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단일통화인 유로화가 출범한 지 20년이 됐다. 그 사이 유럽은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0~2015년 재정위기라는 두 번의 금융위기를 겪었다. 그간 유럽 금융의 위기는 곧 유럽 은행의 위기였다. 2008년 8,162개였던 유럽의 은행 수가 2020년엔 5,441개로, 10년 남짓 동안 2,700여 개가 사라졌다. 유럽의 금융산업은 자본시장보다 은행 중심의 구조로 돼 있다. GDP 대비 은행자산 비율을 보면 미국이 74%인 데 비해 EU는 292%에 이른다. 그만큼 은행은 유럽 금융에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은행들은 국채투자와 대출을 통해 정부재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은행은 중앙은행 차입을 위한 담보 확보, 유동성비율 규제 충족 등을 위해 유동성이 높고 안전한 자산인 국채를 매수한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 발생 시 이는 일부 유럽 재정취약국에서 은행들이 동반 부실화되는 요인이 됐다. 정부채권에 많은 투자를 한 은행들이 큰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다. 가령 그리스는 정부부채가 높은 상황에서 금융위기 발생으로 투자자들의 정부신뢰가 하락하며 세 차례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은행들도 부실화됐고, 은행들은 자본확충을 위해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부실은행을 정부가 지원하면서 정부부채는 더욱 증가해 은행과 정부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됐다. 실물경제를 통한 간접 경로를 통해서도 은행-정부 간 악순환 고리가 강화된다. 아일랜드의 경우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은행이 부실화됐고, 정부가 부실은행을 지원하면서 국가재정이 악화됐다. 이 같은 은행-정부 간 연결고리는 유로존 내에서 특히나 심각하다. 대부분의 은행이 자국 국채를 선호하는 자국 편중보유 문제 때문이다. 유럽은행감독청(EBA)에 따르면 국채보유의 자국 편중도 중간값(median)은 75%로 자국 국채 보유액이 기본자본(tier 1 capital)을 훨씬 초과(135%)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원국별로는 이탈리아가 자본(capital) 대비 195%, 스페인은 108%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다채무국의 은행들이 자국 국채를 편중해 보유함에 따라 위험이 분산되지 않고 은행-정부 간 악순환 고리가 강화돼 위기에 취약성을 드러낸다. 유럽은 단일통화 도입 이후 두 번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금융취약성의 한 원인인 은행-정부 간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한 많은 논의를 해왔다. 이것이 다름 아닌 은행동맹(Banking Union)이다. 이 글에서는 유럽 금융을 통합하고 은행산업의 복원력을 강화하고자 지난 10년간 추진해 온 은행동맹의 성과와 향후 과제를 살펴본다. 금융취약성 낮추고 유럽 금융의 통합 이뤄 유럽단일시장 꿈꾸는 은행동맹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를 거치며 EU 금융체계의 불완전성을 경험한 후, EU 정상회의(European Council)는 2012년 미래에 다가올 위기에 대비해 통화동맹을 보호하고 금융통합을 심화시키기 위해 은행동맹을 제안했다. 요컨대 은행동맹이란 회원국별로 분절된 규제(regulation)와 기구(institution)를 EU 차원으로 통합해 은행산업의 유럽단일시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은행동맹은 공통의 단일규제체계를 확립하고 감독, 부실정리 및 예금자보호를 위한 새로운 통합기구를 설립운영함으로써 유럽 은행을 보다 강건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먼저 단일규제체계는 은행규제 국제기준인 바젤Ⅲ 적용을 통해 회원국 간 규제 차이를 제거하고, EU 은행들의 공정경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단일규제체계의 핵심인 은행 자기자본규제는 필라1 최소필요자본(위험가중자산의 8%, 보통주 자본비율 4.5%), 필라2 요건(보통주 자본만으로 비율 충족), 결합완충자본(자본보전완충자본, 경기대응완충자본, 시스템위험완충자본), 필라2 가이던스(P2G) 등으로 구성된다. 이와 함께 은행동맹은 각각 공통의 감독체계, 위기관리, 예금자보호를 맡는 단일은행감독기구, 단일부실정리기구, 단일예금자보호기구 세 가지 축으로 이뤄진다. 단일은행감독기구(Single Supervisory Mechanism)는 2014년 11월에 유럽중앙은행(ECB)이 별도의 감독부서(ECB Banking Supervision)를 설치해 EU 단일의 은행감독기구로 출범했다. 자산규모 300억 유로 이상 대형 은행은 ECB가 직접 감독하고, 여타 은행은 각 회원국 당국이 감독하되 필요할 경우 ECB의 감독도 가능하다. 은행들이 EU 규제체계에 부합하는지 점검하고 조기 문제 해결에 나선다. 단일부실정리기구(Single Resolution Mechanism)는 2016년1월 단일부실정리위원회(Single Resolution Board)가 출범, 단일부실정리기금(SRF; Single Resolution Fund)을 적립활용해 파산가능성이 있는 은행에 대한 행정적 정리업무를 수행한다. 2021년 기준 회원국 은행들로부터 520억 유로의 기금을 조성했으며, 올해 말까지 전체 은행예금의 1% 수준까지 기금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기금은 정리대상 금융기관의 부채 보증, 대출, 자산매입, 인수기관 지원 등에 활용한다. 납세자의 세금이 부실은행 지원에 사용되지 않도록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실기관 손실 흡수나 자본확충에 기금을 활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또한 지난해부터는 SRF가 부족할 경우 유럽안정기금(ESM; European Stability Mechanism)이 680억 유로 한도 내에서 신용공여(credit line)할 수 있게 함으로써 SRF의 안정성을 보강했다. 