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발견되고 확산된 지 2년이 더 지났다. 코로나19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 세계에 유례없는 충격을 줬다는 점이다. 지난 3월 초를 기준으로 전 세계 누적 확진자는 4억4,500만 명에 달하고 누적 사망자는 600만 명에 이른다. 코로나19의 충격은 튼튼한 의료안전망을 갖춘 EU 회원국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군 인력이 요양시설을 소독하는 과정에서 노인들이 죽어 있거나 침대에 방치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위 내용은 2020년 3월 24일 유로뉴스(Euronews)에 실린 기사의 한 부분이다. 기사 내용만 보면 후진국 또는 개도국에서 일어난 일로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이 기사는 대표적인 선진국인 스페인에서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벌어진 일을 다룬 것이다. 의료시스템 잘 갖춘 EU 회원국들, 코로나19 초기 대응에선 한계 드러내 EU 회원국의 의료보장시스템은 회원국별로 운영되고 있으며 국가 간 편차가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회원국들은 높은 수준의 의료 접근성, 질 높은 의료서비스, 낮은 본인부담률 등 효율적인 의료보장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EU 회원국들의 평균 기대여명은 81.3세(유로스타트, 2019년 기준)로 전 세계 평균 기대여명 73.4세(WHO, 2019년 기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영아사망률은 출생아 1천 명당 3.4명(유로스타트, 2019년 기준)으로 전 세계 평균 영아사망률 29명(WHO, 2019년 기준)에 비해 매우 낮다. 이러한 양호한 건강지표에도 불구하고 EU의 GDP 대비 보건의료지출은 평균 8.3% 정도로 미국(16.8%), 일본(11%), 영국(10.2%)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OECD, 2019 기준)에 머무르고 있는 등 EU 회원국들이 전반적으로 비용효과적인 의료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의료보장 강국인 EU 회원국들에서 코로나19의 확산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전개됐다. 3월 6일 기준 EU 지역의 누적 확진자는 8,972만8,118명으로 전 세계 누적 확진자의 20.3%를 차지하고 있고, 누적 사망자는 45만8,248명으로 전 세계 누적 사망자의 7.7%에 이른다. 효과적인 의료보장시스템을 갖춘 선진국으로서는 예상 밖의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이다. EU 지역은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는 감염병으로 큰 피해를 입은 경우가 많지 않았다. 감염병 발생에 따른 확진자 동선 추적, 밀접접촉자 격리 조치 등에 익숙하지 않았으며 대규모 환자 발생에 따른 체계적 의료시스템도 충분히 준비돼 있지 않았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마스크, 보호복 등은 턱없이 부족했고, 의료장비 및 병상의 부족으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2020년 4월 7일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Politico) 유럽판에 실린 다음과 같은 기사는 EU 회원국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EU 회원국의 정상들에게 가장 충격적인 것은 마스크와 기본 의약품의 원료조차 만들지 못하는 자국의 무능력이었다. 의료인들이 보호복을 구하지 못해 쓰레기봉투를 입고 있는 모습은 세계 공급망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개별 회원국 차원의 초기 대응에 한계가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EU 차원의 초기 대응에도 많은 문제점이 지적됐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많은 EU 회원국은 급속한 코로나19 확산에 당황해 국경을 봉쇄하고 마스크, 의료장비 등 필수 의료물품의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도입하는 등 코로나19에 공동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점은 보건정책 권한의 상당 부분이 회원국 소관으로 돼 있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 측면이 있다. 감염병 대응과 관련해 EU 차원의 공동대응 노력은 코로나19 발생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시도돼 왔다. 신종 감염병 출현 등에 대응하기 위해 2004년 유럽질병예방관리센터(ECDC; European Centre for Disease Prevention and Control)를 설립했고, 감염병 조기경보대응시스템(EWRS; Early Warning and Response System) 등을 통해 공동감시활동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ECDC는 회원국 간 이견을 조정할 권한이 없는 등 코로나19 대응 초기에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EU 차원의 보건위기 대응 전담기구 HERA 2021년 신설 회원국 간 갈등 및 혼선을 해소하고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EU 회원국 정상들은 코로나19 공동대응, 대규모 경제회복 대책, 원활한 국경이동 촉진 등에 대해 합의하고 추진해 왔다. 보건정책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공동대응은 코로나19 백신 확보 대책이었다. 