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야기된 석유시장 수급 차질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 행동의 일환으로 IEA 역사상 최대 규모인 1억2천만 배럴의 전략비축유(SPR; Strategic Petroleum Reserve)를 6개월에 걸쳐 방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IEA 설립 이후 최대 규모인 6,171만 배럴의 전략비축유 방출을 공표한 3월 1일 이후 한 달 만에 다시 사상 최대 규모의 전략비축유 방출을 결정한 것이다. 이번 전략비축유 방출은 방출 규모면에서 유례없는 대규모일 뿐만 아니라, 1974년 IEA 설립 이후 세 번밖에 시행되지 않은 전략비축유 방출을 한 달의 시차를 두고 두 번이나 단행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기 충분하다. 사상 최대 규모 비축유 방출 한 달 새 두 번, 이전까진 IEA 역사상 세 차례에 불과 IEA 회원국은 IEA의 설립 근거인 국제에너지계획에 관한 협정(Agreement on an International Energy Program)에 따라 석유시장 수급 차질이라는 비상 상황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국가별로 석유 순수입량 기준 최소 90일분의 석유를 비축해야 한다. IEA가 1973년 오일 쇼크 이후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전략비축유 제도는 IEA 설립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인 제도라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만 IEA는 최근 자료를 통해 전략비축유 방출이 단기적인 석유 공급 차질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완화하기 위한 제도이지 국제유가를 관리하거나 장기적인 석유 공급 차질에 대응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IEA 회원국의 전략비축유 제도는 국가별 상황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비축은 원유뿐만 아니라 석유제품도 가능하며, 비축 주체 역시 정부, 정부가 지정한 특정기관 또는 민간 기업이 될 수도 있다. 민간 기업이 비축 주체가 되는 일부 국가의 경우에는 정부가 석유 수입사 또는 정유사에 일정량을 비축하도록 하는 비축 의무 부과의 형태를 띠고 있다. 다만 대부분 국가는 다양한 형태의 제도를 혼합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 중이다. 전략비축유 방출은 IEA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Governing Board)에서 회원국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 비축유 방출은 보유 주체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이행되는데, 공공 보유 비축유는 민간 기업에 대여하거나 입찰을 통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민간 보유 비축유는 민간 기업에 부과된 비축 의무를 일정 기간 완화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공급하게 된다. IEA는 2021년 11월 현재 IEA 회원국이 보유하고 있는 비축유를 총 42억 배럴로 집계하고 있다. 비축 형태는 공공 비축이 약 14억8천만 배럴, 민간 비축이 27억2천만 배럴이며, 비축 유종은 원유가 25억 배럴, 석유제품이 17억 배럴로 나타났다. 미국이 IEA 회원국 중 최대 규모인 총 18억5천만 배럴을 비축하고 있으며, IEA 회원국인 우리나라 역시 공공 비축 약 9,800만 배럴, 민간 비축 약 7,900만 배럴 등 총 1억7천만 배럴을 비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비축 물량은 일일 석유 순수입량 기준으로 약 190일분(공공 비축 108일분, 민간 비축 83일분)에 해당하는 양이다. IEA 설립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벌어지기 이전까지 IEA가 전략비축유를 방출한 것은 모두 세 번이다. 이 세 번의 사례는 산유국에서 벌어진 전쟁 또는 자연재해로 원유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에서 이로 인한 경제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계기로 걸프전이 벌어지자 IEA는 1991년 1,730만 배럴의 비축유를 풀었고,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했을 때 6천만 배럴의 비축유를 방출했다. 가장 최근 사례가 10년 전인 2011년 리비아 내전 등으로 빚어진 원유 공급 차질에 대응하고자 총 6천만 배럴을 방출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이후 IEA는 한 달 만에 두 차례의 비축유 방출을 결정했다. 지난 3월 1일 결정된 6,171만 배럴 방출과 4월 1일 결정된 IEA 역사상 최대 규모의 1억2천만 배럴 방출이 그것이다. 