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공업화 함정’의 핵심은 내수취약성과 수출 및 부채의존적 성장방식을 구조화시킴으로써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 산업개혁의 성공은 물적 자본의 보조수단이던 기존의 노동력을 창의적 아이디어와 사회적 기술을 보유한 노동자로 전환하는 데 있어
사실상 저성장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저성장의 근본원인에 대한 이해의 빈곤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경제의 위기는 1990년대 초 이후 제조업 고용의 비중이 감소하는 탈공업화 심화 속에 산업재편을 하지 못하고 과거의 처방을 관성적으로 반복하며 경제체질이 악화되는 ‘탈공업화 함정’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처방 역시 탈공업화 함정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수출 및 부채의존 성장방식 효과 소진
‘탈공업화 함정’의 핵심은 내수취약성과 수출 및 부채의존적 성장방식을 구조화시킴으로써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탈공업화는 무엇보다 ‘일자리 양극화(소득 양극화)’를 초래한다. 소득불평등에 따른 내수약화는 수출의존도를 높이고, 이에 수출경쟁력 확보가 핵심과제로 부상하게 된다. 기업은 수출가격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임금인상 억제, 비정규직 선호, 생산자동화, 생산기지 해외이전 등 노동비용 절감으로 대응하고, 정부는 국내 투자위축 및 산업공동화 등의 부작용 때문에 감세, 노동시장 유연화, 고환율 등으로 기업을 지원한다. 가계와 기업소득의 성장불균형과 내수약화의 배경이고, 내수약화와 자영업 취약성 간 자기강화기제(self-reinforcing mechanism)가 형성된다.
한편 임금불평등은 결혼율의 저하를 통해 저출산 및 고령화 등 인구구조를 악화시킴으로써 내수와 성장잠재력을 추가로 약화시킨다. 내수취약성이 구조화되는 가운데 수출의존적 성장방식은 세계경제 환경이 악화될 때마다 인위적 경기부양이나 부채의존적 성장으로 출구를 찾게 된다. 가계부채와 국가부채가 악화되는 배경이다.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출 및 부채의존 성장방식의 효과가 소진됐다는 점이다. 첫째,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경제의 장기저성장 가능성이 높아지고, ‘차이나 인사이드(China Inside)’ 전략 및 미국 제조업체의 본국 회귀 등에 따른 글로벌 가치사슬(GVC)이 축소된 결과, 금융위기 이전 경험했던 세계교역의 성장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금융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선진국들은 금융기관들의 안정성 제고에 일정한 성과를 거뒀을 뿐 가계구제에는 실패했고 고용의 건강한 회복에 성공하지 못한데다 내수가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환율전쟁과 보호주의가 창궐하는 배경이다. 즉 수출부진이 ‘상수’가 되면서 수출주도 성장은 더 이상 어렵게 됐다.
둘째,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및 금융자산의 가격조정이 이뤄지면서 자산가치 상승에 의한 소비효과는 거의 사라지고 있고, 소득이 늘어도 빚을 갚는 데 사용되면서 부채는 성장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가계신용 기준 가계부채 1단위당 GDP가 2003년에 6.7단위에서 2008년에 1.1단위 그리고 지난해에는 0.6단위로 줄어들어 부채주도 성장방식 또한 금융위기 이후 생명을 다했다.
이런 점에서 2011년부터 세계평균성장률을 밑돌 정도로 성장이 정체되고, 성장의 주축이었던 수출과 제조업이 2012년부터 자유낙하 속도로 성장이 둔화되는 것은 예고된 것이었다. 단지 금융위기 이후 2~3년간은 재정에 의존한 제조업 중심의 몸집불리기로 정체와 둔화가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제조업의 광범위한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배경이다. 그런데 1990년대 일본경제가 그랬듯이 우리의 구조조정 역시 지연되거나 실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우조선해양을 정상기업으로 분류한 이유가 구조조정 후폭풍에 대한 우려였듯이 기본적으로 제조업의 공백을 메울 산업재편이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해운업과 조선업 구조조정은 사실 대기업 구조조정의 시작에 불과하다. 대기업 전반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것이다. 그렇다면 제조업 공백이 생길 것 아닌가. 그 이후 어떻게 성장을 마련하고 일자리를 마련할 것인지, 산업체계를 어떻게 재구성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밑그림을 갖고 구조조정이 진행돼야 한다. 1995년 3대 수출품목인 반도체·자동차·조선이 2015년에도 변화가 없고, 지난 5년간 30대 그룹이 영위하는 서비스업의 매출액 및 영업이익 비중이 정체하고 있듯이 ‘제조업의 서비스화(고부가가치화)’에도 진전이 없다. 현재 추진하는 구조조정 역시 개별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에 국한되고 있을 뿐 기업의 사업구조 재편을 통한 산업구조의 업그레이드나 산업체계의 다양화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참고로 일본이 1999년 「산업활력재생특별조치법」을 제정해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산업 육성을 추진했지만, 처참히 실패하는 등 산업재편에 실패했다. 장기불황이 지속되고 아베노믹스가 성공하지 못하는 배경이다.
아이디어 집약 산업 중심으로 산업·경제구조 재편을
이처럼 내우외환이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 우리 경제의 선택은 자본집약적인 제조업 중심의 산업 및 경제구조를 ‘제조업의 서비스화’를 포함한 아이디어 집약적 산업으로 재편하는 길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으로 질 낮은 일자리뿐만 아니라 기존의 고임금서비스 일자리까지 향후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서비스업 육성이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산업개혁의 성공은 물적 자본의 보조수단으로 역할을 수행했던 기존의 노동력을 창의적 아이디어와 다른 사람과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인 ‘사회적 기술(social skills)’을 보유한, 즉 ‘창의적이고 협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노동자’로 전환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교육혁명이 최선의 경제정책인 이유다. 또한 산업개혁은 협력(연결과 공유)을 통한 가치창출 방식에 대한 이해가 핵심이기에 다양성(차이)을 인정하는 수준을 넘어 존중되는 사회환경의 개조와 민주주의의 업그레이드를 의미한다. 즉 산업개혁은 사회개혁과 동의어이기에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산업정책, 교육, 창의적인 인력을 공급하는 문제 등 여야 정치권이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한다.
경제체질을 바꿀 산업재편이 추진되는 동안 내수관리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내수 관리의 관건인 가계부채 급증 및 부동산시장의 경착륙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