단일예금자보호기구(Single Deposit Guarantee Scheme)는 예금자들이 어느 위치에 있든지 동일한 수준의 예금자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량 인출사태에 따른 위기의 전염을 예방하는 데 목적이 있다. 회원국별로 예금보장수준이 상이할 경우 보장수준이 낮은 국가에서 보장수준이 높은 국가로 자금이 이탈해 예금유출국가에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고 극단적인 경우 은행실패의 결과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EU 집행위는 유럽예금자보호기구(EDIS) 설립안에 대한 법률을 제안한 상황이다. EU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예금자보호의 핵심요소인 보장한도를 10만 유로까지로 통일하도록 지침을 마련했으나, 여전히 회원국 차원에서 예금자보호가 이뤄지고 있다. EDIS는 회원국별로 설치된 예금자보호기구가 아닌 유로 차원의 단일예금자보호기구를 통해 기금을 통합함으로써 더 강한 예금보호기금을 마련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국가별 충격에 의한 회원국 예금자보호기구의 취약성을 줄이고, 위험을 분산해 예금이탈을 방지함으로써 은행-국가 간 죽음의 고리를 약화하려는 것이다. 은행동맹은 그동안 EU 단일규제체계, 감독 및 부실정리와 관련해 법 제정과 기구 출범 등에서 중대한 진전을 보였다. 그러나 은행동맹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으며, 은행과 국가 간 죽음의 고리가 지속되고 있다. 중요한 위기관리 권한이 여전히 각 회원국 차원에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일은행감독기구와 단일부실정리기구는 운영을 시작했으나, 단일예금자보호기구는 진척이 매우 더딘 상황이다. EU 차원의 부실정리시스템도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단일부실정리기구에 의해 은행이 정리된 사례는 단 두 건에 불과하다. 단일부실정리기구에 의한 부실처리는 회피되고 여전히 과거 방식인 회원국 차원에서 부실정리가 이뤄지고 있다. 이를 두고 독일 괴테대의 토마스 우에르타스(Thomas Huertas) 교수는 삶은 국제적이지만 죽음은 국가적이다(International in life, but national in death)라고 묘사했다. EU 집행위, 이사회 및 단일부실정리기구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EU 차원의 부실정리 계획을 이행하지 않을 수 있는 중대한 회피경로가 EU 부실정리체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EU 「은행부실정리법」에서는 부실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을 위해 최소 8%의 민간 손실분담을 요구하고 있어 이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피하고자 회원국 당국은 부실은행을 묵인하거나 연명하게 함으로써 EU 차원의 부실정리를 회피하려 하기도 한다. EU 차원의 부실정리시스템 작동 안 되고 회원국별 자국 국채 편중보유 등 과제 산적해 유로존 은행들의 자국 국채 편중보유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은행들이 여러 회원국 국채를 골고루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국 국채를 쏠리게 보유하면서 위험이 분산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채무 비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이러한 편중보유 문제가 심각하다. 이에 독일과 같이 비교적 건전한 은행을 가진 회원국은 단일예금자보호기구가 만들어질 경우 발생할지 모를 도덕적 해이를 우려한다. 과다채무국이 단일예금자보호기구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게을리하고, 오히려 은행들로 하여금 자국 국채를 더 보유하도록 권유(moral suasion)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단일예금자보호기구 설립 반대의 주된 이유가 되고 있다. 유럽에서 금융위기의 위협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재정취약국의 국채금리가 급등하는 등 회원국 간 시장 불균형 문제가 상존한다. 유럽 금융이 위기에 대한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은행산업을 통합하고 유럽단일시장을 구축하고자 하는 은행동맹이 보다 빠르고 강력하게 이행돼야 한다. 아직까지 은행동맹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 것은 은행동맹을 규제하고 있는 법과 제도가 자국 은행산업에 대한 통제력을 놓고 싶지 않은 회원국들의 욕망을 상쇄할 만큼 강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회원국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은행시스템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면서 외국 경쟁자들로부터 자국 은행을 보호하려고 한다. 그동안 유럽은 유로존 출범 이후 EU 차원에서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노력을 느리지만 꾸준히 지속해 왔고 많은 성과도 있었다. 유럽 금융이 보다 강건해지려면 은행동맹의 세 축 중 마지막 남은 유럽 단일예금자보호기구가 하루빨리 출범해 은행동맹이 완성돼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3년 가까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하던 중국 정부는 최근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기조를 전환하고 시진핑 주석 집권 3기의 시작을 앞두고 있다.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최근 30년래 가장 낮은 수준인 1.7%로 전망하고 있고, IMF는 올해 세계 3분의 1 이상의 지역이 경기 침체를 겪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듯 암울한 전망이 가득한 가운데 주요국 중 유일하게 연 4% 이상의 경제성장을 기대하는 곳이 중국이다. 