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경제는 지난해보다 소폭 회복할 전망이지만, 소비자 중심의 시장 구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기업들은 여전히 긍정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장의 헤게모니가 소비자로 이동하고 소비자의 니즈가 점점 더 파편화됨에 따라, 이들을 우리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에 맞는 명분을 제공해야만 한다. 삼성디자인넷은 패션업계가 소비자들과 더욱 긴밀히 연결되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하며 REASON을 2020년 패션시장 키워드로 선정했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2020년은 재도약을 노리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부진했던 패션 기업들이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달라진 트렌드를 반영하고, 소비자들의 니즈를 더 세심하게 살피는 과정을 통해 절치부심하는 움직임이 확대될 것이다. 반등을 위해서는 일상적인 방식의 전환(Reverse of routine)이 우선돼야 하며, 관례적으로 해오던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시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마켓 관점에서는 정교화된 마켓(Elabo-rated market) 타깃팅을 도입하는 흐름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시장의 메가트렌드가 사라지면서 소비자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브랜드를 원한다. 더 많은 고객 접점에서 발생하는 소비자와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매출 확대로까지 연결할 수 있도록 브랜드는 가치사슬을 정교화해야 한다. 소비자 측면에서는 대안적 소비를 추구하는 움직임(Alternative consumer)이 강화될 것이다. 패션산업의 속성이 소유의 대상인 상품 차원에서 서비스 차원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HM, 가니(GANNI)의 의류 렌털서비스와 프라이탁(FREITAG) 등의 P2P 공유 플랫폼은 싫증은 쉽게 내지만 환경을 생각하는 의식 있는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의 가치를 어필하고 있다. 또한 최근 소비와 비즈니스 구조를 변화시킨 지속가능성(Sustain Maintain) 이슈가 패션스타일에까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꾸준히 선호되는 스테이플 아이템을 이용한 클래식한 스타일링과 좋은 퀄리티의 아이템을 오래, 다양하게 연출해서 입는 것이 지속 가능한 스타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글로벌 온라인 편집숍 네타포르테(NET-A-PORTER)의 경우 서스테이너블 플랫폼 넷 서스테인(Net Sustain)을 론칭하고 환경과 인간을 생각하는 윤리적 패션 브랜드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 등을 입점시켰다. 앞선 키워드들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이커머스 트렌드 대응 및 오프라인 유통의 재조정을 비롯해 급변하는 마케팅 프로모션까지, 모든 것을 메이커가 아니라 소비자를 중심(Ode to customer)에 둔 근본적 구조 혁신이 필요하다. 아울러 브랜드 서사의 확장(Narrative branding)이 필요하다. 신념 소비가 뿌리내리면서, 소비자들은 필요한 상품이더라도 각자의 신념에 부합하지 않는 브랜드라면 선택하지 않는다. 이제 소비자는 상품을 살 때 퀄리티나 디자인뿐만 아니라 브랜드 스토리와 가치까지도 고려한다. 그러므로 패션 브랜드는 제품 하나하나에 집중함은 물론 소비자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공동의 세계관을 확립해야 한다. 즉 소비자로 하여금 브랜드를 찾아올 명분, 구입할 명분, 궁극적으로 사랑할 명분을 제시하는 것이 패션 브랜드의 과제다.
