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나로호가 앞으로 추진될 독자 우주발사체 개발에 대한 긴장되고 기대되는 떨림을 선사했다면, 누리호는 눈부실 정도의 강력한 불꽃으로 우리나라에 새로운 우주개발의 장을 열어줬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 당대 기준으로 선도적인 고체로켓 기술을 사용한 신기전을 보유하고 있었다. 신기전은 고려시대 최무선이 발명한 로켓병기인 주화(走火)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인 1448년(세종 30년) 제작돼 17세기 이후까지 널리 생산됐다. 현대의 로켓 기술은 과거의 고체로켓 기술에서 액체로켓으로 확장발전돼 왔으며, 이를 통해 보다 정밀한 위성 발사가 가능하게 됐다. 우리는 누리호 개발에서 선조들의 이러한 독자적 로켓 기술을 현대의 발전된 형태인 액체로켓으로 승화시킨다는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또한 현재의 누리호는 미래 우리의 우주활동을 견인하는 새로운 선구자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만의 발사체를 확보하지 못해 비용을 지불하고 해외 발사체를 사용해 왔다. 하지만 누리호를 통해 우리가 만든 위성의 발사, 달 탐사 및 소행성 탐사 등 독자적 우주활동이 가능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세계 발사서비스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현대의 우주발사체 기술은 국가 간 이전이 제한되는 대표적인 이중용도 전략기술이며, 발사체 기술의 자주권 확립은 지속 가능한 우주개발의 추진 및 안보 역량 강화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특히 한반도 주변국 미국중국일본러시아북한은 이미 우주발사체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우리도 전략적안보적 차원에서 발사체 보유는 필수다. 위성 자체발사 능력이 없을 경우 모든 과학적상업적군사적 위성을 해외발사체를 이용해 발사해야 하므로 주요 국가 정보 및 기술의 유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주개발을 위한 각국 간의 협력이 위성 개발 및 우주탐사 분야 등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발사체 분야는 예외다. 발사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국제 우주공동개발 등에 주도적 참여가 가능하며, 국제 우주개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국제우주정거장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국가가 미국, 러시아, 일본, 유럽 등 대부분 발사체 보유국임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렇듯 전략적 측면에서도 누리호 개발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는 누리호 개발을 통해 기존에 없던 국내 발사체산업 생태계를 조성한 것이 가장 큰 의미라 볼 수 있다. 또한 누리호 개발을 통해 확보한 기술은 타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누리호는 영하 183℃의 액체산소를 보관하고 있어야 하고, 엔진이 연소할 때 연소기가 처하게 되는 3,500℃ 온도를 견뎌야 하며, 엄청난 진동과 압력도 버텨내야 하는 재료기술 등이 요구된다. 이러한 기술들은 고도의 정밀성과 신뢰성을 요구하는 최첨단 기술로 소재부품기기시스템 분야 등의 기술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발사체 기술은 한 나라의 국력과 총체적인 과학기술력을 상징하며, 발사체 개발 성과는 국가의 위상과 신뢰도 제고 및 국민의 자긍심 고취로 직결된다. 더불어 우리의 위성을 우리의 발사체로 우리의 발사장에서 발사함으로써 미래 세대에 우주개발 및 과학기술에 대한 꿈과 희망과 용기를 심어줄 수 있는 교육적 효과도 매우 크다. 이렇듯 누리호 개발은 다양한 관점에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누리호 개발을 통해 늦었지만 누구의 도움도 없이 선진 기술을 따라갈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자신감은 다양한 분야에 전파돼 해당 분야의 발전을 가속화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누리호 발사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과 300여 곳의 한국 기업이 함께 이룬 성과다. 이들은 37만 개에 달하는 발사체(로켓) 부품의 제작과 조립, 성능시험을 분담했다. 12년 누리호 개발 사업의 총사업비 약 2조 원 중 75%(1조5천억 원)를 사용했다. 덕분에 독자적인 발사체 기술을 확보하고 실제 발사를 통해 성능을 검증할 기회를 얻었다. 누리호 후속사업을 포함해 앞으로 10여 년 동안 예정된 국가 우주개발계획에서 이들의 활약은 더 커질 전망이다. 누리호 취재 과정에서 만난 관산학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이번 발사가 발사체 기술의 국산화뿐 아니라 상업화의 출발점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지구 저궤도로의 진출은 미국 스페이스X처럼 혁신기술을 가진 자국 기업의 경쟁에 맡기는 뉴스페이스 시대에 한국도 진입하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것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현대중공업 등 누리호 프로젝트의 크고 작은 주역들은 스스로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하고 한국판 스페이스X를 꿈꾸기 시작했다. KAI는 여러 기업이 만든 누리호 부품의 조립을 총괄했다. 