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의 시대가 가고 kWh가 온다.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자동차의 엔진이 몇 기통인가를 묻지 않는다. 이제는 연비가 아니라 배터리 용량이 얼마나 큰가를 따진다. 이 차는 한 번 충전해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한 요즘이다. 가솔린 및 디젤 엔진이 핵심인 기존 내연기관차의 완벽한 대체 모델로 떠오르고 있는 전기차 얘기다. 전 세계 자동차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터리와 전기모터 조합으로 굴러가는 전기차로의 전환에 속도가 붙고 있다. 전기차의 성장세가 본격화된 것은 코로나19 이후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660만 대로 코로나19가 발생했던 2019년 대비 226.3% 증가했고, 누적 보급대수는 2배가 넘는 1,650만여 대로 늘었다. 한국시장도 이와 동일한 흐름을 보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 누적 등록대수는 2019년 8만9,918대에서 지난해 23만1,443대로 크게 증가했다. 글로벌 전기차시장에서 한국의 위상도 달라졌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한국시장은 2019년 내수판매 3만5,443대 규모에서 지난해 판매 10만681대 수준으로 성장세를 보였다. 2020~2021년 성장률은 115%로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 중 가장 높았다. 전기차 수출 부문에서도 한국의 성과가 눈에 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전기차 수출규모는 70억 달러로 2019년 33억 달러와 비교해 112% 늘었다. 한국의 성장세는 현재 진행형이다. 누적 등록대수가 올해 상반기 29만8천 대 선을, 하반기 들어서는 30만 대 선을 넘어섰다. 국고보조금의 소진 여부에 따라 다르겠지만 올해 연말까지 누적 40만 대 돌파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점쳐진다. 사실 전기차는 어느 순간 혜성처럼 등장해 우리의 삶에 파고든 것은 아니다. 국내 경차시장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기아의 박스형 경차 레이는 2011년 전기차 모델로 시판된 바 있다. 현재는 모두 단종됐지만 2013년 당시 르노삼성차가 SM3 Z.E.라는 전기차를, 이듬해에는 BMW가 i3 전기차를 선보이기도 했다. 전기차가 주목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피할 수 없는 전 세계적 난제인 기후변화 때문이다. 무분별한 산업화가 부메랑이 돼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으로 이상기후 등이 발생하고, 우리의 삶도 변하고 있다. 당장 한국만 봐도 뚜렷했던 사계절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전기차가 정말 친환경적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전기차의 생산부터 배터리 등의 폐기까지 전 과정을 살펴보면 기존 내연기관차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더 많을 수 있다는 논리다.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특히 최근 유럽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다. 독일 재무장관인 크리스티안 린드너는 지난 6월 21일 독일 베를린의 한 콘퍼런스에서 EU의 2035년 내연기관차 폐지 방침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했다. 그럼에도 전기차의 전망은 밝다. 글로벌 자동차기업들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을 공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전기차 생산기반 구축을 위해 수십조 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이에 따라 순차적으로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대표 자동차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는 오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생산 및 판매를 완전 중단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합작해 미국 현지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는 등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총력전에 나선 모습이다. 한국 자동차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현대차는 2045년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고, 2035년부터 유럽시장에서는 전기차만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2040년부터는 국내에서도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할 방침이다.
