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을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다. 언론의 관심은 물론이고 예비창업자, 전통주전문점, 생산량까지 모든 부문에서 우상향 모습이다. 다양한 연령층의 전통주 소비가 증가했는데 그중에서도 MZ세대의 소비 증가가 눈에 띈다. 왜 MZ세대들은 전통주에 빠졌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MZ세대에게 술은 취할 때까지 마시는 음료가 아닌 즐기는 음료로 인식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대화를 이어주는,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매개체로 소비되고 있다. 그러기에 독한 술보다는 저도수, 모두가 찾는 대중적인 술보다는 비싸더라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술에 관심을 보인다. 여기에 발맞춰 전통주 업체들도 다양한 재료를 첨가해 선택의 폭을 넓힌 제품들을 내놓고, 타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젊은 세대가 즐기는 술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일례로 최근 MZ세대의 관심을 끄는 전통주가 나왔다. 가수 박재범이 자신의 이름을 건 증류식 소주 원소주를 출시한 것이다. 그 인기가 대단해 문 열자마자 달려가 구매한다는 오픈런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처럼 전통주에 대한 셀럽의 관심은 전통주를 알리는 데 큰 힘이 됐다. 그런데 일반인이 전통주로 생각하기 쉬운 막걸리나 약주는 전통주 범주에 들지 않고, 국산 농산물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 마시던 형태의 술이 아닌 진과 애플사이다 등의 주류가 전통주로 등록돼 있다. 게다가 원소주는 온라인 판매가 되는데 우리나라 업체가 만든 막걸리나 약주는 온라인 판매가 불가능하다. 이것이 국산 농산물을 사용한 지역특산주(전통주)와 일반 주류의 주종 간 논란이다. 현재 전통주가 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주세법」과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가 지정한 장인이 만들거나(무형문화재 술), 식품명인이 만들거나(식품명인 술), 지역농민이 그 지역 농산물로 만들어야 한다(지역특산주). 이 중 첫째와 둘째는 신규 지정이 없거나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라 일반 양조장들이 지정받기 어렵다. 결국 신규 양조장들은 지역특산주 조건으로 전통주 신청을 한다. 지역특산주의 전신은 농민주다. 농민주는 1993년부터 농업인 등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의 소비를 확대하기 위해 추진됐다. 주류제조면허에 필요한 시설요건을 완화해 손쉽게 주류산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영세한 농가들이 만든 술을 전통주에 포함해 통신판매와 자금 지원 혜택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제도라도 시간이 지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진과 애플사이다처럼 말이다. 이들은 농민 또는 농업회사법인이 지역농산물을 사용해 만든 지역특산주로 현행법상 전통주 범주 안에 속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소비자의 기호가 다양해지고 지역특산주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져 과거 제조방식의 술만으로는 소비자의 다양성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됐다. 결국 지역특산주 양조장들이 외국 제조법이나 지역의 외국 허브 재료들을 활용하는 것으로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주는 주류시장에서 약자에 속한다. 충분한 자본이 없기에 홍보를 하거나 다양한 마케팅을 시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셀럽들이 전통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소비자들도 와인이나 사케와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전통주 하나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전통주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난 11월 9일 경기도 오산 오색시장 끝자락에 위치한 오산양조를 찾았다. 붉은 벽돌로 쌓인 네모반듯한 양조장은 오색시장과 오산 주민광장을 이어주는 공간이자 수문장 같았다. 입구로 다가서자 그 앞에서 비질을 하고 있던 김유훈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곧바로 양조장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마침 막 쪄낸 고두밥을 삽으로 퍼 식히는 작업이 진행되던 참이었다. 