같은 설계도로 부품을 만들어도 제조사에 따라 결과물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KAI는 여러 제조사의 부품들을 하나의 장치로 조립하고, 조립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검증하는 역할을 했다. KAI는 두원중공업, 에스앤케이항공, 이노컴 등과 함께 누리호 개발의 3대 기술적 난제 중 하나였던 추진제(연료와 산화제) 탱크 제작에도 성공했다. 지름 3.5m 원통 탱크의 두께를 알루미늄캔 수준인 1.5~3㎜로 줄여 무게를 최소화하는 기술이다. KAI는 우주산업의 두 축인 발사체와 인공위성의 상업화에 모두 앞장서게 됐다. 누리호뿐 아니라 공정 규격화를 통해 낮은 비용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 차세대 중형위성 개발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항우연 주도로 완성한 차세대 중형위성 1호는 지난 4월 러시아 로켓에 실려 발사됐는데, 3호부터는 KAI를 필두로 한 기업 주도로 개발되고 발사 역시 2023년부터 누리호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국내 유일의 우주 발사체 엔진 공장에서 발사체의 심장으로 불리는 75톤급 중대형 액체엔진을 제작했다. 무게 1톤 이상의 실용급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기 위해선 중대형 엔진이 필요한데, 현재 미국 등 6개국만 자체 개발이 가능한 기술을 항우연과 함께 한화가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한화는 지난 3월 스페이스 허브라는 그룹 차원의 조직을 만들어 우주산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로템은 엔진이 제대로 연소하고 추진력을 내는지를 지상에서 최종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이자 누리호 프로젝트의 최대 관문이었던 종합연소시험의 설비를 만들었다. 11층 건물 높이(48m)의 엄빌리컬 타워(기립한 발사체에 연료와 산화제를 주입하는 일종의 주유소)를 포함한 발사대 건설엔 한양이엔지, 제넥, 건창산기 등이 참여하고 현대중공업이 총괄했다. 액체엔진, 가속기, 플라즈마 등 다양한 첨단기술을 가진 비츠로넥스텍은 누리호의 연소기가스발생기터빈배기부엔진공급계 등 핵심 부품을 공급했다. 스페이스솔루션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과 함께 연료와 산화제의 공급을 차단하는 밸브, 발사체 3단의 자세 제어 시스템을 개발했다.
2021년 11월 기준 유럽우주기구(ESA)의 통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약 6,120기의 우주발사체와 약 1만2,170기의 인공위성이 성공적으로 발사됐고, 현재 약 4,700기의 인공위성이 우주에서 정상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통신위성, 지구관측위성 및 항법위성이 전체 인공위성 수의 60% 이상을 점유함에 따라 위성통신과 위성방송, 지구관측 영상, 위치측정 데이터 등이 우주 관련 산업을 급속도로 성장시켰다. 예를 들면 2013년 위성방송서비스와 지구관측 영상의 세계시장 규모는 각각 920억 달러와 15억 달러에 달했다. 그리고 인공위성을 소유하거나 운용하는 국가는 현재 80여 개국에 달한다. 결국 OECD는 우주산업이 이미 세계경제의 중요한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독립된 우주경제(space economy)의 등장을 다음과 같이 공식화했다. 우주경제는 우주를 이용한 제품과 서비스의 개발공급에 참여하는 모든 공공 주체와 민간 주체, 그리고 우주 하드웨어(발사체, 인공위성, 지상국 등)의 연구개발 주체와 제조업체에서 출발해 최종 이용자에게 우주를 이용한 제품(항법장비, 위성전화 등)과 서비스(위성 기반 기상서비스, 직접 위성 수신서비스 등)를 공급하는 주체로 끝나는 장기 부가가치 사슬을 포함한다. 2020년 세계 우주경제의 규모는 전년보다4.4% 증가한 약 4,47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OECD는 우주 분야의 경우 코로나19의 영향이 미미했고, 오히려 정부와 기업이 코로나19 대응에 나서면서 지구관측, 원격학습 등을 위한 통신위성의 활용이 늘어났다고 평가했다. 주목할 점은 상업 분야가 우주경제의 약 80%를 차지하며, 미국 정부의 우주예산이 우주활동에 나선 전체 국가의 총우주예산에서 66%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주요국 우주예산은 중국 134억 달러, 일본과 프랑스 각각 31억 달러, 러시아 25억 달러, 인도 13억 달러로 미국의 518억 달러와 큰 차이를 보였다. 한편 우주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상업용 인프라 및 지원 산업은 비중이 꾸준히 늘어나 지난해에는 2019년 1,179억4천만 달러보다 16.4% 증가한 1,372억3천만 달러를 기록하며 우주경제의 30.7%를 차지했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지상국 및 장비 분야가 1,184억5천만 달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상업용 위성 제조(161억7천만 달러)와 상업용 발사산업(20억7천만 달러)이 그 뒤를 이었다. 