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책이 정보 습득의 유일무이한 통로였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플랫폼의 다양화와 최첨단 ICT 기술의 발전으로 책을 여러 방식으로 즐기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듣고, 보고, 채팅하는 시대가 본격 도래한 것이다. 읽는 책의 대체제로 가장 급부상한 것은 당연히 듣는 책 오디오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딜로이트는 「글로벌 오디오북서비스시장 리포트 2019」에서 지난해 전 세계 오디오북시장 규모가 35억 달러(약 4조2,655억 원)에 달할 것이라 예측했다. 현재 국내 오디오북시장에서는 네이버의 오디오 스트리밍서비스인 오디오클립과 출판사 인플루엔셜이 출시한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를 비롯해 밀리의 서재, 리디북스, 교보문고, 팟빵 등이 경쟁 중이다. 오디오클립의 경우 2019년에만 13종의 오디오북을 1만 권 이상 판매하며 유료 디지털 오디오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윌라 역시 지난해 유료 구독자 수가 2019년보다 800% 이상 큰 폭으로 증가하며 오디오북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밀리의 서재는 사용자가 직접 오디오북을 만들고 수익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자체 개발해 공개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스마트폰 채팅에 익숙한 Z세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마저 채팅으로 진화시켰다. 최근 떠오르는 채팅형 소설(chat fiction)이 대표적인 예다. 채팅형 소설이란 말 그대로 채팅창을 배경으로 소설의 등장인물이 주고받는 대화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인터랙티브형 웹소설이다. 대표적으로는 2018년에 출시된 채티(Chatie)가 있다. 현재까지 채티의 누적 이용자 수는 355만 명, 창작된 작품 수는 45만 편에 달한다. 10대 이용자 비율이 70%를 차지한다. 채티의 특징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누구나 쉽게 창작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독자는 물론 창작자 유치에도 성공했다는 것이다. 전체 이용자의 20%가량이 독자면서 동시에 작가인 까닭이다. 채팅 형식이라고 해서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얕잡아 볼 수도 없다. 실제 책으로 출간되거나 웹툰으로 개발이 진행 중인 작품도 다수다. 웹콘텐츠 제작사인 와이낫미디어는 최근 채티와 함께 웹드라마 공모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오디오북과 채팅형 소설이 직접 책을 향유하도록 한다면, 보는 책 북튜브(Book+Youtube)는 책 읽는 행위마저 대신해 준다. 어려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거나 핵심 내용만 간추려주는 영상을 통해 책에 담긴 정보를 간접 사유하는 것이다. 북튜브는 보통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채널 운영자가 흥미롭게 읽은 책을 요약설명해 주거나 책의 전문을 낭독해 주는 것이다. 북튜브는 해당 책에 대한 흥미를 유발해 실제 독서로 이어지도록 한다는 점에서 독서 자체라기보다는 독서의 사전 단계에 더 가깝다. 인기 강사 김미경 씨가 운영하는 김미경 TV의 경우, 채널에서 소개된 책들이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매체 환경의 변화는 실제 독서율에도 영향을 끼쳤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9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종이책 인구는 꾸준히 줄고 있지만, 전자책 인구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이때 전자책 독서율에는 채티 같은 채팅형 웹소설도 포함된다. 2019년 조사에서부터 독서 매체 항목에 오디오북을 포함하고 있다. 독서의 범주가 종이책 읽기에 그치는 것이 아닌 웹소설, 오디오북 향유까지 확장됐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청소년기는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다. 더욱이 우리나라 대다수 청소년은 대학 입시 노이로제로 성장기에 걸맞은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나중으로 미룬다. 그렇지만 그 나중은 돌아오지 않는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유치원 때는 그림책, 초등학교 때는 동화책이나 학습만화, 지식정보책 등을 접하다가 청소년기에 접해야 할 청소년 소설이나 한국과 세계의 명작 읽기를 건너뛰고 나면 대학 때는 취업 준비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직장 일로 바쁘다는 이유로 독서를 멀리한다. 그래서 성인 두 명 중 한 명은 책을 전혀 읽지 않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인생도 책 읽기도 나중에는 없다. 책을 읽지 않기 시작하면 간헐적 독자로 변하고, 어느새 비독자가 되고 만다. 2020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민간단체들과 합심해 추진한 청소년 책의 해였다. 여러 차례 이뤄진 책(독서)의 해 행사에서 처음으로 청소년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우리 국민의 생애 독서 그래프를 보면, 초등학생 때 비교적 높은 수준이던 독서 관심도는 중고등학생 때 급격하게 하락해서 다시는 회복되지 않는다. 한국인의 습관적 독서 인구 비율이 OECD 최하위권인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이 단절을 어떻게 뛰어넘을까가 화두다. 청소년 책의 해는 코로나19라는 악재를 만나 대규모 책 축제와 오프라인 행사는 어려웠지만, 온라인 등을 활용한 여러 프로그램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먼저 2020 청문상(청소년문학상) 프로젝트는 청소년들이 직접 심사위원이 돼 문학상 수상작을 결정했다. 청소년 장편소설 가운데 전문가들이 추려낸 15종의 목록에서 참여 그룹별로 4종씩을 청소년들이 선택해 읽고 그룹별 수상작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이 행사에 참여한 약 3천 명의 청소년은 함께 읽기와 능동적인 독서 체험을 하며 정신의 키를 한 뼘씩 키웠다. 새로운 형태의 청소년 책 읽기가 뿌리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한 국내 최초의 청소년 맞춤형 책 추천 사이트인 북틴넷(bookteen.net)은 지속적인 활동으로 불과 1년 만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청소년이 원하는 주제의 책을 짧고 재미난 글로 소개해 읽고 싶도록 추천(큐레이션)해 인기를 끌었다. 