이 글에서는 기회요인과 도전요인이 중첩된 올해 중국경제가 세계경제의 회복 모멘텀을 제공하는 변수가 될 수 있을지 알아보고자 한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지난 1월 17일 발표한 2022년 주요 경제지표 실적에 따르면 중국경제는 지난해 4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2.9% 성장해 연간 기준 3.0%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국 정부가 연초 제시한 목표치 5.5%를 크게 하회하는 수치로, 주된 배경은 대내적으로는 제로 코로나 정책 유지로 인한 생산소비 활동의 부진,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와 수출 실적 하락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전반적으로 부진했던 중국경제, 올해는 적극적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탄력적 회복세 보일 전망 중국경제의 최근 상황은 주요 지표의 월별 실적을 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대외수요 영향이 큰 수출 실적의 경우 상반기까지 양호했으나 하반기 들어 증가율이 급격히 둔화되며 12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9.9%까지 떨어진다( 여러 경제지표 중 그나마 선방한 것으로 평가받는 것이 투자(고정자산투자) 실적이지만 이 또한 연말로 갈수록 증가율이 둔화되는 상고하저의 모습을 보이며 중국의 경기 둔화를 시사하고 있다. 생산과 소비는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한 타격이 가장 큰 부문이다. 지방도시별로 코로나 상황에 따라 수시 반복적으로 시행한 이동제한 및 봉쇄 조치는 공장 등 주요 생산시설의 조업 중단과 사람들의 소비심리를 저하시키는 주된 배경이 됐다. 특히 중국 최대 경제도시 상하이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도시봉쇄 조치를 시행한 지난해 4~5월의 생산소비 실적은 수치상으로도 그 심각성이 확인되고 있고, 이후 다소 회복세를 보이던 소비심리는 지난해 4분기에 다시 크게 위축되며 올해도 중국경제 회복의 최대 관건이자 우려의 대상이 된 상황이다. 소비와 함께 현재 중국경제의 최대 난제 중 하나는 부동산 부문의 심각한 침체다. 부동산 관련 개발투자, 판매면적, 판매금액 실적 모두 지난해 초부터 연말까지 지속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며, 헝다그룹 등 주요 부동산 기업의 현금흐름 악화, 채무 불이행 이슈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언론의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 중국 금융당국은 최근 부동산 기업들의 유동성 확보를 지원하기 위한 금융지원 계획 등을 발표하며 부동산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시장의 수급상황이 단기간에 개선될지는 조금 더 지켜볼 문제다. 지난해 중국경제의 전반적인 부진에도 불구하고 2023년에는 중국이 세계경제의 유일한 희망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3년간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했던 중국 정부는 지난해 말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을 선언하며 방역정책을 대폭 완화하고 국경을 개방하는 등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올해 중국 정부는 부진했던 지난해의 경제실적을 만회해 민심을 추스르는 한편 지난 10월 20차 당대회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새 지도부의 취임과 시진핑 주석 집권 3기 첫해를 맞아 양호한 경제환경을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국내 정치적으로도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가 오는 3월 양회(兩會) 개최를 전후해 대대적인 경기부양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에 나설 경우 올해 2분기부터 탄력적인 회복세를 기대할 수 있어 연간 4% 후반에서 5% 초반 수준의 성장률로 주요국 가운데 올해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도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2022년 실적인 3.2%보다 0.5%p 하락한 2.7%로 전망하며, 세계 3분의 1 이상의 지역에서 경기 침체가 나타날 2023년 글로벌경제에서 중국경제의 회복세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중국의존도 높은 홍콩경제, 국제무대 복귀에 시동 중국의 특별행정구역이자 싱가포르와 금융중심지 지위를 두고 경쟁관계에 있는 홍콩 정부의 최근 모토는 국제무대로의 복귀(Hong Kong is back)다. 오랜 시간 개방성과 자율성을 최대 장점으로 인정받았던 홍콩경제는 중국 본토와 함께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해 온 지난 3년 동안 글로벌 무역금융 허브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의 강도 높은 방역정책으로 내부의 비판과 외부의 우려를 동시에 샀다. 하지만 홍콩 정부는 올해 1월 8일부터 중국본토 및 여타 세계와의 국경을 재개방하며 글로벌 도시로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에 한창이다. 지난 11월 초 0+3(호텔격리는 없으나 입국 후 3일간 식당이용 제한) 방역정책을 유지하는 가운데 첫 번째 국제 금융행사로 글로벌 100대 금융기관 CEO 초청행사(Global Financial Leaders Investment Summit)를 개최한 데 이어 올해 1월 11~12일 아시아금융포럼(Asian Financial Forum)을 개최하며 국제무대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또한 국제 항공노선 확대와 홍콩-선전-광저우 고속열차 운행 재개 등 국경 간 여행수단을 확충하고 국제 행사전시회를 잇달아 개최하는 등 해외손님들을 다시 맞이할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다. 