이 외에 보험 프리미엄은 4억5천만 달러, 상업용 유인 우주비행 6천만 달러, 우주상황인식 및 궤도상 서비스가 4천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OECD는 우주투자로부터 사회경제적 혜택을 받는 분야를 환경관리, 운송과 도시계획, 연구개발과 과학, 기후감시와 기상, 통신, 국방과 안보, 에너지, 농업 순으로 꼽고 있다. 또한 ESA는 2016년 우주투자의 경제적사회적 파급효과를 2040년 우주경제 규모에 대해 모건스탠리는 11조 달러, 뱅크오브아메리카와 메릴린치증권은 27조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세계경제 순위 10위인 우리나라가 우주개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나라 우주 분야 발전을 위한 여건이 획기적으로 마련됐다. 미사일지침이 종료되고, 아르테미스 약정에 서명해 세계 12개국 핵심 국제협력체제에 합류하고, 한미 위성항법 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 우리나라 우주개발과 우주산업 추진에 탄력을 받게 됐다. 정부는 이런 환경변화를 반영한 중장기적 산업육성 전략 수립으로 국내 우주기술과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해 10년 후에는 우주비즈니스 시대를 연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11월 15일 위원장이 국무총리로 격상된 이후 처음으로 개최된 국가우주위원회를 통해 우주개발 로드맵을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10월 21일 누리호 발사로 본격적인 우주개발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2022년에는 우주수송 능력 확충을 위한 누리호 후속 발사,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탐사 사업으로 미국 NASA와의 협력을 기반으로 한 달 궤도선 발사운영, 우리나라에 초정밀 위성항법시각 정보를 제공하는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 개발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같은 발전에도 우리나라 우주산업은 세계 수준과 비교할 때 아직 성장초기에 머물고 있어 우리나라의 우주산업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계획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주 분야는 전략기술로 선진국으로부터의 기술도입이 어렵기 때문에 우선 자체적으로 우리 기업의 기술력을 높이고 인프라를 확충해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업을 육성하려고 한다. 우주공공개발을 통해 충분한 국내수요를 바탕으로 민간기업의 우주개발 참여기회가 확대되도록 2022년부터 2031년까지 공공목적의 위성을 170여 기 개발하고, 위성개발과 연계해 우리나라 발사체로 40여 회 발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민간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발사장이 없는 현실을 고려해 민간기업 전용 발사체 발사장을 구축하고, 민간 우주산업 거점으로서 발사체, 위성, 소재부품 등의 우주산업 클러스터 조성도 추진한다. 아울러 기업이 안정적으로 우주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산업환경을 개선하고 민간이 갖고 있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우주개발 사업은 지금까지 협약방식으로 수행했는데 기술경쟁력을 확보한 부분부터 단계적으로 계약방식을 도입하고, 기술료 감면, 지체상금 완화로 기업 부담을 경감함으로써 기업이 우주산업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미취업자 현장연수, 석박사 도제식 교육, 기 취업자 실무 재교육 등 다양한 인력양성 프로그램과 대학을 중심으로 기초교육에서 채용까지 연계하는 미래우주교육센터 지정을 통해 우주산업 전문인력을 양성할 것이다. 현재 300조 원 규모의 세계 우주산업은 발사체, 위성 등 우주기기 제작보다는 위성영상, 위성 방송통신 등 우주서비스산업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우리나라도 위성정보 개방성 확대 등을 통해 우주신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위성영상 배포처리분석 플랫폼 구축 및 인공지능(AI) 알고리즘 개발 등으로 민간의 위성영상 활용을 촉진한다. 스마트폰, 자율차, 도심항공교통(UAM) 등 KPS 연관산업을 발굴하고 6G 위성통신기술 및 서비스를 실증해 민간이 상용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2022년부터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중소벤처기업이 우주헤리티지(우주 검증 이력)를 갖고 우주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초소형위성 기반으로 기업이 위성 제작발사사업화까지 위성 전 주기를 체험하고 향후 우주비즈니스까지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아울러 내년에 발표할 제4차 우주개발 진흥 기본계획에는 향후 5년간, 더 멀리는 향후 20년 후의 우리나라 우주개발과 우주산업의 전략과 추진과제를 담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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