웹 커뮤니티에서 종종 시기상조라는 밈으로 통칭되는 배터리 전기차를 이제는 나도 한번 타볼까?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전기차를 사려면 배터리가 얼마나 안전한지, 배터리 수명은 충분히 긴지, 충전속도 및 주행가능 거리는 괜찮은지 등 궁금증이 많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2022년 현재 출시되는 최신형 배터리 전기차에 장착된 배터리라면 안전성성능 면에서 내연기관차와 비교했을 때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오늘날의 배터리 전기차를 가능케 한 것은 리튬이온 이차전지로, 이차전지에서 안전사고의 원인이 되는 금속성 리튬이 아닌 이온성 리튬만이 충전 및 사용 중에 존재하도록 설계됐다 해서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리튬이온 이차전지는 1990년대 초 처음 출시된 이후 30여 년간 이차전지의 왕좌를 탄탄하게 지키고 있다. 비수계 전해질 시스템이므로 고전압이고 대개 어떤 양극활물질을 쓰느냐에 따라 종류가 나뉘는데, 모바일IT 쪽은 LCO(리튬코발트 산화물), 배터리 전기차나 전기에너지 저장장치는 삼원계라 통칭되는 NCM(리튬니켈코발트망간 산화물) 및 NCA(리튬니켈코발트알루미늄 산화물) 그리고 LFP(리튬인산철 산화물)를 쓴다. 비정상적인 환경과 조건에 놓이지 않는다면 삼원계와 LFP는 충분히 안전하다. 삼원계 배터리는 우리나라 삼성SDI, SK온, LG에너지솔루션, 중국 CATL, 일본 파나소닉 같은 최상위급 배터리 제조사일수록 안전사고 빈도가 극히 떨어진다. 중국 업체들이 주력하고 있는 LFP 배터리도 CATL와 비야디(BYD)가 생산한 배터리와 관련한 안전사고는 보고되지 않았다. 배터리 전기차 충전시간은 내연기관차 주유시간 수준까지 끌어내리는 것이 목표다. 현대기아차와 포르쉐의 최신 배터리 전기차의 경우 800V 배터리 팩 시스템을 구현해 350~400kW의 전력을 입력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 이 정도 성능이면 비어 있는 배터리 팩을 80% 정도까지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0분 전후에 불과하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 배터리 기술도 크게 발전했지만, 더 극적인 변화는 차량 운동성능이 저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배터리를 최대한 넓게 차량 바닥에 장착하도록 한 배터리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적극적 도입이다. 이로 인해 삼원계 배터리뿐 아니라 LFP 배터리도 1회 충전 주행가능 거리가 400km를 넘어섰다. 마지막으로, 전기차를 10만~20만km 혹은 5~10년 정도 탔을 때 배터리 팩 열화로 주행가능 거리가 떨어지고, 그에 따라 전기차 가치가 과도하게 하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최신 배터리 기술에서 삼원계나 LFP는 공히 수십만km 주행 후에도 배터리 잔존 용량이 90% 이상을 유지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라는 게 소유자에 따라 각양각색의 히스토리를 갖는 만큼 배터리 팩 열화에 대해 단정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비정상적인 상황을 제외하곤 최저 보증 수준이 점차적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본다. 시장에서 종종 보이는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과도한 안전성 우려, 그리고 이를 악용한 차세대 전고체 전지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배터리를 수십 년간 연구해 온 연구자들이 모였을 때 필자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대다수 사용자가 스마트폰, 풀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배터리 전기차에 어떤 배터리 팩이 들어가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 때가 온다면, 그때가 바로 배터리 안전성과 성능이 충분할 때다. 그런 면에선 아직 시기상조이긴 하지만, 점점 배터리 안전성과 성능에 대한 걱정이 옅어지고 있으니 조만간에 그때가 올 것으로 기대한다.
올해 상반기 전기차 판매량은 6만8,528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3만9,495대)에 비해 73.5% 증가했다. 현재 추세라면 올해 전기차 등록대수는 30만 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가 월 1만 대 이상 팔리는 전기차 전성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전기차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은 훌쩍 오른 기름값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연료비, 내연기관차와 차별화된 디자인과 성능 등을 이유로 전기차를 구매한다. 하지만 전기차 가격도 원자재부품 수급 문제 등으로 덩달아 뛰고 있다. 테슬라는 수시로 가격을 올려 모델3 스탠더드(최하위 모델)가 7,034만 원으로, 지난해 2월(5,479만 원)보다 1,600만 원 정도 올랐다. 보험료도 전기차가 더 비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기차의 평균 보험료는 94만3천 원으로 내연기관차하이브리드차(비전기차)의 평균 보험료(76만2천 원)보다 18만1천 원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급속충전 요금도 9월 1일부로 11% 가량 인상됐다. 