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둔 것은 상당히 오래전부터다. 19세기 말 산업혁명이 초래한 오염으로 건강과 생활환경이 위협을 받으면서 환경보호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민사회는 환경문제를 현실정치에 반영하고자 했다. 그 결과 1972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 환경 콘퍼런스를 기점으로 유럽 각국은 환경 관련 부처를 설치했고, 비슷한 시기 여타 진보정당과 차별화된 녹색당이 정계에 자리 잡으면서 풀뿌리 환경운동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게 됐다. 1979년 스위스에서 세계 최초로 녹색당 출신 국회의원이 탄생했고, 1981년 벨기에는 4명의 녹색당 국회의원을 당선시켰다. EU 전체적으로도 환경에 대한 정치적 관심이 상당히 높다. 유럽의회의 의원 705명 중 녹색당 의원은 72명으로 의회를 구성하는 7개 정당 중 소속 의원이 네 번째로 많다. 유럽 각국에서 여타 진보정당과 구분되는 녹색당과 소속 국회의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스위스의 경우 녹색당 지지율이 20%를 넘는다. 이러한 정치적 지지를 바탕으로 유럽은 환경과 기후변화 정책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세계적인 움직임을 선도하고 있다. 환경과 기후변화에 대한 유럽인들의 현재 인식과 100년 이상의 고민이 투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유권자이자 소비자로서 강력한 친환경 정책경영 요구하는 유럽인들 EU 산하 여론조사기관 유로바로미터가 2021년 시행한 설문은 환경과 기후변화에 대한 유럽인들의 폭넓은 지지를 보여준다. 응답자의 92%가 정부가 야심 찬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고, 75%는 (EU 회원국) 정책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데 여전히 부족하다고 답했다. 또한 96%의 응답자가 개인적으로 쓰레기 재활용 확대, 일회용품 줄이기, 육류 자제나 유기농 구매 등의 방법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동참하고 있다고 답했다. 유럽인들의 친환경 소비 패턴은 대표적 소비재인 승용차 구매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유럽자동차협회에 따르면 2021년 승용차 판매(등록 기준) 중 친환경차 판매비중이 하이브리드차 19.6%,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8.9%, 전기차 9.1% 등으로 37%를 돌파했다. 같은 기간 국내에서는 하이브리드 12.9%,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1.1%, 전기차 5.6%, 수소차 0.5% 등 친환경차의 판매비중이 20.1%를 기록했고, 미국은 하이브리드차 약 5%, 전기차 3% 수준에 그쳤다. 유럽 기업들은 녹색투자에도 앞장서고 있다. 2020년 전 세계 녹색채권의 60%가 유럽에서 발행됐다. 기후환경 관련 비영리단체인 CDP(Carbon Disclosure Project)의 2021년 평가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산림 및 물 관리 등 환경 분야에서 A등급을 획득한 272개의 기업 중 유럽 기업은 104개로 40%를 차지하며, 최고 등급인 트리플A를 받은 14개 기업 중 8개가 유럽 기업이다. 이는 기후변화 영역에서 유럽 기업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이처럼 환경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유럽인들은 유권자로서 친환경 정책을 주문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로서 기업에도 친환경 경영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유럽의 정치인들과 최고경영자들에게 환경친화적이지 않은 정책이나 경영 방침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유럽인들에게 기후변화 대응은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전통적 산업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유럽의 정치지도자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을 과거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새로운 모험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유럽이 누리던 세계질서 패권은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미국에 넘어갔다. 분야별로 보면 제조업에서 한국일본 등 제조강국들에게 추격당했고, 중국과 인도까지 뒤를 쫓고 있다. 금융서비스업도 미국, 영국 등에 주도권을 빼앗긴 지 오래다. 디지털테크 산업도 다를 바 없다. 유럽의 생산은 한때 세계경제의 절반을 차지했으나 2012년 25%까지 떨어졌고 현재는 20% 수준에 불과하다. 2019년 들어선 폰 데어 라이엔 체제의 EU 집행위는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기존 산업에 접목하고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EU가 후발국들과 경쟁할 수 있는 시장(level playing field)으로 세계 경제구조를 재편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며 이를 이행하기 위한 기후변화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2021년 6월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2030년까지는 탄소배출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한다는 내용의 「유럽기후법」이 발효됐다. 2021년 7월 EU 집행위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도입, 재생에너지 확대,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ETS) 강화, 에너지효율 향상 등을 골자로 하는 핏포 55(Fit for 55) 법률안 패키지를 후속 발의했고, 2022년 11월 현재 법안들에 대한 보완 논의가 한창이다. 