홍콩 정부의 전격적인 정책 전환의 배경에는 중국 중앙정부 정책 방향에 대한 호응의 성격도 있지만 무엇보다 홍콩경제의 어려운 현 상황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홍콩경제는 1~3분기 모두 역성장했으며(4분기도 역성장 전망), 세계 3대 금융중심지 지위도 싱가포르에 내주고 4위로 하락하는 등 홍콩 내부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개방형 경제이자 대표적 중개무역항인 홍콩은 외부수요 변화에 민감한데 올해 세계경제의 침체와 이에 따른 수요 감소 전망은 단기간 내 수출 실적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게 하고 있어서 홍콩 정부로서는 중국본토 등 해외관광객 유치와 같은 여타의 수단을 통한 내수 진작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금융 분야에서도 홍콩은 싱가포르와의 경쟁 심화 상황에 대응하고 홍콩의 경쟁우위를 지키기 위해 중국 금융당국과의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홍콩-중국본토 금융시장 간 연결성을 제도적 장치(connect scheme) 확대를 통해 발전시킨다는 계획이고, 중국 금융당국 또한 국내 금융시장의 낮은 개방성을 홍콩과의 연결성 확대를 통해 보완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홍콩은 IPO 시장 등 기존 아시아 자금조달 허브로서의 지위(2022년 IPO 세계 3위)를 공고히 해 중국, 동남아, 중동 지역 기업들의 주식상장, 채권발행, MA 수요를 유치하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분야에서도 중국 인민은행과 협력해 국경 간 결제(cross-border payment) 모델을 구축하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객관적 지표상으로 홍콩의 중국경제에 대한 기여도는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적어도 금융 분야에서 홍콩이 갖는 전략적 가치는 지금의 미중 갈등 상황과 결합돼 더욱 높아지고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명실상부한 패권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국제결제통화로서의 위안화의 가치 상승(위안화 국제화)이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이를 추진하는 역외 핵심기지가 홍콩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 위안화의 역외유통 확대 등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는 여러 방법론에서 홍콩은 중국 정부의 정책을 협조적으로 실험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따라서 중국경제에 기여하는 방식이 다소 바뀌었을 뿐 홍콩은 앞으로도 금융을 중심으로 중국의 국제 영향력 확대에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경제의 회복력과 미중 갈등 양상이 2023년 세계경제에 중요한 변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여러 국가(지역)에서 진행한 중국에 대한 호감도 조사 결과에서 부정적 답변 비중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나, 중국경제는 여전히 세계경제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특히 글로벌 경기 침체와 추가적인 수요 감소가 예상되는 2023년 세계경제에 중국경제의 활력 회복 여부가 반등의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인플레이션, 미국 연준(Fed)의 고강도 긴축,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지난해 세계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3대 요인이다. 대표적인 제조국이자 수출국인 중국의 지난해 국가(지역)별 수출입 실적을 보면 이 같은 3대 요인과 숨 가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긴축으로 수요가 감소한 미국으로의 수출은 둔화됐고, 외교적 갈등을 겪었던 호주 등으로부터의 수입(주로 원자재, 중간재 등)은 크게 감소했으며,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국제제재를 받은 러시아와의 교역 규모는 중국러시아 간 전략적 협력 확대 움직임에 따라 크게 증가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는 미중 갈등이라는 중요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무역 분야에서 시작된 양국 간 갈등은 이제 첨단기술, 군사, 금융 등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 결과 국제질서는 기존 세계화가 약화되는 동시에 파편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양상을 보이고, 그 과정에서 다시 국제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에 기반한 새로운 형태의 지역화, 블록화가 탄생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2023년 세계경제는 경기 침체를 겪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마주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경제가 주요국 중 유일하게 세계경제와 아시아경제의 회복을 도모할 수 있는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을지, 오는 3월 양회를 전후로 있을 경기부양책의 규모와 내용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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