과연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저렴할까. 차량 가격연료비보험료자동차세 등을 고려해 전기차와 비전기차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를 조사해 봤다. 비교 차종은 같은 모델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가 모두 출시된 기아 니로를 선택했다. 최하위 트림(세부 모델)부터 최상위 트림 가격 평균을 구하고, 전기차는 보조금(서울시 기준)을 가격에서 뺐다. 이렇게 계산하면 니로 전기차(EV)는 3,987만 원, 니로 하이브리드(HEV)는 2,954만 원으로 전기차가 1,033만 원 비싸다. 연료비는 연간 2만km를 주행할 경우 니로 EV가 연 52만 원 든다. 하이브리드차는 연 189만 원(연비 리터당 19km)이다. 전기차를 탈 경우 매년 연료비를 137만 원 정도 절약할 수 있다. 하지만 1만km를 주행할 경우 이 격차는 69만 원으로 줄어든다. 전기차 충전요금은 완속충전기를 70%, 급속충전기를 30% 사용했을 경우를 가정한 금액으로 급속충전기를 많이 사용할 경우에는 충전비가 더 들 수 있다. 휘발유는 리터당 1,800원 기준으로 했다. 여기에 전기차에 일괄 부과되는 자동차세(13만 원)와 보험료(금융감독원 평균치)를 종합하면 연 2만km를 주행할 경우 니로 전기차가 하이브리드차보다 연간 134만 원, 연 1만km를 주행할 경우엔 66만 원을 절약할 수 있다. 따라서 연 2만km를 주행하는 오너는 7년 8개월 이상 타면 비싸게 주고 산 전기차 금액(1,033만원) 이상으로 유지비를 아낄 수 있다. 연 1만km를 주행할 경우에는 15년 7개월 이상 타야 전기차가 더 싸다고 볼 수 있다. 주행거리가 짧을 경우 하이브리드차의 경제성이 더 두드러진다. 최근 다올투자증권의 조사결과, 연평균 8천km를 주행할 경우 10년 차량 소유 비용(구매가격+유지비)을 계산한 결과, 그랜저 하이브리드가 6,210만 원으로 전기차 아이오닉6(6,740만 원)보다 530만 원가량 저렴했다. 수입 전기차와 가솔린차를 비교하면 어떻게 될까. 각 사의 대표 엔트리(가성비) 동급 모델인 테슬라 모델3와 BMW 3시리즈 가솔린 모델(320i)을 같은 방식으로 비교해봤다. 차량 구입 가격(전체 트림 평균)은 테슬라 모델3(8,226만 원)가 320i(6,143만원)보다 2,083만 원가량 비싸다. 2만km 주행 시 BMW 320i의 연간 유지비는 455만 원, 테슬라 모델3의 유지비는 155만 원이다. 약 7년 이상 운행하면 테슬라 모델3가 더 저렴해지는 셈이 된다. 연 1만km 주행 때는 약 14년 2개월 이상 타야 모델3가 더 싸게 먹힌다. 단 할인이 전혀 없는 테슬라와 달리 BMW는 비정기적인 딜러사 할인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충전기 1대당 전기차 보급대수 2.6대로 전기차 충전기 보급률이 30여 OECD 국가 중에 가장 높았다. 세계 최대 전기차 보급국가인 중국은 7.2대로, 중국이 우리보다 충전기를 찾아가는 데 2.8배 더 어렵다는 얘기다. OECD 국가들의 충전기당 차량 평균은 9.5대다. 현재 환경부에 등록된 완속충전기(7kW급)는 10만 기를 넘어섰다. 개인전용 완속충전기와 급속충전기까지 합치면, 전국에 설치된 충전기는 14만 기가 넘는다. 국내 전기차 등록대수 약 30만 대와 비교하면 IEA가 조사한 2.6대보다도 뛰어난 충전인프라를 갖췄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충전시설 부족을 이유로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부가 매년 수만 기의 충전기를 보급해 보급률은 세계 1위가 됐지만 소비자 접근성은 떨어져 필요한 장소엔 충전기가 없거나, 있어도 고장난 채로 방치된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충전시설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유다. 정부가 보조금을 소비자가 아닌 충전사업자에게 지불하기 때문에 실제 사용자환경과 관계없이 충전기가 구축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충전사업자는 소비자 접근성과 상관없이 단순 설치물량에 따라 충전기당 수백만 원을 정부로부터 받는다. 정부 보조금을 받으려는 충전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최근 보조금을 선점하기 위한 외주 영업비용은 충전기당 역대 최고치인 100만 원까지 뛰기도 했다. 150만 원이면 충전기 구매와 설치까지 가능한데 보조금 경쟁 탓에 충전기 설치비용은 과도한 영업비까지 합쳐져 300만 원에 육박할 정도다. 정부는 보급사업 초기에 충전기당 보조금으로 500만 원을 지원했고, 이후 매년 보조금 단가를 단계적으로 줄여왔다. 지난해 완속충전기 보조금은 200만 원으로 실제 충전기 가격과 설치비를 쓰고도 10~20% 수익을 내는 구조다. 그런데 올해부터 보조금이 평균 160만원으로 줄어 처음으로 충전기 설치비보다 국가보조금이 낮게 책정됐다. 충전업계가 보조금으로 수익을 내는 건 옛말이 된 셈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충전업계에 투자 열풍이 불면서, 또다시 보조금 경쟁이 치열해졌다. 각종 펀드사나 대기업들이 충전기 설치물량이 많은 충전업체를 인수하거나 투자하는 사례가 크게 늘면서다. 시장 상위권 충전업체 대부분의 직원 수는 20명 안팎이지만, 회사 가치는 1천억 원이 넘을 정도로 과도한 거품이 생겼다. 