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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IMF, 안정화 정책과 구조개혁 처방하며 신자유주의 해법 본격화
장보형 KEB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 2017년 11월호



재정건전화와 고금리 골자로 한 안정화 정책으로 경상수지 빠르게 흑자 전환했지만 그 대가로 심각한 경기침체 겪어
기업·금융 부실에 집중된 구조개혁, 공적자 금 64조원 투입해 부실채권 정리하고 빅딜과 워크아웃 등 추진


‘단군 이래 최대 불황’으로 불리던 외환위기도 어언 20년이 지났다. 경제주권 상실에 따른 ‘제2의 국치’를 비통해하던 분위기는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자료화면상의 에피소드로만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외환위기가 몰고 온 변화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투기의 강력한 전염력 탓에, 1997년 7월 태국의 바트화 폭락으로 촉발된 아시아 외환위기가 국내에 상륙하는 데는 몇 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위기 전조는 연초 한보그룹의 부도로 싹을 보였고, ‘국민차’ 기아자동차로 이어진 도산 행렬은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으로 얼룩진 고도성장의 취약성을 전면에 드러냈다.


취약고리는 ‘경상수지’…자본자유화 맞물려 금융권 대외 차입 급증
시경제 상황만 보면 나쁘진 않았다. 1994~1995년 호황이 끝나 성장이 둔화되긴 했지만 1996년 경제성장률은 7.6%에 달했고, 물가상승률도 당시로서는 극히 안정적인 4%대를 이어가고 있었다. 여느 위기국의 고질병인 정부재정의 악화도 우리에게는 ‘강 건너 불’이었다.


취약고리는 경상수지였다. 1994년 적자로 돌아선 후 1996년 238억달러로 적자가 대폭 증가한 것이다. 경상수지 적자는 국내 총저축보다 총투자가 많다는 뜻이며, 그 공백은 해외자금 유입으로 메워야 한다. 그 결과 대외채무는 1994년 말 808억달러에서 1997년 6월 말 1,615억달러로 배나 늘어났다. 특히 자본자유화와 맞물려 금융권의 대외 차입이 같은 기간 589억달러에서 1,069억달러로 급증한 점이 문제였다.


국내 금융권의 건전성은 외형상 양호했지만, 실은 자금수요자인 기업 실적이 악화되고 부실이 늘면서 적신호가 켜진 시점이었다. 또 외자 급증은 1990년대 중반 중남미 위기에서 빠져나온 국제 투기자본의 새로운 출로였다. 그 여파가 원화 고평가로 이어지면서 국제자본의 투기 변덕에 취약한 구조를 낳았다.


“펀더멘털은 견고하다”던 정부의 항변은 무력했다. 외자유출 공세에 외환보유액만 탕진하다 보니 정부의 가용 외환보유액은 1997년 11월 말 73억달러로 바닥을 드러냈다. 끝내 11월 21일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지만, 국내 금융시장은 국가 부도 위험에 시달리며 환율과 시장금리가 폭등하는 패닉에 빠졌다.


구제금융 조기 졸업한 ‘IMF 모범생’, 하지만…
IMF는 1980~1990년대 중남미와 동유럽의 금융위기 경험에서 배운 대로 안정화 정책과 구조개혁 처방을 제시했다. 일명 ‘신자유주의 해법’이다.


안정화 정책은 환율 안정과 국제수지 개선을 위한 고강도 긴축, 즉 재정건전화와 고금리가 골자였다. 그 결과 국내 경상수지는 환율 급등과 국민의 ‘내핍’ 덕에 빠르게 흑자 전환해 1998년에는 400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외환보유액도 연말 520억달러로 늘어났다.


그 대가는 심각한 경기침체였다. 1997년 5.9%로 버티던 경제성장률이 1998년 -5.5%로 급락했다. 신속한 구제금융 지원과 외채 만기연장 등에 힘입어 국가부도 위험은 진정됐지만, 고강도 긴축으로 실물경제가 망가진 것이다. 이후 IMF가 금리인하 및 재정적자 지출을 용인하기 시작하면서 무게중심은 구조개혁으로 넘어갔다.


구조개혁은 기업·금융 부실에 집중됐다. 공적자금 64조원을 들여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빅딜과 워크아웃으로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1997년 393%에 이르던 기업 부채비율은 2001년 182%로 떨어졌다. 외환위기의 핵심기제였던 종합금융사를 비롯해 부실금융기관들이 대거 정리되고, 부실채권 비율도 1999년 8.3%에서 2001년 2.9%로 감소했다. 그 외 자유화와 관련해서도 전면적인 외환자유화, 외국인 직접투자 제한 및 주식보유 한도 폐지 등이 이어졌다.


이후 우리 경제는 ‘V자형’ 회복을 보이고 1999년 11.3%의 놀라운 성장률을 달성하며 정상화 궤도에 들어섰다. ‘IMF 모범생’이라는 격찬과 함께 2001년 IMF 구제금융에서 조기 졸업하는 개가도 올렸다. 최근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우리의 외환위기 극복과정을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한국의 경제성과는 고품질”이라고 진단했다. 외환위기 이후 20여년에 걸친 구조개혁 성과 덕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2009년 경제성장률을 플러스(+0.7%)로 사수할 수 있었던 저력도 이런 노력에 기반하고 있다. 또 이후 대외 차입 축소 등 외환건전성 개선에 초점을 맞춰 신흥시장의 원죄를 탈피할 수 있었다. 이제 IMF는 우리나라를 ‘선진경제’로 분류한다.


하지만 정작 국내 경제활력은 둔화되고 있다. 1990년대 7%를 넘던 성장률이 2000년대 4%대로 낮아진 데 이어 최근에는 고령화 문제와 결부돼 2%대까지 추락한 것이다. 특히 구조개혁에 따른 ‘유연성의 역설’ 탓에 고용 안정이 무너지고 소득 양극화가 확산되는 부작용도 컸다. IMF 모범생의 실로 부끄러운 이면이다.


IMF조차 최근에는 신자유주의 해법의 한계나 취약성에 관심을 환기시킨다. 과도한 긴축과 구조조정으로 실업급증과 경기침체를 자초해 사회 안정을 저해했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와 달리 강력한 자본통제로 외환위기에 맞서며 물의를 일으켰던 말레이시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타당했다는 IMF의 반성도 나왔다.


지금 우리는 가계부채 급증이라는 중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 역시 기업에 쏠렸던 금융권 대출이 외환위기 이후 가계라는 대안을 찾고, 정부나 가계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소득 부진을 메우려 했던 결과다. 과거처럼 격렬한 위기의 가능성은 옅어졌지만, 일본식 장기불황과 같은 ‘고사(枯死)’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새로운 해법이 아쉬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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