최근 좀처럼 조우하기 어려워 보이는 조합이 패션의 유행어가 되고 있다. 윤리적 패션, 지속 가능한 패션이 화려한 런웨이에서 옷의 태그(tag)에 이르기까지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인권, 환경 등의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좋은 디자인과 품질로 무장한 패션벤처들에 전 세계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풍경도 나타난다. 이들 기업은 패션산업이 야기한 노동 착취, 환경 훼손, 동물 학대 등의 문제를 산업 내부에서 해결하고자 하며 패션을 통한 사회혁신이 기업의 존재 이유라고 당당히 말한다. 공정무역, 업사이클 디자인, 비건패션 등이 이러한 패션 지형을 넓혀가고 있다. 패션의 사회적환경적 영향을 나타내는 숫자들은 역설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패션의 거대한 잠재력을 보여준다. 패션산업은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많은 물을 사용하고 해양생태계를 훼손하는 미세플라스틱의 25%를 배출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에 달해 패션산업을 하나의 국가로 본다면 세계 7위 이산화탄소 배출국에 해당한다. 최근 환경위기에 대한 우려가 패션산업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는 이유다. 전 세계 어른들을 부끄럽게 한 17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시작한 기후파업이 런던패션위크를 강타하기도 했다. 런던패션위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퍼포먼스가 세계 최대 패션행사를 점령한 것이다. 환경뿐만이 아니다. 패션이라는 거대 산업은 노동, 성별, 빈곤 등 사회 문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현재 패션시장 규모는 2조4천억달러에 달하고 고용 규모는 7,500만명, 그중 여성 노동자의 비중은 80%에 이른다. 지속가능성을 향한 패션산업의 조용한 혁명은 2015년 세계 정상들이 모여 채택한 UN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와 연결돼 있다.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할 SDGs의 17개 목표에는 빈곤, 불평등, 기후, 환경, 평화, 정의와 같은 보편적이고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의제들이 포함된다. 물, 화학물질, 온실가스 등 환경과 관련된 목표들은 패션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건강에 관한 목표는 생산 공정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근로자와 지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 가능한 도시와 관련해서는 재활용을 포함한 의류 폐기의 지속가능성을 경영정책에 통합할 것을 요구한다. 패션의 사회적 차원은 성평등, 빈곤퇴치 목표와 직접 연결돼 있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로 고발되고 있는 패션계가 노동자의 근무 조건을 개선하는 것은 SDGs를 달성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국제사회와 국가의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로 지속 가능한 패션에 새로운 시장 환경이 조성되고 글로벌 패션기업들은 이를 기회로 삼기 위해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프랑스는 2023년부터 팔리지 않은 패션 재고품의 폐기를 전면 금지하고 기부와 재활용을 의무화하는 법안의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독일은 세계 최초로 정부 차원의 지속 가능한 섬유 인증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 어젠다가 국제사회와 정부의 지지 속에 패션산업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다. 혁신은 결핍의 산물이다. 성장력을 잃은 한국 패션산업에 지속가능성은 혁신의 기회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세계가 약속한 2030년에는 한국 패션의 잠재력이 세상을 구하는 선한 영향력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온라인 쇼핑에서 고객 경험을 개선해 매출을 높이는 것은 패션 분야의 큰 과제다.