정부의 보조금정책은 충전요금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가 직접 충전기를 설치하면, 한국전력(이하 한전)의 가정용 전기요금과 비슷한 kWh당 100원 안팎의 충전용 전기요금으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사업자를 거치면서 요금은 크게 달라진다. 현재 완속충전 요금은 kWh당 200원이 넘는다. 업체별로 서비스 마진을 붙이기 때문이다. 충전업체는 소비자에게 충전기 고장이 발생하면 이를 해결해 주고, 충전기를 이용할 때 사용자 인증과 과금에 필요한 서버를 운영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전은 지난 7월부터 kWh당 전기요금을 5원 인상한 데다, 충전요금 할인 특례제도 7월부터 폐지되면서 충전요금은 200원 중후반까지 올랐다. 불과 2년 전과 비교해 두 배 이상으로 뛴 것이다. 결국 국가보조금이 소비자 편리성이나 접근성을 높이기보다는 충전시장의 가격을 왜곡시키고 있다. 세계적으로 공동시설의 충전기 설치에 따른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국가는 여럿 있지만, 사업자를 지정해 충전기와 설치비 등을 지원하는 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코로나19가 여전히 우리를 힘들게 하는 와중에 올해는 폭염과 산불에 이어 역대급 태풍까지 발생해 우리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앗아갔다.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로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는 기후위기 시대에, 국제에너지기구(IEA)를 비롯한 많은 국제 연구기관이나 각국 정부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내놓은 수단은 크게 다음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는 에너지 사용기기의 효율 향상(energy efficiency)이고 둘째는 에너지 소비행동 변화(behavioral change)며, 셋째는 최종에너지의 전기화(electrification)다. 특히 수송 부문에서는 교통수단의 전기화가 핵심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10월 발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전기차 비중을 최소 80% 이상으로 높이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전기차의 빠른 보급을 위해 구매보조금 지원, 세제 감면은 물론 공영주차장 주차요금 및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 보급정책에는 다양한 문제가 존재한다. 전기차는 주행 중 온실가스 및 대기오염 물질의 배출이 없다는 점에서 무배출차량(ZEV; Zero Emission Vehicle)으로 평가받는데, 이는 전기차의 동력, 즉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환경오염 물질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국내 총발전량에서 석탄화력발전이 약 35.4%를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기차에 충전되는 전력의 약 3분의 1은 많은 양의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석탄발전에서 비롯됐다는 뜻이다. 전기차에 구매보조금을 비롯한 각종 혜택을 주는 주된 근거는 환경적인 편익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발전 부문에서 생기는 환경오염 물질의 피해를 고려한 필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전기승용차는 경유승용차에 비해 약 129만 원에서 162만 원의 환경편익이 발생하는 반면 휘발유 차량에 비해서는 약 5만 원에서 23만 원의 환경편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발전 부문의 환경오염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전기차와 휘발유 차량의 환경적 편익에 큰 차이가 없다는 의미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평균적으로 전기차가 휘발유 차량에 비해 약 1,095달러의 환경피해가 더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따라서 현재의 국내 전기 생산구조로 볼 때 정부의 재정지출로 지급되고 있는 전기차 구매보조금(국고보조금 최대 700만 원, 지자체 최대 1,100만 원)은 전기차의 환경편익에 비해 과도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환경적 형평성 측면의 문제도 있다. 환경적 측면에서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와 다른 중요한 부분은 차량이 운행되는 지점이 아니라 전기를 생산하는 지점, 즉 발전소가 위치하는 지점에서 환경오염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전기차가 경유차를 대체한다는 것은 환경적인 측면에서 차량이 운행되는 곳에서 발전소가 위치한 곳으로 환경오염 물질로 인한 피해가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7월을 기준으로 전기차의 46.6%는 서울경기제주에서 등록됐다. 