러시아 석유 의존도가 34%에 달하는 유럽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 안보 중요성 인식 IEA 역사상 최대 규모의 비축유 방출이 그것도 한 달 사이 두 번이나 이뤄진 배경은 국제 석유시장에서 차지하는 러시아의 위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월 발표된 IEA 보고서 「Oil Market and Russian Supply」에 따르면 러시아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은 세계 3위의 석유 생산국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러시아가 세계 2위의 원유 수출국이며 석유제품까지 포함하면 세계 1위의 석유 수출국이라는 것이다. IEA 통계에 따르면 2021년 12월 러시아는 일평균 원유 약 500만 배럴, 석유제품 약 285만 배럴 등 약 785만 배럴의 석유를 수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러시아가 세계 석유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러시아 석유 수출 물량의 60%는 유럽으로, 20%는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OECD 회원국 중 유럽지역 국가의 러시아 석유 의존도는 34%로, 이들 국가는 일평균 450만 배럴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오세아니아 국가의 일평균 러시아산 석유 수입량이 43만9천 배럴로 러시아 의존도가 5%, 북미지역의 경우 일평균 수입량이 62만6천 배럴로 러시아 의존도가 17%라는 수치와 비교해 보면 유럽 에너지시장에서 러시아의 위상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러시아산 석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유럽 국가는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 등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유럽 에너지시장에 위기감을 불러온 이유는 또 있다. 일평균 75만 배럴에 해당하는 러시아산 석유가 드루즈바(Druzhba) 송유관을 통해 수입되고 있고 일부 구간이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지나 헝가리, 폴란드, 체코 등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IEA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략비축유 방출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유럽을 포함한 국제사회 전체가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3월 23일부터 이틀간 파리에서 열린 2022년 IEA 각료회의에서 40개국 이상의 에너지장관들은 IEA의 핵심적인 책무로 에너지 안보를 강조하며 IEA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에너지 효율 향상 통한 수요 절감 및 에너지 전환 가속화 중요성도 강조돼 하지만 에너지 안보 못지않게 중요성이 강조된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첫 번째는 바로 에너지 효율 향상을 통한 에너지 수요의 절감이다. IEA는 급박하게 전략비축유 방출을 논의하던 시기인 지난 3월 「석유 사용 절감을 위한 10대 행동계획(A 10-Point Plan to Cut Oil Use)」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단기간에 석유 사용량을 감축하기 위해 정부가 도입할 수 있는 정책과 시민들이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조치들을 담고 있다. IEA는 이 조치들을 통해 일평균 약 270만 배럴의 석유 수요를 감축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OECD 유럽 회원국들이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석유가 일평균 450만 배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양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해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과거 1970년대 오일 쇼크와는 완전히 다른 함의를 국제사회에 안겨주고 있다. 석유, 가스 등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상기하게 됐다는 점은 유사하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해법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올해 IEA 각료회의에 참석한 각국의 에너지장관과 주요 에너지 기업 CEO들은 장기적인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한결같이 에너지 전환 가속화를 통한 화석연료 의존도 감소를 강조했다. 올해 IEA 각료회의 주제 역시 이행의 해: 청정에너지와 에너지 안보를 위한 행동 가속화(The Year of Implementation: Accelerating Global Action on Clean Energy and Energy Security)였다. 