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우려가 전 세계를 달구고 있다. 오르지 않는 지표가 없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 미국에서는 체감경기를 반영하는 8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1년 전보다 8.3% 상승했다. 7월에 이어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가격 변동성이 큰 식료품에너지 등을 제외한 근원 PPI도 1년 전 같은 달보다 6.3% 올랐다. 지난 8월 유럽 국가들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십수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독일의 8월 CPI 상승률은 3.4%로 13년 만에 최고치였고 유로존 전체 수치 역시 3%로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한국도 이런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실생활과 밀접한 의식주 물가상승이 심상찮다.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 같은 달보다 2.6% 올랐다. 올해 CPI 상승률은 1월 0.6%, 2월 1.1%, 3월 1.5%, 4월 2.3%, 5월 2.6%로 오름폭을 키우다 6월(2.4%)에는 다소 낮아졌으나 7월(2.6%), 8월(2.6%) 연이어 다시 확대됐다. 물가상승률이 5개월 연속 2%대를 기록한 것은 2017년 1~5월 이후 4년 만에 처음이다. 물가가 치솟은 것은 공급과 수요 측면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수요 측면 요인은 코로나19 사태 극복 과정에서 전 세계 정부의 재정통화 정책으로 시장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다. 공급 측면에선 유가 등 원자재 가격 급등이 일차적 원인이다. 최근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 등은 배럴당 70달러 선을 오르내린다. 국제유가 상승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회복을 고려해 재고를 미리 확보하려는 움직임과 자연재해 등 돌발변수가 작용한 결과다. 이런 가운데 주요 산유국은 미국의 추가 증산 요구를 일축했다. 구리알루미늄 등 다른 원자재 가격도 상승세다. 공급 측면의 악재는 또 있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확산이다. 전 세계에 변이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해상 물류 현장은 인력 운용에 큰 차질을 빚었다. 세계 화물의 대부분을 선박이 담당하는 가운데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인력 수급 차질은 원자재와 부품 공급 길을 꽉 틀어막았다. 주요 원자재 생산국인 신흥국에서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더딘 점도 우려를 키웠다. 정리하면, 전문가들은 코로나19와 각종 자연재해에 따른 공급 충격, 정부의 재정통화 확장 정책으로 인한 수요 충격, 백신 효과에 따른 경기회복 기대심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물가상승 우려는 주요 경제주체의 생존전략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다. 가령 곡물 가격 상승으로 국내 식품 업계는 잇달아 가공식품 가격 인상에 나섰다. 리튬구리코발트 등 자동차부품 소재로 쓰이는 광물 가격이 뜀박질하면서 자동차 업계 원가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인플레이션 우려는 가계의 경제 행위에도 폭넓은 영향을 미친다. 일상생활에서는 똑똑한 소비족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한 예로 10%에 달하는 할인율로 입소문 난 서울사랑상품권은 판매 개시 불과 1분 만에 완판되기 일쑤다. 앞으로 관건은 물가상승의 향방이다. 인플레이션 본격화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는 근원물가로 국내에서는 8월 1.8% 올랐다. 근원물가는 유가 급등 등 일시적 충격을 제외하고 물가의 추세를 판단하는 데 쓰이는 정책적 지표다. 근원물가만 놓고 보면 인플레이션 본격화 단계로 보기는 이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을 뜻하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악화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물가상승을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공급망 대란과 선제적인 재고 확보 수요 등이 겹친 일시적 현상으로 진단하면서도 코로나19 이후 경기회복 정도에 따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악화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물가상승의 추세와 원인에 대해 섬세한 분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인플레이션을 놓고 논쟁이 뜨겁다. 한쪽에서는 인플레이션 공포가 온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 말한다.