반면 해당 지역 발전량은 전체의 약 15.9% 수준이며 특히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이 되는 석탄발전량의 비중은 0.7%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서울경기제주에서 전기차 보급이 증가한 만큼 해당 지역에서의 미세먼지는 줄어드는 반면 석탄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에서의 미세먼지 배출량은 증가한다는 것이다. 수송 부문의 전기화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미세먼지를 완화하는 데 필수적인 수단임에 틀림없다. 다만 발전 부문의 친환경적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이 전제돼야 한다. 더불어 전기차 보급으로 발생하는 환경피해의 지역적 차이 및 형평성 문제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전기차는 1832년 처음 등장해 내연기관차에 비해 조용하고 안락함을 제공하는 장점 등으로 상류층과 여성 운전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시커먼 매연이 나오는 내연차에 비하면 아주 깔끔(?)했던 전기차는 그러나, 충전의 어려움, 축전지의 짧은 수명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900년 초 포드사의 내연차 대량생산과 더불어 사라지면서 영원히 사장될 것으로 여겨졌었다. 그렇게 잊혀졌던 전기차가 최근 들어 다시금 뜨겁게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등장한 전기차는 200년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롭고 강력한 무기를 장착하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소위 CASE 혁명이라 하는데, 연결 가능하고(Connected), 자율주행을 목표로 하며(Autonomous), 공유서비스가 가능하고(Shared), 새로운 에너지원인 전기로 달리는(Electric) 자동차는 분명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공상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모습이다. 이런 변화를 몰고 온 주인공은 백년넘게 시장을 주름잡던 기존 자동차회사들이 아니었다. 새롭게 등장한 테슬라라는 작은 신생회사였다. 테슬라는 컴퓨터에 바퀴를 단다는 전혀 새로운 개념으로 자동차를 만들었다. 스마트폰처럼 구매 후에도 차량이 계속 업데이트(OTA)되고, 컴퓨터처럼 중앙집중식 처리장치가 있고, 자율주행을 위한 각종 센서의 데이터 처리에 유리한 자동차를 만든 것이다. 2010년대 말 테슬라가 보란 듯이 이렇게 발전된(?) 색다른 방식으로 차량을 만들게 된 것을 두고 토요타에서는 요리사가 레시피를 공개했다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 후 전통 자동차회사들은 앞다퉈 테슬라를 벤치마킹해 OTA 방식 및 중앙집중식 아키텍처를 새롭게 구성함으로써 테슬라를 따라잡으려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기차로의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반짝 유행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앞에 등장한 전기차로의 변화는 거스르기 어려운 거대한 파도와 같다고 말하고 싶다. 탄소중립 추진에 따른 법적 규제 등 외적 압력보다 소비자 스스로의 만족과 새로운 가치 추구에 따른 변화인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일례로 전기차는 배터리 팩 자체가 움직여 작동할 수 있기에 정차 중 에어컨이나 히터를 틀어야 할 경우 공해를 남발하는 공회전 시동을 걸 필요가 없다. 차박을 즐기는 캠핑객이나 학원 앞에 차를 대고 자녀를 기다리는 학부모 등 이러한 전기차의 편리함을 경험한 사람들은 전기차가 없는 환경으로 되돌아간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앞에서 언급한 CASE 혁명의 C, 즉 연결성 분야만 봐도, 앞으로 전기차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더 크게 변화시킬지 짐작할 수 있다. 차량성능 개선을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OTA 업데이트 기능은 기술진보와 함께 확대될 것이고, 더 커지고 많아진 디스플레이 화면이 장착될 것이며, 거기에 들어가는 콘텐츠도 방송영화는 물론 게임, 사물인터넷, 카 커머스 등 우리 삶 구석구석으로 확장될 것이다. 나의 자동차가 다른 자동차 그리고 교통인프라와 연결되고, 그것은 다시 위성, 중계기 등과 연결된다. 주변에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핸드폰과도 연결돼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를 미리 감지하기도 하고, 집과도 연결돼 나의 집이 확장된, 움직이는 거실에서의 생활이 가능하게 된다. V2X(Vehicle to Everything) 기술을 통해 전기차가 이렇게 모든 것과 연결되면서, 각 가정이 전기차와 직접 연결돼 전기를 주고 받는 커다란 전력망을 구축할 수도 있게 된다. 이처럼 전기차를 전력망과 연결해 유휴전력을 이용하는 V2G(Vehicle to Grid) 기술이 실현되면 특정 시간에 발전소 전기 사용이 몰려 정전될 위험도 크게 줄게 된다. 새로운 에너지를 사용하는 자동차 속에서 모든 것이 연결된 가운데, 차량사고와 공해는 현저히 줄어들고 운전자는 더욱 편리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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