이곳에는 18개의 발효조가 각자 다른 시간을 품고 있었다. 식힌 고두밥은 물과 누룩, 밑술과 버무려져 일정한 온도로 열흘간 발효되는데 이 과정을 두 번 거치면 이양주, 세 번 거치면 삼양주가 되고, 증류를 하면 증류주가 된다. 한 개 발효조는 한 달에 약 300병의 막걸리를 만들어낸다. 오산양조가 지난해 사용한 오산 세마쌀은 11톤, 올해는 상반기에만 10톤을 소비했다. 지역 내 쌀로 술을 빚어 지역을 알리겠다는 이들의 꿈이 익어가고 있었다. 전통주로 오산을 알리는 데 뜻 모아 오산양조는 2016년 8월 김유훈 대표와 오서윤 기술이사가 만나 의기투합해 그해 12월 마을기업 형태로 설립됐다. 지역에서 3대째 식자재 회사를 이어오던 김 대표가 새 사업을 구상하던 때 오 이사가 오산에 양조장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 사업계획서를 들고 시청에 찾아간 건 기막힌 운명 같다. 제가 오산에 양조장을 세우면 좋겠다고 사업계획서를 갖고 갔는데 시쳇말로 까였습니다. 오산에 양조장이 없으니 그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안 되는 건가 포기하려던 찰나 시청에서 김 대표님을 소개해 주시더라고요. 둘은 돈 버는 일보다 전통주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오산을 알리는 일을 하자는 데 뜻을 같이하고 1년 반 동안 오산양조만의 전통주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오 이사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전통주, 특히 막걸리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다. 싸고, 아저씨들이 마시고, 들이켠 뒤엔 자연스럽게 트림이 나오는 술. 그는 탄산이 없으면 이런 이미지를 바꿀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탄산 없는 술을 만들려고 오로지 레시피 개발에 매달렸어요. 냉장과 상온 상태에서 각각 압력계를 달고 압력이 올라가면 아, 발효가 더 됐구나 고치고, 다시 빚고 또 다시 빚고. 수많은 실험과 실패를 거쳐 나온 오산막걸리는 탄산이 없어 목 넘김이 부드럽고 흔들어도 터지지 않아 개봉할 때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 감미료도 들어 있지 않다. 오래 걸렸지만 만족할 만한 술이 나왔다 싶었는데 코로나19가 터졌다. 지역 내 납품하던 열 곳의 식당 중 두 곳만 납품을 받아줬다. 어려운 순간이었지만 기회이기도 했다. 지역특산주라서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니까요. 코로나로 오히려 온라인 판로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봐요. 까마귀가 막걸리를 너무 좋아해서 많이 마셨더니 하얘졌다는 하얀까마귀 스토리와 캐릭터, 인형도 만들고 패키지에도 더 신경 쓰게 됐구요. 하나로마트, 생협에도 판로를 연 상황이에요. 오산양조엔 오산막걸리 외에 하얀까마귀, 독산 30, 독산 53과 요리술이 있고 경기쌀막걸리와 13도 프리미엄 탁주인 산수화, 약주 율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 오산막걸리가 지역에 기반해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싶은 술이었다면 이젠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사수 만에 이뤄낸 찾아가는 양조장 2022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하는 찾아가는 양조장에 금풍양조(인천 강화), 산막와이너리(충북 영동), 맑은내일(경남 창원) 그리고 오산양조가 꼽혔다. 우리나라 전통주를 활성화하고자 2013년부터 시작된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에 선정되면 2년간 맞춤형 지원을 제공받을 수 있다. 오 이사는 2019년부터 네 번째 도전이었다며 상기된 표정이었다. 사수를 했다지만 저희 업력이 짧긴 해요. 그런데도 계속 도전할 수 있었던 건 오산양조 전통주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전통시장과 연계해 지역과 상생하고 지역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교육과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찾아가는 양조장에 맞았던 것 같아요. 오산양조는 농림부 지원으로 교육장을 단장하고 있었다. 전통주 교육과 체험을 강조하는 이유를 묻자 오 이사는 전통주 하면 흔히 마트에서 파는 막걸리로만 아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제가 교육으로 알았기 때문에 다른 분들도 이런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오산양조가 오산의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지역의 유무형 자원을 제품에 담고 지역공동체가 모이는 장이 되고 있다는 걸 알리는 보람도 크고요. 전통주시장에 제안하고 싶은 것을 묻자 오 이사는 젊은 분들이 전통주 업계에 뛰어들고 있는데 굉장히 좋은 일이에요. 시장이 커지면 가능성도 커지는 거니까요. 그런데 최근 지역특산주로 전통주 만드는 분들 사이에서 전통주를 벗어난 제품이 나오고 있어요. 