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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명랑 퓨전 사극? 영상의 상상력이 진화한다
김헌식(문화평론가) 2008년 03월호
드라마 <홍길동>은 흔히 기대하는 홍길동 이미지를 철저하게 배반한다.
다양한 문화기호들이 퓨전 되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볼거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명랑 만화적 상상력이 진중한 소설적 텍스트에 결합하고 있다.
또한 문화기호들의 융합공간이 된다.
동서양의 다양한 패션과 장신구, 소품들이 조선의 공간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오공의 소품이나 무협지에서나 등장하는 여성 고수 캐릭터에 골프와 자동차, 그리고 색안경이 은유적으로 등장하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진지한 텍스트적 민중혁명론을 내세웠던 <장길산>이나 <신돈>이 주목받지 못했던 것과 비교된다.

새로운 영상적 상상력이 장르와 시간을 가로지르며 새로운 세대에게 주목 받고 있다.
<쾌걸춘향>은 평균 시청률 23.8%를 기록하며, 10대 여성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눈에 띄는 톱스타도 없고 해외 로케도 없었던 이 작품이 성공했던 것은 고전 춘향전의 인물과 설정을 현대극으로 잘 변화시킨 상상력 덕택이었다.

계속 미드*가 유행이다.
그중 메디컬 요소는 한국 드라마에도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미드를 이길 수 있을까.
그래서 <외과의사 봉달희>는 정(情)과 휴머니즘을 다양한 인간군상과 함께 멜로로 변주해냈다.
<하얀거탑>은 조직 권력을 둘러싼 현대인들의 처절한 쟁투기로 차별화시켰으며, <뉴하트>는 이 두 드라마의 장점들을 취해 또 다른 상상력을 발휘해냈다.

최근 경성 바람이 영상을 주름잡고 있다.
경성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일제 시기라는 점이다.
일제 시기 하면 일제의 침략으로 암울한 분위기 아니면 거꾸로 독립군의 투쟁을 떠올린다.
민족적인, 진지한 이미지를 넣지 않으면 연출자는 매국노가 되기 일쑤다.
그러나 영화 <원스어폰어타임>은 투쟁과 저항이 아니라 보물찾기를 다룬다.
1940년대를 배경으로 잃어버린 석굴암의 보석을 찾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영화는 주성치와 성룡 영화에 인디아나 존스를 버무린 상상력을 보여준다.
일제 통치기간을 인간의 욕망을 읽어내고 그것을 유쾌 액션으로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 <경성스캔들>이 독립 투쟁의 관점에서 서사 전개를 하는 것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원스어폰어타임>은 할리우드와 홍콩 영화가 이국적인 문화기호로 한 편의 영화에 버무려졌고 그것은 문자적 기호가 아니라 영상 기호들의 융합에 다름 아니다.

EBS <지식채널e>는 사실적 다큐멘터리를 사실적 상상력으로 뛰어넘고 있다.
단 5분만에 인간과 세계 그리고 역사와 문화를 함축한다.
어떤 방대한 다큐보다 대중적 영향력은 폭발적이었다.
인터넷 영상물은 대개 5분 안쪽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지식채널e> 현상은 영상의 상상력이 지닌 호흡이 이제 5분 안에 판가름 난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공길에 대한 기록은 실록의 기사 몇 줄에 불과하다.
임금은 임금답게 처신해야 한다고 연산에게 간언한 배우 공길은 불경하다며 귀향을 보냈다는 내용이 전부다.
영화 <왕의 남자>가 흥행하면서 출판사는 대박을 맞았다.
전에는 연극이 잘나가도 쳐다보지 않던 연극 대본이 날개돋힌 듯 팔렸다.
<왕의 남자>를 본 관객은 1,230만명, 역대 관객 랭킹 2위였다.
생산유발액 1,350억원, 연간 1,800명의 일자리, NF소나타 2,951대를 생산한 것과 같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40억원의 제작비가 영화가 수십 배에 달하는 경제효과를 만들어낸 핵심에는 상상력이 있었다.
그것도 문자적 상상력이 아니라 영상적 상상력이었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고안한 이론의 밑바탕에는 상상력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물리학자가 이런 말을 하니 다른 창작 영역에서 상상력의 중요성이야 말할 것이 없겠다.
버나드 쇼는 상상력이야말로 창조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버나드 쇼가 말한 상상력은 소설적 상상력이 아닐까.
이제 문화콘텐츠의 상상력은 영상적 상상력에 종착된다.
영화 <쥬라기 공원> 효과는 상상력의 효과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Rolf Jensen)은 이렇게 말했다.
“디즈니가 다양한 ‘이야기’들을 수천 가지 상품으로 만들고 이를 팔아 엄청난 이윤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서 이야기는 상상력으로 재탄생한 영상 콘텐츠들이다.
2006년 디즈니의 매출은 총 353억 달러였는데 이는 세계 1위 반도체 기업 인텔(315억 달러)을 추월한 액수였다.
최근 4년간(2004-2007) 마이크로소프트의 순이익 증가율은 18%였지만, 월트 디즈니 순익은 41.4%였다.
월트 디즈니의 성공 비결은 영상적인 문법에 철저하게 충실하는 것이다.

이제 소설적 상상력을 영상적 상상력으로 옮기는 작업이 매우 중요해졌다.
예컨대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1954)은 세계적으로 1억부 이상 팔렸고,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29억달러를 벌었다.
이 사례를 보면 문자로 된 원작 즉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상작품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 <나니아연대기>, <황금나침반>, <베오울프> 등이 유명한 원작을 바탕으로 했지만 재미를 보진 못했다.
얼마 전 개봉했던 <나는 전설이다>도 원작에 한참 못 미친다는 혹평을 받았다.

요즘 ‘원소스 멀티유스’에 따라서 많은 소설, 만화들이 영상화 되지만 성공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예컨대, 인터넷 인기 작가 강풀 만화를 영화로 만들어도 결과는 썩 좋지는 않다.
영상적 상상력은 다르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책은 상상력의 기본이라고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세대에게 질타를 가하기 일쑤다.
그런데 앞으로 신세대는 문자가 아니라 영상으로 상상한다.
단순히 이야기의 시대가 아니라 영상 이야기의 시대다.
단순히 스토리텔링의 시대가 아니라 영상적 스토리텔링의 시대다.
영상으로 꿈꾸고 상상하는 사람이 중심에 있는 것이다.



* 미드 : 미국 드라마의 줄임말로, 케이블 TV 채널을 통해 들어온 미국 드라마들이 대한민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사람들이 줄여서 만든 신조어. 대표적인 미드로는 X파일, 프렌즈, 프리즌 브레이크, CSI과학수사대, 등이 있다.




김헌식은 문화와 사회 그리고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이를 움직이는 대중 문화 심리를 주목하고 있다. 저서로 <대중문화 심리로 본 한국사회>, <대중문화 심리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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