특히 에너지 전환을 이행하기 위한 민간 투자 활성화, 에너지 전환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 안정성 확보, 에너지 효율 향상이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WTO는 우리나라의 농업정책 형성에 가장 중요한 국제기구다. WTO 농업협상을 통해 어떤 결정이 이뤄지면, 관세 및 농업 보조금에 관해서는 WTO가 결정한 범위 내에서만 국내 농업정책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농업정책의 외연을 WTO가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WTO의 중요한 결정들은 2년마다 열리는 각료회의를 통해 이뤄진다. 제12차 WTO 각료회의는 올해 6월 12~1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번 각료회의에서 논의될 중요한 4개의 의제로는 백신 지식재산권 면제, 수산보조금 감축, WTO 개혁, 농업협상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글로리아 페랄타 WTO 농업협상의장은 그동안의 농업 분야 협상 결과를 반영해 의장수정초안을 회원국들에 제시했다. 각 협상 분야별로 회원국들의 의견이 너무나 달라서 의장수정초안은 사실상 실질적인 협상내용의 상당 부분이 사라지고, 제12차 각료회의 이후 농업협상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작성됐다. 최근 농업협상의 주요 쟁점을 짚어보기에 앞서 WTO 농업협상의 역사를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시장접근국내보조수출경쟁 중심으로 농업협상 진행 1986년 우루과이 푼타델에스테에서 농업협상을 주요 의제로 한 우루과이라운드가 출범했다. 우루과이라운드에서 농업협상은 시장접근, 국내보조, 수출경쟁 3개 분야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1994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최종 합의된 WTO 농업협정문 제20조 농업개혁의 지속에 따르면 선진국의 우루과이라운드 합의 이행의무가 만료되는 시점에 농업개혁 가속화를 위한 논의를 시작하도록 돼 있다. 이에 2000년부터 우루과이라운드 합의사항 이행 이후의 관세 및 국내보조 추가 감축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고, 2001년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출범하며 추가 농업개혁에 대한 논의도 DDA 협상에 포함돼 진행됐다. 이후 DDA 협상은 몇 차례의 우여곡절을 거쳐 2008년 타결 직전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당시 마지막에 제시된 농업협상 의장초안 4차 수정안은 시장접근과 국내보조의 모댈리티(modality, 협상 기본지침)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농업협상 전 분야를 망라한 최종 합의안이었다. 그러나 특별긴급관세(SSM; Special Safeguard Mechanism)에 대한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차이로 마지막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동안 WTO 협상은 모든 것이 합의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합의된 것이 없다는 일괄타결 방식이 중요한 원칙이었으나, DDA 협상이 장기간 표류하자 이러한 방식을 고수해서는 결과물 도출이 어렵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2011년 제네바 각료회의에서는 합의 가능한 사안부터라도 먼저 합의해 이를 실행해 나가자는 조기수확론이 대두됐다. 2015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개최된 각료회의에서는 수출보조와 관련해 선진국은 즉시 철폐하고, 개도국은 점진적으로 철폐해 나가는 방안이 합의됐다. 2017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11차 각료회의는 일주일간 치열한 협상이 벌어졌으나, 당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WTO에 부정적 시각을 가진 탓에 농업 분야에서는 아무런 합의도 이루지 못하고 종료됐다. 원래 제12차 WTO 각료회의는 2019년 말 카자흐스탄 누르술탄에서 개최토록 돼 있었으나 개최 시기가 카자흐스탄의 혹한기임을 감안해 2020년 6월로 변경됐다. 그러나 2020년 초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로 각료회의도 연기를 거듭하다가, 결국 올해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키로 결정됐다. 4년 반 만에 개최되는 WTO 각료회의이기에 농업 분야 협상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중압감이 최근 농업협상 회의 때마다 많이 느껴진다. WTO 각료회의와 관련해 자주 회자되는 문구가 있다. 농업협상이 실패하고 다른 분야 모든 협상이 성공하면, 그 각료회의는 절반의 성공이라 평가된다. 농업협상이 성공하면 다른 모든 분야가 실패해도 그 각료회의는 성공한 각료회의가 된다. 