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마음대로 실현되는 공간을 생각하면 게임이 떠오른다.
용을 타고 하늘을 날기도 하고 세상을 뒤흔들 마법을 부릴 수도 있다.
머나먼 미래, 별들 사이를 날아다니거나 아득한 과거의 어딘가로 돌아갈 수도 있다.
보다 현실적인 것도 가능하다.
이미 사라져 마음을 아프게 하는 대상과 다시 만날 수도 있고 이전에 했던 많은 잘못들을 이번만큼은 범하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본다고 자랑하던 영화의 한 장면마저도 게임에서는 어렵지 않은 경험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감탄하곤 한다.
놀랍지 않은가, 상상이 실현되는 이 놀라운 게임 세계라는 것이.
그리고 묻게 된다.
모든 상상이 실현되는 세계를 만든다니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상상을 하는 사람, 어떤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인가?
특히 어느 나라 누구보다 딱딱하고 각박한 삶에 시달리고,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정신없을 정도의 스피드에 사로잡힌 한국 사회에서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까지 여겨진다.
그래서 이제 이 상상력이라는 도깨비 방망이에 대한 탐색 작전이 시작된다.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겠지만 이런 작전의 결과는 ‘못 찾겠다’이다.
게임을 만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꼼꼼하게 재보고, 단지 기획서로만 있는 것을 치밀하게 연상해 보고, 수많은 버그와 게이머의 예상외 행동에 맞서 빠르게 수정할 수 있는 성실함이 더 우선인 사람들이다.
이들이 상상을 할 것이라고 엿본 순간, 그들은 지루한 반복 작업을 참아내는 성실함을 보여줄 뿐이다.
‘암묵지’니 창조 자산이니 아무리 이름을 붙여봐도 안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묘한 역설 아닌가?
꿈꾸는 모든 상상이 실현되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은 정작 상상력 대신 성실함이 요구된다니 말이다.
그렇다면 게임 제작자들은 게이머들이 꿈꾸는 것을 어떻게 알아내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어딘가 상상이라는 놈이 위치할 장소가 있을 텐데 말이다.
우선 시장조사 같은 무미건조한 대답이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이 꿈꾸는 것들을 인터뷰하고 목록으로 만들고 연령대별, 성별로 철저하게 분석해 가장 큰 시장을 목표로 게임을 만든다.
분석되고 정리된 상상에 대해선 이미 존재하는 소설·영화·TV·만화 등의 이미지를 잘 조합하고 정리해서 비슷하게 만든다.
이런 과정으로 게임이 만들어지고 우리의 꿈이 현실로 실현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임들은 크게 성공하지 못한다.
말로야 될 것 같지만 게이머들은 현명하게 짜깁기로 만든 가짜를 구분할 줄 안다.
우리가 흔히 게임이라 부르는 컴퓨터 게임이 디지털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놀이의 형태라는 건 쉽게 이해된다.
보드 게임, 펜슬 앤 페이퍼 롤 플레잉 게임, 워 게임, 파티 게임.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놀이 형태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컴퓨터로 옮겨져 우리를 사로잡는다.
디지털이라는 형태에서 새로운 특징과 제약들이 생겨나긴 하지만 여전히 놀이인 이상 놀이의 일반적 특성은 게임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놀이가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놀이가 현실 세계에도 상상의 세계에도 모두 발을 걸친다는 점이다.
아동 놀이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위니캇은 스누피의 캐릭터인 ‘라이너스’가 들고 다니던 담요를 예로 들어 이를 설명한다.
라이너스는 담요를 안고 다니지만 그에겐 담요인 동시에 곁에 없는 엄마라는 것이다.
그래서 담요에 얼굴을 비비는 것이 라이너스에겐 엄마 품에 비비는 것과 마찬가지다.
외부의 대상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자신만의 무언가로 만드는 능력이 놀이인 셈이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아주 어린 시절 보자기를 목에 걸면 슈퍼맨, 손수건을 머리에 쓰면 바다를 주름 잡는 해적이 되던 기억 말이다.
어렸던 우리는 슈퍼맨을 연기한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은 슈퍼맨 그 자신이었다.
위니캇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힘이 문화 창조의 원천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세계에 있는 외적 법칙을 연구하고 따르는 것이 과학이라면 이 외적 법칙을 자기 식으로 상상하고 새로운 것으로 바라보는 힘이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임을 만드는 사람은 사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 잘 노는 사람이다.
잘 놀고 놀이가 무엇인지 풍부하게 경험한 사람이다.
놀이에는 우리들이 지니는 보편적인 상상의 힘이 들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른이 된다는 이유로,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놀이로부터 떠나갈 때, 그래서 어떤 상상력도 필요치 않는 어른들만의 놀이로 돌아설 때,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여전히 어린 시절의 놀이를 즐거워하며 기꺼이 새로운 놀이를 배우고 즐기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서 이들은 이 놀이를 아주 꼼꼼하게 게임으로 바꾸게 된다.
게임에 감탄하고 눈이 휘둥그레져 개발자의 상상력을 찾아봐야 보이지 않는 이유다.
어떤 놀라운 힘이 아니라, 놀이 속에서 우리 몸에 유지되고 자연스럽게 머무르는 것이 게임을 만드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놀이가 보다 풍부한 게임을 만들고, 나아가 보다 풍부한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상상은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머물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 성장할 뿐이다.
비법도 별다른 재능도 없다.
놀 줄 아는 것만으로 게임이 가진 놀라운 상상은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 상상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박상우는 게임평론가로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경임교수 이기도 하다. 빵집 테이블에서 시작한 게임 라이프. 그 출발은 미약했지만, 게임의 사회문화적 영향력을 밝히겠다는 창대한 가치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