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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선에 관한 단상
김희삼(KDI 연구위원) 2007년 12월호
연말이 되면 거리 곳곳에 짤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빨간 자선냄비가 등장한다.
자선의 동기는 무엇일까?
경제학자들은 자선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이타적 선호’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먹고 살기 어렵던 시절, 어린 자식이 맛나게 밥그릇을 비우는 것을 바라보던 부모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것처럼, 남이 누리는 것에서 자신이 누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만족감을 얻는 경우다.

자선행위 자체가 주는 뿌듯하고 긍정적인 느낌 때문에 자선을 행한다는 이론도 있다.
“Feel good about yourself - Give blood!” 미국 적십자사의 헌혈 광고 문구다.
이런 느낌을 ‘따뜻한 빛’에 비유하여 ‘warm glow’라고 부른다.
물론 이것은 순수하게 독자적인 느낌이 아니라 주변의 칭송을 통해 얻는 명예감이나 타인의 비난을 모면한 안도감 등과 같이 사회적인 맥락에서 형성되는 것일 수 있다.

심리학자들의 최근 실험에서는 자선행위가 다른 사람, 특히 이성에게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는 데서 촉발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선행위는 가정에서 배우자의 이타심을 원하는 이성에게 자신의 자질을 암시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인데, 여성에게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그러나 성별을 막론하고 혼자 있을 때보다는 잘 보이고 싶은 이성과 함께 있을 때 더 적극적으로 자선을 행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선이론은 자선행위를 효과적으로 늘리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어느 작은 교회에서 헌금봉투가 실수로 비치되지 않았던 날 헌금총액이 평소보다 많았는데, 사람들은 타인의 눈에 노출될 헌금의 액수를 의식했던 것이다.
무인 모금함보다 유인 모금함이, 자선을 기다리는 고정식 모금함보다 사람들을 찾아가는 이동식 모금함의 실적이 높은 것도 자선행위가 주변의 시선과 관련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이성의 눈을 의식한 자선행위가 많다면 자선 모금함을 데이트나 프러포즈 장소로 인기 있는 곳에 설치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실제로 자선단체들은 모금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한다.
어떤 미국 자선단체는 반송봉투와 함께 동전 몇 개를 넣어 보내며 기부금을 못 내면 동전만은 돌려달라고 부탁하는데, 실상 동전만 돌려보내기는 야박하게 느껴지므로 기부금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방송사들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릴 만한 영상이나 사연을 소개한 후에 ARS 전화 한 통으로 성금을 모으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자선활동이 저조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왔다.
이러한 배경에는 사회복지가 미비한 상황에서 행정력으로 자선을 동원하다보니 정부 주도의 기부금 모집이 준조세적인 성격을 띠었던 점이나 각종 비영리단체의 모금과 집행이 투명하지 않았던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따라서 각박한 인심을 탓하기 전에 자선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정부는 기부에 대한 세액공제 비율을 높이고 적용범위를 확대하며, 비영리단체는 정보공개를 통해 기부금 사용과 운영의 투명성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평생 동안 어렵게 모은 재산을 학교에 헌납하는 식의 ‘청산형’ 기부보다 목적의식적이고 지속적인 소액기부가 활성화되고, 연말에 집중되는 ‘체험형’ 자선행위가 보다 일상적인 활동으로 발전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복지정책으로 사회안전망의 그물을 짜더라도, 그 위에 따뜻한 담요를 깔아 그 사회에 온기를 더하는 것은 민간의 자선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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