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해 상품을 기획하고 취향에 맞는 상품을 추천하는 것은 데이터를 정량적으로 수집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에서 가능한 전략이기에 럭셔리 브랜드부터 리테일까지 패션계는 지금 디지털화, 즉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대세다. 2019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럭셔리 브랜드 1위를 차지한 루이비통은 자체 앱으로 구매는 물론, 패션쇼나 상품 론칭 등 이벤트에 독점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잡지 등에 실린 앱 아이콘을 스캔하면 관련 제품 정보, 이미지 및 영상 등을 볼 수 있고, 고객의 서비스 경험을 향상할 챗봇도 운영한다. 상품 제작에 트렌드를 반영하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사례도 있다. 2018년 타미힐피거는 IBM의 인공지능(AI) 왓슨, 뉴욕 패션기술대(FIT)와 리이매진 리테일(Reimagine Retail)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패션쇼 런웨이 이미지 60만장, 타미힐피거 상품 이미지 1만5천장, 패브릭 사이트의 패턴 10만장을 분석한 왓슨은 FIT 학생들이 타미힐피거의 감성을 담은 상품을 디자인하도록 도왔다. 신생 회사들의 활약도 돋보인다. 스타일 박스 구독 서비스로 유명한 스티치픽스는 2018년 1조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등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달러를 내면 개인 취향이 반영된 다섯 가지 상품이 담긴 박스가 배송되고, 고객은 원하는 옷만 골라 구매한 뒤 나머지는 반송한다. 가입 시 선호하는 스타일, 직업, 사이즈 등을 파악하고, 박스를 받을 때마다 상품의 피드백도 가능하다.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일하던 두 남자가 창업한 청바지 회사 리볼브는 매년 25~50%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데이터에 집중했다. 어떤 상품이 가장 많이 팔리는지는 물론 기장, 단추의 개수와 위치, 스타일 정보까지 모든 것을 태깅(tagging)하고 하루 단위로 주문량을 추적한다. 판매량이 예상치를 뛰어넘으면 공장에 자동으로 추가 생산을 요청하는 푸시 알림을 넣고, 계약한 공장에서 추가 생산이 불가능할 경우 자체 생산을 통해 수요를 맞춘다. 리테일 공룡들에게도 거래량이 많은 패션은 매력적인 분야다. 상품을 무작위로 노출하는 대신, 지금 보고 있는 것과 유사한 상품을 소개해 체류 시간과 구매 전환율을 높이는 것이 주된 전략이다. 아마존의 AI 기반 의류 검색 서비스 스타일스냅은 앱에 사진을 올리면 비슷한 상품을 추천해준다. 알리바바 또한 AI로 상품 사진을 인식해 카테고리 등을 분류하고, 고객이 찾는 상품을 빠르고 편하게 볼 수 있는 필터 설정 기능을 제공한다. 감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패션에서도 정량적인 데이터 수집이 시작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AI 기업 옴니어스가 패션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가속하고 있다. 상품 사진을 올리면 장당 0.5초의 속도로 13가지 분류의 속성이 자동 입력된다. 색상은 물론 소재나 핏 등 사람만이 할 수 있던 디테일까지 태깅할 수 있다. SNS 이미지를 대량 수집해 매주 트렌드 리포트를 제공하고, 유사한 다른 상품들을 노출할 수도 있다. AI는 이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패션도 예외는 아니다. AI가 내 취향에 맞는 옷을 찾아주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게 도와줄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2020년 패션업계는 최근 몇 년간 소비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활동적인 노년층, 즉 액티브 시니어를 겨냥한 마케팅에 심혈을 기울일 계획이다.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로 인구구조의 가장 큰 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자산 규모나 소비 측면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KFI(Korea Fashion Index) 한국패션마켓트렌드 2019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에 30~40대 커리어 세대의 소비는 하락한 반면, 60대 노년층 인구의 소비는 3.