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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끝날 뻔한 소풍 Part.1
천용성 싱어송라이터 2021년 08월호


OBC(Officer Basic Course, 신임장교 초등군사반)가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기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누워 있으면 허리가 들릴 정도였어요. 39도가 넘는 열이 났습니다. 생활관 2층 침대에 누워 종일 잤습니다. 모든 평가가 끝난 시기였기 때문에 수업에 빠져도 별 무리가 없었죠. 지도장교는 꾀병을 의심했습니다. “별것 아닌데 아픈 척하는 것 아니냐”, “나도 열나는데 일하고 있다” 같은 말을 하면서요. 동기들이 약을 갖다줬습니다. “내가 써봤는데 이 약이 좋더라.” 먹어도 별 차도는 없었습니다. 외진을 신청했습니다. 외진 또한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사단 의무대에 하루 입원을 하고 다음날 통원버스를 타야 했죠. 그렇게 열이 나고 삼 일쯤 됐을 때, 처음 병원에 갔습니다.
줄이 길었습니다. 사정을 아니까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두 시간쯤 뒤 첫 진료를 받았습니다. 혈액검사부터 해보자. 그 후로 모든 게 빠르고 좋았습니다. 군의관은 당장 입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간호장교는 저에 대한 모든 일을 신속하게 처리해 줬어요. 부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도장교님, 저 입원해야 한다고 합니다.” 부대에선 화를 냈습니다. 저는 자대 배치가 예정돼 있었고, ?월 ?일 부로 소속이 변경된다는 명령이 이미 나있는 상태였거든요. 그걸 바꾸는 게 싫었던 것이죠. 지금 입원하면 수료를 못 하고, 1년 뒤 재입교를 해야 한다고 거짓말하더군요. 듣다 못한 군의관이 전화를 뺏었습니다. “입원 안 하면 천 소위 죽어요.”
중환자실에 며칠 있었습니다.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어요. 정확한 병명도 없었습니다. 더 큰 병원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부대에서는 “지금이라도 복귀를 하면 수료를 할 수 있다”, “일단 복귀해서 수료하고, 일반 병원을 가는 게 좋지 않겠냐”라고 권유했습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도움으로 다행히, 후송됐습니다. 분당에서 약 한 달을 보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2주, 일반 병실에서 2주. 남아공 월드컵은 중환자실에서 봤습니다. 일반 병실로 옮기고는 나쁘지 않았어요.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문안 올 수 있는 거리였으니까. 다들 돈을 못 벌 때라, 오면 피자 같은 것을 사 먹여 보냈습니다. 몸무게는 72kg까지 빠졌습니다.
퇴원 후 포병학교로 복귀했습니다. 그곳에서 일주일 정도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보다 한 달 정도 늦게 자대로 갔습니다. 빈 학교는 평화로웠어요. 지도장교들과도 웃으며 지냈습니다. 너 때문에 시말서를 썼다며 너스레를 떨더군요. 그가 시말서 쓸 일이 없었다면 저는 죽었겠지요. 화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역시 아는 것 별로 없는, 고작해야 저보다 한두 해 먼저 들어온 사람이었을 뿐이니까. 저를 죽이려 했던 건 그 사람 너머에 있는 무엇이었습니다. 관료주의, 조직, 페이퍼워크, 무지, 미래에 대한 불안, 진급을 향한 욕심 같은 것들. 치료할 수 있는 병을 치료할 수 없게 만드는 것들.
결론은 다소 뻔합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변했습니다. 평소 성격에 맞춰 부적(negative)으로요. “하고 싶은 걸 하자”가 아닌 “하기 싫은 걸 하지는 말자”라는 식이죠. 뮤지션,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아티스트. 무어라 부르든 지금 제 삶은, 그때 시작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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