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감콘텐츠란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홀로그램 등 실감기술을 적용한 디지털콘텐츠를 의미한다. 물리적 세계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제약을 허물어 이용자 경험을 극대화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감콘텐츠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제조건설교육국방의료문화를 비롯해 산업 전 분야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산업 생산성과 삶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다. 실감콘텐츠는 199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됐지만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5년 전후다.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등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전시회에서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국내에서는 2016년 이후 가상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VR방이 개인용(B2C) 시장에서 확산하기 시작했다.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 준비에 맞춰 5G 킬러콘텐츠로 실감콘텐츠 출시를 준비하는 기업도 늘어났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PWC에 따르면 실감콘텐츠 기반 기술로 VR, AR 등을 아우르는 가상융합기술(XR)은 2025년 4,764억 달러(약 534조 원)에 달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정부는 가상융합경제 발전전략을 통해 2025년 경제효과 30조 원 달성 목표를 수립했다. 이 같은 기대효과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실감콘텐츠와 실감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미국은 1993년 국가정보통신기반구조(NII) 사업에서 VR을 핵심 분야로 지목했고 주요 부처와 기관이 관련 계획을 수립해 실행 중이다. 유럽은 범유럽 연구혁신 프로그램 호라이즌 2020 프로젝트에서 VRAR 기술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국은 2018~2025년까지 관련 기술과 제품, 서비스 개발에 3,300만 파운드(약 510억 원)를 투자한다. 중국은 중장기 과학과 기술발전 규획요강(2006~2020년)에서 VR을 3대 선진 정보기술 중 하나로 선정하고 산업 적용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 정부는 2019년 콘텐츠산업 3대 혁신전략 가운데 하나로 선도형 실감콘텐츠 육성전략을 발표했다. 지난해에는 디지털 뉴딜 문화콘텐츠산업 전략을 공개하고 광화문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말 실감기술과 실감콘텐츠를 경제사회 전반에 접목해 가치를 창출하는 가상융합경제 발전전략을 발표했고, 올해부터 타 부처와 협력해 관련 사업을 연이어 진행 중이다. 현장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시대를 맞아 수업이나 전시회 등의 몰입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실감콘텐츠 사용이 늘고 있다. 지난해 7월 국내 최초로 열린 가상게임쇼 2020 인디크래프트가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가상공간에서의 전시회수업이나 강연회의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공공 분야에서도 장애인 대상 실감콘텐츠 체험관 상상누림터나 미래형 도서관 체험관 실감서재 같은 대국민서비스가 등장했다. 실감콘텐츠는 이제 가상세계를 의미하는 메타버스(metaverse)로 개념이 확대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 제페토가 대표적인 메타버스로 꼽힌다. 가상세계에서 아바타를 통해 시공을 초월, 현실과 같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정책과 투자, 관심도와 결과물 등을 다방면으로 고려하면 올해는 실감콘텐츠가 본격 확산되는 원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한 지속적 정책 지원과 관심 그리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마련이 필요한 때다.
어린 시절의 도서관 방문은 늘 카드목록함에서 종이를 하나씩 넘겨가며 원하는 책을 찾는 것으로 시작했다. 대학생이 됐을 무렵엔 온라인으로 검색이 가능해지면서 카드목록함은 도서관 한쪽 벽면에 유물처럼 방치된 신세가 됐고 언제부턴가 완전히 사라졌다. 인덱스카드를 넘기던 손가락은 키보드로 옮겨갔다. 그 다음은 뭘까. 이에 대한 답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에 있는 실감서재다. 지난 3월 23일 개관한 실감서재는 도서관 콘텐츠에 실감기술을 적용해 미래의 도서관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는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등을 전시에 활용한 사례가 있지만 도서관으로는 새로운 시도라고 한다. 체험관에 들어서자 대형 화면과 여러 개의 인조대리석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는 검색의 미래 코너로, 테이블 위에 터치로 검색어를 입력하면 연도별주제별로 분류된 연관 키워드가 거미줄처럼 펼쳐진다. 검색 결과와 책 표지를 대형 화면에 띄워 여러 사람과 함께 보는 것이 가능하다. 실감서재에서는 고지도와 고서적을 인터렉티브 지도와 디지털북으로 보고 만질 수 있다. 조선 후기 서울의 모습이 담긴 서울시 유형문화재 수선전도가 고해상도 지도로 구현돼 있는데, 마치 스마트폰으로 지도앱을 다루듯 손으로 확대축소할 수 있고 광화문, 명동 등 특정 지점을 터치하면 현재 지명과 함께 설명이 나온다. 