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릭 스콧은 기자회견을 통해 당장 인플레이션 공포가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유가 5.5%, 빵이 7.4%, 주유비는 51%나 올라 서민 경제에 충격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제롬 파월 미국 연준의장은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당장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인플레이션은 왜 왔을까? 주요 원인을 찾고, 각각의 원인이 일시적 요인인지 아니면 내년까지도 장기적으로 지속할 요인인지를 판단해 보자. 첫 번째로 꼽는 인플레이션의 요인은 막대한 규모로 풀린 유동성이다. 코로나19의 경제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강도 높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도입했다. 유동성 거두는 통화정책 정상화 진행 중 수요 폭발도 보복적 소비투자 측면 커 하지만 지난 2분기부터 통화정책 정상화가 논의되기 시작했고, 점진적으로 완화에서 긴축으로 정책 기조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테이퍼링과 기준금리 인상을 앞둔 시점에 인플레이션의 첫 번째 요인인 유동성이 인플레이션 장기화를 뒷받침해 주긴 어려워 보인다. 둘째 요인은 수요 측면에 있다. 올해의 물가상승은 세계 경기회복 및 수요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백신 보급과 소비심리 회복 등으로 여행수요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항공권, 렌터카, 숙소 예약 건수가 두 자릿수를 넘어 세 자릿수로 증가했다.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와 신산업 진출 등으로 에너지와 원자재 수요가 급증했고, 특히 각국 정부의 예산이 인프라산업에 쏠리면서 원자재 수요가 가히 폭발적이었다. 수요 초과로 인해 건축용 목재나 철스크랩(고철) 등의 공급이 부족해지고, 비용이 상승해 최종재 가격에 전가되고 있다. 다만 이런 일들은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잠재수요가 폭발하면서 나타나는 보복적 소비와 투자의 측면이 있어 장기적으로 증가세가 지속하는 기조적 수요와는 차이가 있다. 이 또한 인플레이션이 장기적 추세가 될 것이라는 근거가 되긴 어렵다. 셋째,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의 성격도 있다. 국가 간 이동 제한이 장기화하다 보니 주요 산업의 노동인력 공급이 부족해졌다. 농어촌 지역이나 제조 및 건설공사 현장에 외국인 노동인력이 부족해 정상적인 생산활동이 이뤄지지 못하고, 인건비가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도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을 뚜렷하게 설명해 준다. 주요 지역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전기 공급이 끊기거나 화재 등의 재난이 발생함에 따라 올해 상반기부터 차량용 반도체 공급 대란이 발생했다. 구인난과 인건비 상승, 원자재와 반도체 등의 중간재 가격 상승은 수입물가 및 생산자물가 상승 그리고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런 일련의 비용상승 요인도 장기적으로 지속하는 현상이라기보다는 국지적으로 발생한 재난재해이거나 코로나19 종식 시 완화될 수 있는 압력들이다. 따라서 비용상승도 인플레이션 위협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저효과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물가상승률은 460개 품목의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등락을 측정한 것이다. 소비자가 지출하는 주요 품목들의 현재 가격을 전년 동월과 비교해 등락률을 계산하는 구조다. 결국 지난 6, 7, 8월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6, 7, 8월의 가격과 비교한 것이다. 지난해 2분기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공장이 셧다운되고 교통량물동량항공운송이 마비 상태에 이르러 국제유가가 선물시장에서 마이너스 37달러를 기록했고,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까지 떨어졌던 시점이다. 그때와 비교한 올해 월별 물가상승률이 다소 높게 나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며, 몇 개월 높은 물가상승률이 발생했다고 인플레이션 공포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고용회복 지연과 이자 부담 증가 속 식료품 등 상승세는 저소득층에 큰 타격 지난 7월 IMF는 올해와 내년 선진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각각 2.4%, 2.1%로 전망했다. 지난 8월 한국은행은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올해는 2.1%로, 내년에는 목표 물가상승률 2%를 밑도는 1.5%로 전망했다. 