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p 차이라는 헌정 사상 가장 치열한 대선을 거쳐 정권이 교체됐지만, 신임 대통령이 맞이할 우리의 사회경제 상황은 녹록하지가 않다. 코로나19 확산 후유증, 미국발 긴축 우려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부동산시장 불안정, 고물가, 가계부채 등 대내외적 위협 요소들이 산적해 있다. 대통령 선거는 끝났지만 새 정부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정책 실종 선거라는 혹평을 받을 정도로 공약을 둘러싼 논쟁이 거의 없었다. 선거 과정에서 정책이 충분히 검증되지 못한 만큼 정책에 대한 폭넓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정부의 모든 정책은 매 순간 실전이고 모든 선택이 국민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이에 KDI 여론분석팀은 경제전문가와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신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놨던 주요 정책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새 정부가 나아가야 할 국가 정책 방향을 제안했다. 중점을 두고 개선할 부문으로 경제성장과 분배 꼽혀 향후 5년 동안 새로운 정부를 이끌어갈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다. 경제전문가(46.9%)와 일반국민(29.2%) 모두 새로운 정부가 추구해야 할 국정 최고 목표로 경제성장을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를 꼽았다. 다음으로 경제전문가는 균형발전 및 사회적 통합 강화(32.2%)를, 일반국민은 복지확대로 국민의 삶의 질 향상(22.0%)과 균형발전 및 사회적 통합 강화(22.0%)를 강조했다. 가장 중점을 두고 개선해야 할 부문으로는 경제전문가(57.1%)와 일반국민(45.0%) 모두 경제성장과 분배로 응답했다. 새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우선 정책을 순위별로 조사한 후 1순위에 2점, 2순위에 1점의 가중치를 부여해 분석한 결과, 경제전문가는 경제활력 제고(24.3%)에, 일반국민은 부동산 정상화(23.3%)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전문가 역시 새 정부가 역점을 둬야 할 정책으로 부동산 정상화(20.7%)를 두 번째로 많이 꼽아 이번 정권에서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는 부동산 문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새 정부는 부동산 정상화, 경제활력 제고, 좋은 일자리 창출, 공정사회 구현, 세대별계층별 정책, 외교안보, 에너지환경, 사회안전망, 지역균형발전, 국정혁신에 대한 세부 정책들을 내놨다. 해당 정책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살펴보기 위해 5점 척도(①전혀 필요 없음 ? ③보통 ? ⑤매우 필요)로 조사한 후 5점 만점으로 점수화해 평균값의 차이를 비교 분석했다. 먼저 부동산 정상화 정책을 살펴보면, 주택임대시장 정상화 및 공공민간 임대주택 활성화와 외국인 주택투기 방지 정책이 가장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전문가는 주택임대시장 정상화 및 공공민간 임대주택 활성화(4.17) 정책이, 일반국민은 외국인 주택투기 방지(4.45)가 부동산 정상화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에 가장 주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전문가(4.52)와 일반국민(4.53) 모두 일자리 창출이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러한 일자리 창출은 공정한 경쟁환경 구축(경제전문가 4.42, 일반국민 4.40)이 실현됐을 때 가능해 보인다. 신임 대통령이 대선 기간에 가장 강조했던 키워드는 공정이었다. 경제전문가(4.41)와 일반국민(4.56) 모두 공정사회 구현을 위해서는 공정한 채용 기회 보장 및 채용비리 근절이 가장 필요하다는 공통된 의견을 표명했다. 새 정부는 세대별계층별로도 다양한 정책을 제시했다. 이 중 부모(육아부담 세대)와 청년층을 위한 보다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경제전문가(4.36)와 일반국민(4.31)은 육아부담 세대인 부모에 대한 맞춤 정책이 가장 필요하다고 봤으며, 그다음으로 청년층을 위한 정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외교안보 정책으로는 한미 포괄적 전략동맹 강화와 인공지능(AI) 과학기술 강군 육성 정책이 가장 중요하고, 환경 정책 관련해서는 기후환경 위기 대응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부모청년 위한 정책 주문안전사회 구현도 강조돼 광주 학동 참사,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 등 최근 반복된 부실 공사로 인해 국민의 불안이 가중돼서인지 경제전문가(4.34)와 일반국민(4.53)은 안전사회 구현을 위해 부실시공 근절, 안전한 건설 현장 조성에 최대한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경제전문가와 일반국민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선 지역 일자리 창출이 가장 필요하고, 국정개혁을 위해 국가재정관리를 위한 재정준칙 도입,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현, 공수처, 고위공직자 부패 수사기관의 정상화가 중요하다고 꼽았다. 국정의 최종 목표이면서 정부 성공의 관건은 결국 국민이 원하는 것을 찾아서 이를 실행하는 것이다. 