탄소중립으로 향하는 가운데 유럽의 경제주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후변화 대응 분야의 핵심 원천기술은 주요한 투자처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전 세계 10대 청정기술 개발 기업 중 8개가 유럽 기업이며, 2030년까지 유럽의 청정기술 수준이 4배 이상 향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U는 자신들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 온실가스배출권을 판매해 100억 유로 규모의 이노베이션 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상용화 가능성이 큰 대규모 녹색 프로젝트에 투자함으로써 한발 빠르게 녹색시장을 선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제도만으로는 후발국 기업과의 경쟁이 불가능해진 만큼, EU 입장에서 공정한 경쟁여건을 조성해 EU시장 내에서만큼은 EU 기업들의 활동을 보장하겠다는 정책도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대표적이다. 해외에서 적정 탄소가격을 지불하지 않고 값싸게 생산된 제품이 EU에 수입되면 EU 기업들이 경쟁할 수 없고 관련 일자리도 사라지기 때문에, 수입품에 탄소가격을 부과해 유럽 기업과 해외 기업 간 공정한 경쟁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역외에서 생산된 철,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기 등 5가지 제품을 역내로 수입할 때 EU 탄소가격을 기준으로 관세 성격의 과금을 할 예정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는 2026년부터 해당 제품의 대EU 수출이 많은 중국, 러시아, 인도, 터키 등의 기업이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철강 분야에서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민간 분야 역시 기후변화 대응에 동참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1,000대 기업 목록에서 지속가능성과 환경 관련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낡은 스마트폰을 재생(재조립)해서 판매하는 핀란드 스타트업 스와피(Swappie)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500% 이상 성장했고, 2021년 매출은 2020년 9,800만 유로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도 지속 성장 중이다. 2021년 전 세계 지속가능펀드의 규모는 전년 대비 53% 증가한 2조7,400억 달러였으며 앞으로도 커질 전망이다. 기후변화 분야 경력이 있는 기금운용 담당자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금융가의 인력 빼가기 게임도 시작됐다. 세계경제가 유럽의 의도대로 기후변화라는 트랙에 올라섰다. 러시아발 안보위기, 유럽의 녹색전환에 힘 실어준 셈 러시아우크라이나발 안보위기는 유럽의 녹색전환에 힘을 싣고 있다. 올해 3월 8일 EU 집행위는 2030년까지 유럽이 러시아산 화석연료로부터 자립하기 위한 리파워EU(REPowerEU) 계획을 발표했다. 단기적으로는 LNG를 수입하거나 비러시아 파이프라인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가스공급을 다변화할 방침이다. 또한 바이오메탄수소 등 대체가스를 활용하면서 궁극적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탈탄소산업을 육성해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임으로써 안보위험을 줄일 뿐만 아니라 2050 탄소중립 목표도 차질 없이 달성하겠다는 전략이다. 2020년 EU는 가스소비량의 90%를 수입했고, 러시아는 이 중 45%를 공급했을 뿐만 아니라 EU 석유 수입의 25%, 석탄 수입의 45%를 담당했다. 유럽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한 러시아와 관계를 끊을 수 없고 이는 안보 차원에서 커다란 리스크임이 분명하다. 꽤 오래전부터 EU는 내부적으로 그리고 미국과 같은 동맹국들로부터 편중된 에너지 수입이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받아 왔다. 그런데도 EU의 주요국들은 저렴한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포기할 수 없었고, 러시아 입장에서도 천연가스 판매수익이 엄청난 만큼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듯하다. 하지만 러시아에 대한 EU의 기대가 막연했고 에너지안보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는 주장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입증됐다. 원산지가 한정돼 있고, 따라서 공급자가 분명한 화석연료는 지정학적 위기가 발생하면 당장 가격과 수급이 불안해진다. 