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공장에 1명이 근무하고 있다. 공장의 문을 지키는 경비원이다. 동네의 수많은 상점들은 활기가 없다. 자영업자들의 얼굴에는 걱정이 서려 있다. 점잖게 차려입은 청년들이 대기업을 향하고 있다. 1명을 채용하는 회사에 수많은 면접자들이 몰린다. 며칠 후 채용된 청년 1명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또 한 번 실패를 경험한다. 희망을 가지고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은 고민한다. 졸업 후 진로가 보장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은 청년의 한숨을 크게 만든다. 장년층은 은퇴를 해도 여유를 갖지 못한다. 일자리도 없고, 불황을 이겨낼 자신감도 없다. 내수부진은 근로자들에게도, 자영업자들에게도, 청년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장년층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왔다.
고용불안·가계부채·투자심리 위축이 내수부진 가져와
내수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내수라 함은 소비와 투자를 가리킨다. 먼저 소비는 지속적으로 경제회복을 지연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민간소비 증감률은 2014년 1.7%, 2015년 2.2%로 경제성장률을 지속적으로 하회하고 있다. 물론 민간소비는 올해 1분기 2.2%, 2분기 3.2%로 증가했지만 2015년 메르스 사태에 따라 나타난 기저효과로 소비가 회복됐다고 말할 수 없다. 민간소비의 성장기여도 역시 2011년 1.5%p 수준에서 2015년 1.1%p로 하락했고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한편 투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설비투자 증감률은 올해 1분기-4.5%, 2분기 -2.6%를 기록하고 있다. 기계류의 설비투자지수도 2015년 이후 하락세가 지속됐고, 올해 들어 기준선 100을 하회하고 있다. 올해 8월 13일부터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이 시행되면 기업들은 다각적인 사업재편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부실산업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상황 속에 설비투자를 증대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과잉공급으로 인해 공장들이 문을 닫는 상황에 투자를 늘릴 수는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내수부진은 참을 수 있지만 나아질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걱정이 쌓인다. 소비의 경우 고용시장이 불안해 소득이 불안정한 반면 가계부채는 쌓이고 있어 소비가 진작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난 6월까지 평균실업률은 4.0%를 기록했고, 청년실업률은 10.8%에 달한다. 고용통계를 집계한 이래로 가장 심각한 수준의 실업난을 겪고 있다. 고용시장이 불안정하다 보니 이는 소득불안으로 연결되고 나아가 소비부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가계부채는 투자심리를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가계부채는 지난 3월 말 기준 1,223조7천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1.4% 늘어났다. 문제는 소득의 증가속도보다 가계부채의 증가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그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채무상환부담이 가중되면서 소득에서 일정 비중을 소비지출로 옮기는 평균소비성향이 하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내구재 소비를 제약하고 있다. 한편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이 가속화됨에 따라 주거비 지출부담이 늘어 소비로의 연결도 이뤄지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도 평균소비성향이 낮고, 소득수준이 불안한 노인인구가 확대되면서 소비가 늘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투자회복도 불투명해 보인다. 과잉생산능력으로 설비투자가 침체 중인 가운데, 하반기에 예견되는 국내 산업의 구조개편과 맞물리면서 투자가 확대되기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어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의지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사상 유례없는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투자여건이 개선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금리만으로는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고취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기업들의 투자의지는 비용 측면과 수익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즉 저금리 기조가 유지됨에 따라 투자에 따른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나 높은 불확실성으로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도 뚜렷한 수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고 있다.
소비패턴 변화에 적합한 상품·서비스 개발에 적극 나서야
기업들은 내수부진을 이겨낼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먼저 소비패턴 변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옴니채널 쇼핑, 간편결제 선호, 고가 또는 저가의 양극화 소비, 공유경제형 소비 등 주요한 소비패턴 변화에 적합한 상품과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변화하는 소비패턴을 무시한 채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기업들은 거대한 파도 앞에서 무방비로 바라만 보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소비자의 유형이 변화하고 소비패턴이 변화하며 기호가 변화하고 있는데, 기업들이 공급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소비부진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불확실성이 높아 아무도 뛰어들지 않는 시점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증진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많은 기업이 유망산업으로의 진입을 꺼릴 때, 바로 그때가 기회가 될 수 있다. 향후 유망한 산업이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M&A를 통해 새로운 산업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수도 있다. 규제 및 경제정책 등의 환경변화를 판단해 신시장을 파악하고 개척할 수도 있다.
정책적으로도 기업들이 내수부진을 이겨낼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적합한 정책적 지원이 기업들의 노력과 만날 때 엄청난 시너지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얼마 전 경기부양을 위해 강도 높은 추가경정예산안(이하 추경)이 발표됐다. 추경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그 쓰임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이미 일각에서는 추경의 성격과 맞지 않고, 경기부양의 궁극적인 목표달성에 부적합한 항목들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업들이 내수부진을 이겨낼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정부의 예산은 중소기업들이 R&D 및 상품개발을 위한 투자를 증진하는데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우수한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있어도 적절한 사무공간을 마련하지 못하는 기업들을 지원해야 한다. 소비패턴 변화를 이해하고, 유망산업 및 신시장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교육·정보 플랫폼을 확대해야 한다.
기업들이 내수부진을 이겨내고 적극적인 투자를 할 때 경제는 선순환할 수 있다. 기업들의 투자는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의 소득수준을 개선시켜 소비가 진작될 수 있다. 또한 진작된 소비는 다시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 것이다.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내수부진이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왔듯,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면 희망이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