그러면 소비자도 혼란스럽고 제조하는 입장에서도 불만이 생길 수 있잖아요. 전통주에 대한 법적 정의가 명확해지면 좋겠어요. 전통주는 좀 더 눈에 띄게 표시할 수 있게 해주고, 전통주 제조업체가 생산하더라도 전통주가 아니면 전통주로 홍보할 수 없게 하는 근거를 만들고요. 제조능력도 없는 사람이 이름만 걸고 전통주라고 사업하면 진심으로 전통주 만드는 사람은 속상하잖아요. 이런 건 보호를 해줘야 한다고 봐요. 오산양조의 근간은 좋은 술에 있다. 오 이사는 좋은 술을 안전하고 깨끗하게 빚는 데 가장 무게를 둔다. 담금 단계별로 날씨와 온도에도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즐기면서 일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의 오감은 늘 양조장에 가 있는 것만 같았다. 표초희 『나라경제』 기자
국내 주류시장의 80% 이상을 희석식 소주와 대기업 맥주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생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유형의 술자리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 셈. 이재욱 술담화 대표는 2018년 다채로운 술자리를 만들고 취향에 맞는 인생술을 찾아주는 소믈리에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국내 최초 전통주 정기구독이 가능한 플랫폼을 열었다. 전통주를 구독한다. 어떻게 이런 서비스를 생각했나? 창업할 땐 전통주에 특화된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사이트를 잘 만들어도 과연 사람들이 전통주를 구입하고 싶어 할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일단 전통주를 마셔보면 계속 찾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어떻게 마시게 할까 고민하다가 구독서비스를 생각했다. 이용층으로는 30대가 제일 많고 20대와 40대 비중은 비슷하다. 소비자와 양조장을 중개해 수익을 얻나. 술담화는 쇼핑몰과 구독서비스를 맡는 담화컴퍼니와 농업회사법인 술담화라는 두 개 법인으로 이뤄져 있는데, 농업회사를 만든 이유가 있다. 중개만 할 때는 우리 몰에서 판매된 제품의 중개수수료만 받을 수 있었다. 즉 소비자가 구매한 술의 양조장이 다르면 배송비도 따로따로 붙여야 했다. 구독자에게도 한 달에 양조장 한 곳 제품만 보낼 수 있었다. 일반 법인은 술을 소유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2020년 4월 법 개정으로 전통주 제조자가 다른 제조자의 술을 사입(仕入)할 수 있게 됐다. 여러 양조장 제품을 사입해 하나로 포장해서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곧바로 양조면허를 따 농업회사법인을 만들었다. 중개만 했다면 지금의 확장성과 차원이 달랐을 거다. 쇼핑몰에는 양조장이 얼마나 들어와 있나. 300~400개 정도 된다. 인생술을 찾아주는 플랫폼이 되겠다는 말은 누군가의 인생술이 될 만큼 양질의 술이라고 판단돼야 입점시킨다는 뜻이다. 여러 소믈리에가 모여 내부 심사와 검증을 거쳐 선발한다. 어떤 전략으로 전통주를 소개하고 있는지? 전통주를 경험하도록 하는 게 제일 어려운데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구독서비스다. 마셔보지 않은 술이라도 쇼핑몰에서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무슨 맛인지, 어떤 음식이나 어떤 술자리에 어울리는지 등을 판단할 수 있도록 큐레이션한다. 술은 소믈리에가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한 기호식품인데 마셔보고 살 수 없다. 소비자에게 이러한 유통구조가 다채로운 술자리 기회를 뺏고 있다는 걸 알리고 전통주는 가치 있는 소비라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창업 이후 제도적으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예전엔 양조장에서 소비자가 직접 출고가에 술을 샀다면, 온라인 판매가 가능해지면서 출고가가 아닌 소매가 개념이 생겼다. 그런데 어디에 어떻게 세금을 매길지 기준이 없었다. 또 술은 「주세법」상 쿠폰이나 경품 활용이 제한적이고 홈쇼핑이나 옥외광고 등에도 노출할 수 없어서 가뜩이나 어려운 제품 알리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다. 술담화의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 2026년 국내 전통주시장이 소매가 기준으로 1조5천억 원 규모가 될 것이라고 한다. 낙관적인 수치는 아닌 것 같다. 전통주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보고, 해외진출도 준비 중이다. 궁극적으로는 술자리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다룰 수 있겠다. 술뿐만 아니라 잔, 안주, 숙취해소제도 필요하지 않겠나. 표초희 『나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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