반면 태양광, 풍력, 수소 등 청정에너지는 장소나 원료에 크게 영향받지 않고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에너지주권을 강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런 차원에서 EU는 장기적으로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수급 구조를 만들 생각이다. 다만 당장 재생에너지 100% 공급은 어렵기 때문에 탄소배출이 없고 자체 조달이 가능한 원전과 탄소배출이 비교적 적은 가스를 당분간 일정 수준 사용하겠다는 전략이 EU 택소노미 그리고 상당수 회원국의 에너지 정책에 반영돼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고 EU 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EU 집행위의 생각이다. 2020년 10월 13.43유로/MWh였던 천연가스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본격화된 올해 3월 7일 227.2유로/MWh까지 올랐고, 8월에는 약 350유로/MWh로 최고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재생에너지 도매가격 또한 많이 상승했지만 천연가스보다는 여전히 저렴한 편이다. 풍력발전은 50~60유로/MWh, 태양광은 35~50유로/MWh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독일과 스페인 기준). 녹색전환을 좀 더 일찍 시작해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췄어야 가계와 기업의 경제적 부담이 적었을 것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안보를 위해 화석연료 의존도, 특히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고, 기후변화에도 효과적인 녹색에너지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 EU가 당면한 미래다. EU 회원국들은 재생에너지, 수소 등을 확대하는 에너지구조의 녹색전환을 기본 원칙으로 하면서 국가별 상황을 반영한 원전 정책을 연결하고 있다. 유럽은 성숙한 시민의식, 글로벌 경쟁과 경제성장, 에너지안보 강화의 측면에서 기후변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결하고 가야 할 몇 가지 현실적 문제도 있다. 동유럽 국가들은 기후변화보다 경제발전에 관심이 더 많다. 이에 독일, 프랑스 및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EU 내 기후변화 리더십이 요구된다. 높은 에너지 가격, 코로나 극복을 위해 지출한 막대한 재정 등이 녹색전환으로의 투자에 부담으로 작용하는데, 재정이 빈약하고 민간 여력까지 부족한 일부 회원국이 얼마나 참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기후변화 대응은 유럽이 에너지안보를 위해 마땅히 가야할 길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최근 EU의 기후에너지환경 정책 또한 에너지안보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에너지에 대한 과다지출, 재가동된 석탄발전 등이 불안요인으로 작용하는 것도 현실이다. 매년 개최되는 기후변화에 대한 유엔 회원 국 회의(COP)에서 후발국들의 비난 그리고 지원 요구를 감당하는 것도 유럽에게 주어진 숙제다.
중국과 미국은 지난 10월과 11월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이하 당대회)와 중간선거라는 중요한 국내 정치일정을 마무리했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3연임을 확정하고 집권 3기를 함께 이끌어갈 새 지도부 구성을 완료했고, 바이든 행정부도 당초 열세로 예상되던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선방한 것으로 확인되며 집권 후반기에 보다 안정적인 정책 추진이 가능하게 됐다. 미중 양국은 지난 8월 펠로시 미 연방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기도 했으나 중요한 국내 정치일정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한 만큼 향후 양국 관계에도 일정 부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글에서는 제20차 당대회 이후 중국경제를 향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반응을 살펴보고 향후 미중 관계 양상에 대해 전망해 보고자 한다. 외국계 투자자들, 시진핑 집권 3기 경제정책에 공동부유 강조 기조와 반시장 성향 반영될까 우려 중국 공산당은 1921년 7월 23일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에서 13명의 대표가 모여 첫 번째 당대회를 열었고,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한 제11차 당대회부터 5년마다 당대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당 중심 체제인 중국에서 당대회가 갖는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향후 5년간 당과 국가가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고, 이 시기에 당내 주요 지도부 인선도 결정된다. 시진핑 주석도 2012년 11월에 열린 제18차 당대회에서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되며 최고 권좌에 올랐으며, 올해 10월 16일부터 22일까지 개최된 제20차 당대회를 통해 3연임을 확정하고 9,600만 명의 중국 공산당원 중 최상위 서열이라 할 수 있는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의 인선도 마무리했다. 