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19년 상반기 총 18조1,123억원 규모의 패션시장에서 50~60대 소비 비중은 39.1%를 차지하고 있으며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해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 남성복 브랜드 캠브리지멤버스 등은 60대 이상의 모델 혹은 고객을 등장시킴으로써 멋스럽게 나이 들고자 하는 시니어층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종합패션기업 ㈜세정은 시니어 4명을 선정해 제품을 착용하고 전문 포토그래퍼와 화보 촬영을 하면서 중장년 남성들의 다시 찾은 전성기를 보여주는 마이 헤이데이(My Heyday) 캠페인을 진행했다. 같은 시기 공개한 65세 모델 김칠두 씨의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 칠두잇은 5가지 에피소드의 누적 조회 수가 24만을 돌파했다. 다방면에 걸친 시니어들의 왕성한 활동은 중장년층뿐 아니라 젊은 세대까지 전 세대의 공감과 지지를 끌어내며 소비의 주축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고령 패션 유튜버로, 채널 밀라논나 개설과 함께 단기간에 27만 구독자를 확보한 장명숙(68세) 씨는 젊어지려고 애쓰는 게 아닌 경험과 경력을 당당히 공유하는 다채로운 액티브 시니어 세대를 대변해주고 있다. 모델계에도 시니어 광풍이 불고 있다. 크고 작은 시니어 모델 대회가 열렸고, 시니어 모델을 대변하기 위한 협회가 생겨나고 사단법인까지 설립 중이다. 패션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니어 모델은 이제 낯설지가 않다. 수요보다 공급이 넘치는 상황에서 몇몇을 제외하고는 수입이 따라주지 않아 인생 제2막의 직업이라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20년 패션계의 시니어 마케팅은 한층 더 진화할 조짐이다. 코오롱스포츠는 배우 김혜자와 류준열을 동시에 모델로 발탁했다. 북극의 오로라를 바라보는 김혜자의 모습을 통해 나이를 뛰어넘은 아웃도어의 도전정신을 각인하고자 하는 의도다. 최근 이랜드 리테일의 신발 브랜드 슈펜은 1991년 데뷔한 가수 양준일을 모델로 젊은 층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담아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이처럼 시니어는 새로운 소비층일 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 책가방을 판매하는 브랜드들은 신학기가 되면 학부모보다는 경제력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겨냥한 고급 제품들을 기획하고 판촉전을 펼친다. 여성 브랜드를 홍보할 때는 절대 실버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백화점들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액티브 시니어의 특성을 파악하고 메신저나 문자로 특가 상품 카탈로그를 정기 발송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하고 가치 지향적인 액티브 시니어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해하고 소비접점을 만드는 밀착 마케팅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세상은 넓고, 사고 싶은 옷은 많다. 만고불변의 진리다. 다 살 순 없으니 신중해야 한다. 온라인 쇼핑을 주로 하는 요즘, 직접 제품을 볼 수 없으니 믿을 만한 후기를 찾아본다. 오호라 끄덕끄덕하며 읽다 보면 노골적 광고부터 후기 같은, 광고인 듯 광고 아닌 광고까지 에잇 안 사! 이상 무한반복되는 나의 쇼핑 실패 과정이다. 서울스토어(seoulstore)는 이런 20대 여성의 고충을 저격했다. 서울스토어와 함께하는 400명의 유튜버는 직접 서울스토어 내 제품을 사고 콘텐츠로 솔직한 후기를 전한다. 브랜드 전속 모델이 아니고 콘텐츠 기획과 제작, 편집까지 모두 직접 하므로 생각보다 핏이 넉넉하다, 화면보다 색이 어둡다 등 솔직한 평가를 할 수 있다. 이는 가짜 후기에 질린 20대 여성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고 서울스토어는 창업 5년 차에 180만 가입자를 모았다. 유튜브 미디어커머스라는 어쩐지 낯익은 듯하지만 새로운 플랫폼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는 윤반석 대표를 만났다. 서울스토어라는 이름이 색다르다. 2015년 유독 간판이나 사람들 옷 등에서 서울(seoul)이 많이 보였다. 검색 데이터를 살펴보니 K-팝 등의 영향으로 3년 동안 4배가량 검색량이 늘었고, 연간 키워드 검색량은 트렌드의 성지라고 불리는 밀라노, 뉴욕과 맞먹는 정도였다. 서울도 하나의 문화적 키워드가 된 거다. 한국 패션, 트렌드를 상징하는 서울을 차용해 한국을 대표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되고자 했다. 