불확실성이 있긴 하지만 내년에 인플레이션 위협이 찾아올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물가압력이 저소득층에 불균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소비자물가는 안정적일지라도 식료품 등의 몇몇 필수재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 고용회복이 지연됨에 따라 근로소득이 뚜렷하게 증가하기 어렵고, 시중금리가 상승함에 따라 이자상환 부담은 가중될 것이기 때문에 저소득층에게 생활물가 상승이 상당한 고충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겨울 한파, 설 연휴, 가축 전염병 등의 계절적 요인으로 일부 품목의 가격이 치솟을 수 있기 때문에 식료품 수급안정을 위한 정책적 준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 국가의 경제 내에서는 여러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소비된다. 물가란 이러한 재화서비스 가격의 종합적인 수준을 의미하고,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일정 기간 상승한 정도를 나타낸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1970년대 고물가를 경험하며 인플레이션을 낮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당연히 구체적인 물가안정 도모 방안에 대한 관심이 증대됐고, 그중 물가안정목표제가 가장 널리 채택됐다. 1990년대 초 뉴질랜드, 캐나다, 영국 등에서 운용되기 시작한 물가안정목표제의 핵심은 중앙은행이 달성하고자 하는 명시적인 인플레이션 목표수치의 제시에 있다. 이런 방식은 추상적인 글보다 이해하기 쉬운 숫자를 목표로 제시해 경제주체들의 이해를 높이고 미래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안착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중앙은행(ECB)과 한국은행도 물가안정목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먼저 ECB의 물가안정목표제는 1998년 물가안정을 유로지역 소비자물가지수의 연간 상승률이 2% 미만인 경우로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후 2003년에 중기 기준 2% 근접 하회로 정책 목표를 명확하게 했는데 여기에서 중기는 통화정책이 인플레이션과 GDP 등에 영향을 미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한 2~3년의 시계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물가는 재화서비스 수요 증가에 따라 상승하기 마련인데,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2%보다 낮은 방향으로 설정했다는 것은 ECB가 경기과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보다 높아지는 것을 반대의 경우보다 더욱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으로 인식했다는 것을 반영한다. 그러나 지난 7월에는 이러한 기준을 중기 기준 2%로 변경하고 정책 대응의 상하 허용범위를 대칭적으로 설정해 인플레이션이 목표수준을 초과하거나 미달하는 경우 모두에 대응하는 정책으로 전환했다. 이와 같은 정책 전환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오랫동안 지속돼 오다가 최근 코로나19로 더욱 심화된 유로존의 경기부진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ECB의 의지를 보여준다. 한국은행의 경우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물가안정목표제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4년부터 3년 단위로 중기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설정 및 변경하며 탄력적으로 운용해 왔는데, 가장 최근 기간에는 전년 동기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 기준 2%의 목표치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ECB와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이 목표수준을 지속적으로 상회 혹은 하회할 위험을 균형 있게 고려하고, 중기적 시계에서의 물가안정목표 달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물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통화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연준은 물가안정목표제를 유지하다가 지난해 8월 평균물가목표제로 운영체제를 전환했다. 평균물가목표제와 물가안정목표제는 각각 도로 위에서 속도위반을 판별하는 지점단속과 구간단속에 비유할 수 있다. 특정 지점에서의 속도위반 여부를 판정하는 지점단속과 마찬가지로 물가안정목표제는 특정 시점(현재)의 인플레이션만을 기준으로 통화정책의 방향을 결정한다. 반면 평균물가목표제하에서는 일정 기간의 평균 인플레이션을 바탕으로 정책을 운용하는데, 인플레이션이 지난 몇 년 동안 2%를 밑돌았다면 평균 2%에 이를 때까지는 2%를 웃돌더라도 개입하지 않겠다는 식이다. 