그만큼 WTO 협상에서 농업협상은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협상의 하나로 인식돼 왔다. PSH 영구해법 마련 및 수출제한 투명성 등이 주요 쟁점 제12차 각료회의를 앞두고 현재 농업협상에서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식량안보 목적의 공공비축제도(PSH; Public Stockholding for Food Security Purposes)는 WTO에서 오랫동안 논의돼 왔던 핵심 쟁점 중 하나다. 개도국 중에는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작물을 중심으로 국가가 개입해 비축하고 이중곡가를 형성하는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이중곡가가 형성된 것은 국가가 생산자에게 보조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개도국의 경우 이러한 국내보조가 그 품목 생산액의 10% 미만일 때는 최소허용보조(de minimis)로 계산돼 문제가 되지 않지만, 10%를 초과하면 무역왜곡보조로서 감축대상보조(AMS; Aggregate Measurement of Support)로 계산된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당시 국내보조를 주고 있었던 선진국들은 이를 계산해 AMS를 적용받았지만, 개도국들은 당시 재정형편상 국내보조가 미미했기에 AMS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우루과이라운드 합의 이후 개도국 경제가 발전하고 국내보조가 증가함에 따라 품목별 보조액이 생산액의 10% 이상 되는 경우가 등장하면서 농업협정을 위반하는 사례가 생겼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 각료회의에서는 당시 시행 중인 PSH에 대해서는 최소허용보조를 초과하더라도 분쟁해결절차에 제소하지 않는다는 잠정적 해법에 합의하고, 향후 협상을 통해 영구적 해법을 마련키로 했다. 2017년 각료회의에서 이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가 있었으나 영구해법 도출에 실패했다. 개도국은 PSH에 포함될 품목과 지원 범위에 광범위한 유연성을 줄 것을 요구하는 반면에 선진국은 품목도 식량안보에 직접 관계된 품목으로 제한하고, 지원 수준에도 엄격한 제한을 부여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둘째, 최근 농업협상에서 PSH 영구해법과 더불어 가장 논의가 집중되고 있는 분야는 국내보조다. 개도국은 기본적으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선진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뤄진 대표적 사례로 AMS의 설정을 거론한다. 따라서 DDA 농업협상에서는 역사적 불균형을 시정해야 하며, 최소허용보조를 초과하는 AMS는 모두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 개도국의 입장이다. 한편 케언즈그룹(농산물 수출 시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미미한 보조금만을 지급하는 국가 그룹)은 무역을 왜곡시키는 모든 국내보조의 총합을 산출하고 이를 상당 수준 감축해 나가자는 입장을 강력히 제시하고 있다. 셋째, 코로나19 이후 자국 농산물 수급사정을 우려한 국가들이 100여 차례 이상 수출제한조치를 단행한 사례가 관측되고 있다. 식량 순수입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수출제한조치가 자국 식량안보에 커다란 위협요소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식량 수입국들은 식량 수출국이 수출제한을 할 경우 기간, 품목, 시행방법 등을 사전에 WTO에 통보함으로써 수입국이 이에 대응해 나갈 수 있도록, 수출제한 시 투명성 강화의 필요성을 협상 과정에서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반면 개도국들은 지나친 규제 강화로 행정적 부담이 증가한다는 점을 들어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넷째, 개도국 SSM에 관한 논의다. SSM은 개도국에서 일정 수의 농산물 품목에 대해 수입이 급증하고 이에 따라 국내가격이 급속히 하락할 때 일정 수준의 추가 관세를 부과해 소규모 농가를 보호하자는 취지의 제도다. 이 제도는 DDA가 지향하는 개도국 우대의 중요한 이슈로 거론되고 있지만, 관세 인상은 자유무역의 확대라는 농업협상의 기본 방향과 상충돼 선진국 및 농산물 수출국들이 오랫동안 도입을 반대해 왔다. 다섯째, WTO 회원국은 양허관세의 범위 내에서 실행관세를 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하지만 실행관세가 자주 변경된다면 무역의 안정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특히 항구에서 선적을 마치고 수입국으로 이미 출항한 물품의 경우, 운송 중에 수입국이 실행관세를 조정한다면 무역종사자들은 커다란 손해를 입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어떤 관세율을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합리적인 사례를 각 국가가 미리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전 또는 자연재해를 겪고 있는 국가에 대한 인도적 식량원조를 수행하는 세계식량계획(WFP)이 인도적 지원 목적으로 식량을 구매하는 경우에는 해당국가에서 수출제한조치를 취하고 있을지라도 해외반출이 될 수 있도록 허용해 주자는 싱가포르의 제안이 많은 WTO 회원국의 지지를 받고 있다. WFP가 인도적 목적의 식량구매 시 해당 국가의 식량수급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단서를 추가해 제12차 각료회의에서 채택하는 방안이 유력시된다. 