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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압도적 양적 비중 이면에 ‘과도함’, ‘질적 미흡’ 등 과제 산재
조영삼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17년 08월호



‘9988(사업체 수의 99%, 고용의 88%)’로 상징되는 위상에 미치지 못하는 부가가치와 노동생산성
특정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에서 벗어나 건강한 기업군의 양적·질적 저변이 튼튼한 경제구조로 변모해야


국가마다 경제의 모습이 다르고 산업화의 방식과 경로도 상이하다. 특히 선진국 경제와 후발 추격형 경제는 초기 부존과 제약조건의 차이로 인해 경제구조와 성장방식의 차이가 크다. 이에 따라 중소·벤처기업의 국민경제적 역할도 나라마다 다른 모습을 갖는다.


혁신·활력과는 거리 먼 한국의 중소기업, 과당경쟁과 저수익성에 시달려
그동안 한국경제는 일천한 사회적 자본과 과학적 기반 속에서 원천기술에 의한 시장선점형 성장이 아니라 모방과 학습에 의한 기술의 획득 및 응용을 통한 추격 성장을 추구했다. 이를 통해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고속 성장과 압축적 산업구조 고도화를 성취했으며, 소수의 대규모 기업집단은 세계적인 초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반면 산업조직 측면에서 소수의 대규모 기업집단을 글로벌 경쟁의 최선단에 내세우고 그 뒤를 부품·소재 공급자, 중간공정 분야가 지원하는 형태의 모습이 고착화됐다. 최종재화 공급자 중심의 구매자 독과점적 구조와 대규모 기업집단 중심의 수직적 경쟁질서 속에서 독립계 중소·중견기업의 대기업으로의 성장사례가 매우 적고, 주력산업에서 중소·중견기업의 질적 저변은 여전히 취약하다. 특히 소수의 대규모 기업집단에 국민경제의 명운이 달려 있는 상황은 한국경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낳게 한다.


일반적으로 중소·벤처기업 부문은 창업, 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장과 경쟁을 만들어내고 국민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자본주의 경제의 중추세력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고용 없는 성장이 경제의 선순환을 약화시킴에 따라 중소·벤처기업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핵심원천으로서 그 역할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현실에서 객관화된 중소기업의 실체적 이미지는 우리가 기대하는 역할과는 다소 괴리가 있어 보인다. 혁신, 활력 등과 같은 긍정적 상징보다는 대기업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수동적·보완적 존재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경쟁을 자극하기보다는 진입장벽이 낮은 시장에서 과당경쟁과 저수익성에 시달리고 있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 ‘9988’로 상징되는 중소·벤처기업 부문의 위상은 사업체 수의 99%, 고용의 88%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양적 경제비중으로 집약된다. 그러나 부가가치 측면에서 ‘9988’의 실체적 의미는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또한 대기업 부문과의 격차는 개선되기보다 오히려 확대, 심화되는 양상마저 엿보인다. 2016년 전 산업 기준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의 63% 수준으로 격차가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노동생산성 격차도 선진국에 비해 큰 상황이다.


중소·벤처기업 부문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에 비해 고용을 더 많이 흡수하고 있다면, 이는 일자리의 질과 지속성 문제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중소·벤처기업 부문이 실현한 생산과 매출이 적정수익성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면 이는 혁신과 투자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즉 중소·벤처기업의 압도적인 양적 비중 이면에는 ‘과도함’, ‘질적 미흡’ 등 해결이 필요한 과제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경제양극화 이슈에서도 중소기업은 성장의 수혜집단이 아닌 성장 지체 내지 소외집단에 속한다.


이러한 중소기업의 현주소는 중소기업에 내재된 원인들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후발 산업화와 압축성장 과정에서 구조화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연유하는 바가 크다. 대기업 중심의 성장체제와 이로 인해 낙수효과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중소·중견기업의 성장 경로와 구조에 대한 대안적 해법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로부터 문재인 정부가 왜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해야 했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과거에도 중소기업 정책의 위상제고 논의는 있었으나, 새 정부가 최초로 ‘부 신설’이라는 형태로 실천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현재 한국경제와 중소기업이 처한 과제가 중요하고도 엄중하다는 현실 인식에 기반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중소기업 문제에 보다 적극적이고 확실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기회의 형평성과 경쟁의 공정성 구현이 최우선

재 한국경제는 특정 대기업에 의존적인 경제, 일자리 문제, 역동성이 약화되고 조로화 경향을 보이는 경제, 그 결과로 초래된 경제양극화의 심화라는 난제를 안고 있다.


새 정부의 중소·벤처기업 정책은 중소·벤처기업 부문의 실질적인 역할 제고를 통해 상기 과제들에 대한 보다 확실하고 전향적인 해법을 추구해야 하는 책무를 부여받고 있다. 특정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에서 벗어나 건강한 기업군의 양적·질적 저변이 튼튼한 경제구조로 변모해야 하며, 여기서 중소·벤처기업은 활력 있는 다수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또한 국민 삶의 질 제고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의 핵심주역이 돼야 한다. 창업에서 소기업-중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원활히 성장해갈 수 있는 기업 성장생태계를 구현함으로써 경쟁과 기회가 충만한 경제의 중추세력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특유의 역동성과 혁신성을 통해 경제 전반에 활력을 제공하고 자극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중소·벤처기업 부문의 국민경제적 기여와 역할을 제고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기회의 형평성과 경쟁의 공정성을 구현하는 데 최우선의 정책적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자금, 인력 등 물리적 정책자원을 투입하는 정책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어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중소기업들이 마음껏 도전하고 사업 기회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훨씬 중요하고 효과적이다. 중소기업 정책에서 경쟁 정책이 크게 강조되고 확충돼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의 건강성을 실체적으로 도모해야 한다. 경쟁 정책을 통해 중소기업이 처한 불공정한 경쟁환경과 구조적 불리를 시정하더라도 본연의 국민경제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중소기업 스스로의 적극적인 의지와 노력이 없다면 중소기업 정책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정책적 지원 기준으로 중소기업 자체의 혁신과 도전 노력을 중요하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중소기업을 청년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매력 있는 직장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중소기업을 좋은 인력이 유입되는 질 좋은 일자리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중소기업 정책의 가장 중요한 성과 목표라 할 수 있다. 중소기업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그 성장의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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