하지만 제20차 당대회 개막일에 시진핑 주석이 업무보고를 통해 공동부유를 강조하고, 당대회 폐막 다음 날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의 면모가 공개되자 중국 투자 관련 글로벌 자금이 모여 있는 홍콩 금융시장에는 기대보다 우려가 더욱 빠르게 확산됐으며, 이는 당대회 이후 첫 번째 거래일에 홍콩 증시 폭락으로 연결됐다. 시장과 외국계 투자기관 사이에는 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경제전문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과 함께 중국의 경제정책이 더 이상 시장 친화적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급속히 퍼져나간 것이다. 관례상 서열 2위 상무위원이 맡는 국무원 총리는 중국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인데, 내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총리직에 오를 것으로 보이는 인물이 올해 4월 중국 최대 경제도시인 상하이를 약 두 달간 봉쇄조치한 인물이라는 점 등이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중국투자 회피 심리를 키우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대회 이후 첫 거래일인 10월 24일 중국계 기업의 상장 비중과 미국ㆍ유럽계 투자자금 비중이 높은 홍콩 증시는 하루 만에 항셍지수(HSI) 6.4%, 중국기업지수(HSCEI) 7.3%, 항셍테크지수(HS Tech Index) 9.7% 하락의 폭락 장세를 보였으며, 이와 유사한 흐름은 같은 날 다른 금융지표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홍콩 채권시장에서도 주식시장만큼은 아니지만 중국계 기업들의 회사채 스프레드가 평소보다 약 5~10bp 상승하는 등 변동성이 확대됐다. 대표적인 중국계 빅테크 기업인 알리바바의 경우 2024년 11월 만기물(잔존 2년) 금리는 135bp에서 160bp로, 텐센트의 2028년 1월 만기물(잔존 5년) 금리는 255bp에서 260bp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홍콩을 통해 중국 본토 주식에 투자하는 외국인 자금의 흐름을 보여주는 후강통(홍콩상하이)과 선강통(홍콩선전)의 북향자금 1일 거래금액도 10월 24일 하루 만에 179억 위안(약 3조4천억 원) 순유출되며 일간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홍콩 주식시장 상장사의 61.6%, 시가총액의 78.9%, 거래금액의 88.1%는 중국계 기업이 차지하고 있고, 2020년 기준 홍콩 증시에 유입된 글로벌 투자자금 중 미국계 자금 비중은 23.2%, 유럽계 24.4%, 중국계 34.4%로 미국ㆍ유럽계 자금이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10월 24일 홍콩 금융시장이 보여준 큰 변동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신임 지도부 인선 결과가 공개된 이후 미국ㆍ유럽계 자금을 중심으로 한 외국계 투자자들은 시진핑 집권 3기 중국 경제정책에 공동부유 강조 기조와 반시장적 성향이 반영되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를 시장대응을 통해 설파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중국투자 회피 심리는 내년 3월 초 중국의 양회(兩會)를 통해 시 주석 집권 3기의 경제정책 방향이 구체적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는 유보적이고 다소 관망적인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고강도 긴축 기조는 내년 초 이후 조정 국면에 들어설 거라는 평가가 주류 올해 미국경제를 지배한 키워드는 인플레이션이었다. 팬데믹 이후 원자재 가격 상승 및 글로벌 공급망 차질 현상이 장기화되며 불안한 현상유지를 해오던 세계경제는 올해 2월 말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전방위적인 인플레이션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특히 미국 등 서방세계의 대러시아 제재에 대한 대응으로 러시아가 석유 및 천연가스 수출을 제한하자 에너지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고, 여기에 더해 최근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마저 바이든 행정부의 석유 증산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면서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1년 가까이 치르고 있다. 잡히지 않는 고물가는 미국 통화정책의 급속한 전환으로 이어졌다. 