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웨인 카운티에 있는 산악관광지 버펄로 크리크 계곡에 세운 댐이 무너지면서 물과 토사가 인근 16개 마을을 덮쳐 125명이 죽고 4천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사고 후 주민의 80% 이상이 오랫동안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심지어 주민들은 누군가가 물 밀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말하면 집단적으로 허둥거렸다.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이처럼 과거에 경험했던 사건사고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충격으로 우울증, 불면, 공황발작 등 다양한 정신적인 증상을 겪는 질환이다. 미국정신의학회가 1980년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트라우마(trauma)를 질병 이름으로 처음 등재했다. 트라우마라는 용어는 상처라는 뜻의 그리스어 트라우마트(traumat)에서 유래한 것으로, 충격적인 사건이나 사고를 경험한 여성의 20%, 남성은 8%가 트라우마를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라우마는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하는 일이 아주 많을 뿐만 아니라 꽤 오랫동안 이런 이미지가 기억된다. 예를 들어 신체적 폭행, 성폭행, 화재, 천재지변, 비행기기차 사고 등으로 인한 외상이나 정신적인 충격으로 불안해지거나 심한 감정적 동요를 겪는다. 정신건강의학과 질환 가운데 가장 심각한 질환으로 꼽히는 트라우마는 반드시 치료를 해야 한다. 트라우마 증상은 과(過)각성(hyperarousal), 침투(intrusion), 억제(constriction) 등 크게 3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과각성은 트라우마가 생기기 전에는 없었던 각성반응으로 악몽을 반복적으로 꾸고, 불면증이 생기고, 환청을 듣거나 환시를 보고, 쉽게 놀라거나 공포감에 사로잡히는 등 과민반응하고, 충동조절 장애가 생겨 폭발적으로 화를 내기도 한다. 침투는 트라우마를 일으킨 사건사고가 다시 생생하게 느껴지는 현상이다. 억제는 광범위한 회피 현상으로, 트라우마와 관련된 생각느낌상황을 지속적으로 회피하며 외상의 중요한 부분을 기억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때 뇌가 기억의 일부를 지워버리는 해리(dissociation) 현상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약물알코올 중독에 빠지거나 자살이나 자해를 할 위험이 크다. 나이가 어리거나 다른 질환을 동반하고 있으면 이런 증상이 더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 트라우마는 이러한 과각성침투억제 등의 현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될 때 진단한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은 난파 당한 배와 비슷하기에 안전감 회복이 최우선이다. 즉 환자 스스로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환자가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그의 이야기를 공감하면서 경청한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SSRI) 등과 같은 약물 치료와 두려움을 이겨내도록 인지행동 치료 등을 시행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은 회복 탄력성(resilience), 즉 마음의 맷집을 키우게 된다. 그런 다음 환자에게 회복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게 하고 건강을 회복해 온전히 사회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만든다. 치료는 일반적으로 3~6개월 정도 받으면 되는데, 다른 정신건강의학적 문제가 나타난다면 1년 이상 치료해야 할 수도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 살펴보기 다음은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때때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트라우마를 경험한 지 한 달이 되지 않았다면 사건 이후부터 현재까지) 다음과 같은 문제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표시해주세요. ※ 본 자료는 단순 참고용이며, 정확한 판단은 전문가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자료: 스마일센터 총괄지원단(resmile.or.kr)
코로나 블루에 시달리고 있다면, 직장 내 괴롭힘, 범죄피해 등의 트라우마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홀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지 말고 도움을 청해보자. 트라우마 유형별로 국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정리해봤다. 재난 트라우마 회복 세월호 사고, 메르스, 경주포항 지진 등 지난 몇 년간 국가적 재난상황을 겪으며 피해자들의 심리지원에 대한 국가의 역할이 강조됨에 따라 2018년 국가트라우마센터가 문을 열었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는 트라우마 회복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는데 대표적으로 트라우마 회복패키지를 들 수 있다. 재난 경험자의 심리적 회복을 도울 수 있는 맞춤형 치료 프로그램으로 마음건강 검사 및 심박변이도 검사 등을 통해 심층 평가를 받은 후 1~6개월의 트라우마 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으며, 프로그램 종료 후 모니터링까지 진행된다(문의: ☎0222041437~9). 