2020년 6월 EU는 백신전략(EU Vaccines Strategy)을 발표하고 유망한 백신의 개발을 지원하는 한편, 개발 이전부터 우선구매 방식을 활용해 백신을 조기에 확보했다. EU 회원국들은 현재까지 화이자 백신 24억 도즈 등 8개 백신 회사와 최대 42억 도즈 규모의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EU는 발 빠른 백신 확보에 이어 코로나19 치료제전략(EU Strategy on COVID-19 Therapeutics)을 통해 유망 치료제 10대 목록을 발표하고 공동구매를 추진하는 등 치료제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 아울러 코로나19 초기 극심한 부족현상을 보였던 마스크, 보호복, 보호장갑 등 개인보호장비에 대해 EU 차원의 비축사업을 확대하는 등 팬데믹에 대한 공동대응 능력을 확충해 왔다. EU는 역내에서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기 위한 회원국 간 합의도출에도 주력했다. 우선 EU 회원국의 역학 상황에 따라 색깔을 부여(녹색, 주황색, 적색, 진한 적색)하는 분류체계를 도입해 역학 상황을 고려한 방역조치 적용이 가능하도록 했고 회원국들이 여행자에 대해 EU 공통의 승객위치확인서(passenger locator form)를 도입하도록 했다. 백신접종이 시작된 이후 EU는 회원국 전체에 통용되는 접종증명서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이는 2021년 7월부터 시행됐다. EU의 전자 코로나19 증명서(EU Digital COVID Certificate)는 EU 회원국 전체에서 사용이 가능하며 EU 주변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와 증명서 상호인정이 추진되고 있다. 한편 EU 권역 내 확진자에 대한 동선 추적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주요한 이슈였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접촉 사실을 통보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의 개발은 사생활 보호라는 기본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반대에 직면했다. EU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우선하는 원칙을 채택했으며, 익명성에 기반한 블루투스 근접 기술을 이용해 자발적으로 앱을 설치한 사람들에게 확진자와 접촉한 사실을 통보해 주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회원국 간에 연동되도록 했다. EU는 미래 보건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 11월 유럽보건연합(EHU; European Health Union) 구성 계획을 발표했고 구체적 실행을 위한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EHU의 핵심 목표는 보건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태세를 갖추고 EU 보건시스템의 복원력을 제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EU 차원의 보건위기 개입, 역학상황에 대한 공동 감시 및 위기분석, 진단검사 및 동선 추적 개선, EU 차원의 준비태세 강화 및 회원국 간 조율 강화, 필수 의약품 및 의료장비의 공급 안전성 확보를 정책방향으로 설정했다. EHU 추진과 관련해 EU는 현재까지 보건위기 대응 전담기구 신설, 유럽의약품청(EMA) 및 ECDC의 기능 강화, 유럽의약품전략(Pharma-ceutical Strategy for Europe) 추진 등의 주요 정책을 발표 했다. 미래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정책은 EU 차원의 보건위기 대응 전담기구 신설이라고 할 수 있다. EU의 보건위기 대응 전담기구 신설 계획은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2020년 정책연설에서 처음 발표됐고, 보건비상대응기구(HERA; Health Emergency Preparedness and Response Authority)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9월 16일 설립됐다. HERA는 미국의 첨단바이오의약품연구개발국(BARDA; Biomedical Advanced Research and Development Authority)의 기능과 역할을 참고해 설립됐는데, 향후 수행할 핵심적인 기능으로는 ①백신 등 의료적 대응수단의 개발생산구매비축, ②보건위기 대응을 위한 정책 조정 및 산업계 등 이해관계자 협력, ③글로벌 보건위기 공동대응 등이 제시되고 있다. HERA의 기능은 현재 ECDC 및 EMA에서 수행하지 않고 있는 새로운 기능을 중심으로 설정됐고, 이에 따라 EU 차원의 보건위기 대응 권한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위기 상황에 대비해 정부의료계산업계 간 긴밀한 협력관계 구축할 필요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전 세계 국가들이 백신 개발 및 확보를 위해 경쟁을 벌인 바 있다. 미국의 BARDA에 이어 EU가 HERA를 설립함에 따라 강대국의 백신 개발을 위한 투자 및 백신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글로벌 백신허브화 추진단을 설립해 백신 개발 및 생산역량 확충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향후 이러한 기능을 더욱 확대해 미래 보건위기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 보건당국과 EU의 HERA 및 미국 BARDA 간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글로벌 공동대응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EU는 HERA 설립을 계기로 보건위기 상황에서 보건정치경제 등을 감안한 종합적 판단이 가능하도록 의사결정 체계를 개선하고 있다. 보건위기 사태가 선포될 경우 EU 집행위와 회원국이 참여하는 보건위기위원회(Health Crisis Board)를 설치하는 한편, 각 분야 집행위원이 참여하는 조정위원회를 설치해 정무적 조정(political steering)이 가능하도록 제도화했다. 우리나라 역시 과거 메르스 등의 경험을 토대로 보건위기 상황에서의 의사결정 구조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왔으며, 이번 코로나19 대응에서도 큰 성과를 도출한 바 있다. 감염병 등 보건위기 상황에서는 정부의 힘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으며, 민간 의료기관 등 의료계, 제약 기업 등 산업계와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EU는 HERA 설립과 함께 공동산업협력포럼(Joint Industrial Cooperation Forum)을 설치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역시 현재의 협력관계를 더욱 심화시키고 제도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사건은 국제 원유 및 원자재 시장에 큰 충격으로 전해졌으며, 이후 세계 주요 금융시장도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올해 세계경제는 IMF가 연초에 전망했던 4.4% 성장률 달성이 어려워졌다. 