새 정부가 각종 대내외적 악재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출범 초기부터 확실한 경제활성화 정책을 펼쳐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지난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이 서른 번 가까이 내놓은 부동산 정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오락가락하는 대책과 부작용이 생길 때마다 등장하는 땜질식 처방으로 정부 정책은 신뢰를 잃었다. 정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잦은 변화 없이 장기적으로 믿을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국민의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새로운 정부가 국민들이 우선시하고 필요로 하는 정책부터 시작한다면,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절반의 국민들과도 소통하며 통합해 현장 중심의 정책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세대 갈등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나 생각할 정도로 세대 이슈가 뜨겁다. 세대 갈등은 왜 일어나는가?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복잡한 메커니즘이 있지만, 다음의 3가지 효과가 핵심이다. 첫째, 또래집단(cohort) 효과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또래집단은 역사적사회적문화적으로 겪는 경험이 유사하므로 그들만의 고유한 특성을 가진다.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Z세대는 서태지를 좋아한 세대와 같은 특성일 리 없다. 둘째, 나이(age) 효과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나이와 생애주기에 따라 특성이 다르다. 누구나 젊을 때는 다 혈기가 넘치고 기성세대보다 더 진보적인 모습을 보인다. 셋째, 기간(period) 효과다. 나이와 상관없이 특정한 기간에 같은 사건이나 상황을 겪은 사람은 공통적인 특징을 보인다. 예컨대 X세대는 5.18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다른 세대에 비해 진보적 성향이 강하다. 일면 세대 차이와 세대 갈등은 당연해 보인다. 그럼 선후배 세대 간 화합을 위해선 서로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소설 속 노인과 소년은 선후배 세대 간 이상적인 소통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노인이 전하는 선배 세대의 소통 노하우부터 살펴보자. 첫째, 겸손함이다. 늙는 것은 필연이지만 성숙한 것은 선택할 수 있다. 노인 산티아고는 바다와 오래 함께해서 바다를 닮은 것일까? 그에게서는 넓은 마음과 겸손이 절로 흘러나온다. 선배 세대는 나이가 많다는 것만으로 후배 세대에게 반말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둘째, 칭찬이다. 노인은 친절하게 그의 식사를 챙기는 소년의 태도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넌 참 친절하기도 하구나. 자, 그럼 어디 먹어 볼까?라며 말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상대방에게 던지는 사소하지만 진실한 칭찬은 상대에게 전해진다. 셋째, 감정이입이다. 노인이 상대를 대하는 마음은 가히 끝판왕 수준이다.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순간에도 저 고기 놈이 돼보고 싶구나라고 감정이입하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노인이 소년을 대하는 모습이 그렇다. 늘 소년의 입장이 된다. 또 소설 속 소년 마놀린의 모습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후배 세대에 필요한 소통 노하우를 3가지로 갈무리해 본다. 첫째, 바른 성품이다. 소년은 날마다 노인이 빈 고깃배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가슴 아파한다. 소년은 늘 노인을 마중 나가 낚싯줄과 갈고리를 챙기는 등 노인을 돕는다. 소년은 진심으로 노인을 친할아버지 이상으로 살뜰히 챙긴다. 둘째, 존경이다. 어린 소년은 할아버지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지킨다. 단지 나이 든 노인이어서가 아니다. 소년은 노인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존경까지는 어렵다면 적어도 선배 세대를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셋째, 역지사지다. 소년이 노인에게 더 잘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선배 세대를 대하는 후배의 마음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소년처럼 선배를 배려하고 진심으로 위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노인과 바다』에서는 소통의 본질은 한마디로 사랑이라고 강조하는 듯하다. 세대 간 소통도 사랑이 전제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질문 하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과연 나는 함께하는 사람에게 어떤 존재일까?라고. 당신은 지금 함께하는 선후배에게 어떤 사람인가?
