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우리나라는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위기관리체제를 구성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가 내우외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외경제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내부 경제사정도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다.
미국·유럽·중국 시장 모두 비관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유럽경제 상황이 전반적으로 불안한 국면에 빠져 있고, 나 홀로 강세를 보였던 미국경제도 올해 중반부터 회복속도가 떨어지고 있다. 중국경제는 6%대 중반으로 성장률이 추락한 가운데 수출부진 등으로 불안한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 수출비중의 50%를 넘는 미국과 유럽, 중국 시장이 모두 비관적인 신호를 보낸 셈이다.
실제 우리나라 교역지표를 보면 걱정스럽기만 하다. 수출은 19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 중이다. 올해 7월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2% 감소해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이 줄어 월간 무역흑자는 기록했으나 자칫 방심하면 무역적자 기조로 돌아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가 무역적자의 수렁에 빠지게 되면 경제펀더멘털이 급격히 나빠질 우려가 있다.
최근 국제무역 흐름의 변화는 우리 수출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자유무역의 전성기는 쇠퇴하고 나라마다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7월 중국에서 생산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에 각각 111%와 49%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냉연강판에 대해 미국 상무부로부터 6~34%의 반덤핑 관세폭탄을 맞았다. 미국 화학업계는 한국산 합성고무에 대해 22% 수준의 덤핑 관세를 부과해달라고 상무부에 요청했다. 중국도 포스코 등 한국산 전기강판에 37%의 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호무역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사실상 무역전쟁시대의 막이 오른 것이다.
수출에 큰 영향을 주는 환율 부문에서도 우리에겐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4월 발간한 「환율보고서」에서 우리나라를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미국에 대해 상당한 무역흑자를 보고 있는 우리나라가 환율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눈여겨보겠다는 게 미국의 의도다. 앞으로 우리 정부는 수출진흥을 위한 환율 개입에 나설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섣불리 개입했다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더 큰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보호무역으로 수출시장은 점 좁아지고, 사방에서 무역전쟁의 포성까지 울리고 있는데 우리는 총칼마저 빼앗겨 아무런 방어책을 구사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 빠진 것이다.
내수위축에 대량실업 우려까지
내부에서 경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점도 하반기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다. 경기둔화로 인해 내수가 가파르게 위축된 가운데 산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대량실업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실업 문제는 다시 내수를 위축시켜 경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불러올 것으로 우려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우리나라의 제조업 취업자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6만5천명 줄었다. 제조업 취업자 수가 감소한 것은 2012년 6월 이후 49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제조업에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에 밀리고 중국에 쫓기는 ‘넛크래커 현상’이 우리 경제지표 곳곳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나라 밖 경쟁에서 패한 조선·해운업계는 가혹한 구조조정에 내몰리고 있다. 이 때문에 조선·해운업계의 거점인 경남·울산지역의 실업률은 큰 폭으로 상승했다. 경남과 울산의 7월 실업률은 각각 17년,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경고신호가 계속 나오고 있는 가계부채 증가와 저출산·고령화 등 구조적 문제도 쌓여 있다. 외부 변수는 불가항력적인 부분이라고 쳐도 내부 변수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대로라면 ‘앞으론 좋아지겠지, 내년엔 나아지겠지.’라는 경제주체들의 심리까지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옆 나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서 확인했듯이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는 나라는 경제활력이 떨어져 회복의 기반도 약해진다. 일본과 같은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로선 해법이 절실한 부분이다.
이런 대내외 환경을 감안할 때 정부는 강력한 경제컨트롤타워를 기반으로 한 위기관리체제를 만들어 운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 주변을 둘러싼 경제여건을 1990년대 중후반과 비교하는 경제전문가들이 많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있었던 점이 같고, 신흥국들의 경제불안이 있었던 점이 비슷하다. 내부적으로는 기업 구조조정 이슈가 있었다. 그때가 한보철강·기아차라면 지금은 조선·해운이다. 국내 정치는 대선국면을 맞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외환경의 도전을 극복하려면 일사불란한 대응이 중요하다. 또한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경제컨트롤타워가 비틀거리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한다.
지금은 공격보다 수비가 중요한 때고 외형보다 내실을 갖춰야 할 때다. 무역적자를 보지 않도록 지속적 관리가 필요하고, 외환보유액도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얼마 전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상향조정했다. 최고등급인 ‘AAA’보다 불과 두 계단 낮은 것이다. 앞으로 외국인 자금이 물밀듯이 들어올 것이 뻔하다. 해외에서 달러 차입금을 들여오는 경제주체들도 많을 것이다. 우리가 보유한 달러 중 나라 밖에서 싼값에 빌려온 것은 얼마나 되는지 수시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정부는 단기적인 경제회복 대책을 만들고 동시에 장기적 체질개선도 진행해야 한다. 수년간 정체상태에 빠진 우리 경제의 활력을 어떻게 되찾을지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산업 구조조정 이후 우리 경제의 활력을 불어넣을 먹거리는 무엇인지 찾고, 경쟁력 있는 신성장산업을 육성해야 할 것이다. 과거 우리가 했던 제조업을 중국이 물려받아 우리를 제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한 중국도 구조조정을 통해 새롭게 산업을 재편하려 몸부림치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더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중국보다 더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늘 변화의 길목에서 한발 빠르게 움직여 위기에 대처해 왔다. 그 바탕에는 어려울 때 똘똘 뭉치는 한국인의 DNA가 있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이번 변화기에도 민관이 모두 하나가 돼 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