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서울에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알파슬란 바이락타르 튀르키예 에너지천연자원부 장관이 만나 원전·인프라·방산 등 미래전략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면담은 지난해 열린 한국·튀르키예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로, 특히 한국전력공사와 튀르키예 원자력공사의 원전 협력 MOU를 토대로 한 신규 원전 사업성 검토와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되면서 시놉(Sinop) 원전 프로젝트가 양국 에너지 협력의 중요한 이정표로 주목받고 있다.
에너지 공급 다변화 측면서 원전 주목하는 튀르키예…
한국, 풍부한 경험과 기술로 협력 파트너로 인정 받아
튀르키예는 증가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고 에너지 공급 기반을 더욱 안정적으로 다변화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을 국가 에너지 전략의 주요 요소 중 하나로 검토·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튀르키예의 총전력설비 용량은 123GW 수준이다. 전력 생산에 활용되는 에너지원 가운데 천연가스와 석유의 해외 의존도가 비교적 높은 편이며, 특히 천연가스는 러시아를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국제 에너지시장 여건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공급 안정성 제고와 재정적 부담 완화를 위한 다각적 노력이 병행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원자력 에너지는 에너지 안보 강화와 공급원 다변화 측면에서 중요한 정책 수단으로 논의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은 탄소배출 저감과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기여할 저탄소 전원으로 평가되며 중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수입 구조를 개선하는 데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과 재생에너지와의 연계 가능성 등 관련 산업 생태계 전반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이 튀르키예는 에너지 안보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함께 도모하는 과정에서 원자력을 하나의 전략적 선택지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으며, 한국은 축적된 기술력과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상호 호혜적인 협력 파트너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시놉 원전 프로젝트에서 한국은 튀르키예의 유망한 협력 파트너로서 충분한 역량을 갖췄다고 인정받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는 APR-1400 모델을 기반으로 국내외에서 다수의 원전을 성공적으로 건설·운영하며 풍부한 경험을 축적해 왔다. 특히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은 APR-1400이 큰 차질없이 준공된 대표 사례로, 한국의 기술력과 프로젝트 수행 역량을 입증했다. APR-1400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 인증(Design Certification)을 획득한 최초의 한국형 원전이며, 미국시장 진출의 기반을 마련한 기술이기도 하다. 현재 UAE에서 4기가 운영 중이며 기술의 신뢰성과 표준화 수준 역시 세계적으로 검증된 상태다.
한국의 시놉 원전 제안은 경제적 측면에서도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우선, 우리의 제안가는 과거 사례보다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타 국가 컨소시엄이 2013년 시놉 원전을 220억 달러 규모로 수주했다가 2018년 비용 상승 등을 이유로 사업을 철회했는데, 당시 공식 발표된 예상 건설비는 440~460억 달러 수준이었다. 또한 튀르키예 최초의 원전인 아쿠유(Akkuyu) 원전이 러시아 단독 지분형(BOO; Build-Own-Operate, 건설–소유–운영 일괄 수행) 방식으로 추진된 것과 달리 한국은 튀르키예가 지분을 보유하고 프로젝트 거버넌스에 직접 참여하는 파트너십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튀르키예 기업이나 제3국 전략 파트너와의 합작 형태 등 다양한 사업 구조도 제안 가능하다. 아울러 한국은 정부 금융기관이 주도하는 구조화된 금융 모델을 통해 예측 가능한 장기 자금조달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강점도 지닌다.
기술 이전 및 현지화 측면에서도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튀르키예 기술자들이 설계·시공·운영 전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현지 공급업체와 건설업체의 참여 확대, 장기적인 인력 양성 프로그램 등을 포함한 실질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만하다. 이러한 접근은 UAE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입증된 모델이며, 튀르키예의 여건에 맞춰 조정도 가능하다.
또한 다른 국가들의 원전 건설 사례에서 심각한 공기 지연, 예산 초과, 부품 현지화에 대한 수주 기업의 소극적인 태도 등이 문제로 지적된 바 있다. 튀르키예는 원전 프로젝트 추진 시 이와 같은 요소들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종합적으로 한국은 기술력, 경제성, 사업 추진의 안정성, 그리고 협력 모델의 유연성 측면에서 균형 잡힌 제안을 할 수 있는 국가다.
현지 공기업 참여시켜 공동 거버넌스 체계 구축하고
일정 수준의 최소운영수입 보장받도록 협상력 높여야
시놉 원전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한국은 단순한 가격 경쟁을 넘어서는 다차원적 전략을 검토해야 한다. 우선, 튀르키예 에너지 공기업과의 지분 공동 참여를 통해 공동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고, 필요에 따라 UAE나 튀르키예 대기업 등 제3의 전략적 파트너를 포함시켜 사업의 신뢰성과 균형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현지화 측면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건설 현지화 비율을 목표로 설정하고, 비핵심 부품의 공동 생산, 현지 인력 교육, 연구센터 설립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튀르키예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튀르키예 에너지천연자원부 장관은 지난 2월 방한 당시 기술 전문가를 함께 길러내기 위한 한국·튀르키예 공동 기술 대학교 설립을 제안하기도 했다.
전력구매계약(PPA)도 중요한 협상 요소다. 전력 구매자인 튀르키예가 PPA를 통해 일정 수준의 최소운영수입보장(MRG)을 제공하는 것이 재무 모델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정한 고정 전력 구매 단가를 제시하고, 15~20년 후 튀르키예가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옵션을 부여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할 수 있다.
자금조달 측면에서는 한국 정부 금융기관과 다자간 협력 금융(유럽부흥개발은행,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등), 그리고 다자간 보증 구조를 활용하는 방안이 적절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또한 튀르키예 정부가 전면 보증을 제공하는 방식이나 구체적인 위험 요소에 맞춘 맞춤형 보증 방식을 선택하는 등 사업에 최적화된 보증 방안을 마련해 나가는 방안도 있다.
규제 및 정치적 민감성에 대한 대응도 중요하다. 튀르키예 원자력규제위원회(NDK)와의 투명한 소통, 튀르키예의 탄소중립 전략과 연계한 사업 추진, 그리고 SMR 관련 협력 준비를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국가 차원에서 안정적인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정부 간 협정(IGA) 체결에 대한 검토도 병행될 수 있다.
시놉 프로젝트는 단순한 원전 건설 사업을 넘어 양국 간 장기적이고 호혜적인 에너지 협력의 토대를 다지는 계기로 평가된다. SMR 분야에서의 협력 가능성, 튀르키예의 재생에너지정책과 연계한 하이브리드 에너지 시스템 구축, 더 나아가 제3국 공동 진출에 이르기까지 협력의 지평은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한국은 단순한 건설 수행 주체가 아닌 튀르키예의 에너지전환정책과 중장기 에너지 전략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동반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간 축적해 온 기술 역량과 사업 수행 경험,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금융 구조에 대한 면밀한 검토, 기술 및 운영 노하우의 성실한 공유는 상호 신뢰를 한층 공고히 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또한 과거의 경험을 교훈 삼아 현지 전문가와 관계 기관과의 소통·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상호 존중과 신뢰에 기초한 체계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노력 역시 병행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될 때 시놉 원전 사업 프로젝트는 양국 에너지 협력 전반의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끄는 모범적 사례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