이는 처음 일정 구간에서 구간단속 제한속도보다 느리게 달린 자동차가 나머지 구간에서는 규정 속도를 초과하더라도 구간 제한속도의 평균을 넘지 않으면 단속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연준은 이러한 정책 전환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경기후퇴에서 충분히 회복되기 전에는 통화정책을 성급히 긴축적으로 변경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각국에서는 물가안정 추구 이외에 소득불평등기후변화 등 새로운 경제 이슈에 대한 중앙은행의 역할 증대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물가안정과 더불어 금융안정의 추구가 통화정책의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중앙은행의 책무들을 전통적인 물가안정목표와 어떻게 조화롭게 달성할지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중앙은행과 경제주체 간 더욱 긴밀한 의사소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통화정책의 최우선 목적은 물가안정이지만 궁극적 목적은 사회후생 극대화라는 근본적 명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세계경제 대봉쇄를 불러왔던 코로나19 위기는 전방위적인 정책 지원에 힘입어 빠르게 극복되고 있다. 경기회복과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통화정책 정상화 논의는 확대되고 있으며, 코로나19 위기 진압의 선봉에 섰던 미국 연준 역시 정상화 시그널을 내비치고 있다. 이르면 올해 11월, 연준은 매월 1,200억 달러 이상 매입하고 있는 채권 규모를 줄여나가는 테이퍼링을 시작할 것이다. 이번 연준의 정상화는 테이퍼링은 늦지 않게, 기준금리 인상은 신중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 수순에 따르면 테이퍼링, 양적완화 종료 이후 기준금리 인상으로 나아가는데, 양적완화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인상 여건이 만족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에 따른 시점 확보 차원에서 테이퍼링을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연준은 물가상승 압력이 점진적으로 약화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은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있으며 일각에선 인플레이션에 대한 연준의 인식이 너무 낙관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와 통화당국으로부터 유동성 공급이 계속돼 물가상승 압력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과 물가상승의 악순환(wage-price spiral)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최대 고민거리였던 저물가 압력이 여전히 유효하다 하더라도 언제나 위기는 경제구조 변화를 야기했듯이, 연준 역시 구조적으로 물가가 상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연준은 늦어도 올해 연말에 테이퍼링을 시작하고 자산매입 축소 속도도 과거보다 다소 빠르게 진행해 내년 3분기에는 양적완화를 종료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이는 하나의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일 뿐이며 양적완화가 예상보다 조기에 종료된다 해도 금리인상으로 직결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개정한 통화정책 전략을 보면 연준의 속내를 알 수 있는데, 연준은 향후 통화정책 운영에서 물가보다 고용에 방점을 둘 것이며 고용에 대한 목표도 광범위하고 포용적인 고용회복으로 변경한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의 경기회복이 불균등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취약계층의 고용회복까지 확인한 후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다는 것이다. 매파적 연준 인사들의 금리인상 발언은 내년에도 계속되겠지만, 조기 인상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부분이다. 한편 선진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상화 경험을 교훈 삼아 선제적 금리인상을 자제하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지난 8월 과감하게 금리를 인상했다. 이는 국내 경제의 코로나19 타격이 선진국에 비해 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나, 수년 동안 경제 취약점으로 간주돼 온 가계부채와 주택시장 과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 데 기인한다. 특히 금리인상을 늦추면 늦출수록, 종국에는 경제주체들의 과도한 채무부담 때문에 정책 정상화가 어려워지는 부채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어 선제적 금리인상의 명분이 됐다. 일련의 금융불균형 누증 문제는 일회성 금리인상으로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에 한은은 연내에 추가적인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보이고, 내년이면 기준금리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인 1.25%로 복귀할 것이다. 최근의 경제위기를 빠르게 극복한 것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전방위적인 정책 대응과 함께 과거 위기를 진압해 가는 과정에서 쌓아온 중앙은행의 정책 신뢰가 큰 역할을 했다. 통화정책 정상화 역시 테이퍼링 경험과 연준의 노련함으로 시장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신중한 정상화는 금융시장에 골디락스(물가안정 속 호경기) 신호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연준 내 정책 이견과 적정 대차대조표 수준 논란, 코로나19 이후에 더욱 강해진 재정의 화폐화 압력 등은 여전히 시장 불확실성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유의할 필요가 있다.
