가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가치사슬을 이어주는 원료의약품의 RD와 생산 역량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원료의약품 국산화와 수출을 통한 선진국시장 공략이 필요하다. 물론 고품질 원료의약품을 생산해 가격경쟁력 위주의 중국이나 인도 업체와 경쟁하려면 원료의약품 자급화 촉진을 위한 제도 개선과 정부의 투자 지원도 요구된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산 원료를 사용한 의약품에는 건강보험약가를 더 높게 책정해 제약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원료의약품 개발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완제의약품 용기포장에 원료의약품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함으로써 국산 원료에 대한 자부심을 높이는 것 또한 좋은 방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다.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진행돼 온 다국적 기업의 글로벌 가치사슬(GVC)이 다양한 이유로 변화할 전망이다. 먼저 미중 기술패권경쟁에 따른 공급망의 재편 가능성이다. 디지털경제가 미래의 먹거리로 대두되면서 관련 기술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제외한 기술 관련 공급망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이를 실행할 구체적인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두 번째 요인은 기술의 발전이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자동화 및 로봇 기술의 혁신이 과거 노동 의존적인 생산 기술을 노동 절약형 생산 기술로 변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값싼 노동력을 가진 나라로 해외 외주(offshoring)하던 다국적 기업이 국내로 회귀(reshoring)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세 번째 요인은 코로나19로 중요해진 공급망 복원성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면서 주요 필수품의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각국의 핵심적인 경제목표가 됐다. 이에 그동안 효율성에만 초점을 둬왔던 글로벌 공급망이 안정적인 복원성 확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향후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방향은 국내로의 회귀 및 공급망 확충에 정책적인 초점이 집중될 것이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글로벌 공급망이 수십 년 동안 효율성에 초점을 두고 발전해 온 만큼 단시일 내 국내에서 공급망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글로벌화된 공급망이 지역별로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즉 미국, 캐나다, 멕시코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발효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 따라 북미 지역에서의 공급망을 강화할 것이며, 특히 중국에 진출했던 미국의 다국적 기업은 산업에 따라 미국 또는 멕시코 지역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크다. EU 역시 기존의 경제통합 프로그램을 활용해 역내 공급망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 국가는 중국을 소외한 안보동맹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해 기술패권경쟁에 우위를 점하려 할 것이다. 미국의 지원 아래 일본, 호주, 인도의 공급망 협력이 가시화될 것이며, EU 역시 미국과의 공조 아래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립하고 한국,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 등과의 협력을 강화할 것이다. 이러한 공급망 재편 가능성에 한국은 전략적인 접근방법을 취해야 한다. 북미 지역과의 공급망 연계 노력을 바탕으로 일본, 대만, 동남아시아와의 공급망 협력 역시 강화하는 것이 기본적인 전략이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멕시코와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조속히 개시해, 중국에서 멕시코로 이전할 미국의 다국적 기업과 공급망을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일본, 대만, 싱가포르, 베트남 등과의 협력 역시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일관계 정상화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업의 지속적인 기술혁신 노력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더라도 한국 기업이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면 공급망은 한국을 중심으로 논의될 수밖에 없고, 높은 기술력을 가진 국가가 공급망에서 배제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COPYRIGHT ⓒ 2019 KOREA DEVELOPMENT INSTITUT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