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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의 목적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2018년 06월호



대다수 나라에서 중앙은행의 최우선 임무는 물가안정이다. 하지만 시대와 장소에 따라 중앙은행의 주된 목적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금융안정이 가장 중요했던 시기도 있고 고용안정을 고려하는 경우도 있다. 중앙은행 임무의 변천과정을 간략히 살펴보고, 중앙은행의 목적 설정 방식에 따라 거시경제 운용 성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자.


물가안정 단일 목표부터 금융안정, 고용안정까지 다양한 목표 설정···거시경제 성과는 양 극단보다 중간이 더 나아
선진국에서 중앙은행제도가 자리를 잡아가던 19세기에는 물가안정이 핵심 과제는 아니었다. 당시 화폐제도는 금본위제였고 중앙은행권은 금태환권이었으므로 통화가치가 금의 가치에 연동돼 구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중앙은행제도가 발전했던 것은 10년에 한 번꼴로 발생하던 금융위기에 대처할 존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아무도 돈을 빌려주지 않는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해주고 또 위기가 끝나면 이를 회수하는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가 필요했는데,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이러한 금융 부문의 안전판 기능을 맡게 된 것이다.
물가안정이 중앙은행의 최우선 목적으로 부상한 것은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금을 기반으로 한 고정환율제도)가 붕괴하고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진 이후였다. 1990년대에는 뉴질랜드, 캐나다, 영국, 스웨덴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단일 목표제를 도입했다. 물가안정 단일 목표는 1980년대 중반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의 대완화(Great Moderation), 즉 안정적 인플레이션과 지속적 경제성장이라는 양호한 거시금융 환경을 배경으로 널리 확산돼 우리나라에도 도입된 바 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금융시스템의 안정성 확보가 중앙은행의 주요 목적으로 다시금 주목받게 된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어떻게 목적을 설정하고 있을까. 중앙은행법들을 분석해서 물가안정 단일 목적에 가까운 나라부터 먼 나라까지 몇 단계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물가안정 단일 목적 또는 여기에 정부정책 지원을 하위 목표로 추가한 나라로는 뉴질랜드, 인도, 유로존,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네시아, 터키 등이 있다. 둘째, 물가안정을 최우선 목적으로 하고 금융안정과 정부정책 지원 등을 하위 목표로 둔 나라는 한국, 스위스, 몽골 등이다. 셋째,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병렬적 목적으로 두거나 이 둘에 정부정책 지원 등 하위 목표를 추가한 나라들은 일본, 스웨덴, 덴마크, 멕시코, 말레이시아, 영국, 대만, 아이슬란드, 태국 등이다. 넷째,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을 중심으로 금융안정을 하위 목표로 설정한 나라는 미국과 호주를 꼽을 수 있다. 다섯째, 물가안정, 금융안정, 균형발전, 기타 여러 목표들을 병렬적으로 나열한 나라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이다.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 중심으로 목표 설정하면 정책효과 극대화할 수 있어
그러면 중앙은행들의 목적 설정 방식의 차이에 따라 거시경제 성과에도 차이가 있을까. 거시경제 성과는 경제성장률, 인플레이션율, 고통지수(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의 합) 등으로 측정할 수 있는데, 실제 데이터를 보면 대체로 ‘물가안정 단일 목표’나 ‘매우 다양한 목표’의 양 극단보다는 중간에 있는 중앙은행들의 성과가 더 나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014년 로젠그렌(Rosengren)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 영국, 스웨덴, 유럽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목표 성과를 비교하면서 2개의 임무를 가진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단일 임무에 가까운 다른 중앙은행들에 비해 성과가 나쁘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 하코메(J?come) IMF 통화자본시장국 부국장은 지난 2015년 라틴아메리카의 중앙은행들이 너무 많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다 과도한 신용팽창으로 거시경제의 불안정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이론적으로 봐도 목표가 너무 많을 경우에는 다양한 목표 사이의 상충 문제, 책임소재 불분명에 따른 책임성 저하 문제, 중앙은행 목적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 저하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목표가 물가안정 하나일 경우에는 다양한 거시경제 상황에 적시에 대처하지 못해 자산시장 거품으로 금융안정이 저해되거나 경기 대응의 효과성이 떨어지는 문제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중앙은행들의 성과 차이는 이들의 금리결정 행태 차이에 기인한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중앙은행들의 정책금리를 인플레이션율, 경제성장률, 실업률 등 거시변수들에 대해 회귀분석해 보면, 목적 설정 유형에 따른 차이는 발견하기 어렵다. 즉 목적 설정을 어떻게 하든 정책금리가 거시변수들에 반응하는 방식은 대체로 비슷하다.
그렇다면 중앙은행의 목적 설정 방식이 거시경제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중앙은행의 목적 설정은 시장의 기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공시효과’를 갖는다. 통화정책에서는 금리를 실제로 올리고 내리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경제주체들의 기대에 영향을 줘 행태 변화를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로 중앙은행들은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주요 정책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필요할 때마다 시장에 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해 정책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목적 설정 방식도 시장에 중앙은행의 선호를 명확히 알려주고, 또 중앙은행의 행태에 대한 적절한 기대를 형성하게 함으로써 통화정책의 효과에 영향을 주게 된다.
중앙은행의 목적을 중앙은행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들을 중심으로 잘 설정하면 시장의 신뢰를 얻어 정책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주요국 사례들을 종합해볼 때 성과가 좋은 중앙은행들은 자신의 고유 기능, 즉 독점적 발권력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임무들인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여기에 실물 경제정책 지원을 하위 목표로 추가하는 경우가 많다. 제도 정비 시 참고할 만한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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