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개발자나 디자이너처럼 전문성과 창의성을 요구하는 일에선 긱 이코노미가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고 유연하게 일을 할 수 있어 매력적이지만, 음식배달, 대리운전처럼 단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생활패턴 등으로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2004년 개봉한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에서 故 김주혁이 열연한 주인공 홍두식의 직업은 특정 지을 수 없다. 그는 짜장면을 배달할 때도 있고, 편의점에서 물건을 계산하고 매장을 관리하기도 한다. 어느 때는 라이브 카페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되기도 하고 분식집에서 서빙을 하기도 한다. 팔방미인으로 영화에서나 가능할 것이라고 치부했던 일이 이제는 현실이 돼버렸다.
생활밀착 서비스부터 시작한 ‘긱’…웹분석, 법률 상담 등으로 영역 확대
4차 산업혁명은 직업세계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특히 플랫폼을 활용한 온디맨드(on-demand) 서비스시장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떠오른 ‘긱 이코노미(Gig Economy)’는 새로운 노동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긱(Gig)은 1920년대 미국재즈 공연장 주변에서 필요에 따라 연주자를 일회성 계약으로 섭외해 공연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공연과 임시직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 플랫폼 업체와 단기 계약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를 의미하는 독립형 일자리(국내에서는 현재 프리랜서와 비슷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짐)로 통용되고 있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 없이 개인이 수입을 올리는 긱 이코노미의 예로는 가사노동, 음식배달, 각종 심부름, 대리운전, 현장방문 포장 및 배송 등의 생활밀착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제는 프로그램 개발, 웹분석, 전문 컨설팅 서비스, 미스터리 쇼퍼, 법률 상담, 온라인 비서, 에너지 중개, 주택 인테리어, 매뉴얼 제작 등 기존 전문직업에 새롭게 생긴 업무들이 더해지면서 그 범위와 규모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미국에선 이미 적지 않은 인구가 긱 이코노미 종사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포브스(Forbes)』의 경우 2020년에는 직업의 43%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맥킨지(McKinsey)의 2016년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과 유럽의 경제활동인구의 약 20~30%(1억2,600만명)가 독립형 일자리로 특정 기업에 속하지 않은 전문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중 약 15% 정도는 직업을 찾기 위해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이 고용을 통해 일자리를 제공하던 전통적 방식이 붕괴되면서 직업(job)과 일(work)이 분리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게임회사에 고용된 풀타임 일자리는 그리 많지 않지만 게임을 개발하거나 보안을 담당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프리랜서 자리는 늘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제는 긱 이코노미의 양극화다. 프로그램 개발자나 디자이너처럼 전문성과 창의성을 요구하는 일에선 긱 이코노미가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고 유연하게 일을 할 수 있어 매력적이지만, 음식배달이나 대리운전처럼 단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생활패턴 등으로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현재 긱 이코노미는 특정기술이나 능력에 대한 수급 불균형을 완화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긍정적 효과와 비정규직과 임시직을 늘려 고용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부정적 결과를 놓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한 가지 직업 위해 훈련된 사람, 평균 13개의 다른 직업도 수행 가능
미래의 일자리와 관련한 보고서를 시리즈로 내놓고 있는 호주청년재단(FYA; The Foundation for Young Australians)이 2016년 발표한 보고서는 직업과 관련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새로운 일에 대한 마음가짐(The New Work Mindset)」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호주 상황에 근거해 7개의 직업군(Job Cluster)을 제시했다. 제너레이터(The Generators), 공예가(The Artisans), 돌보미(The Carers), 코디네이터(The Coordinators), 디자이너(The Designers), 정보제공자(The Informers), 기술자(The Technologists) 등이다.
여기서 말하는 직업군은 비슷한 역량을 필요로 하는 직업들을 묶은 것인데 한 가지 직업을 위해 훈련된 사람은 평균 13개의 다른 직업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돌보미(The Carers) 직업군에 포함된 직업들을 보자. 돌보미 직업군 중 하나인 자연치료사가 되기 위해 지식과 경험을 쌓는다면 비슷한 역량을 요구하는 다른 직업인 피트니스 강사, 사회복지사, 미용치료사, 준의료활동 종사자 등의 업무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평생직장과 안정된 직업’은 사라지고 평생 배우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갖게 되는 수많은 직업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직업’이 아닌 역량을 고민하고 ‘직업군’을 염두에 두고 미래를 꿈꿔야 하는 이유다.
보고서는 자신이 뛰어들고 싶은 직업군의 시장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현재 직업들의 성장성과 기계로 인한 자동화 가능성도 제시했다. 앞으로 기계에 의한 자동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직업군은 안타깝게도 정비공, 목공사같이 몸을 이용해 뭔가를 만들고 고치는 공예가(The Artisans, 77%)와 반복적인 관리와 서비스 업무를 하는 접수담당자 또는 회계장부를 작성하는 서기가 속한 코디네이터(The Coordinators, 71%)다. 반면 자동화 가능성이 가장 낮은 직업군은 돌보미(The Carers, 26%)와 전문적인 데이터 분석을 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는 경제학자, 정책분석가, 저널리스트 등이 포함된 정보제공자(The Informers, 36%)로 나타났다.
창의적 역량과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가 우리 눈앞에 다가왔다. 많은 학생들이 꿈을 갖고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고 준비한다면, 자신의 재능은 물론이고 여가시간마저 효율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긱 이코노미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했다. 안정적이라고 평안감사에 목맬 이유도, 평생 평안감사를 할 수도 없는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일에서 행복과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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