현재 개도국들은 입을 모아 PSH 영구해법 마련을 주장하고, 이 분야에서의 성취 없이는 농업협상을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PSH 분야를 어떻게 돌파해 나갈 것인지가 이번 각료회의 농업협상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세계 식량위기 대응책 마련 서둘러야 한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야기된 식량위기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가 최근 WTO의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빵공장이라고 불리는 나라로 세계 밀 생산량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에서는 밀 파종 기간에 파종을 거의 못 했다. 러시아 일부 지역도 전쟁으로 파종을 못 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결국 올해 세계 밀 생산량은 평년보다 10~15% 정도가 줄어들게 된다. 2008년 호주에서 가뭄이 발생하는 등 세계 곳곳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해 밀 공급량이 줄어들자 세계 밀 가격이 75% 상승했다.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아랍지역에서는 폭동이 발생했고, 이는 아랍의 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당시 세계는 엄청난 식량위기를 겪었으며, 식량 순수입국들은 식량 수출국들의 곡물 수출제한조치를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농산물은 가장 중요한 생존도구이자 생필품으로 가격 비탄력성이 매우 큰 속성이 있다. 세계 식량 공급이 조금만 부족해도 가격은 엄청난 폭등 현상을 보이게 된다. 올해 세계 곡물 생산량이 10~15% 줄어들게 되면, 농산물 가격은 5~10배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벌써 농산물 선물가격이 심상치 않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주요 비료원료 공급 국가인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원료 공급이 전쟁으로 중단됨에 따라 미국의 비료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 달 만에 2배 상승했다. 농업의 중요한 투입재인 비료와 에너지의 가격 상승으로 세계 농업생산 위축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필자는 WTO 농업위원회가 속히 OECD, FAO, WFP 등의 식량위기 농업전문가들과 함께 내년도 세계 곡물부족 및 가격 폭등 예측 모델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국이 어떤 정책을 통해 생산량을 증가시킴으로써 세계 식량위기에 대응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정책 제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6월 각료회의에서 임박한 식량위기에 대한 WTO 각료선언문을 채택해 곧 닥칠 식량위기에 대해 세계에 경고하고, 이에 대응할 정책 제안을 제시함으로써 식량위기 대응에 모든 국가가 적극 나서도록 독려해 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미국, EU, 영국, 한국, 호주, 뉴질랜드, 일본, 스위스 등 주요국 농무관들은 식량위기의 대응책으로 WTO 회원국들은 정당하지 않은 식량 수출제한조치를 취하지 말아야 하며, 무역제한을 할 경우에는 WTO에 신속히 통보하는 등 투명성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공동선언문을 준비하고 있다. 공동선언문을 농업위원회 및 WTO 일반이사회에 상정해 논의하고, 궁극적으로는 제12차 각료회의에서 각료결정문으로 채택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WTO 농업협상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우리를 포함한 G10 수입국 입장에서는 가장 민감한 시장접근 분야가 현재 주요 쟁점이 아니어서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그러나 국내보조의 모댈리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는 국내 농업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협상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대응해 나가고, 식량 순수입국의 입장에서 수출제한의 투명성 부문도 제12차 각료회의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COPYRIGHT ⓒ 2019 KOREA DEVELOPMENT INSTITUT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