통화정책 정상화 의지에 따라 기준금리가 0.25%p 인상되자 은행 가산금리가 상승해 대출금리도 오르고 있다. 식을 줄 모르는 부동산시장, 멈추지 않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감안할 때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도 커졌다. 우리나라는 시중은행 대출금리가 예금금리의 3~4배에 이르는 불균형 상태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실제로 지난 7월 말 현재 시중은행 잔액 기준 가중평균 총대출금리는 2.77%로 총예금금리 0.66%의 4배가량이다. 다시 말해 대출원가가 되는 기준금리가 0.50%p 인상될 경우, 대출금리는 2%p가량 상승할 수 있다고 짐작해야 한다. 금리는 금융 부문과 실물 부문을 연결하는 고리로 금리가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 경제순환이 순조롭다. 시장금리에는 그보다 낮은 수익을 내는 한계 기업이나 사업은 퇴출되거나 최소한 확장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금리 추세가 뒤바뀔 때는 인플레이션과 거품의 생성 또는 소멸로 금융시장은 물론 실물시장의 가격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전환기일수록 시장위험 관리가 가계의 근검절약과 기업의 경영전략 못지않게 중요하다. 성장물가고용국제수지 같은 거시경제 현상과 금리주가환율 같은 금융시장 흐름을 연계해 관찰하는 시각과 선택이 필요한 까닭이다. 금리가 오른다고 예상되면, 채권시장에서는 장기채일수록 가격하락폭이 커지므로 보유채권을 단기채로 전환하거나 현금화해야 가격변동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주당 기대이익에 대한 할인율이 높아져 주식의 가치가 하락할 수 있지만 물가보다 경제성장률이 높아 금리가 오른다면 이익도 커지므로 가치가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 외환시장에서는 국내금리 상승이 단기 해외자금 유입을 유도해 환율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물가상승률이 높아 금리가 올랐다면 중장기 무역수지 적자가 예상돼 환율하락 위험이 도사린다.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은 여건과 취향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결국 화폐가치 변동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격변동에 뒤따르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극복하려면 가치(value)와 가격(price)을 구분해 시장을 관찰해야 한다. 가치보다 가격이 높아 거품(bubble)이 형성된 자산은 언젠가는 거품이 꺼지기 마련이다. 가격이 가치보다 낮은 역거품(reverse bubble) 또한 결국에는 적정 가격 수준으로 회복되는 것이 시장의 이치다. 가치변동을 감안하지 않고 가격변동에 따른 차익만을 추구하다가는 자칫 살 때와 팔 때를 거꾸로 하다가 낭패 당하는 경우가 많다.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하며 부가가치 창출 원천이 달라지는 환경에서 특정 자산을 매입한 후 무작정 보유하는 방식도 위험하다. 경제상황 변화와 함께 금리가 변동할 때는 인플레이션이나 거품의 생성 혹은 소멸이 뒤따르기 쉽기 때문에 가계와 기업의 선택도 신중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화폐가치가 하락하는 인플레이션 열차를 탔을 때는 종착역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야 뜻하지 않은 손실을 예방할 수 있다. 가격이 가치와 괴리돼 비이성적으로 상승한 거품 열차에 탔을 경우에는 내릴 준비를 서둘러야 갑작스런 거품 붕괴로 말미암은 낭패를 예방할 수 있다. 오늘날 부동산시장, 주식시장 가격상승은 인플레이션 현상일까? 악성 거품 현상일까? 아니면 경제상황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스스로 판단하는 습관을 가져야 실패를 예방한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일하지 않으며 살아야 하는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효율적 자산관리는 삶의 안정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개인이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위험을 분산하고 불확실성을 줄여갈 때 나라경제도 튼튼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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