플랫폼 운영 방식을 설명해준다면? 다른 패션 플랫폼이 고객, 브랜드로 이뤄져 있다면 서울스토어는 고객, 브랜드, 유튜버(크리에이터)로 이뤄져 있다. 유튜버들은 자기가 사고 싶은 브랜드의 제품을 직접 사고, 그걸 이용해 콘텐츠를 만든다. 이를 본 구독자가 그 제품을 사고 싶다면 결제창에서 해당 크리에이터의 고유 코드인 친구할인코드를 입력하고 구매한다. 이 과정에서 크리에이터는 제품 가격의 5%를 수익으로 얻고 고객은 5%의 할인을 받는다. 커머스와 미디어 환경 변화를 빨리 읽은 것 같다. 비교적 그렇다. 서울스토어 창업 전 운영했던 디자인 컨설팅 회사에서 주로 커머스 기업을 고객으로 만나면서 그들이 마케팅 채널 다변화를 필요로 한다는 걸 알았다. 또한 1만명씩 안정적인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유튜버의 영향력에 늘 관심을 두고 있던 터라 그 둘을 접목한 플랫폼을 만들게 됐다. 다른 패션 플랫폼들은 왜 유튜브 커머스를 시도하지 않았을까? 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은 브랜드에 광고 기능을 제공한다. 연령대를 설정하고 돈을 내면 타깃들의 피드에 광고가 강제 노출된다. 하지만 유튜브에는 이런 기능이 없다. 누구나 채널을 열 수 있지만 구독자를 억지로 모을 수 없다. 이는 고객들이 유튜브 콘텐츠는 진정성 있다고 평가하는 이유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를 업계도 파악하고 있기에 곧 많은 기업이 뛰어들 걸로 생각한다. 지난해 유튜버들의 허위과장 광고와 관련한 부정적 이슈가 있었다. 브랜드들이 유튜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장점만을 주입하던 전통적 마케팅 방식을 유튜브에도 적용해 부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유튜버 마케팅은 그들을 팔로우하는 구독자들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독자들은 유튜버와의 진정성 있는 소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유튜버가 TV 광고 모델처럼 써보지도 않은 제품의 장점을 읊기만 한다면 바로 거부감을 느낀다.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누적 거래액 500억원을 달성했고, 거래액이 매년 2배씩 성장하고 있다. 내실을 더하기 위해 구글 재팬 근무 당시 일본 유튜브에 뽀로로와 타요 등 한국 콘텐츠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정재훈 이사를 얼마 전 영입했고, 좀 더 체계적인 유튜버 지원을 위해 마이큐레이션 서비스를 오픈했다. 유튜버가 마이큐레이션 페이지에 가입하면 우리 상품을 살 수 있는 포인트를 지원하고, 신뢰가 쌓인 유튜버에게는 브랜드와의 협업 기회를 제공한다. 이 외에도 브랜드 패션 론칭 행사와 같은 이벤트 참여와 촬영 스튜디오 등을 지원한다. 유튜버 혜택이 많다. 입점 브랜드에는 무엇이 제공되나? 브랜드에는 매달 데이터 보고서를 제공한다. 다른 플랫폼의 경우 판매량 정도의 정보는 알 수 있지만 자세한 내용을 알 수가 없는데 우리의 경우 어떤 성향과 연령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에게서 매출이 많이 발생하는지, 어떤 콘텐츠로 가공해야 잘 팔리는지 등을 상세히 알려준다. 수익 모델이 궁금하다. 브랜드들이 상품 판매 시 25~30%의 수수료를 주기로 하고 입점한다. 그중 10%가 크리에이터와 고객에게 가고 남는 것이 우리 수익이 되다 보니 수수료 전체를 오롯이 갖는 플랫폼보단 확실히 적다. 그 때문에 수익구조 개선을 위해 자체브랜드(PB) 론칭을 준비하고 있냐고 많이들 묻는데, 우리는 온라인 쇼핑몰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기에 계획이 없다. 판매가 늘고 매출이 상승하면 자연스레 수익구조가 더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10대, 20대 여성이 주 타깃이다. 그들의 소비 트렌드는 어떤가? 가입자 50%가 20대 여성이고, 최근 10대에게 인기 있는 유튜버들과 협업하면서 10대들이 많이 유입되고 있다. 그들의 소비 성향은 갈수록 다양해져서, 딱 뭐다! 표현하기가 힘들다.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명품 소비에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아무래도 10~20대, 소위 MZ세대는 어릴 때부터 미디어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어떤 키워드를 접했을 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데 거부감이 없어 다채로운 소비 성향이 나타나는 것 같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가 유니콘기업이 된 후 업계에 변화가 생겼나? 