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20개국(G20) 중 한국보다 등급이 높은 국가는 독일, 캐나다, 호주(이상 AAA), 미국(AA+) 등 4개국
- 국제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37% 내외로 그 어느 국가보다 재정이 건전해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미국의 스탠더드 앤 푸어스(S&P)가 한국의 신용등급을‘AA-’에서 ‘AA’로 한 단계 상향조정했다. 중국보다 한 단계, 일본보다 무려 두 단계나 높다. 주요 20개국(G20) 중 우리보다 앞서는 국가는 최고등급(AAA)인 독일, 캐나다, 호주와 AA+인 미국 등 4개국뿐이다. 다른 평가사들의 한국 신용등급도 높은 수준이다. 금융위기 이후 국제증권관리위원회(IOSCO)가 중심이 돼 신용평가와 관련된 다양한 규제방안이 마련됐다. 새로운 기준에 따른 각국에 신용등급 평가실적을 보면 하향조정 건수가 상향조정 건수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런 경향을 감안하면 한국의 신용등급이 꾸준히 상향조정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 국민은 ‘왜 올랐을까’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많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경기로 본다면 쉽게 수긍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은 2%대 중반으로 예상되고 있다. 잠재성장률이 3% 초반인 점을 감안하면 GDP(국내총생산) 갭상으로 ‘디플레 갭’이 발생해 체감경기가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안 좋다는 얘기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세계적으로 실적이 있는 신용평가사는 150개가 넘는다. 이 중 3대 신용평가사가 최대 신용평가시장인 미국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95%에 달할 만큼 압도적이다. 국제신용평가시장의 과점도를 나타내는 허핀달-허쉬만 지수(HHI)를 보면 독과점시장 여부의 판단기준인 1,800을 넘는다. 3대 평가사 중에서는 무디스가 가장 영향력이 높고 S&P, 피치 순이다. 미국의 양대 평가사 간 격차는 금융위기 이후 더 벌어졌다. 투자안내판 역할을 해야 할 S&P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사태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후 S&P는 떨어진 시장점유율을 만회하기 위해 각국의 신용등급을 ‘공격적’으로 조정해오고 있으나 오히려 잦은 조정이 악수가 될 때가 많았다.
대규모 자금이탈과 환투기에 시달릴 가능성 희박
기관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3대 평가사는 특정국의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거시경제위험, 산업위험, 재무(혹은 유동성)위험, 지정학적 위험으로 나눠 평가하는데 종전 평가방식과 크게 다른 점은 지정학적 위험비중이 대폭 낮아진 점이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과의 갈등에도 외국인 움직임이 크게 동요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거시경제와 산업위험도 상대평가 비중이 높아진 점이 눈에 띈다. 가장 종합적인 평가지표인 경제성장률을 본다면 올해 한국경제는 2%대 중반 달성도 어렵다는 것이 3대 평가사의 시각이다. 하지만 다른 국가의 성장률은 더 떨어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투자기초여건에 있어서 한국이 유리한 셈이다. 유동성위험은 크게 외화유동성과 재정건전도로 평가한다. 특히 한국처럼 외환위기를 한 번 겪은 국가는 외화유동성을 중시한다. 특정국의 적정 외환보유액을 추정하는 방법은 세 가지로 과거 경험으로부터 외환수요를 예상지표로 삼아 산출하는 ‘지표접근법’, 외환보유액 수요함수를 도출해 추정하는 ‘최적화 접근법’, 외환보유액 수요함수로부터 행태방정식을 추정해 산출하는 ‘행태방정식 접근법’으로 구분된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지표접근법이다. 이 방식은 외환보유액 보유동기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 기준’과 ‘그린스펀·기도티 기준’, ‘위진홀스·갭티윤 기준’ 등으로 세분된다. 추정하는 방법에 따라 동일한 국가라 하더라도 적정 외환보유액 규모가 크게 차이가 나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세 기준별로 한국경제가 처해 있는 여건과 특수성을 감안해 3대 평가사가 보는 적정 외환보유액은 ‘그린스펀·기도티 기준’과 ‘위진홀스·캡티윤 기준’의 중간선인 3,600억달러 내외로 추정한다. 현재 외환보유액은 직접 보유한 ‘제1선’과 간접적으로 갖고 있는 ‘제2선’ 자금을 합치면 4,800억달러에 달한다. 3대 평가사는 한국이 대규모 자금이탈과 환투기에 시달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높은 신용등급에 원화강세 우려, 과다한 경상수지흑자 줄여야
경상수지흑자도 과다하다. 지난해 경상수지흑자는 1,056억달러에 달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도 1,1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이 19개월 연속 감소 속에 수입이 더 줄어들어 나타나는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인데 국제신용평가사는 경상수지흑자의 질적 평가는 하지 않는다.
재정건전도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로 평가한다. ‘양출제입 원칙(쓸 것이 우선)’이 적용되는 재정수지는 ‘양입제출 원칙(들어올 것이 우선)’이 적용되는 민간처럼 흑자일 필요는 없다. 재정수지가 흑자라면 세금을 많이 걷거나 국민에게 되돌려줘야 할 재정지출을 제대로 안 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재정적자에 따른 국가채무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관리 가능하면 신용등급 평가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선진국은 100%, 한국이 속한 신흥국은 70% 이내면 안전하다. 국제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37% 내외로 그 어느 국가보다 재정이 건전한 국가로 분류된다.
신용등급이 올라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 여건에 맞지 않게 높을 때에는 부작용도 있다. 높은 신용등급으로 외국자금이 많이 들어와 원화가치 강세가 지속될 경우 우리 경제를 더 어렵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다한 경상수지흑자부터 줄여야 한다. IMF가 중국에 권고한 ‘영구적 시장개입(PSI)’을 생각해야 할 때다. PSI란 외화가 들어오면 해외로 그대로 퍼내는 정책을 말한다.
경기대책으로 재정정책을 보다 적극 활용해야 한다. 재정지출을 국가채무 비율 45% 수준이 될 정도로 늘려도 큰 문제는 없다. ‘통화정책 전달경로’상 금리와 총수요 간 민감도에서 이미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는 여건에서는 외화든 재정이든 과다유동성에 따른 ‘기형적인 신용등급 상향조정’ 현상만 심화시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