물가와 고용상황의 안정적 관리가 최우선 정책순위인 미 연준은 올해 3월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11월까지 6회 연속 가파른 속도로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특히 6월부터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p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4연속 밟고 있어 내년 초까지 미국의 기준금리는 5% 수준까지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미 연준의 고강도 긴축 기조로 세계 여러 신흥국과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주요국도 시장금리의 가파른 상승과 함께 자국 통화가치 하락에 이은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 그리고 이로 인한 환율 추가 상승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미국의 10월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CPI)이 시장의 컨센서스(7.9%)를 하회하는 7.7%로 발표되자 시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이 한풀 꺾일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물론 일부 근원 CPI 항목의 상승세가 꺾이지 않아 5~6% 이상의 물가 수준은 당분간 지속되겠지만 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겪는 최악의 시기는 지나고 있고, 고강도 긴축으로 미국의 경제성장이 훼손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어 미 연준이 내년 초 이후에는 금리인상의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는 게 시장과 투자은행(IB)들의 공통된 견해다. 또한 11월 8일 치러진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는 바이든 행정부가 집권 1기 후반기 경제정책을 보다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초 공화당의 일방적 승리가 점쳐지던 중간선거 결과는 민주당이 상원에서 우세를 유지하고 하원에서도 예상보다 선방하며 금융시장이 악재보다 더 싫어한다는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제거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미국 증시의 반등으로 연결되는 등 오랜만에 시장에 긍정적 시그널로 작용했다. 시진핑 집권 3기 미중 경쟁의 전략적 측면, 페트로 위안화 올해 10~11월을 거치며 미국과 중국은 중요한 국내 정치일정을 마무리했고, 이제 향후 미중 갈등이 어떻게 변화하며 전개될지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11월 중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G20 회의는 미중 양국 정상들이 국내 정치일정을 마무리한 이후 처음 만나는 자리였고, 시진핑 집권 3기와 바이든 행정부 1기 후반부의 미중 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중 정상은 국내 정치적 기반을 다진 뒤 만난 터라 가시 돋친 설전 대신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내년 초 중국을 방문하는 데 합의하기도 했다. 당분간 미중 관계에서 전략적 경쟁이라는 큰 틀은 유지되겠지만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 상황과 관련해 협력 가능한 부분을 찾는 노력이 동반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새 지도부 선출에 따른 시장의 충격도 조금은 진정되는 모습이다. 시진핑 주석 집권 3기 경제정책에서 공동부유로 대표되는 분배정책이 강화되고, 중국 정부의 빅테크 기업 특히 플랫폼 기업들이 갖는 시장지배력에 대한 우려와 견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예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서의 가치가 있고, 세계 금융질서를 주도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개방도 낮은 중국의 금융시장 환경이 타도가 아닌 기회의 대상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 따라서 향후 미국은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중국의 성장속도를 지속적으로 억제할 것으로 보이나 기후변화, 금융 등 협력이 가능한 분야에서는 기회를 추구하는 양가적 전략을 동시에 추진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최근 미국-사우디-중국-러시아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올해 7월 에너지 가격 안정을 위해 사우디를 방문했으나 소기의 성과를 이루지 못한 반면 최근 중국, 러시아와 사우디 사이에는 우호적 분위기가 급속히 형성되고 있다. 역사의 시계를 되돌려 보면 1974년 6월 헨리 키신저 당시 미 국무장관이 사우디를 방문해 모든 석유거래를 미 달러화로 결제하기로 담판을 지은 페트로 달러(Petro Dollar) 사건은 오늘날 미 달러가 기축통화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그로부터 약 50년 가까이 지난 현재 중국은 미국과 사우디 간 벌어진 사이를 틈타 페트로 위안화(Petro RMB)를 구축하기 위한 경제외교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자 사우디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 지위를 갖고 있다. 최근 수년간 재생에너지 확대와 탄소배출 감축이 전 세계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된 건 틀림없는 사실이나, 현존 인류는 앞으로도 수십 년간 땅 속에 매장된 석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 또한 냉정한 현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12월 중순 시진핑 주석의 사우디 방문 가능성이 언론을 통해 언급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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