지도 속에서 실시간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디지털북 콘텐츠로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의보감』과 『무예도보통지』가 제공되고 있다. 원본은 도서관 귀중본 서고에 보관돼 있어 일반인이 볼 수 없는 책들이다. 고서적의 질감을 재현한 대형 책 위에 영상을 투사하는 프로젝션 맵핑 기술을 이용해 책의 내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조선시대 무예교본인 『무예도보통지』의 페이지를 넘기면 인물들이 칼을 휘두르고 말 위에서 창을 던지고 있다. 『동의보감』을 펼쳤더니 토끼가 튀어나오면서 간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한문으로 된 원문은 손을 대니 샤라락 사라지면서 한글 해석본으로 대체된다. 실감서재 한편에는 VR도서관을 체험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헤드셋을 쓰고 독서 공간으로 국립중앙도서관, 바닷속, 집옥재(경복궁에 있는 왕의 서재) 중 하나를 선택한다. 단편 문학작품 35편이 눈앞에 펼쳐진다. 책을 읽다가 지루하면 가상공간 안에서 간단한 게임도 즐길 수 있다. VR도서관은 헤드셋만 있으면 집에서도 가상공간에 들어가 독서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아직은 실제 독서에 비해 현실감이 떨어지고 불편했지만, 기술적으로 보완되면 조만간 가상세계에서 현실과 똑같이 독서를 즐길 수 있겠다는 기대가 들었다. 검색 결과를 손짓으로 테이블에서 스크린으로 옮기고, 종이 위에서 삽화가 살아 움직인다. 『해리포터』 시리즈 같은 판타지물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들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첨단기술을 입은 도서관은 책을 오감으로 즐기는 곳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실감서재는 상설 체험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www.nl.go.kr)에서 예약 후 이용할 수 있다.
실감콘텐츠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홀로현실(HR) 기술이 ICT 첨단기술과 융합돼 만들어진다. 몰입감, 상호작용, 지능화 등의 특징을 통해 사용자에게 높은 현실감과 경험을 제공하며, 전통적인 콘텐츠산업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의학, 생물학,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응용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실감콘텐츠 기술이 점점 더 경제적이고, 접근이 용이하며, 진보적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체험 위주를 넘어 우리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산업현장을 넘어 일상적인 교육, 근무, 소비에 이르기까지 비대면 사회로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메타버스(metaverse)가 사회경제 전반의 혁신적 변화를 초래하며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가상융합경제가 급부상하고 있다. 실감콘텐츠 기술은 현재 인터넷의 차세대 버전으로 생각되고 있는 사회적이며 지속적인 가상현실 3D 공간 메타버스 시대에 디지털 휴먼(digital human), 언택트(untact) 기술과 융합하게 될 것이다. 경제를 견인하는 주요 산업이나 엔터테인먼트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혁신도구로도 활용돼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실감콘텐츠가 잠깐 유행하다 마는 트렌드가 될 가능성이 높은지, 아니면 결국 영화, 라디오, TV, 비디오게임과 같은 기존의 전통적인 콘텐츠처럼 우리 일상생활에 자리 잡게 될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확실한 사실은 전통의 콘텐츠도 처음에는 새롭고 혁신적이며 트렌디한 것으로 정의됐지만 현재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며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전통적인 콘텐츠의 진화와 현재 실감콘텐츠의 진화 흐름에서 유사한 측면은 콘텐츠 기술이 확립되는 데 걸린 시간 범위다. 전통적인 콘텐츠가 광범위하게 대중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관심을 끌게 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현재 실감콘텐츠도 비슷하다. 2021년 현재, 실감콘텐츠의 다음 진화 단계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이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통적인 콘텐츠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이미 콘텐츠에 대한 보다 공간적인 감각을 갖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1930년대 영화 발전 초기 단계에서 성장한 세대는 그렇지 않다. 라디오와 TV가 보편화되던 1950년대나 1960년대 세대도 그렇지 않다. 1970년대에는 컬러TV와 비디오게임으로, 1990년대에는 인터넷의 발달로,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00년대에는 스마트폰에서 더 많은 예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단순히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더 경험적인 유형의 콘텐츠로 발전해 나갈 실감콘텐츠를 채택할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실감콘텐츠가 제공하는 공간적 감각은 미디어 안에 존재하거나 원하는 장소에 존재할 수 있는 새로운 측면이며, 이러한 감각은 결국 오늘날 사람들이 상상하는 새로운 용도와 응용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상세계가 현실세계에 흡수된 형태의 서비스, 가상객체와 현실환경의 상호작용이 보편화된 실감콘텐츠 세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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