최근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젠더 갈등은 과거의 지역 갈등과 같이 중요한 득표 전략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증폭이든 반등이든 최소 표몰이에서의 효용성을 입증했다. 평등과 공존, 존중과 상호인정을 통한 국민화합 대신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갈라치기가 주력 전술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도덕성에 타격을 주기보다는 현실적 수익을 보장할 것이라는 초라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젠더 갈등의 배경에는 사회 변화가 초래하는 위기와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경쟁 상대로조차 여기지 않았던 자들과 동등해지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과 불쾌감, 압도적 우월성을 증명하고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혐오를 불러일으켰고, 여성에 대한 비하와 경멸 그리고 폭력으로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경향을 부추겨왔다. 증오를 증오로, 혐오를 혐오로 되갚는 방식으로 갈등과 긴장을 해소하려는 소용돌이 속에서 남성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남성으로서 얻는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군 문제 등에서 오히려 차별과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성평등 정책은 모두 여성우대 정책이라는 남성들의 역차별론과, 성차별적 입시채용비리, 임금격차의 지속, 젠더 폭력 심화 등에 따른 여성들의 성평등 정책에 대한 실망과 분노 속에서, 합리적이고 건강한 소통의 기회는 지연되고 있다. 오는 5월 17일 6주기를 맞는 강남역 살인사건은 우리나라의 성별 갈등이 첨예화된 안타까운 사건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의 생존을 위해 젠더 폭력에 대한 국가적 대책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너무도 빈번하게 잠재적 가해자 논리로 치환된다. 사회구조적 문제로서의 성차별은 이미 극복됐다는 항변과 비난의 뒤엉킴 속에서 여성과 남성 모두의 불안과 불행만이 점점 명료해지는 형국이다. 과연 이 간극의 접점은 존재할 것인가? 있다면 그것은 어디로부터 올 수 있는가? 여성가족부 해체가 젠더 갈등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보는 이유는 성평등 정책을 없애기보다는 성평등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는 것이 사회구성원의 화합과 소통, 행복과 안전 그리고 일상의 평온을 보장한다는 증거를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발표되는 행복한 국가 순위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아이슬란드, 핀란드, 노르웨이는 성평등 수준 1, 2, 3위를 차지하는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과 합계출산율이 높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여성과 남성 간 기대수명의 차이가 작다는 특징도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성평등 수준이 높은 국가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이 상대를 더 잘 포용하고 존중하는 경향이 있으며, 삶의 만족도가 높다는 연구결과가 이목을 끈 바 있다. 이제 그 간극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것 같은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도 전통적 성별규범에 대한 거부, 일상적 폭력에 대한 반대, 돌봄 분담에 대한 욕구, 공정성 확보, 동등한 권리 주체로서의 상호포용 등에서 연대의 접점을 찾아가는 일은 가능하다.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아직 다다르지 못한, 그러나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미래의 성평등한 사회는 모두의 안위 그리고 지속 가능한 공존의 필요조건이라는 점에서 더 많은 소통과 연대 창출을 위한 아낌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맥킨지는 2020년 출간한 보고서 「다양성의 승리(Diversity Wins: How Inclusion Matters)」에서 기업 고위층의 다양성이 기업의 장기적 이윤에 준 긍정적인 영향력을 평가하고 기업이 포용성을 강화할 것을 제안한다. 조직의 다양성은 개인들이 창의력을 발휘하게 하고 사회와 연결하는 사회자본을 강화해 시장에서 기업의 역할을 강화시킨다. 사회에는 숨겨지고 개발되지 않고 활용되지 않은 다양한 개인의 재능이 존재한다. 이 잠재적 손실과 이득은 사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다. 학습과 고용의 다양성과 포용성이 이를 살릴 수 있다. 한 사회와 조직의 다양성이 살아 있으려면 구성원이 다양해야 할 뿐 아니라 (잠재적) 구성원들이 가진 다양한 능력과 소질이 소중하게 개발되고 인정받아야 한다. 생애 초기 교육적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한 미국 경제학자 제임스 헤크먼은 아동의 인지적 숙련과 함께 비인지적 숙련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흔히 중요하게 여기는 인지능력은 성숙된 정서와 결합되지 않거나 사회적 관계 속에 무르익지 않으면 유산될 수 있다. 인간의 역량은 다면적일 뿐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다. 사람들이 가진 다차원의 다양한 재능이 발휘돼야 사회와 조직의 다양성은 높아지고 혁신은 더 자주 일어나며 생산성은 높아진다. 개인들의 잠재적 역량에 대한 실현과 개발은 매우 역동적이다. 어린 시절이 특별히 중요한데, 교육이 교육을 낳고 인적자본 축적이 또 다른 축적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량과 특질은 초기에 개발되지 않으면 영원히 소실될 수 있다. 