이 외에도 찾아가는 재난 정신건강 서비스인 안심버스를 재난 발생 현장에 투입해 간단한 검사와 상담, 교육, 의료기기를 통한 안정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재난 심리지원 핫라인(☎0222040001)도 운영한다. 한편 전국의 17개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와 시군구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도 관련 심리상담을 무료로 받을 수 있으니 본인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가까운 센터를 찾아보자. 직업적 트라우마 상담 중대산업재해, 동료의 자살,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성폭력 등 산업재해로 인한 직업적 트라우마를 겪는 노동자는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전국 8곳(광주, 대구, 인천, 대전, 경남, 부천, 경기서부, 경기동부)에서 운영 중이며, 심리검사심리상담심리교육사후관리 등 전문상담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한다. 해당지역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문의하거나 심리상담 전용 핫라인(☎15886497), 홈페이지(www.otccmind.com)를 통해 상담이 가능하다. 범죄피해자 지원 살인, 강도, 강간, 상해, 방화 등 강력범죄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범죄피해 트라우마 통합지원기관 스마일센터의 문을 두드려보자. 스마일센터는 범죄피해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상담심리치유 프로그램과 신변보호를 위한 임시주거, 법률상담 등을 제공해 일상생활 복귀를 지원한다. 현재 송파(서울)부산인천광주대구대전춘천전주마포(서울)수원의정부청주울산창원 등 14개소가 운영 중이며, 지원이 필요한 경우 경찰서, 검찰청, 범죄피해자지원법인 등을 통해 의뢰하거나 피해자 본인이 직접 신청할 수 있다(문의: ☎023331295, www.resmile.or.kr). 국가폭력 피해자 치유 지난 5월 제주도에 제주4.3트라우마센터가 개소했다. 제주 4.3 사건 생존희생자와 유가족은 물론 기타 과거사 관련 피해자의 치유재활을 담당하는 전문기관으로, 개인 심리상담 및 신체치유, 집단상담, 예술치유 프로그램, 방문형 트라우마 치유 재가서비스 등을 제공한다(문의: ☎0647214376). 코로나19 스트레스 극복 코로나19로 인한 심리적 방역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한국심리학회,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 등에서 무료 심리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심리학회는 7월 31일까지 상담전화(☎07050672619, 2819, 5719)를 통해 평일과 주말 9~21시까지 상담을 진행하며,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에서는 확진자 및 가족은 국가트라우마센터(☎0222040001~2) 또는 영남권트라우마센터(☎0552702777), 격리자 및 일반인은 정신건강복지센터(☎15770199)를 통해 심리상담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후 이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용어를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다. PTSD 진단기준이 세계적으로 확립된 것은 1980년의 일이다. 그전까지 PTSD는 개인적 소인에 따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는데, 건강한 미국 청년들이 베트남전에서 돌아와 폭력, 자살, 알코올 중독 등의 심각한 문제를 겪으며 이것이 사회문제가 되자 PTSD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개인의 나약성이 아니라 재난과 트라우마가 개인에게 가한 영향력이 의학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이후 사회가 트라우마를 관리해야 한다는 정책 변화가 시작됐다. 미국 레이건 행정부는 제대군인을 위해 1988년 보훈처를 보훈부로 격상하고 1989년 국립PTSD센터를 설립했다. 2005년 이후 보훈 분야에만 정신건강서비스 전담인력이 6천명 수준에서 2010년 2만명 수준으로 확대됐다.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은 PTSD를 앓는 참전용사가 그 원인이 참전임을 스스로 증명할 필요가 없도록 보상과 지원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제대군인은 무료로 신체정신 건강 치료를 받고 생활지원금, 주거서비스 등을 제공받는다. 미국의 보훈서비스는 근거가 검증된 최고의 치료와 함께 지역의 회복코디네이터, 동료상담가가 함께하는 지역사회 지원 시스템으로 발전돼 운영되고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에도 트라우마관리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세계무역센터 건강 프로그램이나 범죄피해자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트라우마 치료를 보장받고 있다. 일본에서도 고베대지진 후 트라우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4년 효고현에 마음의케어센터가 설립됐다. 센터장인 정신과 전문의 카토 히로시에 의하면 민간의료체계에서 감당하기 힘든 트라우마 피해자에게 근거기반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됐고 7명의 전문의를 포함한 다학제팀이 환자 한 명에 1~2시간의 면담과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동일본대지진 때 재난정신의료팀의 일원으로 현장 긴급지원 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유서를 써놓고 출발해야 할 만큼 상황이 엄중했다고 한다. 일본의 「재난관리법」은 민간의료진이 재난 시 출동할 경우 공무원의 직위를 부여하고 관련된 피해에 대해 보상하는 규정을 갖추고 있다. 