주요국 가운데서는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 의존도가 각 70%, 40%에 달하는 중국 실물경제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번 글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중국경제에 주는 영향과 시사점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 공급 측면 인플레이션으로 중국 제조기업의 어려움 가중은 불가피 당장의 문제는 공급 측면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상승하고 이로 인해 중국 국내 중소기업들의 경영환경이 크게 악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이번 러시아 경제제재가 글로벌 에너지시장과 주요 에너지 수입국의 실물경제에 주는 충격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자원부국인 러시아는 지난해 기준 세계 원유 생산량의 11%를 담당했고, 이 외에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1위(24.3%), 반도체 소재 팔라듐 생산량 세계 1위, 소맥 수출 1위 등 국제 에너지자원 및 식량 시장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크다. 또한 러시아의 침공으로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불가능해진 우크라이나도 지난해 기준 소맥 수출 5위, 옥수수 수출 3~4위의 주요 식량생산국이자 유럽지역의 주요 산업재 공급지역이다. 상황 초기 해외자산 동결,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망 배제 등 금융제재에 집중했던 미국, 영국 등 서방의 러시아 제재범위가 3월 8일을 기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금지라는 러시아경제의 급소를 직접 겨냥하며 국제 에너지시장은 일대 패닉현상을 보이게 된다. 러시아산 에너지 상품의 공급감소 우려가 곧장 시장 가격의 상승으로 연결되며 주요 원유 가격이 미국의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금지 결정을 전후해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하면서 일주일 사이에 20% 이상 급등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은 비단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세계경제의 대표적 제조국가이자 에너지, 원자재(금속, 광물 등) 사용 비중이 높은 중국의 산업구조 특성을 고려하면 이는 공급 측면의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실물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코로나19 장기화로 가뜩이나 힘든 중국 내 중소형 제조수출 기업들의 어려움이 크게 가중되는 상황이 불가피해 보인다. 중소형 제조수출 기업이 현재 중국경제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는 점은 최근 중국 정부의 경제정책 동향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 등 대부분의 주요국이 본격적인 금리인상 주기에 진입한 것과 달리 중국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기준금리격인 대출우대금리(LPR; Loan Prime Rate) 1년물을 각 5bp(1bp=0.01%p), 10bp씩 연달아 두 차례 인하했고, 지난해 12월에는 지급준비율(Reserve Requirement Ratio)도 인하하는 등 완화적 통화정책을 통해 시중 유동성을 공급하고 경기를 부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경제에서 비중 큰 중소기업의 부담 가중되지 않도록 정부는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 확대 지난 3월 초 개최한 양회(兩會)를 통해 밝힌 중국 정부의 재정정책 방향을 보더라도 중소형 기업 대상의 각종 감세 및 수수료 감면, 대출 확대 등의 기조를 지속 유지하고 있는데, 중국 정부의 이런 정책 방향은 다름 아닌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 상황과 제로 코로나 정책 유지로 경영난에 처한 중소기업들의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중국 정부가 이처럼 중소기업 살리기에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중국경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도가 크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은 중국 총고용의 약 80%, 기업 총수익의 약 70%, GDP의 약 60%, 정부 조세수입의 약 50%를 담당하고 있다(2020년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 사회주의 체제 특성상 고용의 주된 주체가 중소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부실 또는 파산은 결국 체제와 사회의 불안으로 연결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급등한 국제 원유 및 원자재 가격이 한동안 유지된다면 약 2천만 개에 달하는 중국 중소기업이 받는 비용 압박이 급속히 커져 중국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감세 등의 정책 효과가 반감되고 결국 파산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중국은 눈에 보이지 않는 득(得)을 기대하는 부분도 있어 보인다. 