잘 개발된 어떤 역량은 다른 역량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이것은 조기 개입의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생애에 걸쳐 폭넓은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사회의 교육제도는 인간의 잠재적 역량의 다면성, 재능의 다양성과 분포, 그리고 역량개발의 역동성과 사회적 성격을 고려해 만들 필요가 있다. 어떤 제도가 필요한가? 첫째, 아동을 위한 섬세한 돌봄과 지원 제도부터, 개인의 개별적 학습계획을 지원해 줄 학교제도가 필요해 보인다. 학습자의 강점뿐 아니라 약점, 특히 학습 장애를 다루는 역량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사회적 환경 때문에 학습이 느리고 천천히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들도 존중받아야 한다. 둘째, 자기 잠재력에 대한 탐색과 학습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들, 즉 학습안식년 또는 전환학년, 진로탐색 기간, 새로운 분야 경험 기회, 일과 새 일자리 사이의 쉼과 훈련 등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셋째, 고등교육과 직업훈련의 기회 균등이나 확장이 교육훈련 기관과 그 교육의 질을 높이면서 이뤄져야 한다. 기회균등은 좋은 교육훈련으로 주어져야 하고 모든 개인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는 학습기회가 있어야 한다. 높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성적에도 우리는 다면적 역량개발을 외면했고, 높은 고등교육 취학률은 대학의 품질을 학습자의 관점에서 볼 때 크게 높이지 못했다. 양질의 기관을 전제로 학습자가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제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과 경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변화는 점차 다양한 재능을 가진 개인을 필요로 한다. 다차원에서 다양한 개인을 품어내는 교육과 학습의 공간과 제도를 충실히 만드는 것이 다급해 보이는 시점이다.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하자. 당신에게는 성소수자 친구나 가족이 있는가. 커밍아웃은 아무에게나 할 수 없다. 상대가 받아줄 준비가 돼 있는지, 커밍아웃을 해도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혹시 모를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지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임이 드러날 때 그는 무엇을 감내할까. 그의 정체는 줄곧 비밀에 부쳐지거나 소문과 가십으로 전락한다. 부정적인 인식은 조롱과 경멸적인 농담으로, 그리고 직장 괴롭힘과 승진 배제, 퇴직 강요로까지 이어진다. 배우자가 이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험과 경조사에서 누락되고 탈락하며, 입양과 출산의 자격 또한 얻지 못한다. 군대는 어떤가. 부대 안에서 성관계가 발각될 때 한쪽이 성소수자임이 밝혀지면 「군형법」상 추행죄는 그를 처벌한다. 합의된 성관계이거나 심지어 성폭력 피해자일지라도 그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범죄자가 된다. 학교에서 성소수자임이 드러날 때 조롱과 괴롭힘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권 기반의 성평등 교육이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편견은 차별로 이어진다. 독립적인 자원과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청소년 성소수자는 취약한 여건 속에서 가정폭력과 탈가정 상황에 쉽게 내몰린다. HIV/AIDS 감염인은 어떨까. HIV에 감염된 사실만으로 병원은 필요한 치료와 수술을 거부하기 십상이다. 환자로부터의 감염을 예방하는 것은 의료인의 당연한 의무지만, 아픈 환자를 돌려보내는 것이 방법은 아니다. 트랜스젠더에게 원하는 성별로 살아가기 위한 문턱은 과도하게 높다. 호르몬치료와 성별정정수술 등의 비용은 어떤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남들과 다른 성별의 외양을 갖는다고 취업과 학업에서도 배제된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여대 입학을 거부당하고 군대에서 강제전역당한 것이 불과 2년 전 일이다. 이들이 어떻게 노후를 맞이할지, 노년의 성소수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사회에 태어나 성별을 부여받고 교육을 받으며 군대를 가거나 직장을 찾는 동안 더러는 연애를 하고 결혼과 출산양육에 이어 노후를 준비하는 생애주기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 공기 같은 일상에는 수많은 제도가 하루하루 성원을 지지하고 규율하고 훈육한다. 여기서 누군가는 제도나 사회적 인식과는 다른 몸과 생각을 갖고 살아갈 것이다. 어떻게든 적응하려 애쓰지만 실패하고, 개중에는 변화를 요구한다. 이를 불편과 성가심으로 생각하고 반대하는 이들은 제도에 맞지 않은 이들을 괴롭히고 차별하며 정상성을 보위할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상황을 헤아릴 필요는 없다. 다만 타인을 쉽게 예단하지 말고 이야기를 들어보자. 낯선 이의 삶에 마음을 여는 것은 물론, 나아가 그가 언제라도 부당한 차별을 당할 때 곁이 돼주는 것은 이웃을 대하는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책무이자 나를 위한 변화의 시작이다. 성소수자 운동은 성소수자라는 범주가 그동안 담지 못했던 성소수자 이주민과 성소수자 장애인,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찾으며 사회적 변화를 모색한다. 그리고 성소수자뿐 아니라 공기 같은 일상에서 정상성을 강요받는 당신에게도 변화를 요구하자고 제안한다. 일상을 만드는 제도는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를 나눠 한쪽을 표준으로 삼지만, 권리는 정체성과 성별을 막론하고 주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지금 우리가 평등한 권리를 이야기하고 차별을 사회적으로 고민하기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배경이다.