트라우마를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공적 서비스를 민관협력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후 동북부 3개 현에 마음의케어센터가 설립돼 트라우마 피해자에게 치료와 사례관리를 제공하고 있다. 쓰나미 등 자연재난은 그 지역의 의료복지 자원을 철저히 파괴한다. 이 경우 기존의 정신과 입원환자, 지역에 산개된 트라우마 피해자에 대한 관리가 우선이 된다. 약을 전달하고 안전한 병원으로 이송하는 분류작업이 시작점이다. 이러한 노력에도 후쿠시마 등에서는 초기에는 자살률이 감소하다가 2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가장들을 중심으로 증가한 바 있다. 노력해도 변화가 어렵다는 절망으로 해석된다. 이를 분석한 연구에는 초기부터 정신건강서비스가 제공된 지역의 자살률이 낮았다고 보고된다. 트라우마는 개인과 지역사회가 해결할 수 없는 재난과 심각한 사고의 문제다. 피해자는 국민이며 또 이들을 구조하거나 지키기 위해 노력한 소방관, 군인, 경찰, 의료진 등이다.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이들의 자립과 회복을 지원하는 시스템은 국가적 과제다. 트라우마에 대한 국민적 인식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다. 코로나19 시기에 심리방역에 대한 요구도 높다. 이에 걸맞은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문제는 아주 특별한 누군가가 아닌 우리 모두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겪을 수 있는 아픔이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라는 말이 널리 쓰인 지는 불과 10여년밖에 되지 않았다. 트라우마는 주로 신체적 외상을 일컫는 말이었고, 정신적 트라우마라는 말은 정신과 교과서에서나 등장하는 용어였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에게서 독특한 심리적 현상이 대거 관찰되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즉 PTSD라는 말이 처음으로 진단기준에 등재됐다. 하지만 한동안 트라우마는 생사를 오가는 전투나 끔찍한 범죄피해에만 한정적으로 쓰이는 용어였다. 이제는 온갖 곳에 트라우마라는 말이 쓰인다. 취업에 실패해도 트라우마, 실연을 당해도 트라우마, 심지어 친구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도 트라우마를 받는단다. 하지만 용어가 남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트라우마가 흔해진 세상인지도 모른다. 예전이라면 툭툭 털어버릴 수 있는 삶의 불행이 이제 의학적 트라우마가 됐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은 PTSD를 많이 앓지 않았다. 조국을 지킨다는 숭고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트남전은 달랐다. 전쟁의 의미를 찾지 못한 군인은 작은 충격에도 힘들어했다. 현대사회는 분명 제2차 세계대전보다는 베트남전에 가깝다. 경쟁은 치열해지지만 삶의 의미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세상이다. 원칙적으로 심리적 충격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것은 유용한 진화적 형질이다. 같은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 하지만 이미 유효기간이 끝났는데도 울분과 한, 앙심이 삶에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다면 곤란하다. 이제는 잊어도 되는 고통의 기억이지만, 도무지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유령과도 같다. 그런데 그 유령은 왜 떠나지 않는 것일까? 머리를 감싸고 뒤흔든다고 해서 떨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볼 때는 사소한 일도 자신에게는 큰 트라우마인 경우가 있다. 왜 나에게 그 사건이 유독 큰 고통으로, 그리고 유령으로 남게 된 것일까? 잊으려고, 없애려고 하는 노력을 살짝 접고 귀를 열어보자. 고통이 들려주는 메시지다. 이유 없는 고통, 공연한 기억은 없다. 지금 살아 있는 우리 자신에게 깊은 조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흔히 하는 실수가 있다. 구체적인 가해자를 찾으려는 것이다. 인과응보의 원시적 방어 기전은 트라우마를 고착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물론 필요하다면 보상도 받고 사과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마흔 살이 넘어서 초등학교 무렵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를 찾아가 따진다면, 일흔이 넘은 어머니에게 왜 어린 시절 예뻐해주지 않았냐며 이를 북북 간다면 정말 곤란하다. 고통의 기억은 무엇인가를 애써 알리려고 했지만 수십 년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인스턴트 위로를 받으려는 것도 흔한 실수다. 적당하게 골라잡은 과거의 트라우마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책임을 전가한다. 마음의 소리가 거짓말 마!라고 외치고 있지만, 우격다짐으로 귀를 틀어막고 트라우마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공허한 위로를 하는 것이다. 물론 PTSD에 준하는 심각한 상태라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글로 적어보는 것도 좋고, 사랑하는 이와 경험을 나눠보는 것도 좋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고통의 기억이 들려주는 깊은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다. 고통의 기억에 새로운 의미가 덧입혀지고, 오랜 상처는 아물며, 새로운 희망의 싹이 솟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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