제재가 시행된 이후 러시아 수출기업들이 대외 금융거래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이들이 중국계 금융기관과 거래하며 중국이 자체 개발한 국제결제망을 이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2015년에 위안화를 활용한 국제 무역투자, 글로벌 금융기관 간 지급결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독자적인 위안화 결제청산 시스템인 CIPS(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를 개발한 바 있는데, 미국 주도의 SWIFT에 비해 시간적비용적 효율이 떨어지고 후발주자 한계 등으로 그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18년 미중 무역분쟁을 시작으로 중국이 미국과 전략적 경쟁관계에 놓이면서 CIPS 활용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던 차에 발생한 이번 러시아의 SWIFT 배제 사안은 중국으로서는 매우 유의미한 참고대상이 될 전망이다. 왜냐하면 최근 3~4년 사이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되면서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이 지속 확대돼 왔고, 특히 2020년 6월 30일 중국 정부가 홍콩에 적용 가능한 「국가보안법(National Security Law)」을 시행하면서 중국을 SWIFT망에서 배제하는 등의 금융제재 가능성이 실제 제기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러시아 SWIFT 배제는 중국의 CIPS 활용, 디지털 위안화 확대 시도 불러올 듯 미중 갈등의 전선이 무역 분야에서 시작해 첨단기술 분야 경쟁을 거쳐 종국에는 금융 분야로 확대될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국은 자신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금융영역에서의 지배력을 미중 경쟁의 전략적 요소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은데, 특히 200여 개 국가에서 1만1천 개 은행이 연결돼 있는 SWIFT 배제 옵션은 가장 강력하면서도 효과적인 압박 수단임에 틀림없다. 미중 패권경쟁이 단시일 내 종료되기 어려운 성질의 사안임을 고려하면 중국은 미국 중심의 기존 국제 금융질서를 회피하거나 우회하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대비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핵심 사안은 중국이 미국 주도의 SWIFT 영향력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중국의 입장에서는 향후 주요한 대외 교역투자 파트너 국가들과의 거래과정에서 CIPS 활용도를 높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디지털 위안화(e-CNY)의 국제 거래량을 제고하는 방법을 통해 이 문제를 돌파해야 하는데,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CIPS 확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최근 중국 정부가 주요국 가운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의 개발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는 점도 상기 배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상당수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러시아의 긴장 조성으로 그치거나 무력충돌이 있어도 국지전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으나, 결과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비켜갔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며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사안이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전략에 새로운 추진력을 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한 달 전인 올해 1월 SWIFT가 발표한 주요 통화별 국제결제 비중 비교에서 위안화는 역대 최고치인 3.20%로 미 달러화(39.92%), 유로화(36.56%), 파운드화(6.30%)에 이은 4위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이 지난 수년간 일대일로 협력국을 중심으로 위안화 국제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결과로 2018년까지 1%대에 그치던 위안화 국제결제 비중이 3%대로 올라서며 일본 엔화(2.79%) 비중을 넘어서 세계 4대 통화가 됐다. 그리고 3.20%에 포함되지 않는 중국 주도의 국제결제시스템(CIPS)을 통한 위안화 거래량을 더하면 실제 위안화 국제결제 비중은 좀 더 높은 수치로 추정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위안화의 국제 사용량을 확대할 새로운 모멘텀이 조성된 상황인 것이다. 이와 관련한 또 하나의 참고할 만한 동향은 CBDC 분야에서의 중국과 홍콩의 협력 강화다. 홍콩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홍콩통화청은 지난 2019년부터 CBDC의 국경 간 결제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으며, 지난해 2월에는 홍콩, 중국, 태국, 아랍에미리트(UAE) 중앙은행이 참여하는 4자 간 CBDC 활용 국제결제시스템 개발 추진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중국은 국제 금융도시인 홍콩을 통해 일대일로 연선국가 또는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거래에서 디지털 위안화(e-CNY)를 활용한 새로운 버전의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는 초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단기적으로는 세계 최대 에너지금속광물 소비국인 중국의 실물경제 입장에서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나, 중장기적으로는 위안화 국제화의 새로운 모멘텀을 확보하는 예상치 못한 계기가 될 수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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