이번 20대 대선 결과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갈등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국민의 절반은 나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고, 계층지역세대성별로 나뉘어 분열과 대립이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갈등과 대립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단순히 여야 정부가 바뀐다고 해서 국민통합을 쉽게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12월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가 실시한 제9차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7%가 우리 사회의 집단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의 이러한 인식은 센터가 조사를 시작한 2013년 이래로 9년간 변함이 없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통해, 과거 여야 정권이 교체돼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볼 때 갈등관리는 미흡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통합을 위해 갈등해소를 국정의 우선순위에 두고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소선구제 중심의 선거제도는 표의 등가성을 훼손하고 승자독식의 정치, 적대적 공생 정치로 갈등을 구조적으로 양산한다. 선거제도를 시급히 개선하고 국회가 갈등해소를 위해 효과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제도 개혁이 요청된다. 또한 최근 코로나19 상황과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경제적 양극화를 더욱더 심화시켰다. 영화 세대 갈등과 젠더 갈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또한 국민통합의 장애물이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관련 정책을 마련하고 이견을 존중하되 공감대를 찾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문화가 요청되는 시점이다.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공공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갈등관리를 위한 법제도 마련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지난 2007년 정부는 갈등관리를 위한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갈등관리 수단을 제도화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을 마련하고 법제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의 소극적 태도로 정부의 갈등관리 규정은 현재까지도 대통령령으로 불안정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 결과 중앙정부 차원의 갈등관리 노력은 미흡한 실정이며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갈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없다. 또한 국민통합을 위해 역대 정부가 운영했던 국민통합기구는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현 정부에서 폐지됐다. 2017년 신고리 공론화를 계기로 갈등해소와 숙의민주주의 수단으로 주목받던 공론화 절차도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다. 그러나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의 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은 차기 정부에서 사회적 대화와 숙의 기구 운영이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국민통합기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것이 문제이지 불필요한 건 아니다. 국민연금 개혁, 젠더 갈등 등 쉽지 않은 사회적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공론화 절차의 활용은 긴요하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갈등은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이고 사회발전의 기폭제로 활용될 수도 있다. 다행히 차기 정부는 시대정신을 국민통합이라고 밝혔다. 단순한 수사적인 구호가 아니라 관련 정책수단과 갈등관리 법제도 정비를 통해서 국민통합을 실질적으로 실현하길 기대한다.
COPYRIGHT ⓒ 2019 KOREA DEVELOPMENT INSTITUT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