업계에서 기업가치가 1조원이 넘는 기업이 나오다 보니 패션 플랫폼에 대한 투자자와 고객의 이해도가 높아졌다. 사실 무신사의 거래액이 500억원, 1천억원이 넘었을 때도 여기가 끝일 것이다라는 얘기를 들었을 만큼 이전에 패션 플랫폼은 다른 업종에 비해 평가절하 받았다. 투자를 유치할 때도 위탁판매 개념부터 설명해야 했는데, 지금은 확실히 그들의 마인드가 열렸다는 게 느껴진다. 5년 차, 앞으로가 중요할 것 같다. 얼마 전 제일 처음 함께했던 유튜버에게 수익이 없던 나에게 좋은 기회였다는 말을 들었다. 더 많은 유튜버와 브랜드에 기회를 주고 고객에게는 실속 있는 정보를 주고 싶다. 또한 지난해 9월 대만을 시작으로 해외 진출도 여러 방면에서 모색 중이다. 특히 유튜브 사용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동남아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다. 김세영 나라경제 기자
어릴 때부터 내 꿈은 옷 잘 입는 사람이었다. 옷 투정을 하면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른 되면 네 마음대로 입어. 어른이 된 내게 마음대로 입기란 내 돈을 누군가의 허락 없이 옷에 쓰는 거였다. 그렇게 10년이 지났고 꽉 찬 옷장 앞에선 한숨이 나왔다. 내 옷장은 망한 옷장이었다. 우선, 내가 옷을 보는 관점은 왜곡돼 있었다. 굶주림에 시달린 사람이 폭식하듯 나도 마음의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쇼핑중독에 빠졌다. 폭식을 그만둬야 할 사람에게 필요한 게 건강한 식생활이듯 쇼핑중독에 빠진 나에겐 건강한 의생활이 필요했다. 내 옷장이 망한 두 번째 이유는 옷 입기를 이성의 영역이라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게 패션은 당연히 감각의 영역이었다. 사실 옷을 마음대로 입기란 치밀한 계산 끝에 가능한 건데, 내 이성은 마비됐었다. 내가 선망한 스타일은 누군가가 권한 트렌드였고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의 옷을 골랐다. 건강한 의생활을 결심하고, 실수를 거울삼아 이성적인 다섯 단계를 밟아갔다. 1단계는 용감한 성찰자가 되는 것이다. 어떤 옷을 새로 들여야 하나? 고민하던 중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인생이란 여행에서 나는 어떤 여행자일까? 그럼 내 옷장은 여행 가방이 되고 가방에 넣을 옷을 쉽게 정할 수 있게 될 테니까. 내향적이지만 삐딱한 자유로운 영혼, 조용한 말괄량이, 내 별명이자 정체성이다. 나를 누구로 표현할 것인가?에 답하기 위해서 나는 누구인가?에 먼저 답해야 했다. 2단계는 냉정한 감상자 단계로 안목을 높이는 것이다. 나는 어떤 옷을 사야 할지, 사면 안 되는지 몰랐다. 우선 패션 잡지나 방송에서 접했던 스타일링 팁을 반대의 법칙, 빼기더하기의 법칙, 여백미의 법칙, 색상조화의 법칙, 이렇게 4가지로 정리해봤다. 그렇게 안목을 높이자 사야 할 옷과 사면 안 되는 옷이 드디어 보였다. 신세계였다. 내가 쇼핑에서 실패를 거듭했던 건 바로 앞선 1~2단계를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3단계는 명민한 컬렉터로서 똑똑하게 사는 단계다. 쇼핑 전 쇼핑 리스트를 작성하고 나를 잘 표현하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옷을 찾으려 했다. 4단계는 옷으로 나를 표현하는 창의적 작가가 되는 것이다. 예술가가 자신의 세계를 작품으로 표현하고 소통하듯 내 옷을 조합해 나를 표현하고 사람들을 만난다. 흥미롭게도 내가 외양에 치중할수록 멋 냈다는 냉소를 받았고, 내면을 표현할수록 멋있다는 찬사를 받았다. 5단계는 진정한 나라고 부르는데,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단계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게 되는 법이다. 쉽지 않았지만, 옷 잘 입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즐길 수 있었다. 이제 옷은 사는 즐거움보단 입는 즐거움의 대상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여도 괜찮다는 건강한 자존감, 정체성을 담담히 표현하고 타인과 즐거이 소통하겠다는 마음. 내 건강한 의생활의 시작이다. 누군가는 트렌드를 강요하지만, 진정으로 건강한 의생활은 내 마음대로 입는 거다. 제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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