청소년 책의 해 연구사업으로 추진한 「책 읽는 청소년 독자 형성 실증연구 및 사례조사」에서는 독서 습관이 몸에 밴 흔치 않은 청소년들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 책 읽는 청소년을 만드는 것은 성장 과정에서의 가정환경과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독서에 대한 관심을 결정짓는 골든타임이 초등학교 1~2학년과 중학생 시기라는 것도 밝혀졌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부모부터 솔선수범하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진저리치는 독후감 쓰기를 강제하는 대신 즐거운 독서체험을 만들어줘야 한다. 책은 지식과 상상력의 보고다. 창의력이 생존 도구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독서는 여가 선용만이 아닌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평생직장은 사라지고 끊임없는 창직(創職)이 필요한 시대다. 풍요로운 생각의 원천인 책을 청소년기에 실컷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즐겁고 유익하면 습관이 되고, 싫은 경험이 쌓이면 멀리하게 된다. 청소년 독서환경에서 우리 사회는 전자인가 후자인가. 우리 아이들이 평생의 자산인 책 읽는 습관을 갖도록 가정, 학교, 사회가 독서 친화적인 여건부터 마련해야 한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디지털 독서는 간단한 조작으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다는 매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독서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도구는 종이책이다. 종이책에 익숙한 독자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종이책과의 연계 등 디지털환경에서의 다양한 독서 방법과 효과를 함께 고민하고 적용해 나가야 한다. 『2015 한국출판연감』의 통계에 따르면 전자책을 읽지 않는 이유로 전자책에 관심이 없어서(21.6%), 전자책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18.9%),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독서에 관심이 없어서(17.9%) 등을 꼽았고, 전자책을 읽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는 종이책처럼 눈이 편안해야 한다(30.4%)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 이어서 전자책에 대한 경험, 지식, 교육이 필요하다(19.9%), 전자책 이용 방법이 간편해져야 한다(15.8%) 순이었다. 조사 결과에서 나타나듯이 전자책에 아직 관심이 없거나 그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인 것은 2019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서 종이책 이용률은 계속 줄어들고 있지만 전자책 이용률의 경우 성인 16.5%, 학생 37.2%로, 2017년 결과보다 각각 2.4%p, 7.4%p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 결과가 단순히 전자책에 대한 호기심으로 끝나선 안 된다. 책의 미래는 지속 가능하되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함양하고 독서수준 격차 해소 등 장벽을 없애는 한편, 개인 단위에서는 독서환경에 맞는 맞춤형 매체를 찾아 독서의 즐거움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종이책을 읽든 전자책을 읽든 독자에게 맞는 공간에서 책을 읽는 그 자체가 즐겁고 편안하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독서 시대에 종이책을 조화롭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필자의 제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스마트기기와 e북 리더기 사용을 위한 디지털 활용능력 교육을 할 생애 첫 도서관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사서 선생님이 기기의 사용법과 활용법을 학생들에게 전수하고, 동네 도서관도 e북 리더기를 대여해 주거나 활용하는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둘째, 때와 장소에 따라 종이책과 전자책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여행이나 출퇴근할 때는 e북 리더기를 활용하면 좋다. 이동하는 동안 여러 책을 한 기기에 담아 읽을 수 있는 등 휴대가 간편하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종이책의 경우는 도서관에서나 잠들기 전 편안한 자세로 집중하며 읽기가 가능하다.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활용한 후 종이책과 연결하는 것은 독서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또 다른 계기를 만들어준다. 셋째, 디지털 리터러시와 저작권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디지털화로 가는 세상에서는 「저작권법」을 필수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 또한 동네 도서관에서 소외계층을 위한 맞춤형 독서를 지원하고 전자책, 오디오북 등 디지털환경에 최적화된 독서기반 조성 및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인지 신경학자 매리언 울프는 자신이 쓴 『다시, 책으로』에서 인쇄기반 읽기와 디지털기반 읽기 능력을 모두 갖춘 양손잡이 읽기 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종이책과 디지털 독서를 함께 이용하는 독서경험이 많을수록 폭넓고 풍부한 독서 성장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종이책에만 의존하지 말고 디지털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다양한 독서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도서관, 가정에서 종이책 읽기와 디지털 독서를 결합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디지털환경에서의 독서경험은 독자를 성장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빨리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는 새로운 일상에 최적화된 독서와 그에 적응하려는 성장하는 독자를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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