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완전한 변동환율제로의 전환 및 금융시장 개방 추진해 금융시장 확대와 국제화에 기여 우리나라 외환 분야 국제적으로 안정성 인정받아…주요 신용평가사의 국가신용등급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
1997년 IMF 사태로 불리는 우리나라 경제위기의 실질적 내용은 외환위기였다. 외환이 부족해서 대외결제가 불가능하게 돼 국가 부도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국가 부도를 피하기 위해 IMF에 외환지원을 요청했고 IMF는 경제개혁을 조건으로 외환지원을 제공했다. 사실상의 국가 부도를 맞은 이후 한국 정부에서 가장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 분야 중 하나가 외환건전성의 개선이다.
외환건전성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들로는 외환보유액 수준, 만기 1년 이하의 단기외채, 혹은 1년 이내로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의 총액을 일컫는 유동외채, 그리고 대외순자산 등이 있다. 지난 20년간 이 지표들은 획기적인 개선을 보였다.
IMF, 580억달러 금융지원 약속하고 한국의 경제개혁 지휘 외환보유액은 1997년 39억달러까지 감소했었으나 2017년 8월 말 기준 3,848억달러로 100배 가까운 수준으로 증가했다. 단기외채는 1997년 당시 총외채의 36.1%에 달했고 보유액 대비 단기외채는 최대 286%에 도달하기도 했었다. 2017년 6월 현재 단기외채는 총외채의 28.8%로 감소했고 외환보유액 대비 30.8%에 불과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유동외채는 2017년 6월 말 기준 1,840억달러이며 외환보유액의 47.8%에 이르고 있으나 대부분 차환되고 있다. 외환건전성을 판단하는 이 지표들은 특정 시기의 외환 저량(stock)의 수준에 대한 평가를 보이고 있으며 지난 20년 동안 괄목할 만한 개선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지표들을 변동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외환의 유량(flow) 지표라고 할 수 있는 경상수지다. 경상수지의 증감 혹은 적자와 흑자는 외환건전성의 변동방향을 결정하는 주요 지표다. 1990년대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지속적인 적자를 보였다. 1990~1996년간 누적 경상수지 적자는 487억달러에 달했고 1996년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4.7%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2017년 8월 기준 우리나라는 65개월째 경상수지 연속흑자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흑자 폭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경상수지의 개선은 인구구조의 변화도 영향을 미치지만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회복이 밑받침이 됐다. 지속적인 경상수지 개선으로 우리나라는 2014년 이후 순채무국에서 순채권국으로 전환됐다.
외환위기 이후 IMF는 580억달러의 금융지원을 약속하고 한국의 경제개혁을 사실상 지휘했다. IMF 체제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것은 외환 부문이었다. IMF는 환율정책을 완전한 변동환율제로 전환하고 금융시장 개방을 추진했다.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으로 인한 외환낭비를 막고 환율의 자동조정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어서 금융시장의 확대 및 국제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해외자본 유출 위험에 대비해 거시건전성 3종 세트 도입 더 중요한 변화는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경제환경이 투자자에게 불리하게 바뀌면 언제든 해외자본이 유출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 거시건전성을 관리하는 데 높은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게 됐다. 소위 거시건전성 3종 세트는 이러한 정책적 노력의 일환으로 도입된 대표적 사례다. 거시건전성 3종 세트란 한국 정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격한 자본 유출입에 따른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해 2010년에 도입한 정책으로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환건전성 부담금,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제도’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뿐만 아니라 국제협력을 통한 외화자금의 공급능력을 확충했다. 대표적인 성과가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M)’로 불리는 ASEAN과 한·중·일이 참여하는 다자간 통화스와프다. 양자 간 통화스와프도 다양하게 추진됐으며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에는 한미 통화스와프가 외환시장의 불안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중국, 호주 등을 비롯한 여러 국가와 양자 간 통화스와프를 유지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한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극복과정에서 설립된 주요 20개국 간 경제협의체인 G20에 회원국으로 참여해 글로벌 금융안전망(GFSN; Global Financial Safety Net) 확대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이 의장국을 담당했던 2010년에 이 주제는 한국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G20의 주요 어젠다로 채택됐고 지금까지 IMF와 국제통화체제의 안정을 위한 협력이 지속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 외환 분야는 국제적으로 안정성을 인정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북한이 야기하고 있는 정치군사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국제신용평가는 오히려 상향 조정됐다. 그 결과 주요 신용평가사들이 매긴 국가신용등급이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고 일본을 앞질러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IMF의 보고서에서도 한국은 기축통화국을 제외할 경우 GDP 대비 공급 가능한 외환 기준으로 세계 2위 수준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한국은 이제 주요 국제채권국의 하나로서 외환보유액의 수익을 제고하기 위한 금융회사로 한국투자공사(KIC)를 설립해 운용하고 있으며 해외투자금액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우리나라 외환 부분의 안정성은 최근 국제금융시장의 주요 이벤트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2013년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양적완화정책(QE)의 축소 가능성을 밝히자 신흥국 채권시장에서 해외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치는 현상이 발생했다. 소위 ‘테이퍼 탠트럼(taper tantrum)’으로 불린 이 사건에서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안정성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외자금이 유입돼 그 안정성이 입증되기도 했다.
외환위기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외환건전성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강건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국제통화를 발행해 사용하는 국가는 아니어서 외환위기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