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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경제체질 튼튼해졌지만 역동성 복원은 과제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2017년 11월호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과거 개발연대 성장방식에 의존한 것이 외환위기 불러
지난 20년간 국민소득은 1만2천달러대에서 2만7천달러대로, GDP는 530조원에서 1,673조원으로 성장


올해는 한국경제가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시스템에 들어간 지 만 20년이 되는 해다. 우리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신청한 시기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 11월경이다. 당시 사회 초년생이었던 필자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경제상황이 어려워져 국제기관인 IMF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 정도로 생각했었다. 아마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런 느낌을 갖지 않았을까 싶다.


2001년 구제금융 차입금 상환 이후에도 많은 경제위기 스쳐가
당시 불현듯 다가온 IMF와 구제금융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는 곧 알게 됐다. IMF는 부족한 외화를 빌려주고 대신 혹독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이자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급등했으며 이를 버티지 못한 기업들은 하나둘씩 쓰러져 갔다. 구조조정은 어느덧 일상적인 일이 됐고 많은 근로자들이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실업자가 됐다. 취직도 안 되고 가게를 해도 안 되고 그 무엇을 해도 안 되는 불황의 극단을 보여줬다. 급기야 가정마저 흔들리고 개인의 삶은 피폐해져만 갔다. 그렇게 우리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그로부터 3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흐른 2001년 8월 한국은행은 IMF 구제금융 차입금 모두를 상환했다고 발표했다.


그렇다고 외환위기가 끝난 이후 한국경제가 순풍을 탄 것도 아니다. 지난 20년간 경제상황의 흐름을 살펴보면 국민들의 어려움과 구제금융의 상환은 별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선 2001년 세계경제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게 된다. 미국의 9.11 테러 사건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우호적인 환율 조건과 중국시장의 개방에 힘입어 최소한 경제지표상으로는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9.11 테러로 세계경제가 동반 침체를 맞이하면서 우리의 수출이 타격을 입게 됐다. 문제는 당시 우리 정부의 대응이었다. 수출이 부진하자 내수 중심의 성장을 내세우면서 과소비를 부추기는 정책이 추진됐다.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신용이란 결국 파국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바로 2003년 즈음의 카드채 사태로 대변되는 가계 신용시스템의 붕괴가 그것이다. 2002년에 8.9%를 기록하며 과도한 호황을 보였던 민간소비증가율은 급기야 2003년에 들어 마이너스로 반전되면서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을 7.4%에서 2.9%로 급락시킨다. 한번 붕괴된 가계 건전성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복원되지 못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그러한 일련의 경제충격들이 잊혀갈 때쯤인 2008년경 1930년대 대공황에 맞먹는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쓰나미가 세계경제를 덮친다. 한국경제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9년 경제성장률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0%대를 기록하게 된다. 그 충격의 여진으로 PIGS국가(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들의 재정부실로 촉발된 유럽의 재정위기가 또 찾아왔다. 20년의 시간 동안 참으로 많은 위기가 한국경제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경제는 IMF 외환위기가 시작됐던 1997년과 많이 다르다. 많은 도약을 이뤄냈다. IMF 당시 1만2천달러대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최근 2만7천달러대로 급증했다. 경제규모도 커졌다. GDP는 1997년 530조원에서 2016년 기준 1,673조원에 달한다. 20년 동안 경제규모가 3배나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한국 경제규모의 세계 순위는 11위에서 변동이 없으나 한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에서 1.9%로 증가했다. 10위권 국가들 중 미국 등 7개 국가의 비중이 감소한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적이다.


수동성 만연한 한국경제…지금이 더 위험할 수도
한편 강산이 두 번 바뀐 지난 20년간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가 얻은 교훈은 바로 흐름을 읽어내야 가계도 기업도 나아가 국가경제도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세계시장이 만만한 곳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한국이 1997년에 IMF 체제에 들어간 것에 많은 원인들이 지적되고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고, 과거 개발연대의 성장방식에 의존했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 살아남으려면 한국경제를 둘러싼 외부요인들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반면 우리가 외환위기 이후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바로 역동성이 아닐까 싶다. 20년이 지난 지금 저성장이 일상화돼가고 있다. 2012년 이후 올해까지 6년 동안(2014년 일시적으로 3.3%를 기록, 2017년이 2%대라는 가정을 한다면) 2%대의 성장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즉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 때의 고통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개인은 자신의 꿈을 펼치는 것보다 안전한 직장을 선호한다. 최근 공무원 시험에 대한 열기가 커져가는 것이 그것을 반증한다. 기업은 지키는 데 급급하고 있다. 위험을 안고 새로운 시장,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기를 꺼린다. 우리 스스로가 과거의 기억에 얽매여 미래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다. 그러한 수동성이 지금 한국경제에 만연해 있다. 그래서 위험하다. 어쩌면 지금이 더 위험한 시기일 수도 있다.


끝으로 한국경제가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외환위기의 교훈을 머릿속에 담아둬야 한다. IMF 관리체제를 겪은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1997년의 늦가을은 단군 이래 최대의 환란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IMF에 손을 내밀었던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선진국들이 한 번 이상씩은 IMF 구제금융에 의존했던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경제의 체질은 튼튼해졌고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알게 됐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지금의 또 다른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바로 20년 전인 1997년의 늦가을 그곳에 놓아두고 왔던 역동성을 찾아와 다시 우리의 가슴속에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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